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고조선(한단고기)

단군조선시대 (2096년 47대)

설레임의 하루 2009. 5. 19. 05:13

*출처:다음블로그-아이저어라     [자료제공 : 블루7 http://blue7.net ]

 

 

단군조선시대 (2096년 47대)
  

  배달국의 제18대 거불단 환웅께서 돌아가시자, 거불단 환웅이 웅씨족의 왕녀와 결혼하여 낳은 단군

왕검성조께서 기원전 2333년 10.3 9환(九桓:九夷)의 백성의 추대를 받아 송화강 아사달(현 하얼빈)에

서 제위에 오르시며, 나라이름을 조선(朝鮮)이라고 하셨다.

  단군시대는 동이 9족을 단일통치권으로 완전히 통합한 한민족 최대의 전성기였다.

단군조선시대는 제1대 왕검단군부터 제47대 고열가 단군때가지 총 2096년간 지속되었다.

(기원전 2333~238년).

<주요 단어>

조선(朝鮮) : 아침의 신선나라. 영어의 sun이 빛나다..이 鮮에서 비롯됨.

: 하늘의 의미인 天, 군은 신,임금..칸.
단군: 사람이름이 아닌 환인·환웅처럼 제사장과 통치를 겸임한 관명(官名).
        (터키:텅그리, 일본:텐구, 수메르:딩기르, 메소포타미아:다간).
무당 :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것은 사람. 제정일치 시대의 천자는 통치자임과 동시에 제사장이며

         그 대표적 인물이 단군왕검. → 태양신, 태양신의 길 안내자.

년대

나이

주요 치적

BC 2333.10.3

38

구환을 통일하고 천제에 즉위

B.C 2285

86

9년 홍수(九年洪水)발생
(
노아의 홍수사건과 동시대에 발생)

B.C 2283

88

강화도 마니산에 제천단을 쌓음

B.C 2280

91

마니산에 오르시어 하늘에 천제를 드림

B.C 2267

104

순임금이 보낸 우(禹)에게 부루태자를 보내 오행(五行)치수법을 전해주어 홍수를 다스리게 함

BC2241.3.15

130

붕어하심

수 도

재위 단군

기간

송화강 아사달 (하얼빈)

초대 단군왕검 ~ 21대 소태

1048년(BC 2233~1286)

백악산 아사달 (장춘)

22대 색불루 ~ 43대 물리

860년(BC 1285~426)

장당경 아사달
(요녕성 개원)

44대 구물 ~ 47대 고열가

188년(BC 425~238)

 1) 단군왕검 - 양잠법 시행, 댕기, 대님 매는 법, 연지곤지, 소도.
     백성들은 자연스레 단군왕검을 따라 집집마다 제천단을 만들어 새벽마다 경배하였다.
     10월 상달에 삼신께 천제를 지냄. (→ 우르의 지구라트, 이집트, 마야, 잉카 피라미드)
     “모든 예술은 제천의식에서 비롯된 것”  - 아리스토텔레스 -

 2) 2대 부루단군 9년홍수 - 부루태자가 ‘도산회의’ 주재하여 우에게 오행치수법 전달

 3) 3대 단군 가륵 때 삼랑 을보륵 가림토 만듬. 38자. (→ 일본 아히루문자, 인도 구자르트문자,

      알파벳, 갑골문자)
     한문 - 중국인들은 중국한어(옛 임금의 제후국이었던 한나라의 말)란 말을 씀.

     즉 그들이 쓰는 한자가 우리 동이족으로부터 나왔음을 인정하는말.  

 4) 4대 오사구 단군- 동생 오사달 몽고리한으로 임명. 지나족에게 문제가 생기면 동이가 주재.

 5) 5대 구을 단군 - 60갑자 처음 씀, 혼천의

 6) 6대 달문 단군 - ‘제사는 다섯 가지 가르침의 근원’ - 농자천하지대본.

 7) 19대 구모소 단군 - 아우 종성을 청아왕으로.  
     이 청아왕의 증손 서우여가 번한 30대왕, 즉 기자(奇子) 조선의 시조가 됨.

 8) 22대 색불루 단군- 쿠테타 성공, 삼한을 삼조선으로 고침.

 9) 44대 구물 단군 - 국호를 ‘대부여’  광역 국가체계 구축: 삼한(三韓)

(古)조선

삼한

수도

관할지역

단군조선

진한(辰韓)

송화강 아사달

압록강 이북, 요하 이동의 만주땅
(단군이 직접 관할)

막조선

마한(馬韓)

평양

압록강 이남의 한반도, 제주도 대마도

번조선

번한(番韓)

하북성

요하의 서쪽에서 하북, 산동, 산서, 강소에 이르는 중국 대륙

 

 고조선의 전 영토를 삼한(진한, 마한, 변한)으로 나누어,

진한 은 단군이 직접 통치하고,  마한·번한은 부단군 격인 왕을

두어 다스렸으며 삼한관경 밖의 분국은 구려분정이라하여  

구려(九黎) 또는 구이(九夷)를 중원의 임금에게 위임하여

다스리게 했다.

   중국의 요·순·우 임금은 단군성조 관경의 일개 제후였다.

중국 최초의 문자인 갑골문을 사용했던 은왕조는 단군조선이

통치하던 국가였다.

 단군왕검은 또한 환국과 배달국의 정통정신을 계승하여 신교정신을 크게 부흥시키셨다.

단군은 하늘의 뜻을 받들며 조상때부터 전해온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널리 가르쳤으니,

그 다스림이 높고 교화가 널리 미쳐서 모든 사람이 따르며 한마음으로 뭉쳐 천제(天帝)의 아들(천자)

로 모시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조선은 우리 민족의 고대 정치와 사상과 문화와 종교가 완성된,

완벽한 홍익인간 구현이 완성된 찬란한 동방군자국으로서 칭송받았다.

  단군의 고조선은 초기에 이미 청동기 시대에 진입해 있었으니 고조선은 초기부터 국가사회에

진입해 있었다. 법률제도(팔조법 : 국사 교과서에는 3개의 항목밖에 없으나「환단고기」에는

전항목이 기록되어 있다)가 있었고, 문자(원시 한글이 가림토 문자와 고대 신지문-眞書)를

사용했으며, 토지제도(균전제), 역철학과 음양오행 상수학, 책력법(60갑자), 화폐제도 등 고도의

선진문화를 창조 발전시킨 문명국가 시대였다.

<가림토(加臨土) 문자>

  문자사용에 있어서는 배달국 시대의 녹도문자 외에도, 3대 ‘가륵’단군께서 B.C 2182년 삼랑을보

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의 하늘 소리인 가림토(加臨土) 문자를 새로이 만들어 사용했으며

이것은 후일 세종대왕때 훈민정음의 모체가 된다.

이 가림토 문자는 실제로 서울대 이상백 교수에 의해서 1930년대에 중국 길림성 경박호 암벽에서

발견되어 탁본되어 94. 12월 문화일보에 공개되었다.

그 발견된 가림토(古한글) 38자를 참고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국민에게 병역의무를 실시했으며,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신원목(신문고 같은 것)을 설치하고,

임금과 백성이 합의하는 정치를 위하여 국민에게 참정권도 주어졌다.

그리고 천하를 알리는 지도와 혼천의를 만들었으며, 감성관을 두고 감성(천문대)을 만들어 천체운행

을 연구하게 하였다.

<고조선이 실존한 것을 입증하는 문헌자료와 고고학적 고증>

고조선의 영토는 한반도 뿐 아니라, 만주와 요동지역을 포함하며, 만주와 요동 지역을 오랫동안

지배했다.
고조선은 1천년간 중국지배를 받지 않고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켰다.

고조선 문화의 특징은 비파형 단검 문화다.
중국계 기자(箕子)가 고대 한국을 지배했다는 기자조선은 한(漢)대에 허위로 꾸며진 것이다.
한사군(漢四郡)은 현재의 한반도 밖에 존재했다.
고조선 지역 청동기의 시작은 기원전 2천년 후반기로, 고조선은 국가단계로서 초기 철기시대로

추정된다.

-소련과학원 시베리아 분원의 역사언어철학연구소-

<북한 평양 단군릉의 실체>

 고조선의 실존한 것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위치로는 북한 평양 단군릉이 있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에 북한에서 평양 동쪽 강동군에 엄청난 단군릉을 복원을 해서 거기에서

‘단군의 뼈도 발견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단군릉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터져 나왔다.

우선 단군릉이 초대 단군의 무덤은 아니고 47명의 단군중에서 다섯 번째 단군 구을(丘乙)의

무덤이다. 근거는『환단고기』5세 단군「구을」조를 보면, 구을 단군은 남방에 시찰을 간다.

그래서 ‘풍류강(風流江)’을 지나 ‘송양’에 이르러 ‘득질심붕(得疾尋崩)’, 병을 얻어 가지고 돌아가

셨다. 지금의 ‘풍류강’ 이라는 것은 고증에 의하면 평양에 있는 강동군의 북동쪽을 도는 비류강이

라 밝혀졌고, ‘송양은 지금은 강동군의 옛 이름이었다’라고 고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