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고조선(한단고기)

[스크랩] 중국 산동성의 무씨사석실에 나타난 단군역사의 실체(펌)

설레임의 하루 2011. 9. 3. 03:22

 아래는 김상일 교수가 밝혀내는 이야기다.  단군신화가 아니라 실체한 역사라는 사실을 벽화를 통해서 추적해 본다.

 

 

 

 

http://bc8937.pe.ne.kr/tec/read.cgi?board=pds2&nnew=2&y_number=734

 

 

武氏祠石室의 畵像石에 나타난 중국마음과 한국마음

 

 

 

김상일

 

 

 

 

Ⅰ. 유럽적 균열‥‥‥기원전 2000년이란

 


  인류문명의 발달과정에서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2000년을 전후하여 시작된다. 이는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인간이 청동기시대로 들어오기 이전까지는 수백만 년 동안을 돌이라는 연장을 도구로 사용해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최초로 구리라는 금속으로 연장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현대에 와서 과히 우라늄을 발견한 변화에 해당한다고 인류학자들은 보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등장과 함께 사회제도상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바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계사회의 등장과 함께 청동기시대가 동시에 등장하는 것도 전 세계적인 공통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구리 다음에 철기시대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구리는 아직도 인류에게 귀중한 금속이며, 청동기시대와 함께 등장한 가부장제도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서 기원전 2000년은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이래로 가장 괄목할 만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종교학자 M. 엘리아데는 이 시기를 ‘가장 중요한 시기(illo Tempore)’라고 했던 것이다.

  생산양식이 변하면 의식구조도 변한다. 원시적인 돌을 사용해 생산을 할 때와 우리 같은 금속을 만들어 농기구로 사용할 때는 그 생산양식에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으며 인간의 의식구조 역시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종교관의 변화, 특히 신관(神觀)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신석기 모계중심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다산(多産, Fertility)에 있었다. 오랜 동안의 수렵과 사냥의 유랑생활을 끝내고 일정한 장소에 정착해 살게 된 인간들은 자기가 정착한 장소 주위의 땅을 개간해, 한 해 먹을 만한 생산을 해내지 못하면 종족이 멸망하고 만다. 그래서 생산은 그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요즘 같이 한나라의 농사가 흉년이더라도 외국에서 수입하여 부족한 양곡을 채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원시인들은 암컷이 생산을 좌우한다고 믿었다. 난교와, 아직 성숙하기 전에 성관계를 자유스럽게 가졌기 때문에 남성이 생명탄생의 필연적 요소라는 것을 안 것도 최근의 일이다. 농경민족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들의 신을 여자로 보았었다. 즉,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남성적인 힘이 아니고 여성적인 힘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신은 절대로 여자였지 남자일 수 없었던 것이다. 농경 모계사회의 이러한 여신을 태모(太母, The Great Mother)라고 한다. 희랍의 가이아(Gaia), 인도의 프리티야, 바빌론의 티아마트(Tiamart)등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수많은 여 신상들은 모두 모계 사회가 인류사에 뚜렷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원전 2000년을 전후하여 전 세계적으로 이런 태모들이 대 수난을 당한다는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태모숭배는 살벌하였다. 태모에게 바치는 희생양(羊)으로 인간을 선택한다. 선택된 인간은 살해되고 그 피는 땅에 뿌려진다. 살은 다른 인간들에 의하여 나누어 먹힌다. 모두가 태모에게 절대적인 충성과 파산을 기원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태모들이 청동기시대의 등장과 함께 모두 소멸 당한다. 예를 들면 희랍신화에 보면 땅의 어머니 신인 ‘가이아’가 하늘에서 내려온 ‘제우스(Zeus)’에 의하여 살해당한다. 제우스는 하늘의 우뢰신인 우라노스(Uranos)의 아들이다.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살해사건은 바빌론의 ‘티아마트’가 ‘마르둑(Marduk)’이란 남성 신에 의에 살해 당하는 장면이다. 티아마트는 수 만년을 통해 인간을 지배해 오던 여신이다. 어느 신도 그녀를 당할 수 없다. 드디어 마르둑이란 남신이 여러 신에게 티아마트를 살해하면 모든 주도권을 장악한다는 약속을 받고 그녀를 살해하고 그녀의 몸을 나누어 하늘과 땅을 창조한다. 두 눈은 해와 달이 되고 피는 하수와 바다가 된다. 여신의 대 패배 장면이다. 그래서 드디어 남신 마르둑이 등장한다. (구약성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러한 남신 마르둑의 등장을 ‘에누마 엘리쉬(Enuma Ellish)’라고 한다.

  바빌론의 창조신화는 (구약성서) 창세기의 창조설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창세기 1장 2절의 ‘흑암’이란 말은 ‘Tehom’인데, 이 말은 ‘Tiamat’에서 유래했다. 흑암을 갈라 남신 엘로힘(Elohim)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말은 그 원형이 바빌론신화에서 왔음은 구약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구약성서> 역시 남신이 여신을 살해하는 상징에서 우주가 창조된다는 점이 바빌론 신화와 같다. 인도에는 하늘의 남신 인드라(Indra)가 땅의 여신 프리티야를 살해한다. 지중해 연안판 인도-유럽 언어권에 속하는 창조설화 흑은 신화는 거의 예외 없이 남신이 여신을 살해함으로써 천지가 창조된다고 한다. 우리 동양인으로서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들이다. 왜냐하면 음·양은 여성과 남성을 대칭적으로 상징하는 것으로서 조화되어진다고 보지 대립하는 것으로는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양신화 속에는 그렇게 잘 조화되어져야 할 남성과 여성이 살벌하게 서로 죽이고 살해한다.

  아무튼 전 세계적으로 기원전 2000년이 되면서 하늘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남성 신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온다. 월버(Ken Wilber)는 이와 같이 하늘이 밝아지는 기원전 2000년을 두고 ‘태양화시기(The Solar Age)’1) 혹은 ‘태양화(Solarization)’라고도 했다. 문명의 발전단계를 제대로 밟아온 문명권 속에서는 태양화 현상이 거리 예외 없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종교적으로는 여신이 남신으로 바뀌지만,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에는 단순히 신관의 변화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보는 상징체계가 변한다. ‘어둠’이 ‘밝음’으로, ‘땅’이 ‘하늘’로, ‘달’이 ‘해’로 등등, 그 상징체계가 엄청나게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역)은 음(陰)과 양(陽)이라고 하여 그 상징체계를 모든 영역에 응용하고 있다. 여기서는 어둠-땅-달-여신-음을 하나의 연관된 체계로 보아 ‘여성원리(Female Principle)’라고 하고, 밝음-하늘-해-남신-양을 ‘남성원리(Male Principle)’라고 부르기로 한다. 칼 융은 우리의 집단무의식 속에서 두 상징체계를 분석하여 남성원리를 ‘아니무스(Animus)’라 하였고, 여성원리를 ‘아니마(Anima)’라고 했다. 지금부터 우리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남신과 여신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남성원리와 여성원리에 관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남신이 기원전 2000년경에 여신 태모를 살해한다는 것은 남성원리가 여성원리를 살해한다는 말과 같다. 즉 빛이 어둠을 제거하고, 하늘이 땅을 정복하고, 해의 신이 달의 신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기원전 200∼800년경, 즉 차축시대(Axial Age)에 이르러서는 남성원리는 이성과 합리성으로, 감정과 비합리성은 여성원리와 관계되고, 기원후 16세기경에 이르러서는 남성원리는 정신을, 여성원리는 물질을 대표한다. 드디어 서양문명사에는 이성이 감정을, 정신애 물질을 억압하고 살해하는 역사가 나타난다. 드디어 21세기를 맞이하는 서양문명은 남성원리와 여성원리 사이에 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땅의 어머니를 정복하고 파괴함으로써 자연파괴현상이 나타나 생태학적 위기를 겪게 되었고,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같은 성(性)끼리만 관계하는 변태적 성 관계에서 AIDS란 인류멸망의 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두 원리상의 균열을 화이트(Lyun White) 같은 학자는‘유럽적 균열(European Dissociation)’이라고 했다. 유럽적 균열 속에서 여성원리는 모두 악마화(Demonization)된다. 서양에서 마녀(Witch)는 있어도 마남은 없다. 우리의 개념과는 반대로 서양에서 천사는 여자가 아니고 모두 남자이다. 미카엘(Michael)과 라파엘(Rafael)은 모두 남자이지 여자가 아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장본인이 남자가 아니고 여자로, 서양역사 속에서 여자는 철저하게 악마화 된다. 중세기(14∼17세기)의 마녀사냥으로 죽은 마녀는 무려 600만 명에 이른다. 
 

 


  기원전 2000년 이래 과거 4000년 동안은 여성원리가 철저하게 배제되고 탄압받던 역사였다. 신화는 옛날 얘기가 아니고 지금까지 계속된다.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부조화로 서양의 자아인격은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 서양에서 밤마다 마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인구가 무려 70% 이상이다. 이는 세기적 위기이며 인류멸망을 경고하는 위기이다. 이만큼 유럽적 균열의 결과는 심각한 것이다.


Ⅱ. 한국적 화합


  인도-유럽지역에 퍼져 있는 신화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남성 신이 땅의 여신을 살해하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했다. 그런데 기원전 2000년을 배경으로 한 한국의 단군신화는 매우 다른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비슷하게 단군신화에서도 하늘에서 남성신 환웅이 내려온다. 이는 마치 제우스나 인드라가 하강하는 장면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땅의 태모는 웅녀이다. 그러나 유럽의 경우와는 달리 남신의 여신 살해현상이 생기지 않는다. <삼국유사>에 보면 환웅은 아버지에게 세상에 내려가게 해달라고 간청하며 스스로 세상을 貪했다[貪求人世]고 한다. 여러[數意]그러했다고 한다. 한국의 남성 신은 땅을 미워하지 않고 반대로 사랑하고 하늘 위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땅에 내려오기를 더 갈구한다. 그는 땅의 여신 태모를 살해하지 않고 도리어 그녀와 결혼한다. 제우스가 가이아와 가이아의 아들 타이폰을 살해하는 장면과는 너무나도 판이하다. 물론 태모 웅녀를 굴속에 넣어 마늘과 쑥만 먹고 100일을 견디게 하는 고통의 과정이 있지만 둘은 인간으로 변형(transform)되어 결합된다. 이러한 단군신화의 상징은 한국문화에 남성원리와 여성원리 사이에 균열이 아닌 화합을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필자는 이를 유럽적 균열에 대해 ‘한국적 화합(Korean Association)’ 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균열이 아닌 화합이 있는 문명권에서는 자연파괴, 성차별, 몸과 마음의 균열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단군신화는 옛이야기가 아니고 현재에도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에도 태양시기 흑은 태양화현상이 뚜렷이 존재했음이 분명하다. 최남선은 우리나라 산의 이름이 유달리 백두산(白頭山) ·장백산(長白山) ·소백산(小白山) ·태백산(太白山) 등과 같이 ‘백(白)’자가 많이 들어가는 점을 착안하여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을 주장한 바 있다. 불함이란 말은 순수한 우리말인 ‘밝’이 한자로 전음 된 말이다. <산해경(山海經)>에 있는 말로서 동쪽의 산이 모두 ‘밝에’서 ‘불함’이란 한자 전음이 나왔다. 은릴은 광명을 의미하는 것으로 어둠에 대칭되는 말이다. ‘환웅’이라고 할 때 이 말 속에는 ‘하늘(天)’· ‘밝음(光明)’ 그리고 ‘남성[石柱]’이다 포함되어 있어서 남성원리의 주요개념이 한꺼번에 한 말 속에 다 나타나 있다. 곰(혹은 웅녀)은 ‘감’으로서 ‘검음[黑]’과 ‘신성’하다는 의미까지 포함되어, ‘임검’ 흑은 ‘영검’ 등은 모두 ‘곰’에서 파생된 언어이다. 일본의 신의 이름은 ‘가미(かみ)'인데 이 말은 한국말 ‘곰’에서 유래된 말이다. ‘밝’과 ‘곰’(감)이 이렇게 뚜렷하게 남성원리와 여성원리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두 원리가 상생(相生)하면서 우리 문화를 형성시켜 왔음을 의미한다. 

  육당 최남선은 불함문화를 세계에서 가장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문화라고 했었다. 그는 어원적으로 ‘밝’의 어원을 중동아시아, 남북미 대륙, 동남아 일대 등 전 세계에서 찾았다. 그리고 일토일민(一土一民)속에 ‘밝’의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은 한국뿐이라고 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은 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여기서 육당이 ‘밝’이나 ‘곰’ 같은 언어에 착안한 점은 높이 평가될 수 있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가 한 가지 지나친 정은 ‘밝’문명이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명이 아니고, 기원전 2000년을 전후한 ‘가장 중요한 시기’ 혹은 ‘태양시기’에 나타난 문명이란 사실을 간과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밝’문명은 ‘곰’문명과 대칭되어 있는 것이라는 점도 간과했다는 것이다. 두 문명은 잇따라 일어났다. 실로 음·양의 대칭이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그 시원은 역시 단군신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고, ‘밝’과 ‘곰’이 양과 음의 대칭의 시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밝’은 남성원리를, ‘곰’은 여성원리를 대표하는 말이다. 양원리가 한국에서는 화합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한국문화사 속에는 양 원리의 균열이 과연 없었단 말인가? 남 ·여의 성차별, 신분의 차별 같은 균열이 과연 생기지 않았단 말인가? 이 점에 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Ⅲ. 무씨사당 화상석에 나타난 문제점


  무씨사석실(武氏祠石室)은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고 중국  산동성 가상현(嘉祥縣) 남쪽 28리 되는 자운산(紫雲山) 아래에 있다. 빙하의 범람으로 흙이 쌓여 흙 가운데 묻혀 있던 것을 건륭 51년 황역(黃易)이란 사람이 발굴하여 지금과 같은 무씨사석실을 만들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만들어진 연대는 기원후 147년이다.

  김재원은 (檀君神話의 新硏究)(1947)에서 무씨사석실에 나타난 벽화는 그 내용이 한국의 단군신화의 내용과 8 · 9할이나 복합된다고 했다. 벽화는 전과 후로 나누어져 있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후석실 제 3석 제 2층이다. 각 석실의 화상석은 대개 4층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 2석은 위에서 두 번째 층 이하가 나뉘어져 있지 않고 한 층으로 되어 있다.

 


 

이제 도판 제 1석(후석실 세 2석 세 2층)부터 보기고 하자. 구름 위에 뜬 인물마차가 보인다. 구름으로 상징한 것은 지상이 아니고 하늘 위임을 의미한다. 우선 화면을 두 개의 군(群)으로 나눌 수 있다. 즉 구름 위에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과 날개가 없는 지상의 인물과 마차 같은 것이. 그것이다. 바른쪽 위에 있는 두 인물 가운데 왼쪽에 있는 인물은 수염이 있고 오른쪽에 있는 인물은 수염이 없다. 이는 성별로 남자와 여자로 나눌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왼쪽 위나 바른쪽 중간에 있는 날개 있는 말이 끄는 두 마차는 한 마차가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즉, 누군가가 하늘 위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름 위에서 많은 날개 달린 인물들이 보이고 구름이 새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다. 김재원은 두 주인공을 두고 남자는 동왕공(東王公)이고, 여자는 서왕모(西王母)라고 본다.2) 서왕모의 왼쪽에 있는 인물이 세 개의 구슬을 쥐고 있다. 이것은 간판신화의 천부인 세 개에 비교될 수 있다.

  이제 그림의 아래 부분에 눈을 돌려 보면 아래 왼쪽에 한 귀인과 두 무사가 있고, 그들이 타고 온 마차와 말 두 필이 보인다. 우측에는 건물이 있고 두 사람이 나오고 있다. 하늘에서 어떤 인물이 내려 지상에 당도했는데 지상에서 이들을 영접하는 장면이다. 건물과 무사를 거느리고 온 귀인 사이에 세 개의 원형 산봉우리가 있다. 이 세 산봉우리 바른쪽 아래 산에는 날개가 없는 사람이 있으나 높은 봉우리를 날개 있는 천사가 무기를 들고 방어하고 있고, 또 한 천사는 그 산 안에 있고 제 3의 천사는 그 봉우리에서 내려오고 있다.

  위의 내용은 단군신화의 내용과 매우 흡사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서왕모라고 한 여인을 환인(桓因)이라고 본다면 그 왼쪽의 수염 달린 남자는 환웅이다. 환인이 <삼국유사>에는 남자로 보고 있지만 김정학 같은 학자는 여자로 본다. 슈메르 신화의 인안나(Inanna) 같은 인물일 것이다.3) 아들 환웅이 환인과 상의하는 장면, 즉 땅 밑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장면이다. 천부인 세 개는 세 개의 구슬 같은 것이다. 내려온 곳이 삼위태백(三危太伯)이라고 했는데 밑의 세 개의 봉우리 같은 것이 바로 삼위태백이라고 본다. <삼국유사>에는 무리를 끌고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오는데, 앞에서 세 용이 끌고 앞에는 용을 탄 네 사람이 있다. 그 외의 인물들은 모두 환웅이 데리고 내려온 인물들이다. 이렇게 보면 거의 8 · 9할이 단군신화와 일치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필자가 여기서 문제시하는 부분은 후석실 3석 제 2층이라 할 수 있다. 다음 도판에서 보는 바와 같이 3석 2층에 보면 왼쪽에 나팔 같은 것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풍백이 보인다. 그 다음에는 우뢰사자인 뇌사(雷師)가 차에 앉아 있고 여섯 동자가 차를 끈다. 뇌사는 두 손에 각각 망치를 쥐고 양쪽에 있는 북 두 개를 치고 있다. 여섯 동자 앞의 크고 작은 두 인물은 각자 병 한 개씩 쥐고 하나는 달려가는 모습을, 다른 하나는 그 병의 물을 쏟으려고 한다. 이는 틀림없는 우사(雨師)이다. 그 다음으로 문제시되는 것은 쌍수룡(雙首龍) 한 마리가 등을 구부리고 있고, 그 등 위에 한 인물이 한 손에는 병을 또 한 손에는 채찍을 쥐고 있다. 이 쌍수룡 아래에는 한 인간이 망치와 끌을 가지고 한 사람을 목을 따려고 한다. 같은 무기를 쥔 인간이 밖에도 하나 있다. 이상은 벽화에 대한 김재원의 설명이다. 4)

 

 

  이 장면은 단군신화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윗부분은 거의 단군신화의 내용과 일치했지만 쌍수룡 안에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살해하려는 장면을 단군신화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김재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용의 배 위에 있는 여자는 번개를 치게 하는 신이다. 쥐고 있는 채찍의 지그재그 모양은 번개를 의미한다. 병은 번개비를 오게 하는 물병이다. 쌍수룡 안팎의 무기를 쥔 두 인간은 뇌사가 거느리는 여러 신이다. 목을 따는 것은 벼락을 맞는 장면이다.

 그 다음 바른쪽 구름 위의 인물은 왼손에 무엇을 쥐고 지금까지의 그림과는 달리 왼쪽으로 가는데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무기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왼쪽 지상에 구름과도 관계없는, 날개도 없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있는 두 인간은 이 지상의 인간인데 놀라서 목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가고 있다.

  도대체 이 장면은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이해될 수 없는 장면이다. 여기서는 후석실 3석의 3층과 4층에 대한 부분은 생략하고 2층의 내용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해 보려고 한다. 1942년에 중국인 유명서는 (式梁祠後石室 所見皇帝蚩尤戰圖考)에서 후석실 2층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즉, 유씨는 쌍수룡 안의 살인 장면을 두고 중국의 황제(皇帝)가 치우(蚩尤)를 살해하는 장면으로 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황제는 서방의 한족을 대표하고, 치우는 동방족을 대표하는 인물로 본다. 양자는 치열한 싸움을 하는 역사가 있다. 우선 유씨는 제 1층에 대한 풀이를 다음과 같이 한다. 즉, 황제가 천신에게 기도드리고 그 결과로 하늘에서 보낸 원병을 맞는 모습으로, 우측에 있는 3인 가운데 서 있는 것이 황제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내용이 이어지면서 제 2층의 장면을 둘로 나누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측 쌍수룡은 황제의 부하 응룡(應龍)을 의미하며, 그 아래 망치와 끌을 들고 아래에 엎드린 인물의 목을 치는 장면은 황제가 치우를 피격하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쌍수룡도 응룡이고 피격하는 자도 응룡이라면 해석상의 무리가 있다. 쌍수룡의 등에 있는 인물은 응룡의 보조자로서 응룡에게 물을 공급해 주고 있다고 본다. 쌍수룡 왼쪽에 있는 장면의 인간들도 모두 응룡이 부리는 자들이다. 우사 · 뇌공 · 풍백까지도 황제의 휘하에 있는 부하들로 보고 있다. 유씨 학설의 큰 약점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 2층을 황제와 치우의 각축전으로 본다면, 이와 연결하여 3 · 4층을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유씨는 제 3석의 태반이 공백으로 남을 것을 우려하여 3 · 4층의 조각을 여분으로 아무 의미 없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간처리 방법이나 그림의 내용으로 보아서 화공의 심심풀이로 3 · 4층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여 기기에는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황제와 치우의 싸움 이론을 대체적으로 받아들인 정덕곤(鄭德坤)은 2층의 해석에서는 유씨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즉, 풍백 · 우사 ·뇌공은 황제의 군사가 아니고 치우의 군사라 하고 쌍수룡 밑에서의 살육 장면은 다만 치우의 잔인스런 모습을 고발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는 살해하는 자가 누구인지, 살해당하는 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살해하는지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즈노(水野淸一)의 학설에 따르면 이 화상석은 한갓 놀이풍습, 즉 치우기(蚩尤伎)라는 놀이를 그린 것이라 본다. 놀이의 유래는 역시 황제와 치우의 싸움에 있었다고 본다.

  이상 세 외국인 학자들의 견해에 대해 김재원은 “그 어느 분도 이 화상석전체를 한 설화로 간파한 사람이 없고, 그 가운데 한 부분만을 떼어서 중국에 전래하는 치우설화에 배정하였다. 그러나 어느 치우에 관한 고사로도,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단군설화같이 8 · 9할까지 이 화상석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없다”5)고 비판한다. 김재원은 치우설화가 단군설화의 일부분은 될 수 있어도, 이 화상석의 주인공이 치우가 될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풍백 · 뇌사 ·우사 같은 것은 이미 여러 설화 속에 나오는 얘기이기 때문에 오직 그 요소로서 치우설화로 취급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유씨와 정씨의 학설이 그 타당성을 상실하는 이유는 역시 제 2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김재원은 <삼국유사>에 나타난 ‘풍백 ·우사 · 운사’를 거느리고 농사 인명 ·병 · 형 · 선악 같은 인간 360여의 일을 다스리는 것은 이곳 화면과 빈틈없이 부합된다6)고 한다.

 


Ⅳ. 한국 신화와 유럽신화의 비교


  이상 세 외국인 학자들의 견해와 국내 김재원의 견해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우선 치우설화에 맞추어 주인공을 치우로 보고, 황제와 치우간의 싸움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김재원의 견해가 옳다고 본다. 왜냐하면 2층을 치우 ·황제간의 각축전으로 보면, 이와 연관시켜 3 · 4층을 일관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역시 화상석을 단군신화의 내용과 연관시켜야 무리가 없다고 본다. 그런데 단군신화와는 다른 혹은 없는, 쌍수룡 안의 살육 장면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이다.

  만약에 한번 이 글의 처음 부분에서 지적한 ,남성원리와 여성원리의 균열과 화합의 차원에서 이 장면을 보고 구라파의 여러 신화들과도 비교시켜 보면 문제해결 외 큰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1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과 날개 없는 지상족이 상견하는 장면이다. 이 점은 분명하다. 하늘과 땅의 만남이다. 곧 이어진 2층에서는 풍백 ·우사 ·뇌공이 등장하면서 나팔 ·망치 ·끌 ·물병이 등장한다. 모두 풍백 ·뇌공 ·우사가 사용하는 도구 혹은 무기이다. 이들은 모두 하늘족의 무리들이고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쌍수룡 배 위에 있는 우사, 그리고 안에 있는 것은 뇌공의 부하들이다. 그러나 모두 하늘족이라 하는 점에서는 같은 무리들이다. 반면 2층 오른쪽에 있는 머리가 산만하고 엎어지는 자세로 있는 인간들은 쌍수룡 안에 있는 인간과 같은 땅의 족속들이다. 땅의 족속이 하늘의 족속에 의하여 살육을 당하는 장면이 쌍수룡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쌍수룡을 좌우로 하여 하늘과 땅의 인간이 나누어져 있고, 하늘 인간들은 구름 위에 떠있거나 땅에 내려 무기를 들고 한차례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땅의 인간들은 몸의 자세가 몹시 불안정하고 머리가 흩어져 있다.

  이 장면을 앞의 그림, 우라노스의 아들 제우스가 땅의 여신 가이아의 자식 타이폰(Typhon)을 살해하는 장면과 한번 비교해 본다. 우라노스는 하늘에서 우뢰를 좌우하는 우뢰의 신이다. 그렇다면 망치와 끌을 들고 있는 자는 틀림없는 뇌공인데 100퍼센트 일치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고 희랍신화를 너무 직접적으로 일치시키고 싶지는 않다. 다만 기원전 2000년경에 벌어진 우주사적 사건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남성원리가 땅의 여성원리를 살해하는 장면이라는 그런 일련의 맥락에서 무씨사당 화상석 3석 2층을 보아야 바로 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화상적 전체의 일반적인 모습은 하늘에서 한 무리의 인간이 땅으로 내려와 땅의 인간들과 만나지는 것을 주제로 한 것이라면 전 세계적으로 두 원리간의 싸움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무씨사당 화상석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남성원리와 여성원리간의 균열이 생기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제시한 지론과는 결론이 상반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즉 유럽적 균열에 대해 한국적 화합을 대립시켜 말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다. 이 점에 대해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하면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V.결론


1. <삼국유사>는 화상석보다 1070년 뒤에 씌어진 것이다. 만약 <삼국유사>의 단군신화가 화상석의 내용과 8 · 9할 같다면 과연 어느 것이 더 원조(元祖)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화상석이 1000년 먼저 된 것이라고 해서 그것을 원조라고 단정할 수 없다. 쌍수룡 안의 살해 장면이 단군신화에는 없는 것이 아니다. 굴속에 곰을 집어넣고 100일간 암혹 속에서 고통을 겪게 하는 것도 일종의 남성원리가 여성원리에 가하는 박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양자의 의미 내용 자체는 같다고 할 수 있다.

2. 그러면 쌍수룡 안의 ‘살해’와 굴속의 ‘고통’ 가운데 어느 것이 원 모습일까 하는 의문이다. 무씨사당 화상석이 만들어진 연대는 기원후 147년이라고 했다. 이때는 중국의 한대(漢代)에 해당된다. 태양시기라는 것은 무의식(여성원리)에서 인간의 의식(남성원리)이 깨어나던 때이다. 그리고 잠재적 자아에서 인격적 자아(Personal ego)가 생겨나던 때이다. 무의식 감정은 여성원리에 속한다. 하늘에서 남성 신이 내려온다는 상징적 표현은 결국 인간의 의식이 무의식에서 깨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기원전 2000년경에 깨어난 인간의 의식적 그리고 인격적 자아는 차축시대(B.C. 2-8세기)에 들어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석가 '공자 ·노자 같은 인물들에 의하여 현재 우리와 같은 자아로까지 승화된다. 이들의 철학은 그 특징에서 남성적이다. 감정, 비이성적인 것, 물질, 육체를 더러운 것으로 금기하고 배격한다. 이들 상징들은 여성 적이며 그래서 여성은 악마화 되고 비이성적 존재로 규정받는다. 무씨사당 화상석이 만들어진 한대란 유교가 정착되면서 유교원리에 의한 과거제도가 생기고 정치제도와 관습이 토착되던 시기이다. 극히 남성 우위론적 가부장제도가 확고해 지던 시기이다. 그렇다면 이때에 만들어진 화상석은 그것을 만들어낸 화공에 의하여 그 시대적 영향을 많이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니, 수천 년 동안 지배해오던 여성원리를 의도적으로 억압하기 위해 이 화상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희랍신화라든지 위에서 열거한 수많은 민족창생신화가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도가 확립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에 우리는 충분히 그렇게 결론내릴 수 있다고 본다.

  3. 그렇다면 일연은 ‘고기(古記)’에서 단군신화를 옮겨 적을 때에 그 원초적 의미를 다시 살리려 했을 것이다. 그런즉 무씨사당 화상석은 차축시대를 맞은 중국 풍토 속에서 많은 점이 남성화된 것이며 중국적 균열(Chinese Dissociation)이 일어난 것이라는 점이다. 그 점에서 일연의 <삼국유사> 내용이 더 원초적이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이 이웃해 있으면서도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남성원리와 여성원리의 ,선후를 표현하는 언어가 다르다. 예를 들면 한국은 ‘밤낮’이라 하고 중국은 ‘주야(晝夜)’라 하며, ‘오간다’를 ‘왕래(往來)’, ‘들락날락’을 ‘출입(出入)’, ‘년놈’을 ‘남녀’로 하는 등, 중국은 남성적인 것을 먼저 표현하고 한국에서는 여성적인 것을 먼저 한다. 이 간단한 차이는 중국문화는 극도로 남성화되어 여성원리가 박해 받았음을 의미한다. 단적으로 무씨사당 화상석이 이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4. 단군신화와 비슷한 화상석이 중국 산동성에 있다는 것은 이 신화가 상당한 범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군신화는 세계 다른 신화와 비교되어 이해되어져야, 신화란 죽은 것이 아니고 오늘에 살아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남북분단 · AIDS ·자연파괴들이 모두 한 민족이 남성원리와 여성원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생긴 것이라고 할 때에, 우리는 민족 신화를 가꾸고 살려 오늘을 사는 지혜를 거기서 배워야 할 것이다.

 

주석 

 


1) K. Wilber, Up from Eden (N.Y. :  Anchor Press, 1981), p.179.

2) 김재원, (단군신화의 신연구), p.67.

3) ‘한’을 슈메르의 최고신인 ‘안(AN)’으로, 그리고 ‘인’은 슈메르 여신의 호칭인 ‘EN’과 일치한다. 종래의 ‘환인’이 불교에서 유래했다는 설은 재고되어져야 한다.

4) 김재원, 앞의 책, p.71.

5) 김재원, 위의 책, p. 129.

6) 김재원, 위의 책, p. 131.

 

 

 

 

 

 

 

 

 

 

 

출처 : 삼태극
글쓴이 : 광개토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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