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역사 이야기

병마용갱의 주인은 누구며, 진시왕은 누구인가!

설레임의 하루 2009. 5. 21. 05:17

*출처:다음카페-삼태극 글쓴이-삼태극    http://blog.daum.net/samtaegook/9758517

 

 

 

병마용갱은 단조선의 칸의 무덤이다.(중국 지나족 진나라의 것이 아니다.)

 

가. 단조선의 강역은 한반도 만주 북방몽골 시베리아 연해주 중원대륙 서역 티벳 인디아 러시아 일부까지였다.

이것을 가늠 할 수 있는 기록을 보자.


1.30세단군 내휴 재위35년

단제께서 청구(산동성 지역으로 비정)의 다스림을 둘러보시고 치우천왕의 공덕을 새겼다.

서쪽으로 엄독(현재 대륙의 감숙성 또는 내몽골지역)골에 이르러 제후국의 여러 칸(汗)과 만나 병사들을 사열하고는

하늘에 제사지내고 주(한->은=상->주로 이어짐- 주나라도풍속을 보면 한겨레와 같다는 것이 밝혀짐)나라 사람과도

수교를 맺었다.

병진5년(서기전905년)흉노가 공물을 바쳤다.


2.흉노의 기원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3세 단군 가륵,갑진6년(서기전 2177년),열양의 욕살색정에게 명하여 약수로 옮기게 하고 종신토록 갖혀 있도록 하였다.

뒤에 (3세 단군 가륵께서) 이를 용서하시고 곧 그 땅에 봉하니 그가 흉노=훈의 조상이 되었다."

단군세기=한단고기 68쪽-임승국-정신세계사.


그리고 약수가 어디냐에 대하여는 다음을 보면 알 수 있다. 

단군세기에 3세단군 가륵때에, 흉노의 조상이 된 욕살색정이 갖힌 곳이 '약수'라고 나오는데 '약수'는 오늘날 대륙

감숙성, 청해호 서북쪽 고비사막 인근을 흐르는 강으로 밝혀지고 있다

3.티벳에 대하여는 신시배달국 14대 한웅천황 자오지 치우천자때 이미 강역이었고, 단조선에 와서는 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 기록이 있다. 

" 3세 단군 가륵, 병오8년(서기전 2175년) 강거가 반란을 일으켰다.

단제는 이를 지백특(支伯特)에서 정벌하였다. "

단군세기=한단고기 68쪽. 임승국-정신세계사. 여기서 지백특이 오늘날 티벳으로 알려지고 있다.


4.인도에 대하여는 현재 인도의 힌두교는 단조선의 무당문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졌고, 언어나 기타 변발 풍속등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시대를 달리하며 끝임없는 교류를 해왔다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5.연해주의 경우 곰과 호랑이 신화가 보이고 고조선의 편두조각상이 아물강가에서 발견되는 점, 현재도 동북부

시베리아 지역에는 곰을 모시는 소수종족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


6.서역과 러시아의 경우 서기전 약7백년 경에 이미 한겨레의 일파인 스키타이족이 진출해서 터전을 잡고 살고

있었다는 것이 발견되고 스키타이의 제사장이 무당이었다는 것도 파지릭의 벽화를 통해서 밝혀진바 있다.


7.선비족에 대하여는 단군세기에 32세단군 추밀재위30년 갑인3년(서기전 847년)선비산의 추장 문고가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는 이 당시에 이미 선비족도 단조선이 일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단군세기'

[회대(淮岱)의 춘추제국은 단군조선의 땅이며 춘추제국은 단군조선의 오가(五加)라 하였는데 진시황은 한(韓)이 망하자 초(楚)·위(魏)·

조(趙)·연(燕)을 멸하고 산동반도의 제(齊)를 멸망시키고 6국을 통합한다. 이 6국의 주체세력들은 모두 단군겨레의 후손이다]

 

'태백일사'

[계해년(BC.238) 단군 고열가(47대, BC.295∼238)가 마침내 왕위를 버리고 아사달에 들어가셨다.

진조선(眞朝鮮)은 오가(五加)와 함께 진시황에게 복종하고 끝내 회복되지 못한 채 종말을 맞았다]

 

'북부여세가'

癸未二十年滄海力士黎洪星與韓人張良狙擊秦王政于博浪沙中誤中副車

[계미 22년에 창해역사 여홍성이 한(韓)나라 사람 장량과 함께 진시황을 박량사 가운데서 저격하였으나 빗나가 부거를 박살냈다]
 

따라서 위 기록을 종합하고 단조선이 중원대륙을 포위하고 있고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은나라 주나라 등이 동이한겨레

나라라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가 중국 동북공정사관에 기초하여 알고 있는 현재의 중국 서안일대의 춘추전국시대

수많은 소국들은 사실은 단조선의 제후국이거나 지배권안에 있던 나라들임을 알 수 있다.


나. 단조선의 문화를 기준으로 볼 때, 병마용갱의 주인은 지나족의 것이 아니다.

첫째, 일산日傘마차를 보면 알 수 있다.

일산마차는 태양빛을 가리는 우산같은 일종의 차단물이다.

이는 한겨레 고유의 칸 또는 귀족의 교통수단으로 나타난다.

지나족은 아예 이게 없다. 이 일산마차의 분포지역을 보면 아래와 같다.

고구려 백제 신라와 북방 훈(흉노)제국 또는 튀르크제국 그리고 중국 서안 병마용갱 등에서 발견된다.

 

No. 1 Chariot in Xian Terra Cotta Army Museum Xian Museum of Terra Cotta Warriors and Horses - No. 1 Chariot

               중국서안의 병마용갱에서 발견된 일산마차


따라서 병마용갱에서 발견되는 일산마차의 주인공은 중국 지나족, 진나라 것이 아닌 단조선의 단(한=칸)제이거나 그

계열의 제후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마차 바퀴을 보면 단조선계열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병마용갱에서 보이는 일산마차의 바퀴를 보면 여러 개의 살로 이루어져 있다.

서기전 2백년이상 올라가는 시대에 마차의 바퀴를 살로 만들 만한 기술을 가진 민족은 단조선 밖에 없다.

이러한 마차바퀴기술은 우리 한겨레가 가장 오래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 전라도 지방에서 서기전으로 올라가는 마차의 바퀴살이 발견되어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거기다가 섬세한 옻칠을 한 바퀴였다.

옻칠기술도 한겨레가 가장 오래되고 고도로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로마제국의 경우에는 서기전후에 나타나는 제정로마시대까지도 살로된 바퀴를 한 마차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보다 후진 나무 조각을 여러 개 원형에 맞추어 오려 붙힌 원시형태의 바퀴를 하고 있다.

 

Wheels of No. 1 Chariot, Xian Terra Cotta Army Museum No. 1 Chariot, Xian Terra Cotta Warriors Museum, China

             중국서안의 병마용갱에서 발견된 살로 된 마차바퀴

 


셋째. 상투를 보면 알 수있다.

이는 단조선 때부터 나타나는 한겨레고유의 생활풍속이다.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위만은 고조선으로 들어올 때에 상투를 틀고 조선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2002년 3월 1일 발행) 두산 50p >

 

             중국 서안의 병마용갱의 상투를 튼 사람상들

 


 

상투는 변발을 한 것을 둘둘 말아서 머리정수리에 모아 묶어놓은 것을 말한다.

이런 상투머리가 소위 진시황이 만들었다는 중국서안의 병마용갱에서 발견된 수많은 사람상들에게서 대부분 발견된다.

상투는 중국 지나족(한족)과는 거리가 먼 풍습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병마용갱의 주인은 결코 중국 지나족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변발은 길게 내리 딴 머리를 말한다. 변발은 광범위하게 발견되는데 현재 발견되는 지역은 인도, 중국대륙

소수민족, 시베리아 한겨레, 미주대륙의 인디언 인디오들이다.

시기적으로는 청나라 때 려진 한겨레의 변발이 기본풍속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여왕의 생일 축하사절단으로 간 한국사람들

  

다. 병마용갱의 주인이 진시황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뒤집는 결정적인 주장이 나왔다.

요점은 지나족의 작품도 아니고 진시황의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즉 한겨레나라인 초나라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 원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2005년 12월 12일 (월) 10:50 쿠키뉴스


[쿠키지구촌=중국] ○…병마용은 진시황의 것인가 하는 내용의 기사가 중국 인민일보실리자 학술계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이 논란을 일으킨 주인공은 사학자도 아니고 고고학자도 아닌 건축학자 천징왠이다.


올해 69세인 천징왠은 1957년 서안건축공정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한후 심양의 어느 설계사 무소에서 근무했으며 그는

거의 강소성과 섬서성에서 공사를 맡았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진시황릉에 대해 끊임없는 연구를 했었고 퇴직 전까지는 강소성 국토국에서 근무했었다.

 

병마용에 관한 그의 의혹은 병마용과 진시황릉이 너무 멀리 떨어졌다는 점.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전차의 바퀴 간 거리를 똑같이 표준을 정해 통일했는데 갱내 어떤 전차들의 바퀴간 거리가

차이가 나는 점. 진시황시대의 사람들의 옷이 주로 검은 색이었는데 갱내 무사들의 전포가 칼라인 점.

또한 그 시대의 군대는 주로 보병과 기마병이었지만 갱내 군사 진영을 보면 전차부대 위주로 편성된 점 등을 의혹으로

제기했다.


1974년 서안 린퉁현 시양촌 농민들이 우물을 파다가 발견한 병마용이 중국사회과학원과섬서성 문물부서 전문가들의

정확한 판단이 없는 상황에서 짧은 시간 내에 진시황의 순장품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전한다.

천징왠 학자의 말에 의하면 당시는 문화혁명 시기로 온 중국이 공자를 비판하느라 법석이었다.

문화혁명의 주도자 4인방의 일원 강청이 법가의 전형인 진시황을 이용하여 유교사상을 비판하려 했던 것이다.

병마용이 진시황의 순장품이라고 서둘러 내린 결론은 당시 강청의 정치적인 압력 때문이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천징왠이 그와 상반대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 다녔지만 역사를 뒤집는 모험을 시도하려는 학술계

잡지는 없었다.

1984년 그는 사회과학원을 뛰어 넘어 ‘대자연 탐색’이라는 잡지사에 자신이 그동안 수집한 증거들을 내놓으면서

병마용의 진정한 주인은 진시황이 아니고 기원전 306년에 죽은 진선태후 라는 글을 발표했다.

진시황보다 거의 100년 먼저 죽은 그는 진소왕의 왕모였다.

진선태후가 죽을 때 신하들을 순장하라고 아들에게 분부했지만 아들은 그렇게못하고 그대신 병마용을 만들어 드리는

걸로 자신의 효도를 표시했다고 한다.

병마용의 머리모양과 의상이 그 당시 소수민족을 닮았다고 하면 병마용이 초나라 사람인 진선태우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의 글은 나오자 마자 바로 여론의 파도에 잠기고 말았다.


칠순에 가까운 나이로 이젠 퇴직했지만 평생 병마용을 떠나지 못한 천징왠 학자는 지금도 병마용에 관한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제휴사/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 (www.ikoface.com) 윤향란 중국 통신원

 

초나라는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하는 나라지만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다는 진시왕의 진나라보다 1백년이상 전에 생긴

나라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초나라는  신시배달국 14대천황 자오지 치우천자의 후예이며, 단조선 연방에 속하는 한겨레 나라로써 춘추전국시대

단조선의 주요 제후국이었다.

중국 우한(武漢) 소재 중난민쭈(中南民族)대학 남방소수민족연구소의 양완쥐안(楊萬娟)교수는 초나라의 실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증언을 한다.


초나라 한웅이 천부인(天符印.거울, 칼, 방울) 3개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 왔다는 것은 무속신앙의 무구를 가리키는

것인데 초나라는 무속신앙이 성행했고 초나라 후예 묘족(苗族)은 아직 각종 무속신앙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또 묘족은 지금도 단오절에 마늘과 쑥으로 잡귀를 쫓는다고 한다.


라. 진시황은 누구인가, 중국 지나족인가, 동이한겨레인가!

이에 대하여는 위에서 올린 글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병마용과 려산의 진시왕릉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발굴중단상태인 피라미드릉의 주인이 진시황의 것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결론적으로 병마용갱과 려산의 피라미드릉은 중국 지나족과 거리가 먼 것이어서 지나족의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럼 진시황이라는 인물이 누구냐는 것이다.

위자료를 보면 진시황이라고 할 만한 유물이나 유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봐야하고 사료에기록된 것만 가지고 어느

유물과 유적이 진시황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따라서 위 병마용갱과 려산의 피라미드릉이 일단 진시황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더 힘을 받는 다는 점을 고려하면

진시황은 동이한겨레가 아니다.

반면에 다른 보완증거가 나타나 병마용갱과 려산의 피라미드가 진시왕의 것으로 증명되면 진시황은 동이한겨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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