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관련 공정의 최종판 ‘요하문명론’
*출처:이우혁 홈피에서
국회발표(2006.9.13일 오후 2시)
우실하 (항공대 교양학부 교수, 동양사회사상, 한국문화론, 문화이론)
---------<차례>---------------------
1. 동북공정에 대한 오해
(1) 동북공정은 국가 전략의 일환이다
(2) 동북공정은 ‘고구려공정’이 아니다
(3) 동북공정은 선행하는 역사관련 공정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4) 한반도를 염두에 둔 다양한 역사관련 작업들도 진행되었다
(5) 동북공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2. 요하문명론
(1) ‘요하문명론’: 만주지역을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권으로
(2) 요녕성박물관 <요하문명전> 각 전시실의 주제 및 핵심적인 내용
(3) 요하문명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3. 몇 가지 제언
(1) ‘제너럴 스페셜리스트(General Specialist)’가 필요하다
(2) 동북아 역사를 총체적으로 재편해야한다
(3) ‘동북공정’보다 ‘중화문명탐원공정’과 ‘요하문명론’에 주목해야한다
(4) ‘홍산문화’에 주목하고 전문가를 양성하자
(5) 경제적 성장만이 아니라 역사·문화를 포함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청사진을 그려야한다
4. 글을 맺으며: 장기적인 ‘씽크 탱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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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북공정에 대한 오해
최근 ‘백두산공정’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서 또 다시 동북공정에 대한 비판의 열기가 높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동북공정’을 중국의 21세기 ‘대중화주의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래에서는 우리가 동북공정을 보는 시각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짚어본다.
(1) 동북공정은 국가 전략의 일환이다.
그동안 한국의 각종 비난에 대해서 중국 외교부는 “동북공정은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닌 지방정부나 학자들의 학술적 문제”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지난 2004년 8월 6일 박준우 외교통상부 아태국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중국은 역사 왜곡의 의도가 없으며 동북공정은
지방정부의 일이어서 통제가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했고, ‘백두산공정’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2006년 9월에 아시아 정당회의 제4차 총회 참석차 방한 중인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선전부장도 “학자들 개인의 문제이지 중국
정부의 입장이 아니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입장은 외교적인 전술이라고 필자는 본다.
이런 중국의 입장을 반박할 자료를 소개하면,
(1) 중국 공산당 흑하(黑河)시위원회 선전부가 간행하는 「흑하일보」2003년 8월 6일자 기사에는 “동북공정은 후진타오 동지가
2000년 사회과학원에 지시해 승인한 사회과학 연구 항목 가운데 하나”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고,
(2) 동북공정을 총괄하고 있는 ‘중국변강사역사중심’의 홈페이지에서도 “중앙 정부의 비준을 거친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동북공정이 후진타오 등 중국 최고 지도부의 지시, 승인, 비준 등을 통해 진행되는 국가 전략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본다.
(2) 동북공정은 ‘고구려공정’이 아니다.
중국이 말하는 ‘동북’이란 동북 3성(길림성·요녕성·흑룡강성)을 모두 지칭한다.
동북공정은 이 일대에서 발원한 모든 민족과 역사를 중국 민족과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고구려사뿐만이 아니라 발해사와 고조선사도 모두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있다.
더욱이 ‘동북’에서 발원한 모든 고대 민족들은 신화적 인물인 황제(黃帝)의 손자 고양씨(高陽氏) 전욱顓頊)와 고신씨(高辛氏) 제곡
(帝嚳) 두 씨족 부락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주몽의 ‘고’씨 성도 고양씨의 후예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며, 따라서 당연히 중화민족의 일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고구려, 발해는 물론 고조선의 역사와 민족까지도 중국의 역사와 중화민족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2002년 정식으로 동북공정을 시작했을 때 ‘고구려연구재단’으로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발상 자체가 동북공정을
‘고구려공정’쯤으로 오판한 것이다.
현재 구상중인 ‘동북아역사재단’도 필자가 보기에는 크게 다르지 않아 걱정스럽다
1) 최근 ‘백두산공정’에 대해서 한국 외교부는 ‘백두산공정은 관광용’이라고 답변을 하고 있다니 참으로 문제가 심각하다.
2)이성(厲聲)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 주임은 최근 “한중 간 주요 쟁점이 되고 있는 고구려 등 고대 왕국의 지위와 중국과의 관계를
비롯해 한국과 관련된 부문은 동북공정의 10%도 안 된다.”고 한 언급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3) 고구려역사 왜곡에 집착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고구려 역사 왜곡이 무척 크게 보일지 모르지만, 중국이 노리는 것은 더 큰 데
있다는 것을 기억해한다.
뒤에서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동북공정은 21세기를 준비하는 중국이 오래전부터 야심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대중화주의’ 건설을
위한 국가 전략의 일부분일 뿐이다.
(3) 동북공정은 선행하는 역사관련 공정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동북공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관련 공정은, 중국이
21세기 ‘대중화주의 건설’을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국가적 전략이다.
첫째, 9.5계획(1996-2000)의 일환으로 시작된 ‘하상주단대공정’에서는 대대적인 유적 발굴과 연구를 통해서 고대 왕조인
하(夏)․상(商)․주(周)의 존속 연대를 공식적으로 확정지었다.
하(夏)나라 존속연대(B.C. 2070 - B.C. 1600)의 공식화는 중국의 ‘역사시대’를 무려 1229년이나 끌어 올린 것이었다.4)
[자료 1] ‘하상주단대공정’을 통해 공식입장이 된 3대의 존속연대1) 1. 하(夏): B.C. 2070 - B.C. 1600 2. 상(商): B.C. 1600 - B.C. 1046 * 상나라 19대 반경왕(盤庚王)이 도읍을 은(殷)으로 옮긴 것은 B.C. 1300년. * 은(殷)으로 도읍을 옮긴 후를 흔히 상(商)과 구별하여 은(殷)이라고 한다. 3. 주(周): B.C. 1046 - B.C. 771. |
‘하상주단대공정’이라는 거대한 국가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 중국에서는 아래의 고대 유적지 17곳에 대한 새로운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유적지들은 대부분 하․상․주 시대의 도읍지 등 중요 유적지로 알려진 곳으로, 새롭게 발굴되면서 C-14 연대측정이 새롭게
이루어졌다.
하상주단대공정에 대해서 외국학자들 사이에서도 지나치게 의도적이고 그 의도에 반하는 결과들을 제외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자료 2] 하상주단대공정 기간에 새로 발굴된 유적지들2) 1. 북경(北京) 방산(房山) 유리하(琉璃河) 서주(西周) 연도(燕都: 연나라 도읍) 유적지 * 이 유적지는 기원전 1040-770년 사이로 밝혀졌다. 2. 산서(山西) 곡천(曲沃) 천마일곡촌(天馬一曲村) 진(晉)나라 유적지 * 이 유적지는 기원전 1020-770년 사이로 밝혀졌다. 3. 하북(河北) 형대(邢臺) 동선현(東先賢) 유적지. 4. 섬서(陝西) 서안(西安) 호경(鎬京) 유적지 * 이 유적지는 기원전 1050-1020년 사이로 밝혀졌다. * 호경은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처음 도읍했던 곳이다. 5. 섬서(陝西) 주원(周原) 유적지, 6. 섬서(陝西) 무공(武功) 정가파(鄭家坡) 유적지. 7. 섬서(陝西) 기산(岐山) 왕가취(王家嘴) 유적지, 8. 섬서(陝西) 상주(商州) 동룡산(東龍山) 유적지, 9. 하남(河南) 안양(安陽) 은허(殷墟) 유적지 * 이 유적지는 기원전 1300-1040년 사이로 밝혀졌다. 10. 하남(河南) 안양(安陽) 원북화원장(洹北花園莊) 유적지, 11. 하남(河南) 정주(鄭州) 상성(商城) 유적지 * 이 유적지는 기원전 1600-1300년 사이로 밝혀졌다. 12. 하남(河南) 언사(偃師) 상성(商城) 유적지, 13. 하남(河南) 정주(鄭州) 소쌍교(小雙橋) 유적지, 14. 하남(河南) 언사(偃師) 이리두(二裡頭) 유적지 * 이유적지는 기원전 1880-1540년 사이로 밝혀졌다. 15. 하남(河南) 신밀(新密) 신채(新砦) 유적지, 16. 하남(河南) 등봉(登封) 왕성강(王城崗) 유적지 * 이 유적지는 기원전 2200-2000년 사이로 밝혀졌다. 17. 하남(河南) 우현(禹縣) 와점(瓦店) 유적지. |
둘째, ‘하상주단대공정’(1996-2000)을 성공적으로 마친 중국은 그 후속 작업으로 2000년부터 ‘중화문명탐원공정
(中華文明探源工程)’을 진행하고 있다.
‘중화문명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의미의 ‘중화문명탐원공정’은,
(1)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알려진 ‘3황 5제’의 시대까지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하여 중국의 역사를 1만 년 전으로 끌어올리고,
(2) 이를 통해 중화 문명이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보다도 오래된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임을 밝히려는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중국사회과학원보’ 2003년 6월 30일자(인터넷판)에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의 주요 과제를,
(1) 고문헌에 보이는 요(堯)․순(舜)․우(禹) 관련 자료의 수집과 연구 성과 정리,
(2) 중국 천문학의 기원 연구,
(3) 예제(禮制)의 기원과 연구 성과 정리,
(4) 초기 야금기술 ․ 문자자료의 수집과 정리,
(5) 문명의 기원에 대한 이론과 방법론 정립 등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최근, 3황의 일부이고 중원 문화와 직결된다는 염제(炎帝)와 황제(黃帝)에 대한 각종 자료를 집대성한 10권의
『염황자료집』을 완간하였다.5)
2001년부터 중화문명탐원공정은 21세기 중국의 ‘대중화주의 건설’을 위한 국가적인 기획이다.
이것을 진행하는 와중에 그 일부분으로서 동북지역을 정리를 위해 만들어 진 것이 2002년부터 시작된 동북공정이다.
중화문명탐원공정이 진행되면서 역사관련 공정들의 최종적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요하(遼河) 일대를 기존의 세계 4대 문명보다 앞서는 1만년 역사의 새로운 문명권으로 ’으로 부각시켜는 ‘요하문명론(遼河文明論)’
이 그것이다. 사실 동북공정은 이러한 거대한 국가 전략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요하문명론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상세히 언급할 것이다.
(4) 한반도를 염두에 둔 다른 역사관련 작업들도 진행되었다.
첫째, 귀근원(歸根苑)과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 건립 (1992-1997)을 통해 치우(蚩尤)를 한족의 조상으로 끌어안았다.
80년대 이후 남․북한에서 일고 있는 역사민족주의적 분위기의의 확산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중국은 한국의 일부학자들이 동이족의
수장이라고 주장하는 치우(蚩尤)를 한족의 조상으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마쳤다.
그것이 1992년부터 1997년까지 하북성 탁록현(涿鹿縣)에 건설한 귀근원(歸根苑)과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이다.
1992년은 공교롭게도 한중수교가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
기존에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염제와 황제의 자손’이라는 의미의 ‘염황지손(炎黃之孫)’이라고 일컬어왔었고, 염제 황제에 대항해
동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전쟁인 탁록대전(涿鹿大戰)을 일으킨 치우는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러나 치우를 한국인들이 민족의 조상으로 높이려고 하자 치우를 자신들의 조상 가운데 하나로 끌어 안아버린 것이다.
현재 ‘중화삼조당’ 안에는 5.5m 높이의 치우․황제․염제의 상이 있고, 이들을 모두 중화민족의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6)
[자료 3] 고대 탁록현 지역의 황제와 치우 유적 지도7)
* 아래의 유적지 가운데 현재도 황제천, 황제성, 치우천, 치우성 등 많은 것들이 남아 있다.
[자료 4] 귀근원(歸根苑) 정문(이하는 필자의 사진)
[자료 5] 중화삼조당 안의 치우, 황제, 염제(왼쪽부터) * 앉은 높이가 5.5m나 된다.
둘째, 단군신화의 웅녀(熊女)는, 2001년 9월 18일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만천성국가삼림공원(滿天星國家森林公園)
안에 ‘백의신녀(白衣神女)’라는 이름으로 높이 18미터 무게 520톤의 거대한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양손에 마늘과 쑥을 든 백의선녀는 ‘한민족의 시조모’가 아니라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의 시조모’로 변신한
것이다.
[자료 6] 만천성풍경구 주변 약도. (* 동쪽에 댐을 막아 발전소를 만든 것이 보인다.)
[자료 7] 만천성국가삼림공원 제막식 (2005.6.26일)
[자료 8] 선녀봉으로 올라가는 입구의 대문 ( * 좌로부터 호랑이, 웅녀, 곰의 조각상)
[자료 9] 선녀봉으로 가는 길
[자료 10] 선녀봉 올라가는 길목에 보이는 곰 조각상. (* 발아래 마늘과 쑥이 보인다.)
[자료 11] 선녀봉 꼭대기에 세워진 웅녀조각상.
* 오른손에 마늘을 다른 왼손에는 쑥 * 높이 18m 무게는 520톤
‘조선족 문화 풍경지구’를 만들면서 세운 웅녀상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생각해야 보아야할 것들이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단군신화를 천손족인 환웅이 만주일대 고조선 강역의 토착세력이던 웅녀족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해석하고 있다.
환웅족이 어디에선가 새롭게 만주지역으로 유입된 민족이라면, 웅녀족은 그 지역 토착민이었고 그들이 살던 땅은 지금은
중국 땅인 것이다.
현재의 중국 땅에 고구려가 건설되었기 때문에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의 중국
땅인 만주지역 토착세력인 웅녀족은 당연히 중국사람(?)이라는 것이다.
웅녀는 중국인을 구성하는 56개 민족(한족과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의 시조모’라는 것으로 이들은 모두
중화민족이라는 것이다.
거대한 웅녀상을 조선족자치주에 만들어 놓았다면, 몇 년 후에는 그 웅녀가 낳은 단군상을 세워서 ‘단군도 중국사람’이라고 우기지는 않을까?
국내에서는 단군상을 세우면 목을 자르고 웅녀상이라고는 어디에도 없는 현실에서, 이런 불행한 미래의 시나리오가 우스운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중국이 이렇게 거대한 국가 전략을 바탕으로 대 한반도 전략을 실행하고 있는 마당에 새로 출범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관료와 역사학자들로 구성된단다. 우리에게는 큰 틀에서 구체적인 것을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제너럴 스페셜리스트(General Specialist)’가 필요하다. 여러분은 아직도 동북공정이 ‘고구려공정’ 쯤으로 보이십니까?
(5) 동북공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이제까지 동북공정을 ‘고구려공정’ 쯤으로 보아온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동북공정을 중심으로 다른 것을 보지 말고 중국의 국가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동북공정을 보아야 큰 틀에서의 전략적
대응이 가능하다.
동북공정을 역사왜곡 수준에서만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을 보면, 앞서 필자가 제기한 다른 모든 중국의 국가 전략들과는
상관없어 보인다.
<자료 12> 기존의 동북공정을 보는 시각 고조선, 부여, 발해 ,고구려사 왜곡
백두산 공정 서북공정
동북공정 ∥ 통일적다민족국가론 동북지역 역사왜곡 서남공정
하상주단대공정 중화문명탐원공정 요하문명론
|
첫째, 이런 식으로 보면 ‘역사 왜곡’ 이외의 새로운 것이 나올 때마다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다.
최근 ‘백두산공정’ 보도 이후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라. 한반도를 염두에 둔 정책들은 앞으로도 다양한 모습을 제시될
것이라고 본다.
둘째, 이런 시각은 서부공정, 서남공정, 하상주단대공정, 중화문명탐원공정, 요하문명론 등을 모두 우리와 관계없는 것을
보기 쉽다.
셋째, 이런 시각은 동북공정을 학자들의 역사 연구쯤으로 보게 될 뿐만 아니라, 중국이 주장하듯이 중앙정부와는 관련
없는 지방정부들의 학술적 기획쯤으로 보게 된다.
이제는 동북공정을 포함한 중국의 다양한 역사관련 공정들과 기타 대한반도 전략들일 큰 틀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그 큰 틀이란 개혁·개방이후 21세기를 향한 중국 국가 전략으로,
(1) 56개 민족 간에 갈등 없는 안정된 ‘대중화주의 건설’,
(2) 세계 최고(最古)의 ‘요하문명권 건설’,
(3) 이를 바탕으로 한 ‘21세기 세계 중심국가 건설’이다.
이런 틀에서 바라보면 모든 것들이 상호 긴밀하게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 13> 새로운 시각으로 동북공정을 보자 치우 끌어안기
서북공정 동북공정 웅녀 끌어안기
서남공정 백두산공정
동북고대사 침탈 21세기를 향한 중국 국가 전략 . 고조선부터 한국역사 1. 안정된 ‘대중화주의 건설’ . 동북 모든 민족과 역사 2. 세계 最古의 ‘요하문명권 건설’ ...... 3. 21세기 중심국가 건설 * 티벳과 위구르 지역이 정리된 상태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쟁가능 지역인 동북지방을 염두에 둔 전략은 앞으로도 많이 나올 것이다.
요하문명론
중화문명탐원공정 하상주단대공정 통일적다민족국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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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서남공정, 서북공정, 동북공정 등의 가장 큰 목표는 개혁·개방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하는 중국의 ‘국가적 안정’이다.
예를 들어 '동북공정' 전문연구위원회는 연구를 위한 5가지 의식을 강조하고 있는데8), 그 첫 번째 정치의식(政治意識)에서는 ‘동북공정의 직접적인 목표는 국가의 장기적인 치안을 위한 것이고, 국가 통일, 민족 단결, 변경지역 안정이라는 큰
목표에 따른 것’이라는 의식을 항상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둘째, 이성(厲聲)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 주임이 최근 “한중 간 주요 쟁점이 되고 있는 고구려 등 고대 왕국의 지위와
중국과의 관계를 비롯해 한국과 관련된 부문은 동북공정의 10%도 안 된다.”고 한 언급을 다시 한 번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런 큰 틀에서 보면 동북공정도 작은 일부분이고, 더더구나 고구려 왜곡 등은 더 작은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에게 고구려 역사 왜곡이 무척 크게 보일지 모르지만, 중국은 더 큰 것을 노리고 있다.
셋째, 고구려사 침탈 문제를 제기할 때 ‘왜’ 중국 정부는 지방정부의 학술적 연구일 뿐이라고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동북공정의 ‘역사관련 문제’는 그들이 그리는 큰 그림 아래서는 정말로 지방정부의 학술적
연구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요하문명론이 완성되면 동북아의 모든 민족과 역사는 중국의 민족과 역사에
자동적으로 포함되게 되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고구려나 발해 등에 일일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 된다.
용담산성 안내판은 제목부터 “고구려 사람은 결코 조선인이 아니다(高句麗人幷非朝鮮人)”라고 적혀있다.
이제 이런 자질구레한(?) 것은 중앙정부가 나서지 않고 학자들이나 지방정부의 일로 맡겨 놓아도 될지 모른다.
2. 요하문명론(遼河文明論)
그렇다면 이런 일련의 역사관련 공정들의 ‘최종판’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하문명론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는가?
(1) ‘요하문명론’: 만주지역을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권으로
이제까지 중국은 중국 역사의 근원을 북경원인의 출토지인 북경 인근의 구석기시대와 황하 중류의 신석기시대 앙소문화
(仰韶文化)를 포함하는 ‘황하문명권’으로 잡고 있었다.
앙소문화는 기원전 3000년까지 올라가는 농경 신석기문화로, 유목을 바탕으로 한 북방문화와는 구별된다.
예로부터 중화민족은 만리장성을 ‘북방한계선’으로 하여 북방 민족들과는 분명한 경계를 두었었다.
그런데 20세기 중반이후 장성 밖 동북 만주지역에서 중원문화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발달된 신석기문화가 속속 확인됐다. 이 지역 소하연(小河西)문화는 기원전 5500년, 사해(査海)문화는 기원전 5000년까지 올라간다.
특히 기원전 3500년까지 올라가고 대규모 적석총과 제단이 확인된 요하 일대의 홍산문화(紅山文化)의 발견은 중국으로서는 충격이었다.
요하 일대의 각 유적에서는 중원문화권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한반도에서 많이 보이는 빗살무늬토기, 고인돌, 적석총,
비파형동검, 다뉴세문경 등이 대량으로 발굴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모두 내몽골-만주-한반도로 이어지는 북방문화 계통이었던 것이다.
한반도는 이 ‘요하문명권’을 바탕으로 중원문명을 흡수하며 역사를 형성해 왔고, 중국은 이러한 요하문명권과 한반도의
연계성을 단절하고, 요하문명권을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권으로 만드는 작업을 국가의 전략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80년 초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 바탕으로 ‘현재의 중국 국경 안에 있는 모든 민족의 역사를 중국사에 포함’하려는
중국은, 황하문명권보다 이르고 발달된 ‘요하문명권’을 중화문명의 발상지의 하나로 재정립하고 있다.
곧, ‘중국의 요하문명권’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보다 이른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2005년 7월 24-31일까지 적봉에서는 홍산문화 명명 50주년을 기념한 <홍산문화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중국학자 100여명과 외국의 학자 15명을 초대하여 5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중국 학자들도 홍산문화의 주인공을 예맥족의 문화로 본다.
그러나 이런 학술대회를 통해 중국의 홍산문화를 주도한 황제족의 후예들인 예맥족들이 남하하여 고구려 등을 세운다는
논리를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2006년 6월부터 9월까지 심양 요녕성박물관에서 <요하문명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의 핵심 주제인 ‘화하일통(華夏一統)’은 중국(華夏)이 요하문명권을 통일(一統)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상론한다.
이런 요하문명권을 확립하기 위한 선행 작업으로, ‘하상주단대공정’, ‘중화문명탐원공정’, ‘동북공정’ 등을 시행했던 것이다. 이를 바탕 진행되는 ‘요하문명론’에서는,
(1) 황제의 손자인 고양씨(高陽氏) 전욱(顓頊)과 고신씨(高辛氏) 제곡(帝嚳) 두 씨족 부락이 지금의 하북성과 요녕성이
교차하는 유연(幽燕)지역에서 살면서 모든 북방 민족들의 시조가 되었으며,
(2) 만주지역 ‘요하문명권’의 핵심인 홍산문화는 고양씨 전욱 계통에 의한 문명이며,
(3) 고주몽의 ‘고’씨 성도 고양씨의 후예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라고 본다.
결국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보다도 오래된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임을 밝히려는 거대한 프로젝트인 것이다.
(2) 요녕성박물관 <요하문명전> 각 전시실의 주제 및 핵심적인 내용
현재 요녕성 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요하문명전>은 입구의 전체 설명과 5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알기 쉽게 도표화하면 아래와 같다.
[자료 14] <요하문명전> 각 전시실의 주제 및 핵심적인 내용
순서 |
전시실의 주제 |
핵심적인 내용 |
입구안내 |
5제 시대의 3대 집단 . 중원의 염제 신농씨 화(華)족 집단 . 동남 연해안 이(夷) 등 하(夏)족 집단 . 동북 연산 남북의 황제(黃帝)족 집단 |
. 이것은 기존의 동이, 서융, 남만, 북적 등을 모두 중화민족에 넣는 것이다. . 요하일대를 황제족의 판도에 넣어버리고, 북방의 모든 소수민족은 그 손자인 고양씨 전욱과 고신씨 제곡의 후예라고 주장한다. * 기존에는 황제는 북경부근, 고양씨 전욱은 황하중류의 위쪽, 고신씨 제곡은 황하중류의 아래쪽이 세력권이라고 보았다. |
제1전시실 |
문명서광(文明曙光) The Dawn of Civilization |
이 지역의 구석기와 신석기 유적을 통해 요하 유역에서 ‘중화문명’의 첫 번째 서광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
제2전시실 |
상주북토(商周北土) The Northern Region of the Shang and Zhou Dynasties |
이 지역이 상·주 시대부터 중원왕조에 속해 있었고, 이 지역의 각 소수민족들은 화하민족과는 이미 ‘다원일체(多元一體)’의 관계로 중화민족 안에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
제3전시실 |
화하일통(華夏一通) The Unification of Huaxia(China) |
진(秦)·한(漢) 시대를 기점으로 이 지역이 중원왕조의 판도에 들어왔고, 이 시기에 고구려를 포함한 각 소수민족들이 ‘중국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민족 대융합’을 통해 중화민족으로 통일되었다고 주장한다. |
제4전시실 |
거란왕조(契丹王朝) Khitan Kingdom |
거란족의 거란(후에 요) 왕조는 중국 북방을 통일한 ‘중국’의 왕조라고 주장한다. |
제5전시실 |
만족굴기(滿族崛起) The Rise of the Manchu |
이 지역에서 만주족이 일어나 전국을 통일한 것이 청나라이다. |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할 것은,
(1) 전시실 입구에 전시된 중화민족의 기원을 ‘중원의 염제 신농씨 화(華)족 집단’, ‘동남 연해안의 하(夏)족 집단’, ‘동북
연산 남북의 황제(黃帝)족 집단’으로 재정립한 것,
(2) 제1전시실에서 보듯이 중화문명의 첫 번째 서광이 ‘황하 유역’이 아니라 ‘요하 유역’에서 일어났다고 보는 시각과,
(3) 제2전시실에서 보듯이 이 지역이 ‘상·주 시대부터’ 중원왕조에 속해 있었고, 이 시기에 소수민족들은 이미 ‘다원일체
(多元一體)’의 관계로 중화민족 안에 들어왔다는 시각,
(4) 제3전시실에서 보듯이 진(秦)·한(漢) 시대를 기점으로 이 지역이 중원왕조의 판도에 들어왔고, 이 시기에 고구려를
포함한 각 소수민족들이 ‘중국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민족 대융합’을 통해 ‘중화민족으로 통일’되었다는 시각이다.
특히 우리가 ‘요하문명론’과 관련하여 주목해야하는 것은 전시실 입구의 중화민족 기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다.
이것은 요하문명론의 바탕이 되는 것으로,
(1) 기존의 동이, 서융, 남만, 북적 등을 모두 중화민족에 넣는 것이고,
(2) 요하일대를 황제족의 판도에 넣어버리고,
(3) 북방의 모든 소수민족은 황제의 손자라는 고양씨 전욱과 고신씨 제곡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기본적인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중국학자들은 황제는 북경부근, 고양씨 전욱은 황하중류의 위쪽, 고신씨 제곡은 황하중류의 아래쪽이 세력권이라고
보았었다. 그러나 일련의 역사관련 공정이 완료되어 가면서 완전히 새로운 ‘중화민족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요하문명권 논리를 바탕으로 동북공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학자 가운데 하나인 경철화(耿鐵華:
통화사범대학 고구려연구소 부소장 겸 교수)는 “요서 지방에서 발생한 홍산문화가 서쪽으로 가서 은나라를 세우고,
동쪽으로 옮겨와 고구려와 부여 같은 나라의 기원이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중국에서는 아즈텍문명, 마야문명을 일으킨 이들도 상나라의 후예들이라는 논리도 개발하고 있다.
[자료 15] 요하문명전 안내 현수막(필자 사진)
[자료 16] <요하문명전> 입구에 있는 ‘5제 시대 3대 문명’ 설명문
: 동이 등은 하족 집단으로 대표된다.
: 그나마 동이를 나타내는 ‘夷’는 괄호 안에 넣어 부수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 홍산문화 지역과 연산 남북 지역 등 요하일대가 황제족의 판도로 설명된다.
[자료 17] 제2전시실 입구의 ‘상주북토’ 와 ‘방국 문명’ 안내문
: 초기 청동기시대인 하가점하층문화부터 하(夏)·상(商).주(周)에 이르기까지 북방의 모든 소수민족들은 중원왕조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고, 상나라 이후에는 ‘상주북토(商周北土: 상나라와 주나라의 북쪽 땅)’ 내의 ‘방국(方國)’으로 존재했었다고 본다.
[자료 18] 제3전시실 입구 ‘화하일통’
진(秦)·한(漢) 시대를 기점으로 이 지역이 중원왕조의 판도에 들어왔고, 이 시기에 고구려를 포함한 각 소수민족들이
‘중국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민족 대융합’을 통해 중화민족으로 통일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자료 19] 제3전시실인 ‘화하일통’에 전시된 고구려 유물들(집안시 출토 금동제 관식, 신발, 말안장)
: 고구려는 북방의 여러 중화민족 가운데 하나가 세운 지방 정권으로 소개된다.
(3) 요하문명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하상주단대공정 → 중화문명탐원공정 → 동북공정 → 요하문명론’으로 이어지는 역사관련 공정들은 거대한 ‘대(大)
중화주의’ 건설 전략의 일부이다. 그 가운데 동북공정은 ‘대 중화주의’의 청사진인 ‘요하문명권’의 밑그림을 그려 가는데
방해가 되는 동북지역의 논란거리를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종합적인 국가 전략의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모든 역사관련 공정들이 정리되면, ‘중국’의 ‘요하문명권’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를 제치고 1만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고,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하상주단대공정을 건의했다는 청화(靑華)대학
송건(宋建) 교수의 꿈이 이루어질 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었을 해야 할 것인가? 새롭게 출범할 ‘동북아역사재단’은 요하문명권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3. 몇 가지 제언
필자는 이 발표를 통해서 중국이 21세기를 맞이하며 얼마나 거대한 국가전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지를 모두가 느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틀에서 대응 전략을 만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몇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1) 동북공정을 보는 시각을 바꾸자
앞서 도표를 통해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제는 동북공정을 중국의 21세기 국가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바로 보고 대응책을 마
련해야한다.
(2) ‘제너럴 스페셜리스트(General Specialist)’가 필요하다
중국이 이렇게 거대한 국가 전략을 바탕으로 대 한반도 전략을 실행하고 있는 마당에 ‘고구려연구재단’을 흡수해 새로
출범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관료와 역사학자들로만 구성된단다.
우리에게는 큰 틀에서 구체적인 것을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제너럴 스페셜리스트(General Specialist)’가 필요하다.
여러분은 아직도 동북공정이 ‘고구려 역사공정’ 쯤으로 보이십니까?
[자료 20] 설명을 위한 동북아 지형도
(3) 동북아 역사를 총체적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정사에 기록된 역사관 전체를 바꾸고 있다.
중국이 신화시대의 황제의 손자인 전욱과 제곡을 모든 동북 민족의 조상으로 자리메김하고 있지만, 우리는 단군조선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학계의 풍토다.
북방민족들을 하나로 묶어 새롭게 동북아 역사를 보는 시각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4) ‘동북공정’보다 ‘중화문명탐원공정’과 ‘요하문명론’에 주목해야한다
앞서 상세히 논의했듯이 ‘동북공정’을 벗어나 ‘중화문명탐원공정’과 ‘요하문명론’에 주목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5) ‘홍산문화’에 주목하고 전문가를 양성하자
중국의 요하문명권 논의의 핵심은 만주 일대 요하유역의 ‘홍산문화’에 있다.
우리는 홍산문화를 전공한 전문가도 제대로 없는 상태다.
필자도 노력하고 있지만 혼자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동북공정 관련 주요 필진 가운데 한사람인 곽대순(郭大順)은 심양 요녕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요하문명전>의 도록
서언에서 중화문명의 문명의 시작을 요하 일대의 사해문화와 홍산문화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것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8000천 년 전의 부신(阜新) 사해문화(査海文化)에서는,
(1) 사회 조직이 이미 분화된 것을 보여주는 위계적으로 배열된 방 유적지가 발굴되었고,
(2) 사회적 분업(分工)을 통해서 옥기(玉器)가 만들어졌으며,
(3) 의식의 발전정도를 나타내는 ‘용 형상물’도 발견된다.
이것은 사해문화가 이미 ‘문명의 시작(文明的 起步)’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하문명이 발전해간 모습을 반영하는 요서 지방의 우하량 홍산문화 유적에서는,
(1) 5000년 전의 ‘제단(壇), 사당(廟), 무덤(塚)’ 삼위일체의 대규모 종교의례를 상징하는 건축군과,
(2) ‘용(龍), 봉(鳳), 사람(人)’ 위주의 각종 옥기(玉器)들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요하 유역이 ‘문명사회로 진입’했다는 중요한 실증들이다.9)
이것은 기존의 황하문명보다 앞선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발상지로 새롭게 정의하고 있는 것들이다.
고대사 특히 홍산문화 관련 고고학 전문가들을 길러야 한다.
(6) 경제적 성장만이 아니라 역사·문화를 포함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필자는 21세기 ‘문화와 정보의 시대’를 맞아 전통문화에 기반 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것을 상품화한다는 정책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필자가 보기에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려면 깊이 있는 학술적 연구에 대한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
기존에 연구된 것들을 정리해서 상품화하는 것은 21세기의 전략으로서는 참으로 초보적이고 저급한 수준이다.
대부분 발표되는 21세기의 청사진은 몇 년 뒤에 경제규모가 세계 몇 위에 도달하고 국민소득이 3만 불 시대에
진입한다는 식의 경제적인 것투성이다.
21세기를 ‘문화와 정보의 시대’라고 하면서 정작 ‘문화’적인 청사진은 보기 힘들다.
필자는 중국의 요하문명론은 지나치게 중국 중심으로 왜곡된 것이긴 하지만, 중국 나름대로 만든 21세기를 향한 문화적
청사진 이라고 본다. 우리의 21세기 ‘문화의 시대’의 청사진을 그려야한다.
4. 글을 맺으며: 장기적인 ‘씽크 탱크’가 필요하다
중국은 공산화 이후,
(1) 공산당의 일당 지배가 지속되고 있고,
(2) 한 사람의 최고 지도자가 권력을 유지하는 기간도 매우 길며,
(3) 기존의 국가 전략들이 큰 무리 없이 승계되어 가기 때문에 장기적인 국가 전략을 마련하는데 어느 나라보다도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1) 자민당이 거의 독점적으로 권력을 이어가고 있고,
(2) 천왕제가 힘을 발휘하고 있는 특성 때문에 장기적인 국가 전략을 마련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자민당 핵심 간부들, 고이즈미 총리, 고위 관료들의 지속되는 각종 망언들은 우연한 ‘말의 실수’가 아니다.
이루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반복되는 망언들은 그들 나름대로 깊은 계산을 거친 전략적인 행동인 것이다.
고이즈미가 단지 표를 의식해서 신사참배를 계속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일까?
이런 주변국의 상황에 비해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 대선이나 총선을 거칠 때마다 정당이 이합집산을 거듭해 왔고,
(2) 5년 단임제의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3) 소위 국책 연구기관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권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4) 장기적 국가 전략을 충실히 준비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포럼’ 형식의 다양한 ‘두뇌 집단’, ‘씽크 탱크’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직들은,
(1) 권력과 지나칠 정도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거나,
(2) 특정 정당의 하부 조직처럼 기능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다.
이런 형태에서는 몇 년 후의 집권을 위한 ‘공약성 전략’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백 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국가
전략을 준비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다른 모든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문화의 시대’를 운운하는 21세기에 한국의 역사·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장기적인
전략을 마련한 ‘씽크 탱크’가 필요하다.
특히 이런 집단은 이제 ‘경제 중심적 논리’에서 벗어나서 ‘문화 중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동북아가 경제적으로 동반 번영하면서, 서로의 문화적 동질성을 토대로 문화적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장기적인
밑그림을 그려가야 한다.
그 밑그림은 ‘우리가’ 중심 국가가 되겠다는 식의 발상에서 벗어나, 동북아의 공동 번영을 위한 ‘동북아 경제 공동체나
문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것이 되어야한다.
중국․일본이 끊임없이 제기하는 여러 부당한 국가 전략을 견제할 수 있는 ‘단기적인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 중, 일이 화합할 수 있는 ‘장기적인 안목의 국가 전략’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21세기 동북아 시대를 준비하는 한․중․일의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어디 어디는 우리 땅’이라는 식의 폐쇄된 공간을
전제로 한 역사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 자체를 ‘흐름’과 ‘교류’의 과정으로 이해할 때 동북아 문화공동체는 점차
실현가능한 꿈으로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유럽연합(EU)은 기존의 15개국에서 새로 10개국을 받아들여, 유럽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25개국의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아울러 하나의 문화권․경제권․정치권으로 통합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한․중․일이 서로 반목하고 경계하며 살아야한단 말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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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실하(禹實夏>
. 연세대 사회학과 학사, 석사, 박사 (동양사회사상, 한국문화론, 문화이론)
. 연세대, 강원대, 항공대, 홍익대, 성공회대 등 강사 역임
. <시민의 신문> 편집위원 역임
. 중국 요녕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역임
. 현재 한국항공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 홈페이지 www.gaonnuri.co.kr 이메일: woosilha@hau.ac.kr
. 핸 드 폰 : 011-701-4387
<저서>
1. 우실하, 『동북공정의 선행 작업과 중국의 국가 전략』(서울: 시민의신문, 울력, 2004).
*출판물간행윤리워원히 ‘이달의 책’(2004.11) 선정
2. 우실하, 『전통 음악의 구조와 원리: 삼태극의 춤, 동양 음악』(서울: 소나무, 2004).
*출판물간행윤리워원히 ‘이달의 책’(2004.9) 선정
3. 우실하, 『한국 전통 문화의 구성 원리』(서울: 소나무, 1998).
4. 우실하, 『오리엔탈리즘의 해체와 우리 문화 바로 읽기』(서울: 소나무, 1997).
*문화관광부선정 98년 우수학술도서
5. 공 저, 『유교적 사회질서와 문화, 민주주의』(전남대출판부, 2006).
6. 공 저, 『21세기 동북아협력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서울: 국제평화지도자연합, 2005).
7. 공 저, ������동양을 위하여 동양을 넘어서������(서울: 예문서원, 2000).
8. 공 저, ������21세기를 위한 한국 환경보고서������(서울: 신광문화사, 1995).
<논문>
“오리엔탈리즘의 ‘폭로’에서 ‘해체’로”(1998) 등 20여 편이 있다.
1) 「조선일보」2006.9.8일자(인터텟신문)에는 벌써 <동북아재단 지휘부 ‘중국通’ 없어>라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중국통’이 없어서가 아니라 관료와 역사학자들로만 구성된 것이 더 문제다.
2) 「조선일보」2006.9.8일자(인터텟신문) <외교부 “백두산공정은 관광用” 오판> 참조.
외교부는 “중국 지린성측이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관광산업진흥, 특산품 개발 등 백두산 개발사업을 2006~2010년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추진 중”이라고 했다.
3) 「세계일보」2006.9.8일자(인터넷신문) <정부 "中당국 역사왜곡 공식화 땐 문제 제기"> 참조
4) 우실하, 『동북공정의 선행 작업들과 중국의 국가 전략』(서울: 울력, 2004), 134-141쪽 참조.
5) 우실하, 위의 책, 142-144쪽 참조.
6) 우실하, 위의 책, 68-104쪽 참조.
7) 劉建成 主編,『軒轅黃帝在涿鹿』河北省涿鹿縣文化局, 1994, 책머리 도판;
8) '동북공정' 전문연구위원회의 연구를 위한 5가지 의식.
(1) 정치의식(政治意識), (2) 전국의식(全局意識), (3) 책임의식(責任意識), 4) 정품의식(精品意識), (5) 성신의식(誠信意識)
9) 郭大順, “序言: ‘遼河文明’ 解”, 遼寧省博物館·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遼河文明展 文物集萃』
(沈陽: 遼寧省博物館·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2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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