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역사 이야기

중국의 동북아 고대사 약탈 프로젝트 배경 분석

설레임의 하루 2009. 4. 30. 02:54

*출처:다음카페-동방의 등불을 다시밝히는 한배달  글쓴이: 일월선인   http://cafe.daum.net/hanbaedal

 

 

 

   

 

 

중국의 동북아 고대사 약탈 프로젝트 배경 분석(작성자 :일월선인) (운영자 주 : 소제목은 제가 임의로 붙여 보았습니다)   

(서)
일간지에 보도된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문제에 대하여 중국측의 공식 논문이 지난해 70여 편이나 발표된 상황에서 그들의 이론적

논리를 전부 검토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이론적 논리와 별도로 그 공작의 배경을 개략적이나마 유추 분석해 보았다.

(운영자 주 : 소제목은 제가 임의로 붙여 보았습니다)

(본)
(1) 중국동북지역 주도권 분쟁에 대비한 사전 포석
중, 장기적으로 볼 때 동북지역이 황하문명에 뒤지지 않는 장구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고경제, 정치적으로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지금은 비록 소유권이 중국에 있긴 하지만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영토와 역사적, 경제적 자원문제의 분쟁에 대비하여 이에 대한 영구

확보방안의 일환으로 미리 쐐기를 박아 놓자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광활한 중국 동북지역은 지정학적으로 러시아, 몽골, 그리고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지역 못지않게 시간이

흐를수록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동북지역의 복합적인 잠재적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 남북통일에 대비 사전 정지작업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어 하나의 큰 힘으로 성장했을 때를 대비하여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할 수 있다.

남한은 가까운 중국의 광대한 시장을 염두에 둬야하고, 북한은 체제상 동지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경제 등 여러 면에서 현실적으로

중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다.

그러나 통일이 되었을 경우에는 동북아 역학구도에 큰 변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변화에 대비하여 미리 필요충분조건을 갖춰놓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3) 동북지역 문화유적지 부각에 따른 사전 대비책
동북지역의 역사와 유물 및 유적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할 수 없었던 중국이 이제 그 연고권을 한국에 빼앗길 수

없다는 패권의식에 기인한 과욕으로 볼 수 있다.

황하문명 중심론을 뒤흔들어 놓은 홍산문화, 산동성의 대문구, 용산문화 등 동부지역과 동북지역의 고대 유적과 유물에 대한 집착의

산물로 다양한 문명 발생론에 대한 인정인 동시에 현재의 강역에 고대사를 대응시키려는 무리수로 역사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공유의식 없는 역사 제국주의의 독단이 아닐 수 없다.

당사국과의 토론이나 논의과정 한 번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몰상식한 행위이다.

아직 구체적인 이론적 내용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은 거론할 수 없지만 일단 그러한 프로젝트를 국가적 차원에서

구상하고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당사국인 우리에게는 충격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4) 영토패권주의의 발로
중국 스스로 다양한 역사주체의 총체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다.
흉노, 돌궐, 선비, 5호16국, 남북조, 몽고(원), 요(거 란), 청(금, 여진), 강남 등 주변의 다양한 역사들이 중국사 또는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되어진 상황에서 엄연히 독립된 실체이며 주인이 있는 고구려사를 현재의 영토안에 무리하게 대응시키려는 부당한 논리는

주변국과 공유할 수 없는 총성없는 무혈침략이 아닐 수 없으며 사학 영토패권주의의 다름 아니다.

(5) 지속적인 소수민족 동화책 사용
아직도 끝나지 않은 티베트 독립문제 등 중국 한족의 거대한 용광로에 용해되지 않고 민족의 독립성을 지켜 온 주변 민족들에 대해

존재는 인정하지만 독자성은 인정하지 않고 한족의 울타리 안에서 용해시키려는 작업이 국가정책으로 지금까지 그들의 계획된

의도였다.

중국내 소수민족의 독립을 분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사회의 내부인식 가운데 첫 번째 화두는 당연 ‘통합’ 이라 할 수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내, 외적인 요인으로 격렬한 분열과 통합을 반복해 온 중국 역사의 특성상 하나의 용광로에 녹여내는 정치적

‘대통합’은 그들의 복잡한 현실 여건상 최우선 과제 일 수 밖에 없다.

다민족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들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조화와 화합의 장으로 이끌어 내지 못하면 어떤 형태로든 역사의

반복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위적 통합책으로 사회주의 국가체제가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실행한 것이 ‘문화혁명’이다.

겉으로는 타파 미신, 봉건주의 등의 구호를 내 걸었지만 사실은 다민족, 다문화의 다양한 역사를 깨뜨리고 하나의 사회주의 체제안에

녹여내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통치 전략과 전술이 의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수민족들에게 그들의 말과 문자는 사용하게 했지만 교육과정에서는 자신들의 역사는 교육하지 못하게 막고 중국의 역사를

일방적으로 교육하는 정책을 펴 온 것도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국가정책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조선족들도 한국의 역사가 아닌 중국의 역사를 배우고 있다.

사마천이 ‘사기’를 편찬하면서 황제헌원씨를 중심 시조로 기술한 이래 1980년대 초까지 중국에서는 자신들을 황제의 자손이라

정했다가 1980년대 말부터는 염제신농씨를 자신들의 선조 계보에 포함시켜 ‘염황자손炎黃子孫’으로 추가 변경시켰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탁록에서 황제와 치열한 전쟁을 치룬 치우를 포함시켜 염황치자손炎黃蚩子孫’이라는

타이틀을 다시 내 걸고 이른 바 ‘삼조문화三祖文化’의 주인공인 이들이 다양한 중화문명을 일으킨 중화민족의 공동시조라 하여 이들

세 분을 통합의 상징으로 모시고 기리는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을 만들어 역사적 근원으로부터의 통합작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참고지도) 탁록 “삼조당(三祖堂)” 전경




- 하북성 장가구시 탁록현 황제성 구역 안에 있다

중국의 모든 인민들이 종족적 계파를 초월하여
근원으로 회귀하면 ‘그 뿌리가 하나이다’라는 의미로 ‘귀근원歸根苑’이라
이름하고 그 안에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을 두고 있다.

(참고지도) 삼조당 정문 “귀근원(歸根苑)”




- 귀근원은 황제성 구역의 대문격으로 앙소문화시기의 건축양식을 띄고 있으며
- 57개 소수민족을 망라한 13억 중국인들의 단합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다

(참고지도) 삼조당내 “치우천자상”




- 좌측이 치우천자, 우측이 염제, 중앙이 훤원이 모셔져 있다

1983년부터 거액을 투자해 동북지역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공작에 들어갔는데, 이 문제가 한국에

이제야 알려진 사실이 아니며 이미 몇 년 전부터 공식적으로 중국 학자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문제였고, 공식석상에서 북한 학자들과 충돌까지 갔었던 문제이다.

분열과 통합의 역사적 반복의 불씨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정치, 경제적 힘을 바탕으로 국가차원에서 동아시아사의 블랙홀을

자처하고 동양의 대제국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미주 인디언들의 일파가 고대 은나라의 지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까지 공식적으로 발표한 상황이다.

(6) 식민사학자들이 지배하는 한 상고사에 대한 인식부재는 해소 못해
현재 남한과 북한이 통일된 사관이나 역사인식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이며, 전문적인 교류조차 활발하지 못한 형편이다.
고구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여 온 북한 학계에서 어떠한 대응책을 내 놓을지도 궁금하다.
고구려 문제에 대해서는 남, 북학계가 공동으로 대응책을 세워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 일 수 있다.

한편 북한, 중국, 일본의 경우와 달리 한국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고대 역사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또는 전문 학자들만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큰 차이가 있다.
전문 연구는 그렇다 치더라도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반드시 필수 베이스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땅에서 실패한 지도자들만 배출되는 이유가 반드시 있는 것이다.

역사와 뿌리에 대한 책임과 인식이 유교의 출세 제일주의와 같은 문중 족보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주변국 정치 지도자들 및

정책 입안자들과의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국의 상고사 문제에 대하여 중장기 국가정책으로서 공식, 비공식 정책과 대책이 전무하다는것 또한 주변국과의

엄연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상고사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인식코드 자체가 전혀 없는 것이다.

아울러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학문을 위한 학문으로 전락한 한국의 식민사학계와 같은 풍토를 지닌 학파들이 우리 주변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7) 고구려사 이전 상고사도 빼앗길 우려 있어
고구려사만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의 상고사가 더 큰 문제인 나라가 한국이다.

중국의 역사 교과서에는 이미 신농씨, 헌원씨, 치우씨를 언급하고 있으며, 최근 다시 역사교과서를 개정했다고 하는데 고대사 부분을

보강하는 방향이라고 한다.

최근에 개정된 내용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중국과 대만 및 일본의 고대사 기술 부문을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

(8) 고구려사 편입시도는 중국인들이 한단고기 내용을 보고 받은 충격이 원인(?)
중국이 상고사와 고대사를 충격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며 특히 상고사를 제도적으

로 역전시키려는 동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한단고기’가 출판되기 전에 1983도에 일본인 가지마 노보루에 의해 일어로 번역되어 나오면서 한때 세상을 시끄럽게 했고,

또 한국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한단고기’류의 서적들이 보편화되면서 이러한 문헌들이 이미 북한에도 유입되어 북한의 학자들도

‘한단고기’와 ‘규원사화’ 등의 문헌을 언급하고 있는 사정을 감안 할 때 중국에도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유통되었다는 사실이다.

가지마 노보루가 ‘한단고기’를 일어로 발간한 년대가 1983년이었고 중국이 동북아 프로젝트 사업에 착수한  시기가 1983년부터이다.

물론 우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여지는 것은 이미 그들도 ‘한단고기’를 접했다는 문헌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들이 그 내용들을 접했을 때 그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 분명하며, 한편으로 그들이

지금까지 신앙처럼 신뢰해 온 중화중심의 사학에 대한 굉장한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수천 년 간 그들의 의식을 지배해 온 중화중심 사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과 가치관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중국 내에서도 자체적으로 그들 역사의 기원에 대해 학문적으로 다양한 의견들 이 논의되고 제시되어진 상태에서 중국사는 물론이거니

와 기존 아시아의 문명체계를 다시 써야하는 “한단고기” “부도지” “규원사화”같은 한국사서의 등장은 실로 청천벽력 같은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9) 남북공동 연구/대응이 필요
지금까지는 남, 북한에서 상고사와 관련 별다른 움직임이 없지만 언젠가는(통일 등의 환경변화) 한국이 자신들의 상고사(고조선을

넘어선)를 거슬러 올라가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교육정책에 반영되었을 경우, 아시아사 전체를 다시 기술해야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종합적인 관점에서 일본과 중국은 역사를 왜곡하고 강탈하려는 음모를 국가적 차원에서 계속

도모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10) 에토다카미의 망언에 대한 중국의 이중적 태도
95년 10월에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일본은 좋은 일도 했다’는 망언으로 물의를 빚어 사임한 전력이 있는 일본 자민당의 정치인

에토다카미 의원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난징(南京)대학살을 날조라고 망언을한 데 대하여 한, 중이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에토다카미 의원은
7월 12일 후쿠이시(福井市) 당지부 강연에서 ‘1910년 한일합방은 양국이 조인하고 국제연맹이 승인한 것인데 어떻게 식민지지배가

되느냐, 또 난징 대학살 희생자가 30만 명이란 주장은 날조된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일본에서 ‘도둑, 살인을 저지른 불법체류 외국인 상당수가 일본에 있는데 중국, 한국 등의 불법체류자들이 무리지어 강도짓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14일 ‘난징 대학살은 일본 군국주의가 중국 침략 전쟁 과정에서 일으킨 잔악하고 포악한 범죄행위로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일본은 절대적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신화통신과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들도 에토 의원의 망언을 거세게 비난하는 기사를 내 보냈다. (03,7,15 중앙일보)

중국인들이 일본이 저지른 침략 만행과 망언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한편으로 그들은 동아시아 고대사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국 고대사에 딴지를 걸고 나오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11) 식민사학계의 대오각성이 요구
고려시대 전통 선가계의 정치적 몰락이후 반대파들에 의해 삼국사기가 편찬되면서 겨레의 역사와 훌륭한 정신문화가 내부적으로

배척되는 비운의 씨앗이 뿌려 졌다.

그 후 소중화 의식이 더욱더 강화되면서 자체적으로 축소지향 되었고, 다시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조선의 역사와

혼을 말살시킬 목적으로 또 다시 왜곡 축소시킨 역사를 밑바탕에서부터 고착화시켜 화석처럼 단단하게 굳혀버린 것이다.

또 하나의 역사적 불행은 한국은 영토 뿐 아니라 이념적 의식마저 남, 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겨레의 역사에 대해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진지하게 논의되고 합의되어진 민족적 동의 한 번 없었다는 문제이다.

그리고 남북이 각각의 이념과 시대상황의 조건하에서 사학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오늘의 매우 불리한 상황을 초래한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한국의 식민사학계를 움직이고 있는 일본의 보이지 않는 손과 중국의 고고학적 은닉, 폐쇄정책 및 팽창주의 그리고 한국

내부의 뿌리깊은 식민사학 풍토로 인해 사실상 극단적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 오늘의현실이다.

기존학계의 혁신적인 환골탈태와 함께 하루빨리 통일 지향적 역사정립부터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결)
중국에서 주변 관련국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이 프로젝트를 강행하려는 데는 그간 한국의 식민사학계가 상고사 문제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갖고 있었는가 하는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폐쇄적이면서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남한의 식민사학계와 고조선의 요동 중심지 이론을 정치적인 이유로 철회하고 평양으로 옮겨

북한 사학계 등 남북 사학계의 안이함과 아울러 오늘의 사학위기를 자초한데 대한 철저한 반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분단이 가져 온 문제로, 남북한이 상고사 문제에 대하여 통일된 역사이론이나 의견접근 등 상호 공감대 없는 학문의 분단이 오늘까지

계속되어 왔다는 사실은 정치적 이념의 분단을 넘어 또 다른 겨레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남북이 공통적으로 고조선 이전의 상고사에 대하여 중국과 달리 총체적으로 별다른 관심을 기울여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중국이 들고 나온 고구려사 문제를 고구려사에 국한해서 접근하려 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미 중국은 거시적인 시각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는 근본적인 배경을 주위 깊게 통찰할 거시적 안목을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프로젝트” 범위에 한국의 삼국사기 등의 고서(古書)를 연구목록에 포함시켰다는 부문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미 한국에서 보편화 되어 있는 “한단고기” 등의 문헌과 그 연구성과 등을 내부적으로 연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이 튼튼하면 외부에서 넘보지도 않거니와 적도 쉽게 물리 칠 수 있지만, 내부가 혼란하고 울타리가 부실하면 반드시 적을 불러들이고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고 마는 교훈적 사례를 지난 역사에서 우리는 충분히 보아왔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내부의 혁신부터 먼저 이루어 져야한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