출처 : 삼태극
글쓴이 : 소서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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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6] 미스터리 추적, 일본천황가는 백제인인가? | |
작성일: 2002/04/26 수정일: 2002/05/03 | |
제146회 홍보자료 ** 역사추적!! 일본천황은 누구인가? ** 1. 제 목 : 미스터리 추적, 일본천황가는 백제인인가? 2. 방송일시 : 2002년 2월 16일 (토) 20:00-21:00 KBS 1TV 3. P D : 우종택 PD [TEL 781-3557] / 작가 : 권기경 4. 내용 요약 : 일왕 아키히토의 충격발표!! 칸무천황의 생모는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다. 지난해 12월 23일 68세 생일을 맞은 아키히토가 기자회견자리에서 밝힌 위 사실은 일본천황가의 혈통에 대한 최초 발언이다. 그 동안 일본천황가는 만세일계, 즉 순수한 하나의 혈통으로 이어져왔음을 주장해왔는데 그래서 이번 발표는 양국 모두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일본천황가는 정말 백제인일까? 이번 주 역사스페셜에서는 일본천황가와 백제왕가와의 관계를 보다 심층적으로 취재, 일본천황가의 뿌리를 밝혀본다. 5. 세부내용 1) 칸무천황의 어머니는 백제인이다. 일본 제 50대 칸무천황. 그는 794년 교토를 수도로 정한 후 조상신을 모시기 위한 특별한 신사를 하나 짓는다. 그것이 바로 히라노 신사이다. 히라노 신사의 조상신중에는 칸무천황의 어머니, 고야신립도 있는데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고야신립의 혈통이다. 속일본기를 보면 고야신립의 선조가 백제 무령왕의 아들 순타 태자의 자손이라는 기록이 있다. 즉 칸무천황의 어머니가 백제인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일본천황가에 백제인의 피가 흐르게 된 것일까? 백제왕가와 일본천황가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본다. 2) 무령왕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백제왕가와 일본천황가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는지 그 의문을 풀어준 무령왕릉 발굴이 1971년에 있었다. 무령왕릉 입구에서 발견된 지석에는 삼국사기에도 없는 무령왕 출생에 관한 기록이 있다. 지석에 기록된 사망년도와 나이를 역산해보면 무령왕은 461년에 출생하였는데 자세한 기록은 일본서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서기는 무령왕이 후쿠오카 북쪽의 가카라시마 섬에서 태어났다고 적고 있는데... 백제의 무령왕이 정말 일본에서 태어났을까? 일본 가카라시마 현지 촬영을 통해 백제 무령왕의 흔적을 찾아본다. 3) 무령왕은 왜왕이었다. 백제 무령왕이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일본서기를 통해서 확인했지만 왕위에 오르기까지 행적에 관한 기록은 백제, 일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무령왕이 일본에서 태어났을 때 백제는 고구려의 군사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475년엔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당시 왕이었던 개로왕이 살해된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 주목할만한 서신 한 장이 왜로부터 송나라에 전달된다. 478년, 왜무왕은 송나라에 작호를 요청하는데 여기엔 475년경 부형과 형이 돌아가셨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 시기를 고려해 볼 때 죽은 부형은 개로왕이 될 가능성이 높고 왜무왕은 자연스럽게 무령왕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4) 신찬성씨록의 비밀 - 일본천황의 뿌리는 백제인이다. 일본 고대문화의 꽃을 피운 야마토 왜를 지배한 백제왕족, 단순히 천황가의 외척에 머물렀을까? 고대 일본의 신족, 왕족, 귀족들의 역대 계보를 적어놓은 신찬성씨록에서 그 의문의 실마리를 찾았다. 지금은 필사본밖에 전하지 않지만 신찬성씨록엔 [대원진인의 출신은 비다쓰 천황의 손자이며 백제왕족이다.]라고 정확하게 나와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어쩌면 일본인들은 알면서도 외면했던 신찬성씨록의 비밀을 공개한다. 5) 일본에 백제궁이 있었다. 일본 30대 비다쓰 천황이 백제왕족임을 밝히는 신찬성씨록과 일맥상통하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나와 있다. 일본서기엔 천황이 백제궁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중 34대 조메이 천황이 백제천 근처에 백제궁과 백제사를 만들겠다고 알린 기록이 있다. 제작진은 나라현 사쿠라이시를 찾았다. 그곳엔 옛 지명 중 백제강이라고 불리던 곳이 있었는데 인근지역엔 지금은 연못에 잠겼지만 200평방미터로 추정되는 금당터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서기에 나타난 백제강 옆에 세웠다는 9층탑 흔적도 찾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메이 천황은 장례의식까지도 백제식을 따른다. 가장 변하기 어려운 보수적인 전통, 장례의식 왜 조메이 천황은 그 전통을 깨고 백제식 장례를 따랐을까? 6) 백제는 야마토 왜를 경영했다. 고대국가 야마토 왜가 문화의 꽃을 피운 아스카 지역. 당시 이 지역을 소가씨라는 호족이 지배했는데 발굴된 대규모의 무덤군이 소가씨의 세력을 짐작케한다. 실제로 소가씨는 천황의 목숨까지도 좌지우지했던 절대권력자였다. 그런데 일본서기를 보면 그런 권력자 소가씨가 일본에 파견된 백제왕자 교기를 극진히 대접한 기록이 있다. 그것은 오경박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백제에서 파견된 오경박사는 유학이나 한문등 단순히 문화만 전파한 것이 아니라 백제 중심의 세계관을 전파하면서 일본으로부터 환대를 받는다. 백제가 파견한 백제왕자와 오경박사, 이들은 일본에 백제의 선진문화를 전파하며 실제로 야마토 왜를 경영한 권력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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