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역사스페셜·추적

연개소문은 왜 투르크에 사신을 보냈나 .(역사 스페셜)

설레임의 하루 2010. 4. 10. 03:59


  개소문

       투르크사신을 보냈나


▣방송 : 2009. 10. 31(토) 20:0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엄지인 아나운서
▣연출 : 나원식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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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인의 자취가 선명하게 새겨진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벽화.

이 벽화를 통해
1300년 전 초원의 길을 따라 펼쳐진
고구려, 당나라 그리고 북방 유목민족들 간의
치열했던 국제 외교를 조명해본다.

 

투르크는 누구
투르크는 6세기 중반부터 8세기 중반까지 북방 초원을 장악해 거대한 제국을 만들었던 유목민족으로 지금은 터키지역에 정착해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투르크를 한자로 음차한 ‘돌궐’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돌궐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가까운 사이였는데 특히 고구려와는 서로 사신을 보내고 춤사위가 전해질 정도로
정치, 군사, 문화 모든 면에서 활발히 교류하였다.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의 숨은 의미
  -고구려, 당나라와 동북아의 패권을 다투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복원한 아프라시압 궁전벽화
돌궐과 당나라가 대결하는 중앙아시아 최대의 요충지이자 동양과 서양의 관문,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이 지역에 고구려의 흔적이 있다. 바로 아프라시압 궁전벽화에 고구려 사신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 벽화는 640년에서 660년 사이 즉 고구려와 당나라의 대립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벽화는 단순히 고구려와 돌궐의 교류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다원적 질서를 추구하는 고구려가 유목국가간의 유대를 강화하며 당나라 중심의 일원적 세계질서를 원하는 당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구려와 당의 대립은 단순히 두 나라의 싸움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패권을 다투었던 것이다.

 

벽화에 그려진 2인의 고구려사신은 연개소문의 밀사였나


1300년 전 머나먼 사마르칸트까지 간 고구려 사신들의 임무는 무엇이었을까.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역사를 통해 추론해 볼 수 있다. 661년 제 2차 고당전쟁 중 돌궐의 한 부족 철륵이 고구려와 전쟁 중인 중국 본토를 공격했다. 이에 당나라의 일부 군대가 급히 본토로 돌아가고 고구려는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 바로 이러한 철륵의 움직임의 뒤에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의 고구려의 사신들의 역할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고구려는 당나라를 피해 북방 유목민족들과의 접촉을 위해 밀사 형태로 사신을 파견해야했다. 벽화 속의 고구려 사신들은 동맹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북방유목민족들을 순방하면서 사마르칸트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고구려의 다원적 세계관
  -당 중심의 세계질서에 도전하다

▲당태종 ▲연개소문

우리는 흔히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 구도로 당시의 정세를 판단한다. 그러나 세계사적 관점으로 지평을 넓힌다면 고구려와 당, 그리고 돌궐을 중심으로 한 북방유목국가가 가장 중요한 주체들이었다. 따라서 고구려는 북방유목국가와의 연계를 통해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았다. 당을 넘어선 원대한 세계질서 구현에 있어 거시적인 안목을 갖고 국제 외교를 수행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