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역사 이야기

동북공정-고구려를 넘어 고조선으로....

설레임의 하루 2009. 4. 30. 03:09

*출처:다음카페-한배달  글쓴이: 일월선인    http://cafe.daum.net/hanbaedal/F45t/388 

 

 

 

 

 

 

 

[커버 · 고조선]

"우리 역사의 출발점… 만주·한반도 지배"

 

우리 고대사 고조선-열국시대-사국시대-남북국시대체제 돼야…

中 동북공정 우리 스스로 빌미 제공

 

“단군은 신화 속의 인물이니 단군조선은 실재하지 않았고 기자조선부터 실존하는데, 기자는 주(周)나라의

무왕이 조선왕에 봉(封)한 인물이니 기자조선의 역사는 중국 역사의 일부이다.”

 

고구려는 한사군(漢四郡)의 하나인 현도군 고구려현에 일어난 왕국이니 고구려도 중국 변방정권 중의

하나다.”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하면서 내세우는 논리다. 동북공정 공세가 예사롭지 않다. 학문적 연구를

넘어 역사적 영토권과 정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반도 북부가 중국의 역사영토이니 장차 정치적으로 회복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주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단군을 신화적 인물로 밀어넣고 고조선과 고구려를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북부에 위치시킨

까닭이다.

대응적으로 고구려재단 등을 만들고 법석을 떨었지만 근본적인 해법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며 일방적으로

밀리는 양상이다.

 

그런 국내 현실에서 윤내현(67)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소장은 30년 전부터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설 수 있는

논리를 펴왔다. 1978년 첫 저서 ‘상왕조사(商王朝史)의 연구’를 발표한 이래 ‘상주사(商周史)’, ‘한국 고대사

신론’, ‘고조선 연구’ 등 중국사와 한국 고대사 분야에서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최근에는 중국과 한국의 역사 자료를 비교 분석한 <사료로 보는 우리 고대사>(지식산업사)를 발간,

동북공정 및 한국 고대사 연구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다뤘다.

예컨대 <삼국유사>의 ‘고조선조’, <제왕운기>의 ‘전조선기’를 비롯해 중국의 중선지가 지은 <십구사략통고>

의 지도,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시황본기’, 등에 근거해 고조선의 존재 및 국경을 기술하고 있다.

 

또한 <사기> ‘조선열전’, <한서(漢書)> <진서(晉書)> <수서(隨書> ‘지리지’ 등에서 한사군이 고조선과

한나라가 국경으로 마주한 (고대)요동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윤 소장이 처음부터 우리 고대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의 원래 전공은 동양사, 그중에서도 중국 고대사였다.

윤 소장은 중국 고대사를 연구하던 중 자연스럽게 갑골문(甲骨文)을 접하게 됐고 석사 논문(갑골문을 통해

본 은왕조의 숭신사상과 왕권변천), 박사 논문(상왕조사-갑골문을 중심으로)을 갑골문으로 하였다.

 

그런데 당시 동양사학회 원로 학자 중엔 갑골문을 이해하는 교수가 드물어 미국 하버드 대학에 유학가서

연구했다.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의 중국 자료들을 보는데 한국 관련 부분들이 자꾸 눈에 띄었어요.

특히 기자(箕子)가 고조선으로 간 부분이 와닿았는데 갑골문에서 기자와 관련된 부분을 찾다가 기후(箕侯)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실존인물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윤 소장은 ‘상주사’의 집필을 준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기자와 한국 고대사의 문제에 파고 들었다.

기록에 따르면 기자는 상(商)나라 왕실의 후예로 기(箕)라는 곳에 봉해진 제후였으나 상나라가 서주 무왕에

의해 망하자 조선으로 망명했다.

기자가 망명한 곳은 고조선의 중심지가 아닌 국경 근처 변방으로 기자는 그곳의 제후가 되었다.

 

윤 소장은 <사기> ‘진시황본기’36년조에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영토가 ‘동쪽은 바다에 이르고 조선에

미쳤다’는 부분에 주목, 당시 요동의 경계(국경)가 베이징 옆 갈석산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는 갈석산 동쪽인 한반도와 만주 일대가 모두 고조선 땅이 되는 것으로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고조선의 강역(疆域, 한 나라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을 설정해놓고 나니 한사군의 위치, 고구려의 역사

등이 사료의 기록과 맞아떨어졌다.

 

윤 소장은 그 같은 사실을 정리해 1982년 ‘기자신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학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특히 고조선을 대동강 유역의 조그만 부족집단 정도로 인식해온 국내

주류 사학계는 윤 소장의 주장을 “터무니 없다”며 무시했다.

“역사학의 발전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토론과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길 기대했는데 학계가 폐쇄적이고

학연ㆍ지연의 벽이 높은 것에 실망했습니다.”

 

윤 소장의 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학계의 반발을 샀지만 일반 국민의 관심을 고조시켰다.

그의 고대사 특강에는 청중이 몰렸고 ‘고조선 제대로 알기’ 열풍이 불었다.

윤 소장은 86년 ‘사학지’를 통해 ‘위만조선’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제기했다.

 

종래 사학계의 통설은 위만조선이 고조선을 대체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윤 소장은 위만조선은 지금의

요서지역에 위치하고 고조선과 병존했던 정치세력이라고 주장했다.

 

윤 소장은 “기자조선ㆍ위만조선ㆍ한사군은 고조선의 요서 지역 변방에서 일어난 정권이기 때문에 우리

고대사 체제는 “고조선-열국 시대(동부여, 읍루, 고구려, 동옥저, 동예, 최씨낙랑, 삼한 등)-사국 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남북국 시대(신라, 발해)의 체제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윤 소장은 “분명 잘못된 시도이지만 중국 탓으로만 돌릴 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동북공정은 한국의 역사 서술을 근거로 공세를 취하는데 우리 스스로 그런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

즉 고조선이 만주와 한반도를 지배한 국가였다면 자연스럽게 부여나 고구려, 발해가 우리 역사에 포함되지만

주류 학계에서처럼 고조선이 대동강 유역의 조그만 국가였다면 부여, 고구려, 발해가 중국 역사에 편입된다

해도 할 말이 없다.

 

또한 대동강 중심의 고대사는 기자가 망명한 기원전 1100년 무렵부터 낙랑군이 축출된 기원 313~315년

무렵까지 무려 1,400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윤 소장은 고조선이 2000년 가까이 존재한 나라로 본다.

문헌적 기록뿐만 아니라 중국 랴오닝성의 홍산문화와 하가점 하층문화에서 발굴된 청동기는 방사성탄소

실험결과 기원전 2400년 정도의 것으로 판명돼 단군조선의 실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윤 소장은 “고조선은 우리 역사의 출발점이고 공동체 복원(통일 등)의 근거이기 때문에 제대로 역사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고조선사를 개척한 윤 소장은 현재 단군학회, 고조선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고조선에 대한 포괄적이고 심도있는 논의 계기 됐으면…"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저자 이덕일·김병기 씨

 

“2,000년, 아니 5,000년 만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역사학자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김병기(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전문위원) 씨는

요즘 베스트셀러로 각광받고 있는 공저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위즈덤하우스)에 관한

얘기부터 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의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국민들이 자신들의 책에

보인 성원에 놀라움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만큼 고조선(기원전 2333년), 나아가 우리 고대 역사가 홀대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동북공정에 따른 영향도 있겠지만 독자들이 제대로 된 우리 역사에 목말라 하는 것

같다”면서 “고조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우리 역사의 굴절된 현주소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학계에서 고조선에 대한 포괄적이고 심도있는 논의가 있기를 바란다”면서 기대했던

강단 주류 사학자들의 반응이 없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두 사람은 모두 한국 근대사, 그 중에서도 독립운동사를 전공했기에 고조선사는 의외인 셈이다.

이 소장은 ‘동북항일연군’연구로, 김 위원은 ‘독립군 참의부’에 관한 연구로 각각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소장은 “독립군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그분들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던 대종교를 접하게 돼 단군,

고조선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사의 천재들>, <조선 왕 독살사건>,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등 대중 역사서를 내면서

한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던 차에 고조선사를 펴내게 됐다고 했다.

 

김 위원은 증조부(김승학)가 독립신문 사장과 육군주만참의부 참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이고 부친

(김계업)은 대한독립운동총사 편찬위원장을 지낸 역사가여서 자연스럽게 고조선을 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들이 밝혀내는 고조선사는 우리의 고대역사 무대 현장을 발로 뛰고 가슴으로 전한 노력의 산물이

다. 이 소장은“중국의 박물관이 고조선식 동검인 비파형 동검을 숨기는 바람에 몰래 유물 사진을

찍어야 했다”면서 “중국은 동이족의 조상 '치우'를 중국의 조상으로 모시는 등 정부 차원에서 조직적

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데 우리는 버젓이 기록된 우리 역사도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다”고 비판했

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강 이북을 겨냥하고 있다”고 처음 언론에 밝힌 이 소장은 “현재와 같은 정부와

학계의 대응으로는 동북공정을 막을 수 없다”며 “내부의 싸움과 단일민족론에서 벗어나 동이족

대연합 차원에서 미래를 구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향후 계획에 대해 “고조선사에 이어 고구려사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중국 답사

등을 통해 자료를 확보한 뒤 올해 중반쯤에 책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조선사 책에 옮기지 못한 내용은 기고 등의 형태를 통해 살을 보탤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책의 의미를 묻자 “고조선 역사가 살아 숨쉬어야 한국사가 깨어난다”는 현답으로 돌아왔다.

 

 

[커버 · 고조선] 중국의 랴오허문명론은 고조선의 중국사 편입의도

[주간한국   2007-02-12 ] 

요동·요서·만주 '동북3성'을 중국문명권으로 부각

고조선이 안팎으로 시달리고 있다. 국내의 일제 식민사관과 그 아류사학이 고조선의 자리매김에

발목을 잡고 있다면 중국의 패권주의 사관은 고조선을 아예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한다.

특히 중국은 지난 5년 동안 치밀하게 작업해온‘동북공정’(東北工程, 중국이 동북 변경지역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려는 프로젝트)을 최근 매듭지어 고조선을 가장 크게 위협하고

있다.

 

고구려연구회 소속 서길수 서경대 사학과 교수는 “동북공정은 1981년 시작된 ‘다민족통일국가론’의

10단계 중 8단계 과정에 불과하며 마지막 단계인 2006년 시작된 제2차 ‘중화문명탐원(探源)공정’에

서 한국 고대사 침탈이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중국역사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출발한 ‘다민족통일국가론’은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

→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中國古代文明探源工程)→ 동북공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관련 공정

들을 거쳐 궁극적으로 ‘랴오허문명론(遼河文明論)’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랴오허문명론’은 중국 랴오둥(遼東)과 랴오시(遼西)를 포함한 만주(중국 동북3성) 지역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권으로 부각해 대중화주의(大中華主義)’를 완료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랴오허문명권 내의 고대 민족은 모두 중화민족이 되고 고구려,발해는 물론 이 지역에서

발원한 고조선까지도 완벽하게 중국사에 편입된다.

 

중국이 랴오허문명론을 내세운 것은 이제까지 중국 역사의 근원을 베이징 인근의 구석기 시대와

황하 중류의 신석기 시대 앙소문화(仰韶文化)를 포함한 ‘황하문명권’으로 잡고 있었는데 20세기

중반 이후 동북 만주지역에서 중원문화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더 발달된 신석기문화가 속속 확인

된 데 따른 비상조치다.

특히 기원전 3,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대규모 적석총 제단이 확인된 랴오허 일대의 홍산문화

(紅山文化)의 발견은 중국에 충격을 주었다.

 

랴오허 일대의 각 유적에서는 중원문화권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한반도에서 많이 보이는 빗살무늬토

기, 고인돌, 적석총, 비파형동검 등이 대량으로 발굴되었다.

이것은 내몽골-만주-한반도로 이어지는 북방문화 계통이었다.

 

특히 랴오닝성(僚寧省) 우하량(牛河梁) 지역에서 발굴된 ‘여왕국’ 유물들은 고조선 등 우리 유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고 연대 또한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기원전 2333년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중국은 황하문명권보다 이르고 발달된 ‘랴오허문명권’을 중화문명의 발상지의 하나로 재정립

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문명보다 이른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갔다.

 

그 선행작업으로 하상주단대 공정을 추진(1996~2000년), 전설상의 나라로 여겨지던 하나라(B.C

2070~B.C 1600)를 실제 국가로 공식화해 중국의 ‘역사시대’를 무려 1229년이나 끌어올렸다.

이어 중국고대문명탐원 공정을 시행(2001~2005년),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알려진 ‘3황 5제’의

시대까지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하여 중국의 역사를 1만년 전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역사적으로 한민족과 경계를 다투던 만주지역을 중국사로 확실하게 편입해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논란이 일지 않게 하려는 국가전략의 일환이다.

이에 반해 고조선의 실체조차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한국의 현실은 중국의 계획된 공략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양상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