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고조선(한단고기)

[스크랩] 북한이 초대 단군릉으로 선전하는 단군임금의 실체는?

설레임의 하루 2011. 8. 13. 00:03

천제지자(하느님의 아들)는 백성들의 눈물을 씻어 주고 고통을 해소해 주어야 하는 존재다



[광개토태왕비문]행복한 KOREA만들기



"나라가 부유하고 백성들이 넉넉하였다.."


 






고조선의 단군이란 사람이름이 아니라, 지금의 통치자 칭호인 '대통령'을 지칭합니다. 박달나라의 큰 임금이란 뜻을 가진 대박산(평양시 강동군 문흥리)기슭에 새로 축성된 단군릉. 1994년 발간되어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킨 이 능은 47명의 단군중 5번째 구을(丘乙)단군임금의 무덤이다.

북한에서 평양 동쪽 강동군에 엄청난 단군릉을 복원을 해서 거기에서 ‘단군의 뼈도 발견을 했다’ 는 얘기를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유명한 역사학자들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못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 ‘북한에서의 단군릉은 전부 쇼다,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북한 사람들이 쇼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거고, ‘진짜 단군릉이다’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또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등 여러 가지 부류가 있으실 것입니다. 단군릉을 진짜라고 믿습니까? 가짜라고 생각합니까?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진실’입니다. 그것은 47명의 단군임금들 중에서 다섯 번째 단군의 무덤입니다. 5번째 구을(丘乙) 단군의 무덤입니다. 그러면 무얼 근거로 그렇게 얘기를 하느냐?

『환단고기』 5세 단군 「구을」조를 보면은, 구을 단군이 남방에 시찰을 갑니다. 그래서 ‘풍류강(風流江)’을 지나 ‘송양’에 이르러 ‘득질심붕(得疾尋崩)’, 병을 얻어 가지고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풍류강’이라는 것은 고증에 의하면 평양에 있는 강동군의 동북쪽을 도는 비류강이라 밝혀졌고, ‘송양은 지금의 강동군의 옛 이름이었다’라고 고증이 됩니다. 그래서 거기서 병을 얻어 돌아가시니까 여름 7월 달이었습니다. 다시 하얼빈까지 갈 수가 없었습니다. 5세 단군임금이 송양에서 하얼빈까지 너무 멀어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다가 무덤을 만듭니다.

실제 이 ‘평양 동쪽의 강동군에 단군의 무덤이 있다’는 기록이 조선시대의 10권 이상의 서적에 나오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1530년에 이루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평양동쪽 강동군에 단군의 무덤이 있다.’ 이런 분명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허목의 『동사(東史)』라든가, 또 『숙종실록』, 『정조실록』 등등의 책에 보면 평양 동쪽에 단군릉이 있다는 얘기가 분명히 나와있고, 무덤도 있었습니다.

빙허(憑虛) 현진건도 1932년에 기자생활을 하다 지쳐서 단군성적 순례를 하는데, 거기 가서 단군성적을 참배합니다. 그러니까 그 단군릉이 있었다는 것이 요새 얘기가 아니라 조선시대 때부터 쭉 내려오던 건데, 북한에서는 그 자료를 알고 실제로 거기에 가서 발굴을 했습니다. 그리고 뼈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단군의 실지 무덤이다. 그리고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실재했고 그 평양 근교가 중심지였다.’ 하는 것을 강조하는 데 쓰는 겁니다. 북한도 단군의 역사를 모르니까 그냥 무조건 초대 단군인 줄 아는데, 5대 구을 단군임금의 무덤입니다.

출처 : 삼태극
글쓴이 : 윤복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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