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고조선(한단고기)

<규원사화>에서 보는 역사의 통찰력과 조선의 강역. <펌>

설레임의 하루 2009. 2. 25. 12:31

*출처:다음카페-잃어버린 역사...   글쓴이: 도불원인

 

 

 

  규원사화는 1670년경 肅宗代에 【북애노인】이라는 분이 지은 책으로 한단고기와 맥을 같이하는 고조선의 역사와 저작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기술한 역사기술 眞本으로 아직까지도 강단사학계에서는 참조사항 정도로만 치부되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고조선사와 고조선에 관련된 임금(任儉)의 제위역대와 제위년수는 단기고사,재왕운기등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댓수는

일치하는 고서이다.

단군과 관련된 역사적사실과 정사는 <세종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음에도 이를 神化視하는것은 세종실록전체와 조선왕조실록 자체를

부정하는 것 밖에 안되는 그야말로 국적없는 역사를 연구하는 꼴이 되는것이다.

 본인은 많은 내용중에서도 특히 <병자호란>이후에도 명나라를 향한 조선의 위정자 주류에 대한
비판과 당시 현실의 분석을 근거로

앞날을 예견하는 글은 300여년이 지난 지금도 틀림없음에 가슴을 떨리게 한다.
그곳에는 지금도 우리가 체득해서 알고 있는 소위 한족의 습성을 보여주며 가장 무서운 그들의
민족적 친화력 포용력을 경고하며

그들의 습속에 젖어 들때에 그들의 울타리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강력하게 경고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청나라 와 조선의 위정자들에게 이 책으로 경고하였고 결국 북애노인의 말은 230년여 후 정확히 들어 맞았다.

 아울러 조선국이 처한 지리적상황과 그에 대한 有不利를 그 나름대로 기술하였다 .하기에, 우리는
그 당시의 조선의 국경이 어디까지

인지 추정할 수도 있다.

과연 그의 후손인 우리는 앞날을 위해 무었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지침서라고도 할 수 있다.


규원사화의 원본 일부를 소개한다.

女眞者, 肅愼之後也. 其古風泯滅, 雖不知書, 然猶有祭天地‧敬親戚‧尊耆老‧接賓客‧信朋友, 禮意款曲,

皆出於古聖帝之垂訓, 賢侯之立敎也. 方其奮興於黑水之地也, 以一枝之師, 席卷遼.滿, 越長城而屠汴京, 禽徽.欽而北去, 叱孤主而南竄,

跨幽燕而鞭笞中原之士. 於是, 趙家君臣, 莫不輸誠納款, 稱臣呼侄, 苟乞殘喘. 秦檜‧韓胤之徒,

咸匍匐而獻媚. 此誠, 千古之快事而東方諸族之誇也. 雖然, 其弊在於急一時之利, 踵久壞之法.

及其中葉, 鄙遼儉樸, 襲宋繁縟之文, 懲宋寬柔, 加遼操切之政. 是棄二國之所長, 而倂用其所短也.

於是, 繁縟勝而財用竭, 操切勝而民人害. 夫, 國用匱, 民心離, 而金安得不亡乎!

 여진(女眞)은 숙신(肅愼)의 후예이다.

그 옛 기풍은 다하여 없어지고 비록 글도 알지 못하지만, 여전히 천지에 제사를 지내고 친척을 공경하며 노인을 존경하고 손님을 맞고

벗을 믿는 등 예의바른 마음에 다정하고 성의가 있음은, 모두 옛 성제(聖帝)께서 펼친 교훈과 어진 제후들이 세운 교화에서 나온 것이다.

 바야흐로 흑수의 땅에서 떨치고 일어나서 한 갈래의 군사만으로 요동과 만주를 석권하였으며, 장성을 넘어 변경(汴京)을 도륙한 뒤

휘종과 흠종을 사로잡아 북쪽으로 보내고 고주(孤主)를 꾸짖어 남쪽으로 귀양을 보냈으며, 유연(幽燕)을 넘어 중원의 선비들을

매질하였다.

그러자 조가(趙家)의 군신들 가운데 정성과 성의를 보내며 신하를 자칭하고 조카라고 스스로를 일컬어 남아 있는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진회(秦檜)와 한윤(韓胤)의 무리는 모두 엉금엉금 기면서 아첨을 떨었으니, 이는 진실로 천고의 쾌사이며 동방 제후의 자랑이다.

 비록 그렇지만 그 폐단은 한 때의 이익에 급급하여 오랜 폐악을 답습한데 있었으니, 그 중엽에 이르러 요(遼)의 검소하고 소박함을

깔보고 송(宋)의 복잡하고 번거로운 글을 따랐으며, 송(宋)의 너그럽고 부드러움은 제재하고 요(遼)의 엄격한 정치만을 더하게 되었다.

이는 두 나라의 장점을 버리고 그 단점들을 아울러 쓴 격이다.

 그러한 까닭에 복잡하고 번거로움이 기승을 부리니 재정은 바닥이 나고, 엄격한 정치가 기승을 부리니 백성들은 피해를 입었다.

무릇 나라의 살림이 고갈되고 백성의 마음이 떠났는데 금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겠는가!

噫! 天異(侯)[候], 地殊勢, 國異俗, (民)[人]各(枝)[技], 安有舍其能而不危者,

[安有]學乎人而易其性者耶? 余, 於是乎, 歎造翁之於物也, 不能無厚薄, 而君師之於政也,

不可不三思之也. 今, 夫愛親氏者, 赫圖阿羅之人也. 其先, 遠出於僂侲之後, 其民多承, 句麗‧渤海之衆, 是爲舊檀氏之遺裔, 庶可斷焉.

而今, 夫! 人囂囂然以小華自耀, 肯認滿洲而爲親乎? 彼等之於女眞,

已以蠻胡斥之, 其於滿洲, 寧怪其罵斥耶! 且彼等之與朝鮮, 角立者已尙矣, 而與諸胡相混者久矣,

其勢安能復合而悔其久分耶? 此不必長說也.

 오호라! 하늘은 모습이 다르고 땅은 형세가 틀리며, 나라마다 풍속이 다르고 사람마다 기술이 제각각 인데, 자기의 능함을 버리고

어찌 위태롭지 않은 자가 있겠으며, 다른 사람에게 배운다고 그 본 바탕이바뀌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그러한 까닭에 조물주가 사물에 대해 두텁고 얇음이 없을 수 없고, 임금이 정치를 행함에 세 번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됨을 찬탄하는

 것이다.

 지금에 무릇 애친씨(愛親氏)는 혁도아라(赫圖阿羅) 사람이다.

그 선조는 멀리 속진의 후예에서 나왔고, 그 백성들은 고구려와 발해의 무리 중에서 많이 이어받았으니, 이들이 남아 있는 단군의

후예가 됨을 거의 단정지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에 있어서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라고 뽐내고 있으니, 만주가 우리와 친척됨을 긍정하고 인정하려

 하겠는가?

저들이 여진을 대함에 있어서도 이미 오랑캐로 여기고 그들을 배척하고 있으니, 우리가 만주를 대하며 욕하고 배척하는 것을 어찌

괴이하다고만 하겠는가!

또한 저들이 조선과 더불어 대립한 지가 이미 오래이며, 뭇 오랑캐와 더불어 서로 섞인지가 오래이니, 그 형세가 어찌 능히 다시

합치고서 오랫동안 갈라져 있었음을 후회할 수 있겠는가!

이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至如太祖.努爾哈赤, 蹶然奮興於建州之地, 率八旗之師而席卷滿洲, 創金汗國而虎視東西,

乘明朝之衰而奪遼東, 因流賊之亂而奄據幽燕. 於是, 下辮髮之令, 立國史之舘, 禽永明而掃淸海內,

服諸汗而倂呑漠北. 其政令之所出, 八旗之所向, 更無堅城‧强壁矣, 處處蜂起, 復明之志士,

曾不幾何而摧敗. 盖, 自有史以來, 塞外諸族, 入帝漢土者, 未有若此之强且盛者. 我國之士,

雖(曰)[日]夜以南漢之耻切齒, 以區區東援壬辰之誼, 欲向明而圖報. 然, 百年之內, 余保, 其必無是事矣. 夫, 區區鴨水以南, 數千里之地,

衆寡之數, 已自懸絶, 而又自却女眞以爲胡, 斥滿洲以爲虜, 東控于倭,

西戀于明, 民復奚暇能養其力哉! 然則, 淸之勢威, 可謂猛矣, 然而其後孫, 若至於慕漢俗而棄其本,

操漢語而賦其詞, 后吳姬而嬪越女, 駈八旗之[之]兵而事田獵, 紹堯舜之道而演其說, 飫膏粱而飽華靡,

則嚶嚶漢土好說之士, 皆聒聒然以師傅自傲, 夷狄鄙之, 羣起而戮

滿胡, 復孰能禦之哉! 不出數百年, 淸必亡於善聒之士也.

◆태조 누루하치에 이르러 궐연히 건주(建州) 땅에서 떨치고 일어나서 팔기병(八旗兵)을 거느리고 만주를 석권하였고, 금한국(金汗國)을

세우고는 동서를 호시탐탐 살피다가 명 왕조가 쇠퇴해진 틈을 타고 요동을 탈취하였으며, 도처의 도적들로 어지러운 틈을 타고 유연

(幽燕)을 점거하여 버렸다.

이에 변발령을 내리고 국사관(國史舘)을 세웠으며, 영명(永明)을 사로잡아 나라안을 깨끗이 한 뒤에 뭇 우두머리들을 굴복시켜 막북

(漠北)을 아울렀다.

그 명령이 나아가고 팔기병이 향하는 곳에는 견고하고 강한 성벽이 없었기에, 곳곳에서 벌때 같이 명(明)의 부활에 뜻이 있는 선비가

일어났으나 다시 어찌할 수 없이 꺾이고 패하였다.

아마도 유사 이래 변방 밖의 뭇 종족 가운데 황제가 다스리는 한나라 땅에 들어온 것 중에서 이처럼 강하고도 번성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선비들이 비록 밤낮으로 남한산성의 치욕에 대해 이빨을 갈면서, 임진년에 신통치
않게 도움을 받은 의리로 명나라에

대해 보답하려고 한다.

그러나 1백년 안에는, 내가 보장하건데, 기필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무릇 변변치 못하게 압록강 이남의 수천 리 땅에서 적은 숫자의 무리로 이미 스스로가 절박함에 매달려 있으며, 또한 스스로 여진을

오랑캐로 여겨 물리치고 만주를 호로(胡虜)로 여겨 배척하며,동쪽으로는 왜놈들에게 손발이 묶인 채 서쪽으로 명나라를 그리워하고자

 하니, 백성들이 다시 어느 겨를에 능히 힘을 기를 것인가!

청(淸)의 위세는 가히 맹렬하다 할 것이지만, 만약 그 후손들이 한나라 풍속을 사모하여 자신들의 근본을 버리고, 한나라 말로서

글을 짓고 오나라 계집과 월나라 계집을 황후와 비빈으로 앉히며, 팔기병을 몰아 밭에서 사냥하고 요순의 도를 이어 그 말을 치장하며, 고량진미를 배불리 먹으며 화려하고 사치스러움에 만족한다면, 곧 앵앵거리던 한나라 땅의 말하기 좋아하는 선비들이 모두

시끌벅적하게 스스로를 거만히 스승이라 여기고 이적(夷狄)을 천하게 여기며 무리 지어 일어나 만주의 오랑캐들을 도륙할 것이니,

누가 다시 그들을 능히 제압할 수 있겠는가! 수백 년이 지나지

않아 청나라는 반드시 떠들기 잘하는 선비에게 망할 것이다.

若天仮余以再生, 使置數百年之後, 則余可服東服而操淸語, 跨駟馬而說淸帝, 談同祖, 陳利害,

與朝鮮倂據遼滿‧幽營之地, 北誘野人而爲前驅, 東聯倭而使撓其南鄙. 夫! 然後, 朝鮮之强可復, 而漢之慢可挫矣.

不然者, 今朝鮮之勢, 滔滔日下, 只管虛弱而不思奮勵, 不出數百年, 朝鮮必復敗於强鄰矣,

頹然孰能支之乎!


만약 하늘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여 수백 년 뒤로 놓아두기만 한다면, 곧 나는 우리나라 옷을 입고 청나라 언어를 구사하며,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에 올라앉아 청나라 황제를 설복하여 우리가 같은 조상의 후손임을 얘기하고 그 이해 득실을 나열할 것이니, 조선과

더불어 요만(遼滿)과 유영(幽營)의 땅에 나란히 웅거하여, 북으로는 야인(野人)을 꾀어 선봉으로 삼고, 동으로는 왜(倭)와 연합하여

그들로 하여금 남쪽의 천한 종족들을 휘어잡게 하자고 할 것이다.

무릇 그러한 후에야 조선의 강성함은 다시 살아날 것이요,

 

하기에 단지 허약함만을 돌보아서는 떨치고 나와서 힘을 쓰는 것은 생각도 못해 볼 것이며, 수백 년이 지나지 않아 조선은 반드시

강한 이웃에게 다시 패망할 것이니,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누가 능히 지탱하겠는가!

余嘗論之, 强國之要, 有三; 一曰「地廣而物博」, 二曰「人衆而合」, 三曰「恒守其性而不失其長」. 此所謂地

利‧人和及[保性也. 而朝鮮, 則得地利而不全, 失人和]而亡其性, 此萬世之患也. 何謂得地利而不全. 夫,

朝鮮(之)地, 北連大荒, 則凍天氷地, 斷我後退之路; 西接蒙古, 而萬里流沙, 斷我左展之臂; 西南隣漢土,

而無泰岳峻峙‧長江大河之限, 則其勢易於進攻, 難於防守; 東南阻大海, 而無前進一步之土. 且漢人者,

盤據萬里金湯之地, 容百族以爲衆, 蓄布粟以爲富, 鍊百萬之師而以爲强, 則恒涉野跨海, 以侵西鄙.

時有倔强桀驁者, 蹶起於北方, 則爲後顧之慮, 必來刦攻. 倭, 海洋萬里, 各據島嶼, 有事則以易自保,

無事則順風駕帆, 任志來寇, 譬如床下蝱之恒致其苦. 若我常强而無衰, 則可抑漢士而郡其地,

斥倭寇而鎖其海, 可號令天下, 囊括宇內也. 若我勢一弱, 則敵騎長驅, 蹂躙闔國, 虜掠吏民, 焚燒閭里. 此, 所謂得地利而不全者也.


내가 일찍이 말하기를 강한 나라의 요건에는 세가지가 있다 하였으니,

 

그 첫번째가 땅이 넓고 산물이 풍부한 것이고, 그 두번째가 사람이 많으면서 화합하는 것이며, 세번째는 항상 그 본바탕을 지키며

자기의 장점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는 지리적 이익과 사람의 화합 및 본바탕의 보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지리적인 이익을 얻었으나 온전한 것이 못 되며, 사람들은 화합을 잃은 데다 본 바탕을 망각하고 있으니, 이것은

만세에 걸친 근심이라 할 것이다. 지리적인 이익을 얻었으나 온전한 것이 못된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무릇 조선의 땅은 북으로 대황(大荒)과 연결되어 있으니 곧 얼어붙은 하늘과 빙판 같은 땅이 우리의 퇴로를 끊고 있고, 서쪽으로는

몽고와 접하니 만리에 뻗친 사막이 우리의 왼쪽으로 뻗은 팔뚝을 끊고 있으며, 서남으로는 한나라 땅과 인접하여 있으나 태산의

험준함이나 장강의 큰 물줄기 같은 경계가 없기에 곧 그 형세가 나아가 공격하기는 쉬우나 지켜 방어하기는 어려우며, 동남으로는 큰

바다에 가로막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땅이다.

한나라 사람들은 만리에 뻗친 철옹성 같은 땅에 자리잡고 살면서 수많은 종족을 포용하여 이들로 무리를 삼고, 베와 곡식을 축적하고

 1백만의 군대를 훈련시켜 이로서 부강함을 삼으며, 항상 들을 건너고 바다를 뛰어 넘어서 서쪽의 먼 변방까지 침략하여 들어갔다.

때때로 뛰어나게 강인하고도 굳세어 굴하지 않는 자가 나타나 북방에서 떨치고 일어나면, 곧 뒷날의 우환을 염려하여 반드시

와서 으르고 공격하였다.

왜(倭)는 바다 1만리의 크고 작은 섬에 제각기 살면서, 유사시에는 쉽사리 스스로를 보호하다가 무사하면 곧 순풍에 배를 몰아 마음대로

 와서 노략질을 하니, 마치 마루 아래의 등에가 항상 골치인 것과 같다.

만약 우리가 항상 강하여 쇠퇴함이 없으면 곧 한나라 선비들을 눌러 그 땅에 군림하고 왜구를 배척하여 그 바다를 봉쇄할 것이니,

가히 천하를 호령하며 세상을 주머니 속에 넣고 주무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의 기세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곧 바로 적의 병사가 멀리로부터 말을 몰고 와서 온 나라를 유린하고 백성들을 노략질하며

고을을 불사를 것이니, 이것이 소위 지리적인 이익은 얻었으나

온전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