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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홍산지역 발굴 고인골의 DNA 연구결과.

설레임의 하루 2011. 5. 15. 04:41

중국 모대학 박사학위 논문을 인용한것 이지만 이공계와는 달리 문사철계의 논문은 정치적 파급효과가 큰 것 일수도 있으므로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았다고 볼수도 없고 이를 해석하는 한국학계의 태도는 자못 진지하다 못해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지극히 보수적 태도로 보인다. 고대홍산인의 유전자가 한국인보다 조선족에 더가깝다는 그래프는 허무해 보인다.   (운영자 주)

 

1.요서 지역 홍산-하가점 문화 시기의 종족 교체 가능성

 

홍산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 하층문화-하가점 상층문화의 종족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이미 수년 전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실체는 모호하지만 고고학적인 추정연대가 마구 올라가면서도 황하문명과 비교할만한 새로운 고대 문명이라는 주장까지 중국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사의 영역 확장의 발판이 될 고고학적 유적이 되지 않을까라는 대중적인 기대가 적지 않은듯하다. 하지만 한국의 문헌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는 홍산문화나 소하연문화나 하가점 하층문화에 대해서는 한국사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거의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하가점 하층, 소하연, 홍산문화에 대해서 그것이 한국사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대부분의 한국 학자들이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학자들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할수 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애당초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산융, 동호, 선비, 거란계 종족의 활동 지역이다. 그러므로 이들 지역의 고대 문화를 한국사와 연계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인과 관련이 있는 집단(잠정적으로 Proto-Korean으로 명명하자)이 이 지역에 한 때 거주했다는 사실을 어떤 식으로든 먼저 입증해야하는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 (요서활동 인류들을 인종적으로 미리 선을 그어버렸으나 학계에서 알려진것과 달리 고조선의 영토이다 -운영자주) 

우선 문헌 기록이 부실하므로 문헌사학적 관점에서 이런 주제에 대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끝없는 순환논증이나 동어반복의 토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도 아니라면 보다 안정적으로 고대 한국사의 영역으로 간주할 수 있는 요하 이동이나 한반도 내  고고 유적과 홍산-소하연-하가점하층 문화 유적을 비교해서 관련성을 입증해야하는데 신석기단계나 청동기 조기 단계에서 요서와 요동-한반도 사이의 문화적 격차가 너무 커서 양 지역의 문화가 동일한 종족이 영위한 것임을 입증하는 것은 현 단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곡옥 몇 개나 석조 성곽의 유사성으로 엄청난 시공간적 거리감을 무시하고 관련성을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모험적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진지한 한국 학자라면 홍산문화나 소하연 문화, 하가점 하층문화가 한국사와 직접적 관련이 있다거나 Proto-Korean이 건설한 문화라는 따위의 주장을 감히 하지는 못한다.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학자로서의 기본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가점 상층문화에서 과거에 십이대영자유형으로 부르던 고고 유지를 분리해서 별도의 십이대영자문화로 간주한 후 예맥계 문화와 연계해서 이해하는 학자는 다수가 존재하고 있다. 중국 학자들 중에도 이런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우리 학자들도 이 같은 주장을 인정하는데 큰 부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십이대영자유형에서는 이른바 비파형 동검이 보편적으로 나타나므로 비교사적 차원에서라도 한국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아래 지도에서 붉은색 표시된 지역에서 대략 기원전 4500년부터 기원전 400년까지 살던 종족이 과연 누구였느냐에 대해 이야기한 것.

그렇다면 십이대영자문화 외에 요서 일대의 홍산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 하층 문화는 문헌상에 보이는 산융이나 그도 아니라면 훗날 동호-선비/오환-거란으로 이어지는 집단의 선조가 건설한 것일까. 그리고 하가점 상층문화도 과연 산융이 건설한 문화일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해서도 여전히 Yes라고 답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고조선사를 전공하는 S 모 교수를 비롯한 국내 일부 문헌사학자들은 몇몇 부분적인 "고고학적 근거"들을 매우 거칠게 조합해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만 현 단계에서는 너무 성급한 결론으로 보인다.

중국 고고학계에서 체질인류학이나 분자유전학으로 고인골을 분석하는 일군의 학자들에 따르면 요서지역의 종족적 정체성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예시로 중국 고고 유적에서 나온 고인골을 토대로 한 체질인류학이나 분자유전학 연구 분야에서 최선두를 달리는 중국 모 대학 박사 학위 논문에 실린 한 도표를 소개한다.

 

 

 

표 출처-<요서지구 선진시기 거주민의 체질인류학과 분자고고학연구> -2009 GL대 박사 논문 p116. 일부 편집.


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저자는 홍산문화에서 나온 인골을 형질인류학적 관점에서 고동북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고화북유형이나 고중원유형이 아니니 고대 중국 중원지역의 한족과는 관련이 없다는 점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소하연문화에서 나온 인골에서도 고동북유형으로 보고 있으니 입장이 같다.(하가점 하층이 고조선전기 소하연문화가 고조선문화로 봅니다-운영자 주)

하가점 하층 문화의 경우 조금 사정이 달라져서 고동북유형과 고화북유형이 섞여서 나옴을 알 수 있다. 남산근, 흑석구, 용두산 등 하가점 상층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의 경우에도 고화북유형으로 나와서 홍산문화나 소하연문화 단계와는 뚜렷한 종족적 차이를 보여준다.

홍산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하층문화의 경우 정착 농경문화적 성격이 강한데 비해 하가점 상층문화의 경우 유목적 성격이 강해서 이같이 문화 교체의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중국 고고학계 내에서도 논란이 심했다. 하가점 하층문화가 기원전 15세기에 갑자기 사라진 원인에 대해서는 종족 교체 문제를 거론한 경우도 없지 않으나 대체로 기후 하강에 따른 농경문화의 파괴 때문에 하가점 상층문화가 출현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이다.

그 같은 기존의 해석이 사실일지는 모르나 이 논문의 표에 따르자면 우리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형태의 종족 교체가 원인일지도 모른다. 하가점 하층에서 상층으로 교체되는 시기를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요서지역에 보이지 않던 고화북유형에 속하는 집단이 요서 지역 유적 일대에서 광범위하게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호-선비-거란의 체질인류학적 특성에 대해서는 고몽고고원유형-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하다고 보는 것이 중국 체질인류학계의 일반적인 통설이다. 농경적 특성이 강하던 하가점 하층문화를 대체해서 새롭게 출현한 유목적 성격이 농후한 하가점 상층문화라면 그 주체 종족이 고몽고고원유형이나 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한 모종의 집단(先 동호-선비-거란)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고화북유형이 튀어나온 것이다.

물론 하가점 상층문화 주변부에서 고몽고고원유형-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한 특성을 지닌 고인골이 전혀 출토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위 표에도 나오는 井沟子유지가 바로 요서 외곽에서 고몽고고원유형-현대 북아몽고인종(다시 말해 동호-선비-거란과 유사한 집단) 계열 인골이 나온 대표적 사례다. 이 유지에서 나온 고인골은 체질인류학적 특성 뿐만 아니라 mtDNA로 분석한 분자유전학적 분석결과에서도 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한 것으로 나왔다.

다시 말해 요서지역에서는 고동북유형이 추적이 가능한 최초의 거주 집단이고, 두번째는 고화북유형이 진출했으며, 세번째는 고몽고고원유형이 점차 남하해서 한대 이후에는 동호-선비-거란으로 이어졌다
.

이 같은 요서지역 고대문화에서 출토된 세가지 유형 중에 고몽고고원유형 내지 북아몽고인종을 한국인 내지 Proto-Korean과 연계해서 이해할 여지는 전혀 없다. 이미 선비족, 거란족의 체질인류학적 특성이 한대-요나라대 고분 유적에서 발굴한 인골을 분석해서 어느 정도 밝혀진 상태이고 이들은 Proto-Korean으로 간주할 수 있는 고인골(요동 심양 정가와자 유형의 고인골이 대표적이다)이나 현대 한국인과는 체질인류학적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고화북유형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 그 이전에 해당하는 홍산 문화부터 소하연 문화를 거쳐 하가점 하층 문화단계까지의 이른바 고동북유형은 한국인 내지 Proto-Korean과 관련이 있을까. 이 글에서 일일이 고동북유형 인골과 Proto-Korean 인골들의 형질인류학적 지표를 나열할 생각은 없지만 포괄적으로 고동북유형으로 지칭하는 집단 중에 적어도 일부 집단은 Proto-Korean과 연계시켜 이해할만한 여지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미 이 지역에서 출토된 고인골 추출 mtDNA 중 일부에서 이 같은 결론에 근접하는 요소가 있음을 보여주는 보고서도 나오고 있다.

다시말해 (십이대영자문화를 제외한 좁은 의미의) 하가점상층문화를 한국사와 연계시켜 이해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지만 그 외  홍산 문화-소하연 문화-하가점하층 문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지가 있어 보인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홍산 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 하층문화가 한국의 고대사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직 근거가 부족한 가설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들 문화 전체가 한국사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도 현 단계에서는 무리라는 이야기다.


* 요약
① 신석기 이래 요서 지역의 종족 계보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무척이나 복잡하다
 .

 

 

 

2. 요서 지역 출토 고인골과 현대 한중일몽 민족간의 관계

 

요서 지역 홍산-소하연문화-하가점 하층-하가점 상층 문화 단계에서 종족적 측면에서 가변성, 불연속성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은 이미 설명했다. 또한 이 문화에서 출토된 고인골 집단 중에 일부가 현대 한국인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mtDNA 분석 결과가 있다고 이미 소개했다. (관련 글: 요서 지역 홍산-하가점 문화 시기의 종족 교체 가능성)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관련 자료를 소개한다. 표의 출처는 지난번에 공개한 자료 (요서지구 선진시기 거주민의 체질인류학과 분자고고학연구, 2009, 중국 GL대) 와 동일하다.

1. 홍산문화의 사례 (기원전 4500~3000년)

 

 

우하량 홍산문화 유적 출토 고인골에서 추출한 mtDNA로 상호 거리를 비교한 결과를 보면 현대 일본인, 현대 조선족이 비교적 가깝고 그 다음으로 현대 중국 남방한족이 가까운 집단으로 나온다. 붉은색 표시가 홍산문화 출토 인골, 청색 표시가 조선족(한국인)이다. (한반도인들은 1000년 이래로 정치적 격동기에 많은 화북.화남계가 유입 섞였다는것을 유념하고 해석하여야한다-운영자주)

2. 소하연문화의 사례 (기원전 3000~2000년)

 

 
합랍해구묘에서 출토된 소하연문화 유적 출토 고인골에서 추출한 mtDNA로 상호거리를 비교한 결과를 보면 현대 조선족(한국인)이 가장 가깝고 그 다음이 현대 일본인으로 나온다.

3. 하가점 하층문화의 사례 (기원전 2000~1500년)

 


대전자묘에서 출토된 하가점 하층문화 유적 출토 고인골에서 추출한 mtDNA로 상호거리를 비교한 결과를 보면 현대 조선족(한국인) 가장 가깝고, 그 다음이 현대 일본인, 그 다음이 현대 한국인이다.

4. 전국시대 요서 지역 출토 인골의 사례
(전국시대는 기원전 403~221년, 연의 요서 진출은 기원전 4세기말~3세기 초)

 


참고로 전국시대 요서지역 출토 인골(대산전묘지)의 분석 사례는 위와 같다. 조선족 내지 한국인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남방 한족에 가까운 것으로 나오지만 그 또한 거리가 있다. 역사시대 이후 북방계 집단의 반복적 남하 이주-정복 이전에 중국 본토에 거주하던 집단들의 특질은 현대의 북방 한족(漢族)보다 남방 한족(漢族)에 가깝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달리 말하자면 현대 중국 북부에 거주하는 사람은 역사시대 이후 거대한 혼혈화 과정의 산물이고, 순수한 한족 집단은 남쪽으로 밀려 내려 갔다는 이야기다. 전국시대라면 연나라가 요서에 진출한 시점이고 이때 요서지역에 유입된 사람은 原한족, 다시 말해 현대 남방 한족과 관련이 있는 집단의 일부임을 잘 보여주는 도표다.

 

 

 

 

이들 표만으로 요서 지역 고대 문화의 종족적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무언가 의미심장한 대목은 많다. 우선 중국 몽고인(내몽고의 몽골족을 지칭함)과 몽고 몽고인(독립국가의 외몽고의 몽골족을 지칭함)들은 홍산-소하연-하가점 하층 문화 거주 집단과 일정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주족과의 비교 데이터는 없지만 범 퉁구스계열인 오로촌(에벤키)족과도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지역의 대표적인 투르크어 사용집단인 야쿠트족과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 다시 말해 이 데이터는 홍산-소하연-하가점 하층문화를 영위한 종족이 투르크계-몽골계-퉁구스계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4번을 제외하고 1,2,3번의 경우 중국 북방한족, 남방한족과의 비교에 대해서는 의미를 유보하자. 중국 북방한족이나 남방한족은 각 성(省)별로도 분자유전학적인 차이가 심하게 나타나므로 각 지역별로 대규모 표본을 추출해서 그 기준과 범위를 특정하지 않는한 이런 거리 비교에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위 세가지 표 자체만으로 보자면 적어도 모계(mtDNA)로 따졌을 때 홍산-소하연-하가점하층문화 영위 고대 종족과 가장 가까운 집단이 현대 조선족이고, 그 다음이 일본인, 그리고 일부 유적의 경우 현대 한국인과도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론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위 표만으로 해석하자면 그렇게 볼 수 있을 뿐이란 점을 유의하자. 한국과 일본이 부계(Y-염색체)로는 뚜렷한 차이가 나지만 모계는 거의 유사하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조선족과 일본인, 한국인이 비슷한 거리로 나타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위 표에서 조선족과 현대 한국인의 거리가 상당히 멀다는 점이다. 조선족이 대부분 근세 이후에 이주한 집단이고,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한반도 남부지역으로부터도 대규모로 만주로 이주해 조선족화되었다는 점에서 조선족과 현대 한국인의 거리가 이렇게 크게 나오는 것은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일본인, 한족과의 차이보다 조선족과 한국인의 차이가 더 큰 경우도 있다는 점은 위 표의 신뢰성에 상당히 의문을 품게 만든다. 이는 아무래도 지나치게 작은 표본을 사용한데 따른 왜곡현상으로 짐작된다. 물론 이 같은 연구결과의 신뢰성은 데이터의 추가 확보로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왜곡 가능성이 고인골 자체에도 있다. 문화에 따라 겨우 수십구에 불과한 개체수를 가지고 1000년 단위로 장기간 지속된 문화의 거주 집단을 대표한다고 간주하기에는 망설여질 수 밖에 없다. 개체수 증가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또한 거리 산출에 사용하는 모델이 얼마만큼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검증과 연구가 필요하다.

이처럼 연구에 사용한 개체수가 너무 적다는 문제점 외에도 무엇보다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mtDNA에 따른 지역별 차이보다는 Y-염색체에 따른 지역별 차이가 더 뚜렷하다는 점에서 모계에 한정해서 접근한 이 같은 연구들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위 표 몇개만으로 홍산-소하연문화-하가점 하층문화를 영위한 집단의 종족적 정체성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이야기다.

 

 홍산문화 여신상의 일부


* 요약
① 홍산-소하연-하가점 하층 문화 단계에서 요서 지역에 살았던 사람 중 일부는 현대 한국인과 모계 혈통상 유전적으로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좀 더 개연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몇가지 사항에 대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② 홍산-소하연-하가점 하층 문화 단계에서 요서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부계 혈통은 아직 알 수 없다.

 

http://lyuen.egloos.com/5475091 에서 인용

출처 : 잃어버린 역사,보이는 흔적
글쓴이 : 心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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