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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로 14호분 황금보검의 비밀 (역사 스페셜)

설레임의 하루 2010. 4. 10. 03:49


  계림로 14호분 황금보검의 비밀


 

▣방송 : 2010. 2. 6 (토) 20:0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엄지인 아나운서
▣연출 : 나원식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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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 인근 계림로 14호 고분
그곳에서 출토된 눈부신 ‘황금보검’
이국적이고 화려함으로 주목받는 이 검

도대체 누가 만들었으며 왜 이런 작은 무덤에서 발견된 것일까?
이 황금보검을 둘러싼 불가사의한 의문들을 추적해본다


 

1973년, 계림로 14호 고분 발굴
-보물 635호 황금보검 출토
▲황금보검 출토 당시
1973년, 경주에서는 신라시대 고분 중 가장 큰 무덤인 황남대총의 발굴이 시작됐다. 금관을 비롯하여 수많은 국보급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당시에 배수로 공사 도중 우연히 발견된 또 다른 무덤이 있었다. 계림로 14호 고분이 바로 그 것이다. 소형적석목곽분인 이 고분에서는 유례가 없는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그 중에서도 이 무덤 피장자의 허리춤에서 나온 ‘황금보검’은 그 특이함과 화려함으로 일찍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국적인 정취의 황금보검
보석 상감 기법, 누금세공기법, 삼태극을 연상케 하는 소용돌이 문양이 어우러진 이국적인 정취의 황금보검. 당대 최고 수준의 장인이 만들었을 황금보검은 붉은 석류석 장식이 돋보인다. 이 검에 감입된 보석은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한 유례가 없는 석류석으로 그 중에서도 동유럽이 주 생산지인 희귀한 종류를 사용했다. 그렇다면 이 검은 동유럽에서 만들어진 것일까? 유라시아 대륙의 최동단에 위치한 신라 계림로 14호분의 피장자가 어떻게 황금보검을 가지고 잠들 수 있었을까?

 

초원길을 따라온 신라 유물
계림로 14호 고분과 가까운 미추 왕릉지구에서 발굴된 특이한 유물에는 인면 모자이크 유리구슬 ‘미소 짓는 상감옥’ 목걸이가 있다. 지름 1.8cm, 높이 1.6cm에 불과한 이 구슬 안에는 놀랍게도 사람의 형상이 모자이크 기법으로 상감되어 있다. 이 구슬에 묘사된 사람들은 피부가 희고 콧날이 오뚝한 것으로 보아 백인종으로 보인다. 일본학자 요시미츠 츠네오는 이 구슬에 표현된 인물이 황금보검의 제작자인 흑해연안의 켈트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이 유리구슬의 인물이 황금보검을 제작한 사람들일까? 제작진은 의문을 품고 불가리아로 향한다.

 

흑해연안, 불가리아에서 황금보검의 기원을 찾다.
▲황금보검과 비슷한 기법을 사용한 불가리아 유물
고대 트라키아 문명의 발원지 불가리아. 현지 학자들을 취재한 제작진은 훈족이 촉발한 민족이동시기(3~6세기)의 유물들이 황금보검과 비슷한 기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서양을 아울러 초원을 중심으로 거대한 민족이동이 이뤄졌던 당시, 동로마의 장인들은 이민족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공예품을 생산한다. 석류석이 감입된 동로마 지역의 유물들. 그리고 소용돌이 문양의 전통. 이것은 황금보검의 생산지가 흑해연안 동로마 문화권이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동서를 아우르는 거대한 초원문화권의 형성
관련학자들 마다 서로 다른 주장들, 하지만 고대에 중앙아시아 초원, 흑해 연안까지 자유롭게 오가며 살았던 유목민족과 분명히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사실이다. 동유럽과 경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로만글라스, 각배, 황금유물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계림로 14호분에서 발견된 황금보검! 이것은 지금부터 천 오백년 전,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동유럽과 신라 사이에 거대한 초원 문화가 형성되었음을 알게 해주는 단적인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