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상고사,홍산문화

[스크랩] 조선 이전에 환국이 있었다2

설레임의 하루 2011. 8. 26. 10:13

http://blog.daum.net/hanchosun/403  <─ 여기까지가 성삼제 저 '고조선 사라진 역사'의 일부 내용입니다.

 

성삼제씨께서 수년간 많은 자료를 수집해서 한권의 책으로 묶어 sbs뉴스에도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위 내용을 토대로 재야사학을 따르는 사람들은 삼국유사를 통해서도 환단고기의 환국은 존재했고, 따라서 환단고기를 신뢰할 수 있다, 고 하고, 반면, 역사학계를 따르는 사람들은 환단고기는 위서고 따라서 환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삼국유사의 환국은 因의 이체자인 口 + 土 가 口+王으로 오각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조선왕조실록 이선제의 상서문을 들며 당시도 國이 아닌 因자다, 또한 나라가 어떻게 신이 될 수 있냐는등 많은 토론들이 오갔습니다. 그런데 성삼제씨께서 더 찾지 못한 내용이 있어 필자는 추가로 덧붙여 환국의 존재를 입증하겠습니다.

http://db.itkc.or.kr/itkcdb/text/transViewPopup.jsp?bizName=MM&seojiId=kc_mm_a396&gunchaId=av029&muncheId=01&finId=004&startOrgnText=kc_mk_h048_av029_004&endOrgn

Text=kc_mk_h048_av029_004

 

위 내용을 살펴보면,  구사(舊史) 〈단군기(檀君紀)〉에 이르기를 “신인(神人)이 태백산(太白山)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오자, 나라 사람들이 추대하여 군주로 삼으니, 이때가 당요(唐堯) 무진년(기원전 2333)이다. 상(商)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일에 이르러 아사달산(阿斯達山)으로 들어가 신이 되었다.” 하였다.
이 내용은 《삼한고기(三韓古記)》에 나오는데, 이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살펴보면 《삼한고기》의 내용을 기재하기를 “옛날 환국(桓國) 제석(帝釋)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서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오니, 이곳을 일러 신시(神市)라 하였는바 이를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 원문中

 

위 내용을 살펴보면, <구사>의 내용은 <삼한고기>에 나오는데, 이제 <삼국유사>를 살펴보면<삼한고기>의 내용을 기재하기를...

즉, 삼국유사는 삼한고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남구만 선생의 저서 <약천집>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남구만 선생은 본인의 생각과 문헌의 내용을 분명하게 선을 긋고 적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살펴볼만한 추측은

1) 당시, 남구만은 <약천집>을 지으면서 <삼한고기>를 옆에 두고 <약천집>을 지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2) <삼한고기>의 내용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는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삼한고기>라는 문헌은 존재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렇다면 환국을 환인으로 보는 사람들의 예를 살펴보면

1) 해석이 매끄럽지 못한데 있습니다. 고기(古記)에 이런 말이 있다. 옛날에 환(국)(인)의 서자 환웅이 자주 인간 세상에 뜻을 두었다.[삼국유사 단군신화 서문中]

이는, 환국으로 읽을 경우 나라가 사람 혹은 신이 될 수 없기 때문이고 해석 또한 매끄럽지 못한데 있습니다.

2) 조선왕조실록 이선제의 상서문의 경우 당시 삼국유사를 인용하여 환인으로 적었다는데 의미가 깊습니다.

3) 서지학을 따지더라도 삼국유사 판본 보다 조선왕조실록의 시기가 더 빠르다는 것입니다.

참고: 조선왕조실록 단종 1권, 즉위년(1452 임신 / 명 경태(景泰) 3년) 6월 28일(기축) 4번째기사의 이선제의 상서문에는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상고하니 이에 이르기를,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적에 환인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있어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탐구(貪求)하므로 아비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三危)·태백(太伯)209) 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弘益人間] 만하였다.

 

위 내용을 반박하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삼국유사는 삼한고기를 인용했기 때문에 삼한고기를 살펴보면 “옛날 환국(桓國) 제석(帝釋)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서 라고 적고 있습니다.

반면, 삼국유사 판본에는 옛날 환국의 서자인 환웅이 천부인 3개를 받아서...환국으로 읽을 경우 나라가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해석하는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삼한고기에는 환국 제석의 서자인 환웅이 라고 적고 있습니다. 해석하는 부분에서도 문제가 될게 하나도 없고, 매우 매끄럽습니다. 

 

2) 이선제가 올린 상서문에는 분명하게 환인으로 적고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는 李조선시대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여러개의 삼국유사 판본이 있었을 것인데 이선가 본 삼국유사는 환인으로 적힌 삼국유사입니다. 그런데 꼭 환인으로만 적힌 삼국유사만 있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3) 비록 삼한고기가 현전하지는 않습니다만 서지학을 따지더라도 삼국유사와 조선왕조실록보다 삼한고기가 앞서게 됩니다.

 

4) 일연의 삼국유사 원본이나 후대의 판본이 환인이였다면 변조해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삼국유사 환국을 환인으로 보는 사람들은 환인으로 변조된(덧칠한,왜곡한) 삼국유사를 왜 변조했는지 알아내야 할 것입니다.

 因의 이체자인 口 + 土 가 口+王으로 오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나  앞 뒤 정황을 모두 살펴보면, 삼한고기는 분명 환국 제석의 서자 환웅이라고 되어 있으며, 일연스님이든, 그의 제자든 후대 사람들이든 누구든간에 약자로 환국 또는 환인이라고 적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 이를 오각하는 과정에서 환국인데 환인으로 오히려 거꾸로 오각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5) 李조선시대 영조때의 학자인 이종휘의 시문집에서도

http://db.itkc.or.kr/index.jsp?bizName=MM&url=/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M&seojiId=kc_mm_a559&gunchaId=av012&muncheId=03&finId=009&NodeId=&setid=2016633&Pos=1&TotalCount=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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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之初。有桓國帝釋庶子桓雄。조선지초 유환국 제석서자 환웅. 즉, 조선에 처음, 혹은 조선이전에 환국이 있었다. 제석의 서자 환웅은 이라고 나와 있는 것을 보면 환국은 부정할 수 없는 우리민족 첫 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6) 신화를 신화로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넌센스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 민족 신화와 우리민족 신화를 보더라도 그 나라 시조가 알에서 태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헌과 고고학적으로 그 국가가 존재 했다고 뚜렷하게 밝혀 졌는데 알에서 나왔다는 것은 넌센스에 불과 합니다. 사람(역사)이 있고 신화가 있지, 신화가 있고 역사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화는 걸출한 인물을 배경으로 후대사람의 작품일 뿐이지 그것이 온전한 신화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삼국유사 단군신화 역시 신화가 아닌 역사적으로 봐야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7) 삼국유사와 삼한고기의 내용이 환국이기 때문에 따라서 환단고기의 환국 즉, 남북 5만리 동서 2만여리의 환국은 존재했고 위서가 아닌 증거들도 발견되기 때문에 환단고기는 위서가 아니다, 따라서 환단고기는 위서가 아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환단고기를 100으로 봤을때 100번 양보해서 그 중 10이 위서가 아닌 증거라고 하더라도 그 10만 위서가 아니지 전체가 위서가 아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환단고기를 전폭적으로 신뢰하여 역사를 터무니 없이 왜곡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역사를 전체적인 측면에서 봐야지 환단고기만 보고 역사를 평가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 맑은무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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