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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기획-고종황제, 그 죽음의 진실 (역사 스페셜)

설레임의 하루 2010. 4. 10. 03:45


 광복절 기획
 고종황제, 그 죽음의 진실


▣방송 : 2009. 8. 16(토) 20:0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엄지인 아나운서
▣연출 : 황대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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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은 황제가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되어
전국을 휩쓸었고 3.1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이번주 역사스페셜은 고종황제 독살설의 진실을 추적한다.

고종황제

 

누가 고종황제를 죽였는가?
▲하세가와(2대 조선총독)/데라우치(초대조선총독)

최근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에 의해 고종 독살에 관한 새로운 자료가 제시되었다. 그가 찾은 것은 당시 일본 궁내성 관리 구라토미의 일기.

거기에는 고종황제의 죽음이 일본의 지시에 의한 독살이었음을 암시하는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다.

“ 테라우치가 하세가와로 하여금 이태왕(고종)에게 설명하게

하였지만, 고종이 이를 수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일을 감추기 위해 윤덕영, 민병석 등이 고종을 독살했다는

풍설이......

- <구라토미 일기> 1919년 10월 30일 중에서-

여기에서 데라우치는 일제시대 초대총독, 하세가와는 2대 총독이다.

이들이 대표적인 친일파인 윤덕영, 민병석을 시켜 고종을 독살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설로만 나돌던 독살설을 뛰어넘어 일본의 최고위층이 고종 죽음에 깊숙이 개입했음을 밝히는 획기적인 자료다.

이들은 퇴위한 지 10년이나 된 고종을 왜 죽여야만 했을까?

새롭게 발굴된 구라토미의 일기를 통해 고종 죽음의 구체적 정황을

추적한다.

  ▲민병석과 윤덕영           ▲구라토미 유자부로의 일기

 

시신의 참상 고종은 어떻게 죽었는가?

윤치호 일기에 의하면 고종 시신의 상태는 처참했다.

팔다리가 심하게 부어올라 바지를 찢어야만 했고, 이가 빠져 있고 혀가

닳아져 있었다. 또한 30cm 가량의 검은 줄이 목에서 복부까지 나 있었다.

법의학적으로 독살을 의심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고종이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식혜로 알려져 왔는데, 고종은 정말 식혜를 마시고 죽은 것일까?

현대 법의학을 통해 고종황제의 구체적 사인을 추적한다.

▲ 조선황실의 가족 사진

 

일제에 의해 미뤄진 고종죽음의 발표시점
▲ 고종황제의 장례행렬

조선총독부는 고종황제가 뇌일혈로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고종황제의 죽음은 그 발표 시점부터 석연치 않았다.

일제가 공식적으로 죽음을 발표한 것은 1월 22일.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고종 황제의 급서와 독살설은 결국 3.1운동으로 번진다.

신승희가 전해준 바에 따르면 고종황제가 오늘 새벽 6시쯤 승하했다고 한다.
그런데 <매일신보> 호외에 의하면, 고종황제가 매우 위독하다고 한다.
대체 어찌된 일인가?
- <윤치호 일기> 1919년 1월 21일 -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고종의 끝나지 않은 투쟁
파리평화회의 밀사 파견 시도, 그리고 망명 계획
1919년은 한일강제병합이 일어난 지 10년 뒤이고, 고종도 이미 퇴위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 독살설이 강력하게 떠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당시 고종은 제 1차 세계대전을 끝내려는파리강화회의에 의친왕과 하란사를 밀사로 파견하여, 황실의 독립의지를 알리고자 하였다.
구라토미의 일기에는 일본이 고종황제가 독립을 호소하려는 것을 알고 미리 막으려다 여의치 않자 독살을 감행하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고종은 이회영을 통해 중국으로 망명할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 고종이 파리강화회의에 밀사로 보내고자 했던 의친왕과 하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