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카페-한국고대역사문화지도
환인 하늘산 선홍산문화 bc4800~bc3898
환인 환웅시대 강역도
환인(桓因)에 대한 기록은 7세 3301년, 혹은 63182년이라는 기록이 발해 때에 만들어진 《조대기朝代記》라는 책에 있다고 전한다.
1대 안파견(安巴堅) 환인
2대 혁서(赫胥) 환인
3대 고시리(古是利) 환인
4대 주우양(朱于襄) 환인
5대 석제임(釋提壬) 환인
6대 구을리(邱乙利) 환인
7대 지위리(智爲利) 환인 등이다.
이 이름들은 거의 지명이다.
안파견은 우리말로 속신과 같은 말로서 지금의 아로과이심기 천산 지역이고, 혁서는 환웅의 신시(神市)에 해당하고 여기서 시市를
불市로 읽으면 신시는 우리말로 검불이 된다.),
고시리는 요양이고, 주우양은 백제의 동계이니 한반도의 치양성이고, 석제임은 압록강의 환인현 지역으로 추정되고, 구을리는
의무려산의 구려이고, 지위리는 장춘 서북쪽의 실위다.
환인 시대에 위에 소개된 7 지역을 정복하여 연방으로 삼은 것이다.
환인시대가 63182년이라는 기록은 당시 문명이나 언어의 발전 상태로 보아 믿기 어렵다.
환웅의 개천이 bc3898년경이므로 환인시대를 3300년으로 잡으면 그 개시 시기가 bc7198경이 되는데 역시 믿기 어렵다.
고작 7분의 환인이 1000년 이상을 다스렸다는 주장이, 환웅시대 18분의 1565년에 비하여 터무니없는 것이다.
문명은 소멸되기도 한다.
전국의 힘이 결집되어 건설되는 수도는 나라가 망하면 유지되지 않는다.
bc6200년의 200년 추위로 파나류산 아래 동서남북 사방으로 각각 흩어져 내려갔던 오랑캐족이 다시 파나류산(한산)을 중심으로
결집한 것이 bc4800년경으로 추정된다.
이곳 시라무렌강(西遼河) 남북에서 밭농사가 활발해지고 증가하는 인구와 좋은 농토 확보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해서 시라무렌강
북쪽의 환인세력이 시라무렌강 남쪽의 구려까지 포함하여 한반도까지 속방으로 삼은 것이다.
이후 예맥구려를 통합한 새로운 환인시대가 약 1000년동안 존재했을 것이다.
그때 신석기시대부터 예맥인들은 오랑캐를 두려워했고, 그것이 조선시대까지 계속되었을 것이다.
적봉시赤峰市(원이름은 울란우데) 오한기敖漢旗 조보구문화지趙寶溝文化址는 홍산문화보다 조금 빠른 bc-4800년전 유적이다.
이들은 회갈색이나 홍갈색도자기 위에다가 오랑캐문명의 특징이었던 검은 칠을 가져다가 그림을 입혔는데 그 주제는 녹수신수
鹿首神獸, 돼지머리용猪頭龍, 오수신금烏首神禽, 우각거수牛角巨獸 등 4가지 영물 등이 있다.
그외 같은 시대 문화로 고려되는 봉황도자기가 있는데 옹우특기현 해방영자진에서 출토되었다.
회색 도자기의 아랫부분 검은칠 회화를 펼쳐보면 아래와 같이 영물들이 그려져 있다.
그후 bc 4000년에는 황해 바다의 해수면이 bc16000년경 이래로 가장 높아졌다.
당시 황해바다는 얕은 수심 때문에 대륙붕이 완전히 노출되어 육지의 상태였으며 털코끼리가 뛰어다녔고, 기후는 차고
건조했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가 더워지기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135m나 높게
현재의 해수면처럼 서서히 차오른 것이다. bc5000년에서 bc4000년 사이에만도 해수면은 6.5m가 차올랐다.
(단, bc2000년과 ad0년경에는 지금보다 약 3 m 낮았다. 러시아 쿠르간 문화유적지 토양보고서에 의하면 bc2400년부터
약 400년간 심한 가뭄과 강풍으로 추운시기가 있었다.)
한편 bc4300년에는 일본 규슈(九州) 남부 앞바다에서 거대한 화산폭발이 있었다.
세인트헬레나 화산의 150배의 위력에 달하는 초화산(supervolcano)이었고, 지난 만년동안 단 세 번밖에 없었던 비슷한 규모의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 때를 보면 1년동안 여름이 없이 추웠고, 900km거리에 1cm의 화산재가 덮혔다.
bc4300년의 규슈 남해안 키카이 화산 폭발 때는 1700km 떨어진 북해도에까지 화산재가 쌓였다.
규슈 폭발 때에 서요하 끝도 역시 북해도와 같은 1700km 거리다.
편서풍 외에 바람 방향이 어떠했는지, 화산재가 한반도를 넘어 서요하에도 날아갔는지는 모른다.
이후로 규슈 남부는 생명체가 몰살하고 수백년 동안 불모지가 되었다.
이러한 해저 화산의 폭발이 11600년전에도 바다를 덥히고, 지구 기후를 급격히 올렸을 것이며, 이때도 그러하여서 bc4000년에는
북극 빙산이 최고로 많이 녹아서 현재와 마찬가지인 해수면 높이로 상승되었던 것이다.
한편 해수면의 상승과 바다의 확장은 주변 연안의 기온을 떨어뜨렸을 것이다.
즉 발해만 주변과 황해 주변은 오히려 바다 확장 전보다 기온이 떨어지고 내륙인 서요하변도 역시 울창한 숲에서 건조한 초원으로
환경이 변하여갔다.
이때 환인국의 파나류산 위치는 천해의 동쪽인 바, 지금의 파림좌기(巴林左旗) 북쪽 부하진 (富3898河鎭)으로 추정된다.
파나류산이 있던 부하진과 파림좌기(=임동, 거란국 요나라 수도)와 천산진(요나라 황제의 신단수)
북쪽의 부하진인데 인류 최초의 복골(卜骨)이 출현한 유적지가 있다.
bc3300년의 유적이라고 밝혀졌으니 은나라의 복골은 이보다 1000년 뒤의 것이다.
또한 주변 고성터의 흔적을 보면 bc3300년 이전의 유물과 유적 발견도 기대된다.
뒤에 흉노에 패망한 동호족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오환산, 혹은 선비산이라고도 하였다.
부하진 동남에서 복골이 나왔는데, 그 남쪽으로 남산투, 해력도, 사방성, 호박구 등의 고성터가 의심된다.
복골은 사슴이나 양의 어깨뼈를 사용했다. 아래는 부하진 노야동老爺洞의 풍경이다.
환인의 하늘산은 지금 한산(罕山 1929m), 혹은 서한산이라고 부른다.
오환산이라고도 했다.
사이한산의 정상에는 평지가 있고, 그 중앙에는 홍지수(泓池水)라는 연못이 있는데 천지(天池)라고도 불렀다.
홍지수가 홍익인간의 뿌리런가?
태백산에는 조천지(朝天池)가 있다고 했는데 지금 백두산 천지로 생각할 수 없다.
백두산 천지는 기원전 200년의 폭발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사이한산(罕山, 1929m) 환인의 파나류산 모습이다.
사이한산의 서남쪽에 흥안령 산맥의 남단 최고봉인 황룡강(黃龍岡, 2029m)이 있는데 부근에 아사하도(阿斯哈圖)가 있고 이는 험산
(險山)이라는 의미로 알려져 왔다. 단군 색불루의 녹산 아사달이었다.
환인 시대 12국이 있었다는 기록은 객현한국(客賢汗國)의 존재 때문에 인정하기 어렵다.
객현은 중국에서온 손님인 기자를 가르키는 것이 명백하고 그가 있던 곳이 오늘날도 객라(客羅; 객좌현의 옛이름)다.
따라서 7분의 환인과 같이 7국 연방 정도로 고려된다.
이 시기에 세계 인류의 발전은 아래와 같다.
7600년전 | 지중해 해수면 상승, 흑해 형성 |
7000년전 | 중국 강남 쌀 재배 |
6000년전 | 파키스탄 면화 재배, 아프가니스탄 포도 재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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