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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창녕의 금동관모는 왜 일본의 국보가 되었나 !!

설레임의 하루 2010. 10. 30. 11:04


창녕의 금동관모는
왜 일본의 국보가 되었나


 

▣방송 : 2010. 10. 30 (토) 20:0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김진희 아나운서
▣연출 : 김정중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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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조선 고적 조사사업!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의 문화재들!

조선 고적 조사사업의 실체는 무엇이고

이 때 반출되었던
창녕 교동 출토유물 금동관모는
어떻게 일본의 국보가 되었을까


 

오구라 컬렉션, 그 안에 숨겨진 조선의 역사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 그곳에 가야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 유물들은 1982년 일본의 사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가 일제 강점기 때 한국에서 가져온 문화재들로 꾸며진 이른바 오구라 컬렉션의 일부다. 특히 현재 전시중인 창녕 발굴 유물들은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는 한반도 전역에 조선 고적 조사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재 발굴을 실시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문화재들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는데... 특히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문화재를 반출했던 대표적인 인물로 그의 컬렉션 상당수가 도굴에 의한 수집품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오구라 컬렉션 전시 유물 -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
한반도 문화재 유출의 통로가 되었던 “조선 고적 조사사업”은 무엇이고, 우리 문화재는 어떤 방식으로 일본에 유출되었을까?

 

식민지배의 역사적 정당성을 찾아라! 조선 고적 조사사업
총독부는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역사에서 찾으려 했다. 그들이 말하는 정당성이란 바로 고대 한반도의 북부는 한사군에 의한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남부는 임나일본부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의 식민통치 역시 당연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고적 조사사업은 식민사관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총독부의 핵심 사업이었다.
1916년 시작된 조선고적 조사사업은 주로 낙랑의 지배를 입증하기 위해 평양 지역과 임나일본부의 무대로 알려진 가야지역에 집중되어 시작됐다. 한반도 고대 고분 대발굴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고적도보>

 

‘조선의 것은 조선에?’조선의 유물은 어떻게 일본으로 반출되었나?
조선의 모든 고적 발굴은 총독부의 허가를 받고, 발굴유물은 총독부에 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총독부가 내세운 조선 고적 조사사업의 원칙이었다. 바로 “조선의 것은 조선에 둔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 원칙은 지켜질 수 없었다. 문화재의 반출과 훼손에 앞장서 있던 것이 바로 총독부였기 때문이다.
1915년 조선의 정궁 경복궁의 일부가 헐리고 그 자리에 현대식 미술관이 세워졌다. 헐려나간 건물은 세자의 거처였던 자선당(資善堂). 일제는 강제병합 5년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조선물산공진회라는 산업박람회를 기획했다. 자선당은 당시 일본의 재벌인 오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에게 넘어가 일본 도쿄 아카사카에 있는 그의 저택에 다시 세워지는 수모를 겪는다. 또한 오오쿠라는 자선당에 맞는 조선의 석탑을 총독부에 요청한다. 그 석탑이 요즘 반환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이천 5층 석탑이다.

▲1915년 이천 5층 석탑 ▲현재 일본에 있는 이천 5층 석탑

 

일본, 한반도의 역사를 거래하다
1933년 경주에서는 경주박물관의 초대 관장이었던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가 경찰에 체포되는 희대의 사건이 벌어진다. 그의 혐의는 직무를 이용한 문화재 거래였다. 박물관장이 발굴 유물을 빼돌리고 골동품상과 거래했다는 것이다. 1921년 신라 금관총 발굴에서 나온 금제(金製) 유물 중 8점이 일본의 유력 사업가의 손에 넘어가 현재 도쿄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그 유력사업가는 바로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이고, 그에게 금관총 유물을 넘긴 사람은 금관총 발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이라는 것이 굳어지는 정설이다.

▲경주박물관의 초대 관장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

 

문화재 반환. 선언 그 이상이 필요하다!
지난 8월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오대산 사고본 조선 왕실 의궤 반환을 약속했다. 현재 이 책들은 일본이 가져가 궁내청 도서관 등에 보관 되어 있다. 또한 일본 황궁에 반출된 오대산 사고본 명성황후의 국장도감이나 100년 가까이 일본 땅에 서 있는 이천 5층 석탑과 창녕의 금동관, 신라 금관총 유물 등의 가치가 높은 문화재들도 아직 반환이 되지 못했다.
이렇게 널리 알려진 우리 문화재의 반환만큼 중요한 것은 우리의 문화재가 누가 얼마만큼 어떻게 일본으로 반출했는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문화재 반환의 문제는 널리 알려진 문화재 몇 점의 반환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