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다음카페-삼태극 글쓴이: 소서노 http://cafe.daum.net/mookto/GXe9/549
원출처: 연합뉴스 2007년 11월 2일 (금) 10:51
<고려 남경 실체 드러나나> 경복궁 일대 잇단 고려유물 서울 도심지 지하에서 찾아내는 마당에 '겨우' 600년 전에 자취를 감춘 고려시대 왕궁 자리가 여전히 미궁이다. 고려의 3경(三京) 체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동경이 탈락하고 그 자리를 남경(南京)이 차지하게 된다. 의 백성을 이주시켜 채웠다"는 기록을 시발로 남경을 개성 다음 가는 대도시로 육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조선왕조실록 중 태조실록에서 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을 전왕조인 고려시대 남경의 남쪽이라고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남경 자리가 최근 경복궁 일대에 대한 발굴과정에서 많지는 않지만 고려시대 유물이나 유적이 잇따라 감지됨으로써 서서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갖게하고 있다. 조선 고종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된 광화문 자리 바로 밑에서 경복궁 창건 초기에 그 남쪽 정문으로 완공된 광화문 터가 확인된 데 이어 그 아래 층에서 고려시대 문화층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돈이라는 청자는 중국 역대 회화 작품 등에서 사람이 앉는 의자라든가, 다른 물건을 얹어놓기 위한 받침대로 사용되는 모습을 보인다.(여기서 이 글을 작성한 사람의 중국사대주의 사관이 엿보인다. 뭐든지 중국과 연결시켜 중국이 원조라는 사고방식을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참역사동아리 다음까페 삼태극 ) 미술부장은 말했다. 이곳에서 고려시대 문화층인 지하 배수로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 확인되기도 했다. 수도 있다는 고고학적 증거물인 셈이다.
향후 발굴조사를 통하여 다양한 자료들이 축적되면 고려 남경의 위치도 추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문양) 기와와 함께 "고려시대 건물지가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추정되는 건축물 흔적도 확인된 적이 있다. (이 귀면화는 신시배달국 14대 천황인 치우-자오지 천자를 말한다. 고려시대까지 바로 우리는 지금으로 부터 약6천년이상 거슬러 오라가는 대륙의 주인이었던 전쟁의 신 치우천자를 기억하고 기리고 있었던 것이다. (참역사동아리 다음까페 삼태극)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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