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풍습

인류문화의 기원지 한반도

설레임의 하루 2009. 7. 1. 04:13

*출처:다음카페-삼태극  글쓴이: 삼신 할머니     http://cafe.daum.net/mookto/GXtu/126

 

 

 

한반도는 중생대 백악기 공룡의 낙원이었다

글/양승영 경북대 교수·고생물학·사진/권태균


고성 덕명리 해안의 공룡 발자국화석은 82년 1월 경북대 양승영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남해안 일대의 지질조사를 하던 중

발견했다. 사진 속의 거대한 족흔은 4족보행 공룡(龍脚類) 발자국으로 길이가 35cm에 달한다.

만조 때는 완전히 바닷물이 차오른다.

지난 10여년 동안 국내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화석 수는 실로 엄청나다.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50여개 지역에서 6천5백여개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경우다.

이곳에 공룡 발자국이 밀집된 이유는 무엇일까. 반면 완전한 골격화석은 왜 발견되지 않는

것일까. 공룡 화석에 담긴 1억년 전 한반도의 비밀은….

미국의 고생물학자인 콜로라도대 럭클리 교수는 지난 90년 한국을 방문해 공룡 발자국화석이

집중적으로 발견된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일대의 지층을 조사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한국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공룡의 수도”라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 콜로라도 일대가 뉴 월드(남·북미 대륙)에서 공룡의 수도라고 한다면, 한반도는 올드

월드(유라시아 대륙)에서 공룡의 수도라고 할 만큼 공룡의 발자국이 다량으로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그 어느 곳보다 공룡 연구에 중요한 곳입니다.”

그는 지난 70년대 후반부터 세계적으로 공룡 발자국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해온 전문가로서 84년

뉴멕시코에서 개최된 공룡 발자국에 관한 제1회 국제 심포지엄을 직접 주관하기도 했다.

최근까지 이 부분에서 발표한 연구논문으로 보았을 때 그는 공룡 발자국화석 연구의 1인자로

꼽을 만하다.

이토록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공룡학자를 놀라게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지난 82년 처음 고성 덕명리 해안에서 공룡 발자국화석이 발견됐다는 정보를 듣고 이 지역에

서 화석을 처음 발견한 필자에게 국제 공동연구를 제의해 오기도 했다.

그와 88∼91년까지 4년여에 걸친 야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덕명리 해안 일대에는 1백50여m 두께의 지층이 분포하고, 그 가운데 약 3백여 층준

(層準)에서 화석들이 나타나 평균 0.5m마다 화석이 발견되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이 지역에서는 또 관입암상(貫入岩床)이라는 화성암 표면에서도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기도 했다.

화성암에서 화석이 발견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처음 있는 일로 이 사실은 이미 국제학술지에

발표되었다.

▲덕명리 해안에서 발견된 2족보행

공룡 발자국.

6천5백여 공룡 발자국 영남 일대에 집중

82년 이후 한반도 특히 영남지역에서는 매년 새로운 공룡 발자국 산지가 보고되고 있다.

이제는 발자국 산지의 발견은 더이상 뉴스 가치가 없을 정도로 이 지역에서는 흔한 일이 돼버렸다. 특히 고성 덕명리에서는 공룡의 종류가 적어도 사족보행(四足步行)의 용각류(龍脚類)가 3종, 이족보행(二足步行)의 조각류(鳥脚類)가 10여종, 이족보행의 수각류(獸脚類)가 2종이나 확인됐다.

경북 의성군 일대에서도 광범하게 공룡 화석들이 발견됐다. 86년에는 금성면 청로리 야산에서

공룡의 골격 부분화석이 발견된 이래 90년에는 금성면 제오리에서 공룡 발자국(천연기념물 지정)이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봉양면 구미리에서 공룡 어깨뼈와 대퇴뼈가 발견됐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영남지역 이외에서는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황리 일대에서 공룡 발자국화석이 다수 발견됐다.

이곳 9개 층준에서는 2백여개의 공룡 발자국이 발견됐는데 특히 익룡 발자국화석과 물갈퀴발

새 화석이 한꺼번에 발견돼 주목을 끌었다.


이밖에도 국내에서 발자국화석이 1백개 이상 집단발견된 곳은 20여곳에 달할 정도다.

지역별로는 경상도 지역이 50여군데, 전남지역이 1군데, 북한 황해도 평산군 용궁리가 1군데

등 발자국화석은 6천개를 넘을 정도다.

그러면 한반도에서 이토록 많은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럭클리 교수의 말처럼 과연 한반도는 중생대 백악기에 공룡들의 천국이었는가.

사실 발견된 발자국화석만을 고려한다면 한반도가 공룡의 천국이라는 말은 크게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화석은 찾는 이의 눈에만 띄는 것이다. 이 말은 매우 당연한 것 같지만 상당히 중요하다.

머리 속에 찾고자 하는 화석의 영상이 들어 있어야 눈에 띄고, 찾으려는 마음이 없으면 망막에 비쳐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82년 남해안에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2년 뒤 일본열도에서도 곳곳에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일본 혼슈의 군마현 나카사토라는 작은 마을의 세바야시 지층, 그리고 테토리층군과 규슈의 미후네층군에서도 공룡 발자국이 잇따라 

발견됐다.
그들은 당초 한국에서 공룡 발자국이 다수 발견된 사실에 주목했다.

한국에서 발자국화석이 발견됐다면 일본의 동시대 지층에서도 화석이 나올 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발굴작업을 벌이게 된 것이다.

 

골격화석과 발자국화석의 보존조건은 상호 배타적

▲덕명리 해안에서는 4족공룡 말고도 2족 공룡(獸脚類·鳥脚類)이 15종 이상 무리를 지어 발견된다. 이곳은 세계 3대 공룡 발자국화석 산지로 상족유원지에서 실바위까지 6km에 걸쳐 화석들이 퍼져있다.

이에 비해 중국에서는 곳곳에서 발자국화석이 발견되고 있지만 이에 관한 보고는 상당히

미미한 편이다. 공룡의 완전한 골격화석이 워낙 많이 발견된 중국이기 때문에 발자국화석에 대한 관심은 의외로 적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공룡의 존재가 확인된지 2백년이 지났지만 세계적으로 발자국화석에 관한 중요성

이 부각되고, 고생물학자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20여년 정도다.

그렇다면 한반도 내에서 발자국 이외의 완전한 골격화석이 발견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국내에서도 가끔 골격화석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매우 단편적인 것일 뿐 완전한 것이 아직까지 나오지는 않았다. 우선 그 이유부터 짚어보아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환경조건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공룡 발자국이 잘 보존되는 환경조건

에서는 골격이 쉽게 분해돼 버리고, 반대로 골격이 잘 보존되는 조건에서는 발자국이 보존되

기 어렵다.

홍수나 산사태, 지진 등 지각변동이 클 경우에는 골격화석이 나올 가능성이 크지만 한반도에

많이 분포하는 이른바 ‘경상층군’은 매우 안정된 지형을 형성해왔기 때문에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다.

결국 공룡 발자국과 골격의 보존 조건은 상충적이고 배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골격과 발자국이 함께 발견되는 예는 거의 찾기 힘들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공룡 골격화석을 찾기 위한 본격적인 발굴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정밀 발굴은 커녕 지금까지 발견된 발자국화석들도 제대로 연구·보존이 버거운 실정이다.

공룡 화석에 관심을 갖고 정밀하게 조사한 기간이 아직 길지 않고 조사자의 수도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한다면 국내에서도 조사 여하에 따라 머잖아 골격화석이 발견될 개연성은 아직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국내 공룡 화석산지는 대부분 영남지역에서 발견된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것을 지질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매우 간단하다. 공룡이 살던 시대의 지층이 이 지역에 가장 넓게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룡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중생대 쥐라기 후기에서 백악기가 전성기였다.

화석은 반드시 그 생물이 살던 시대의 지층에서만 발견되는데 영남 지역에는 공룡시대의 지층인 경상층군이 넓게 분포해 있다.

영남 일대에는 2억5천만년 전부터 6천5백만년 전에 걸쳐 퇴적된 중생대 지층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지층의 지질학적 특징 또한 공룡 발자국화석의 분포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공룡 화석의 보존 여부는 그들이 살던 지질시대뿐만 아니라 지층이 퇴적된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공룡은 육상 동물이기 때문에 해성층(海成層)보다 주로 육성층(陸成層)에서 발견된다.

발자국화석은 앞서 밝힌대로 골격화석과는 공존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발자국은 특히 하천 주변의 범람원(汎濫原)이나 호수(湖水)가에 고운 입자의 퇴적물이 쌓이는 곳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한반도 경상층군에서 공룡 발자국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환경조건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이러한 견해와 관련해 일부 학자들은 “공룡시대 한반도에는 경북 안동에서 남해안 일대까지가 거대한 호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중생대 백악기 ‘경상층군’의 비밀

공룡이 살던 중생대 쥐라기·백악기, 동부 아시아 지역의 해륙분포 상황에 대한 의문도 이와 맞닿아 있다.

현재까지 중국을 비롯한 동부 아시아 지역의 공룡에 관한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까닭에 자세한 상황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발견된 화석이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한 데 비해 나라마다 철저한 비교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구체적인 종(種)과 속(屬)의 수준에서 비교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육상동물인 공룡 화석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대륙·일본열도의 같은 시대 지층에서 발견되는 것은 이 일대가 공룡시대에는
 

현재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란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중국의 산둥(山東)반도를 비롯하여 만주 일대와 한반도, 그리고 일본열도에서 발견되는 각종 공룡화석은 적어도 당시 황해(黃海)가

존재하지 않았고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의 동해(東海)도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공룡이 살던 당시의 자연조건도 아직 연구과제다.
현재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공룡시대가 지금보다는 대체로 따뜻한 기후조건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거대한 체구의 공룡이 현재 한반도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는 생존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룡에게 추운 겨울철은 체온을 유지하기 어려운 조건이었고, 체구가 큰 공룡들은 동면(冬眠)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전혀 다른 지질학적 자료에 따르면 백악기 지구의 평균기온은 현재보다 적어도 10℃ 정도는 높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남 마산시 진동면 고현리 해안의 공룡 발자국화석. 이곳에서는 날카로운 2족보행 육식공룡과 넓적한 4족보행 초식공룡의 발자국이 다수 섞여 있어 상당히 역동적인 모양이다.

당시 지구상에는 공룡 외에도 공생관계에 있는 생물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소철류나 소나무와 같은 겉씨식물이 주로 자라고 있었고, 물 속에는 연체동물이나 어류 그리고

다양한 곤충들이 함께 살았을 것이다.

7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공룡 화석이 처음 발견된 이래 발자국화석과 공룡의 알·골격·발자국·이빨·배설물·발톱 등의 화석들이 계속 발견됐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할 것은 국내에서 공룡 화석의 발견 주체다. 다른 화석과 달리 공룡화석은 해방 후 국내 학자가 처음 발견한 화석이라는 데 큰 의의를 둘 수 있다. 반세기에 걸쳐 일본인 고생물학자가 한반도 곳곳을 샅샅이 조사해 고생대 삼엽충을 비롯한 대부분 종류의 화석들을 연구, 보고하였으나 유독 공룡만큼은 국내 학자가 이에 앞선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공룡에 관한 기사가 처음 보도된 것은 1976년 3월23일. 기사 내용은 필자가 발견한 공룡 알과 소형 파충류의 이빨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이 공룡화석이 발견한 것은 3년 전인 73년 초. 필자는 당시 일본 유학을 준비하면서

조사차 남해안 일대를 조사하다 경남 하동군 금남면 수문동 해안에서 압착된 상태로 보존된 공룡알 껍데기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화석을 발견했을 당시 문제의 알이 공룡의 알이라고는 감히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정작 공룡화석을 확인한 것은 이것을 일본 연구기관들이 조사한 결과가

나온 뒤였다.
그뒤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 공표되고 학계에 보고된 것은 발견 3년 후의 일이었다.

국내 공룡화석의 최초보고는 결국 76년 3월31일 대한지질학회 고생물분과에서 이루어졌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룡 연구는 비교적 활기를 띠게 됐다.

국내 공룡 연구의 열악한 조건

나중에 독일 본대학의 에르벤 교수(1984)와 박혜숙(1986)의 연구에 따라 문제의 공룡알 껍데기는 조반류 공룡의 알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은 또 이 화석이 보고된 공룡알 화석 가운데 최고(最古)의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한편 공룡의 부분 골격화석은 그뒤로 경북 의성군 탑리를 비롯하여 경남 합천군 율곡면 노양리, 중앙고속도로 의성 IC 부근, 경북

군위군우보면 나호리 도로변, 경남 진주시 유수리 하상 등지에서 잇따라 발견된 바 있다.

그러나 그 골격화석들은 단편적인 것이어서 그 정체를 밝히기 어려웠다.

발굴조사 조건도 극히 열악해 상지대 이광춘 박사가 의성 IC 부근에서 발견한 골격화석의 경우는 아예 발굴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노천에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서 발견된 부분 골격화석 중에는 진주시 유수리 하상에서 발견된 이빨화석만이 유일하게 그 주인공이 일부 알려졌을 따름이다.

이 화석은 카마라사우루스(Camarasauridae)과와 알로사우루스(Allosauridae)과에 속한다는 정도의 윤곽이 알려졌다.

이런 와중에 일부에서는 뼈의 파편이나 발자국을 근거로 일반인이 공룡의 이름을 새로 제안하는 해프닝까지 발생했다.

동물의 이름을 새로 부여하는 일은 매우 전문적인 작업이며 국제적으로 정한 명명규약을 엄격히 적용해야 하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명명규약은 학명의 안정성(安定性)과 보편성(普遍性)을 조장한다는 의미에서 세계적으로 아예 법조문 형식으로 정해 놓고 국제명명위원

회가 조직돼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는 그뒤로 학계에서조차 화석이 아닌 것을 화석이라고 공표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종종 벌어져 공룡 연구에 오히려 장애물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