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상고사,홍산문화

[홍산문화] -동북아공정 통한 한민족 밝혀주는 홍산문화중심으로- (신선* 선생의 글입니다)

설레임의 하루 2014. 4. 8. 01:10

*출처:다음카페-삼태극  글쓴이-짚신할미  2013.06.15. 21:30   http://cafe.daum.net/mookto/IMPU/141 

 

 

 

 

 

[홍산문화] -동북아공정 통한 한민족 밝혀주는 홍산문화중심으로- (신선* 선생의 글입니다)

 

차 례

 

1.한국 중국 일본 총 없는 역사전쟁과 영토전쟁

1-1 현재 대한민국의 역사 번지수는 어떠한가?

1-2 대한민국은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

 

2.대한민국의 역사 현실

 

3.홍산 문화와 동북공정의 이해

3-1 동북아시아의 기원 지 홍산 지역

3-2 중화문명 탐원공정

 

4.신시배달, 고조선 문화와의 연계

4-1 홍산문명(紅山文明)을 계승한 문명 하가점

 

5.홍산문화가 밝혀주는 한민족의 정신문화

5-1 농경사회 문화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大母地神

5-2 1902년 대한제국 애국가

5-3 우리민족은 사상과 철학

 

6. 동북공정과 우리의 역사현실

6-1 역사는 민족의 족보

 

 

 

1.한 중 일 총 없는 역사전쟁과 영토전쟁

 

현재 동북아는 한중일 역사전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 전쟁은 단순한 학술적인 논쟁을 넘어서 영토전쟁으로 비화되어 해결책이 없는 결말을 향해가고 있다.

한, 중, 일의 과거사를 통해 본다면 민족감정의 문제가 본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어느 무엇으로 치유될 수 없는 본질 문제인

것이라 판단된다.

현재 중국은 동북공정을 매듭짓고 문화대국을 자처하며 주변국, 특히 한국의 고유한 문화유산을 자신들의 문화유산으로 등재해 왔다. 

또한 후일 한반도 북부를 점령하게 될 경우 세계 언론으로 하여금 묵인할 수 있는 역사적 논리를 마무리 짓고 이를 인민들에게

교육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 만난 중국교포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중국민족으로 교육을 받고 자신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까지 들었다.

일본은 시시때때로 독도문제로 한국민을 자극해 온다. 현재는 반대 반응이 크다.

그러면 잠시 시간을 두고 다시 자극을 가해온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로 삶는 방법이 있다.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개구리는 살기 위해 바로 뛰어나온다.

하지만 찬물에 넣고 온도를 차츰차츰 높여가면 개구리는 물에서 나오지 않고 그대로 끓는 물에서 생을 마감한다.

 

1-2 현재 대한민국의 역사 번지수는 어떠한가?

 

대한민국은 경제대국, 한류문화대국이라는 호화로운 조명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 끝이 없는 듯. 그런 외적인 상승 기세를 타고 국민들도 흥분하며 따라 가고 있다.

이제는 세상이 마치 우리 것 인양 보이고 글로벌이라는 이름하에 국가의 필요성도, 국민의 필요성도 제각기 이유를 대면서 부정하는

학자들과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국사를 논하면 국수주의 민족주의라 치부하고 어용학자로 몰아간다.

마치 구세대의 악습처럼 여긴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국사교육의 철폐까지 나왔다.

최근엔 다시 역사를 가르쳐야 된다는 의견이 힘을 얻어 일어나지만 역부족이며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주변국들도 우리와 같이 역사교육을 폐지하고 글로벌을 외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냉엄한 세계의 현실을 보라.

어느 나라가 자국의 역사를 폐지하며 정신없는 민족으로, 정신없는 국가로 전락하고 있는지.... 아무도 없다.

오직 자국민을 위해 자국을 위해 무한경쟁, 총 없는 경제 전쟁을 치르고 있을 뿐이다.

유대인들은 수많은 시간 속에서 주변국과의 투쟁과 압박을 받아오면서도 자기들의 역사서인 ‘구약성경’과 정신적 기둥인‘탈무드’

교육을 놓치지 않았다.

현재 그들은 소수의 강력한 나라가 되어 자기 민족을 전 세계 곳곳에 배치하여 전 세계 경제를 좌우하고 있으며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는 민족이 되었다.

그 바탕에는 강력한 그들의 역사교육과 정신교육이 자리 잡고 있다.

 

1-3 대한민국은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이다.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멸망의 기로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국민은 있을 수 있으나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이 희박해져 가고 있기에

그런 거친 표현도 피하지 않는다.

필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상고사에서 포럼학회에서 현장에서 만나 확인한 생생한 이야기를 소논문의 보고서로 뜻을 담고자한다.

논리적으로 역사를 논하는 것은 뜻 있는 역사가들이 해야 할 몫이다.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 우리역사를 바로보고 바로 전하고자 하는 바램으로 우리 대한의 역사를 공유하고 동양철학방법론연구에서

보고서를 통하여 국제정세와 역사정신을 고취하고 작금의 동북아 현실의 안목을 밝혀보고자 함에 있으며 역사와 문화를 알고

자료이해를 하고자 한다.

 

 

2.대한민국의 역사 현실

 

근대를 넘어오는 과정까지 우리는 우리 역사를 정립하지 못하고 외세에 의해 우리국사가 정립되는 수모를 당했다.

고려시대에는 중국을 상국으로 모시면서 스스로 황제의 위를 버리고 왕의 칭호를 사용하였으며 중국황제에 충성한다는 의미의

‘忠’자 까지 붙여가면서 머리를 낮추었다.

국가의 간판을 바꾸어 가면서도 우리국가 스스로 중국역사에 위배되는 고대 사서를 수거하고 소각해 왔다.

그러던 중 일제 제국주의의 발아래서 한국의 역사가 정립되는 과정을 당했다. 바로 실증사학에 의한 역사정립이었다.

실증사학은 19세기 등장한 구사학으로서 ‘있는 그대로’를 표방하며 객관주의적 역사연구를 외친 학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학문도 현재는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치면서 새로운 역사연구 방안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일본인 식민사학자 하야시 다이스케, 시라토리 구라키치, 후쿠다 도쿠조 등에 의해 해부된 조선의 역사는 말 그대로 일본의 식민지

역사로 전락하여 일본의 식민통치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영국, 미국, 독일, 블란서, 일본 등이 식민지 지배 수단으로서 이 실증사학을 활용하였다.

즉 짧은 역사를 가진 서양사회가 오랜 전통의 동양사회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렇게 일본인이 만든 역사 ‘조선사’를 골격으로 하여 지금까지 교육되고 있다.

일제시대 조선사 편수회를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가 정립되어 그대로 해방 후에도 역사교재로 사용되어 왔다.

이런 배경 속에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아주 완벽한 역사 스토리인 “환인은 하느님, 환웅은 서자, 단군은 곰의 자식”이라는 ‘곰도

믿을 역사’를 만들어 가르쳐 왔다.

그래서 실증사학이라는 칼로 고대사의 목을 자르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역사가의 일말의 양심이 있었는지 이렇게 역사의 틀을 만든 장본인인 이병도 박사는 세상을 마감하면서 양심선언을 하며 역사의

부활을 외쳤지만 너무나 왜곡된 역사는 그대로이다.

 

조선총독부학파 계보

구분

주요인물

경력

뿌리

이마니시류(금서룡1873-1932)

조선총독부수사관(修史官)

1세대

이병도(1896-1989)

조선총독부 수사관보.

 

서울대학교 교수.

 

국사편찬위원.문교부장관

 

신석호(1904-1981)

조선총독부 수사관보.

 

국사편찬위원회 사무국장.

 

고려대학교 교수

2세대

이기백(1924-2004)

이화대.한림대학교수.

 

역사학회.진단학회회장.

 

한국사 신론 저작

             김철준(1923-1989)

국사편찬위원회.

 

서울대인문대학 교수

김원룡(1922-1993)

국립박물관장.

 

서울대학교 인문대 교수

3세대

노태돈외 다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교수

4세대

송호정외 다수

한국교원대학교수.

 

고조선 자체부정

 

3.홍산문화와 동북공정의 이해

 

2007년 3월 발간된 교육인적자원부의 『국사』에서부터 한반도의 청동기 보급시기를 앞당기면서 고조선의 건국을 공식역사로

편입했다. 그렇지만 거기까지다.

건국 내용을 “건국되었다한다”를 “건국하였다”로 표현방식을 바꾸었다. 진주지역 수몰지구에서 확인된 각종 청동기 시대 유적과

유물, 강원도 지역의 청동기 유적 등의 자료를 토대로 청동기 연대를 1000년 이상 앞당기고 고조선의 건국을 공식 인정하였다.

하지만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라는 비판도 받았다.

즉 중국에서 고조선시대에 해당하는 하상주시대의 역사를 공식 역사로 인정하는 발굴과 역사편찬 작업결과로 더 이상 국내 학자들도 고조선 건국을 부정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인정된 고조선 역사도 현재 ‘단군신화’라는 통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대학과 학교, 유치원, 모든 매체에서는 고조선 건국을 ‘단군신화’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근 100년간의 시간 속에서 작업을 거치면서 최근 들어 새로운 역사를 선포했다.

주변국, 특히 한국의 반응에서 관심도 없고, 한국 자국민들의 반응이 미미한 가운데 한국의 고대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하는 대역사를

마무리 지었다.

중국은 그동안의 ‘황하문명”중심, “만리장성” 중심의 역사를 대대적으로 수정하여 동양역사의 뿌리를 넘어 전 세계사의 뿌리민족으

 중화역사를 정립했다.

중화 5천년의 역사가 아닌 세계 4대문명보다 오래된 문명이며 뿌리문화로 ‘요하문명’이 존재했음을 발표했다.

그 중심이 ‘홍산문명’, 혹은 ‘요하문명’이라는 것이다.

 

 

 

3-1 동북아시아의 기원 지 홍산 지역

 

중국이 역사를 올려잡은 이유는 그동안 3600∼4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하나라이전에 등장하는 ‘삼황오제’가 전설이 아니라 실제한

인물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과학적으로 연구를 통해 찾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 결정적 증거가 홍산의 우하량에서 발견되었으며 ‘신비의 왕국’으로 이미 국가가 형성되었음을 발표했다.

즉 기원전 3500년경 홍산지역에 국가가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사진출처: 경향닷컴)

제단, 여신묘, 돌무덤(적석총)의 발굴은 전세계 고고학과 중국고고학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동안 세계사에서 수메르문화,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넘어서지를 못하였는데 이 유적을 통해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서구 학자들에게도 ‘수메르의 문제거리’로 수메르문명이 어디서 이동하였는가를 수 십년간 연구하여 동북아시아로 그 기원지를

유추하였는데 그 해답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쁨도 잠시 중국의 학자와 정부는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 신비의 왕국문화가 그동안 중화문명의 중심지라고 가르친 만리장성 내, 황하문명의 주변이 아닌, 만리장성 밖 동이족 지역에서

발굴되었다는 점이었다. 즉 오랑캐라고 치부한 동이족의 문화유산인 것이 고민이었다.

 

 

 

 

 

 

 

<사진출처: 이형구 교수 자료>

 

그 시대의 대표유적인 무덤의 형식만 봐도 그 문명이 동이족의 ‘적석총’문화라는 것은 고고학에서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었다.

또한 중국민들이 1930년대부터 자신들을 ‘용의 후예’라하여 항상 용을 앞세우면서 자부심을 나타내곤 했는데 홍산문명의 발굴결과 ‘용’과 ‘봉’의 문화는 원래 동이족의 문양으로 밝혀졌다.

 

 

 

홍산문명은 인류사를 새로 쓰게하는 새로운 문명이었다. 인류 고고학은 지금까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보편적

흐름으로 인식하였는데 홍산문화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없는 옥기문화가 발굴되었다.

옥의 세공기술을 본다면 현대인들의 가공술과 같은 수준의 문명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옥기문화는 한반도의 그대로 나타나고 있으며 일본과 아메리카 아즈텍 문화에서까지 발굴되고 있다.

 

 

 

 

이러한 옥기문화와 더불어 발굴되는 문물의 내용은 너무나 방대하고 현대인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현대인들이 쓰고 있는 농기구와 다양한 바늘세트, 대량생산할 수 있었던 신발 틀, 뼈로 만든 피리, 국가차원의 궁중음악에서

사용되었던 석경 등의 발굴도 그 시대문명의 수준의 확인시켜 주는 보물이 되었다.

또한 그동안 풀지 못한 한국역사의 실마리의 해답이 되는 유물이 발굴되었다.

 

 

 

 

그동안 삼국유사에 기록된 곰과 호랑이의 실체를 두고 신화이니, 토템이니 하는 말들의 오가며 논쟁을 하여 왔지만 홍산문명의

발굴과 더불어 그 문명은 웅족 문명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문명의 주인공들이 머리에 상투를 틀었다는 것이었다.

상투옥고가 발견된 것이 중국문화에 던진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중국 덕보 박물관에서는 이 상투문화를 “고대인들이 우주의 주재자인 상제님(하느님)과 하나로 연결되는 문화”라고 소개하고 있다.

 

 

중국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한번 자신들의 역사를 수정해야하는 고통을 거치게 된다.

지금까지 자신들은 조상으로 여겨왔던 황제헌원도 ‘웅족’과 결부된 인물이며 과거 삼황오제시대에 신농씨(강씨의 시조, 동이족)

문명과 연결되어 있기에 1980년부터는 염제신농씨까지 포함하여 자신들의 ‘염황지손’이라 수정하여 부르게 되었다.

여기에 그동안 동이족의 조상인 ‘배달’국의 14번째 치우천황까지도 자신들의 조상으로 만들어 중화 삼조당에 모시고 받들게

만들었다. 

이는 결국 대한민국의 고대 역사 전체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작업인 것이다.

 

3-2 중화문명 탐원 공정

 

중국은 이를 중화문명 탐원공정이라하여 ‘중화문명의 근원을 탐구한다’라는 명목으로 3황5제시대를 중국역사로 편입하여

1만년 역사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중국문명이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보다 오래된 ‘세계 최고의 문명’임을 선언하였다.

고고학적으로 1980년대 이후 요하일대에서 발굴된 소하서 문명(小河西文明 기원전 7000∼기원전6500), 흥륭와문명(興隆洼文明 

기원전 6200∼기원전 5500)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이른 신석기 유물임이기에 이러한 주장에 까지 이르게 된다.

 

 

 

 

 

적봉시 오한기 보국토향 인근의 흥륭와촌에서 발견된 문화는 기원전 6200년경 까지 올라가가는 신석기 집단 거주지로 ‘계획 도시’

라고도 평가된다.

화하 제일 촌으로 불리는 이곳에는 주변을 파서 물길을 두르는 해자(垓字)도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옥은 적봉 시에서 동으로 450키로 미터 떨어진 압록강에 인접한 요령성 수암에서 출토되는 ‘수암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8천 년 전부터 만주 벌판의 서쪽과 동쪽이 교류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도 밝혀졌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고급문명, 수메르문명의 단서가 되는 문명,

그래서 인류최초의 문명으로 자리매김한 홍산문명은 앞으로 미국을 넘어선 문화적 경제적 대국을 외치는 중국으로서는 포기 할 수

없는 카드인 것이다.

 

이러한 뛰어난 문화를 지닌 홍산문화 지역에서 후대에 문명이 없었다는 주장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그 땅에 고조선의 문명,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의 우리역사가 숨쉬고 있었다.

더 이상 고조선의 유무, 신화를 논하는 자는 우선 홍산 문명의 땅을 밟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 천부인 3개를 환인께서 환웅께 전수했다는 구절을 가지고 얼마나 역사가들은 장난을 쳤는가?

청동검이니 청동거울, 청동방울, 딸랑이라느니 무속 기구라느니 하면서 제 나름대로 예언을(?) 했다.

보라 홍산문명에서 나온 도장을!  진짜 도장(印)인 것이다. 

 

상명대 박선희 교수는 우하량의 ‘신비왕국’을 삼국유사의 고조선조에 나오는 신시(神市)로 비정했다. 바로 도장 때문이다.

고대에서 도장은 지도자의 징표로 여겼는데 환인이 환웅에서 동방개척의 사명을 맡기면서 대권의 증표로 천부인을 전수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에 이는 단군보다 앞선 신석기 시대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는 다시 출발해야 한다.

 

4.신시배달, 고조선 문화와의 연계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홍산문화를 역사지역으로 선포한 것은 한국의 역사에 큰 의미를 던져주는 사건이다.

그동안 황하문명의 중심에서 동아시아 문명사를 홍산 문화의 요령지역에서 출발했다는 근원지를 바꾸는 사건인 것이다.

즉 황하문명보다 더 이른 시기에, 더 발전된 문명이 홍산 문화라는 것은 그 지역의 과거와 후대 역사를 가름케 하는 증거역사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고대사를 공부하면 홍산 문화지역과 아직 발굴되지 않은 동북아시아지역 문명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를 안다.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그것을 신화라는 이름으로 부정하여 왔을 뿐이다.

 

4-1 홍산문명(紅山文明)을 계승한 문명 하가점

 

그동안 끊임없이 한국 역사학계를 곤란으로 몰고 간 단군의 고조선 건국문제는 요하지역의 선대문화가 당연히 고조선의 문화와

연결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비쳐본다면 확실한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

단군의 고조선 건국연대가 하가점 하층 문화와 연대가 거의 일치하고 출토유물도 역사의 기록과 유사하다.

삼국유사에는 고조선이 하나라보다 앞선 문화라고 기록하였는데 실제 하가점 하층문화에서는 800년이 앞선 청동기들이 출토되었다.

하가점 문화가 주목받는 것은 이 문화가 홍산문화를 계승하고 있고 시기상 이 지역에 존재한 고조선문명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가점유적은 내몽고 적봉시의 노합하(老哈河)지역 북안(北岸)에 있으며 홍산문명(紅山文明)을 계승한 문명으로서 하층유적과

상층유적으로 구분되고 있다.

 

<사진- 하가점 유적>

 

하가점-하층(夏家店-下層)은 구리송곳, 동촉, 연주상동식(連珠狀銅飾), 쌍미형동식이 출토되고 구리과립이 나왔는데

 '순동의 제련덩어리'로 이미 청동기시대로 진입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또한 하가점-하층은 대륙의 은(殷)왕조와 주(周)나라의 청동기와 관계를 가지는데 청동사용 수준이 앞서는 것이고 소하연(小河沿)

유적과 관계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상층부에서는 말방울 등이 발굴되어 유목 문화적 특징이 나타나고 하층에서는 소, 돼지 등의 정착 농경문화적 특징이 나타난다.

 

하가점 상층부문에서는 투구와 여러 도구가 발굴되었는데 상명대 박선희 교수는 갑옷 복식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고조선의 갑옷은 여러 모로 우수하고 이웃나라에 비해 기술적으로 앞섰을 뿐 아니라 그 전통이 계속 이어져 고대 우리 민족

갑옷의 전형을 이루었다.

그런데도 마치 고대의 우리 갑옷은 중국에 뒤떨어진 것처럼 인식되고 아예 중국 갑옷 기술을 수입해서 만든 것처럼 왜곡되고 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역사 드라마에는 그러한 왜곡이 심각하다. 복식연구의 해석과 고증이 잘못되어 있는 까닭이다.”

“숙신의 유적지로 추정되는 요녕성 접경인 적봉시(赤峰市)의 하가점(夏家店)상층유적에서는 2개의 긴네모 모양 뼈 갑편이

출토되었다. 

이 뼈 갑편이 출토된 하가점 상층유적은 고조선문화의 특징인 비파형동검문화에 속한다.

그리고 서기 전 2500년경〜서기 전 1500년경에 속하는 고조선 초기 청동기문화인 하가점 하층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한반도와 만주에서 발굴된 고고학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하가점 상층문화기는 서기 전 1500년 무렵에서 철기시대

이전에 속한다.

따라서 숙신이 뼈 갑옷을 생산한 시대는 하가점 상층문화보다도 앞설 것이다.”

 

“어떤 드라마에서는 우리 철기 생산기술이 앞서는 데도 오히려 중국의 철기 생산기술이 더 우수한 것으로 여기고 우리 병영에서

중국 기술을 배워오는 것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보이는가 하면, 동부여의 철기군보다 중국의 철기군 갑옷을 더 우수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게다가 고조선의 대표적 유물인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도 드라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출처-브레이크 뉴스 기고 2011.11.31)

 

 

 

 

5.홍산문화가 밝혀주는 한민족의 정신문화

 

현재 중국은 우하량의 홍산문명이 사상사, 종교사, 건축사, 문명사, 미술사, 사회국가 발전사 등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성지로

간주하고 동방문명의 빛이라고 주장한다.

홍산문화가 발굴되면서 주목을 받게 된 또 다른 부분은 정신문화이다. 

 

 

과거 당나라, 청나라 때 황제들이 직접 올라 천제를 모셨던 제천단의 원형이 발굴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사대주의 국가가 되면서 천제문화가 사라져 가다가 조선조 고종황제께서 조선을 대한제국인 천자국으로 선포를

하면서 현재의 조선호텔 옆 원구단에서 천제를 올리고 황제로 등극했다.

그 원구단의 원형이 홍산 문화에서 나온 것이다.

천제의 대상은 하느님신앙인 ‘상제신앙’으로서 홍산 문화에서의 제천단의 원형이 발굴된 것은 인류 종교사의 뿌리를 드러낸

충격적인 사건인 것이다.

이 제천 단원형이 발굴되면서 전세계에 분포하고 있는 제천단인 피라미드 문화의 근원이 밝혀졌다.

우하량의 유적과 그 이후의 당나라 천단과 북경천단의 구조는 우리민족의 우주경전인 천부경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우리

문화와 다른 수리를 응용하는 중국과는 완전 다른 문화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5-1 농경사회 문화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大母地神

 

2001년 7월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몇 장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홍산지역의 아오한 바너지역에서 촬영된 것으로 중국당국에 의해 철저히 보안 조치 당해온 유적이었다.

독일인에 의해서 그 실체가 공개되었는데 모두 대형 피라미드 사진이었다.

평균 25∼100미터가 되는 피라미드들로 300미터나 되는 높이의 것도 있다.

중국학자 곽대순(郭大順)은 5000년내지 6000년전의 ‘홍산문화시대’인 것으로 추정발표했다.

1963년 중국 고고학자들은 이 피라미드군들을 진시황제의 무덤으로 알고 발굴을 시작했는데 탄소측정결과 진시황보다 수 천년

전에 건설된 것임을 알고 동이족의 유산임을 발견한 중국당국은 피라미드 존재를 지금도 함구하고 있다. 

 

 

동방에서 최초의 여신상은 대릉하유역 요녕성 건평현 우하량의 홍산문화시기의 여신묘에서 출토된 소조 여신상이다.

역사 속에서 인간이 모시는 신앙 대상 중 가장 중요한 神은 대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하늘 神’과 인간의 탄생, 안녕, 풍요한 삶을

이끌어주는 ‘地母神’이다.

지모신은 ‘大母地神’을 뜻하는 말로 농경사회 문화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신이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모시는 문화는 동방문명의 주인공인 동이족 문명의 대표적 문화이다.

후한시대에 채옹은 '독단獨斷'에서 天子제도의 근원에 대해 언급하면서 "天子는 동이족 임금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로 섬기는 까닭에 하늘의 아들이라 한다(天子, 東狄之所稱, 父天母地故, 稱天子)"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제천문화를 통해 홍산 문화의 주인공들은 하늘을 숭배하는 문화와 땅을 모시는 문화를 실현함으로써 동이족의 천지부모

(天地父母)사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홍산문화에서 나타난 제천단의 대상이 후대 청나라, 당나라, 대한제국의 천자문화와 일맥상통하는 것을 통해 그 신앙이 ‘하느님

 ’신앙이었음을 쉽게 유추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연대기로 본다면 우리민족은 하느님 신앙인 ‘상제’신앙의 원뿌리인 것이다.

 

하지만 국력이 약해지고 역사를 잃어가면서 우리는 감히 ‘상제’를 모시는 나라가 될 수 없었다.

중국의 天子만이 모시는 문화가 되어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다.

2005년 KBS ‘스펀지’라는 프로그램에 하와이에서 발견된 ‘최초의 애국가’ 편이 소개되었는데 이 자료는 우리민족의 상제신앙 역사를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5-3 우리민족은 사상과 철학

 

대학을 다니면서 ‘한국의 전통정신, 철학’ 강좌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내용이 전부 ‘유교나 불교’사상이다.

우리민족은 사상과 철학이 없었는가? 이것을 어떻게 한국의 전통 사상과 철학이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동이족의 정신문화와 철학의 정수는 三(삼신), 七(칠성) 그리고 그 밑바탕이 상제(一)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를 미신 냄새가 나는 문화로 알고 있다.

홍산문화의 발굴은 이 문화가 인류의 뿌리정신 문화임을 밝혀주고 있다.

역사는 틀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녹아있는 정신문화를 배제하면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상제’문화는 제천문화의 틀로 蘇塗제단문화, 무천(舞天), 영고(迎鼓), 동맹(東盟) 문화 등의 형태로 대대로

시대별 명맥이 근근이 이어져 오다가 구한말 고종 황제의 의해 천자국의 선포로 이어진다.

일본은 결국 이러한 고종을 독살을 시킨다. 日帝는 그것을 지우고자 했다.

하지만 그 정신문화는 환국시대의 桓(광명인간), 仁(지도자), 배달의 삼랑, 고조선의 국자랑, 북부여의 천왕랑, 신라의

 화랑,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절, 고구려의 (선랑, 국선, 재가화상), 조선의 선비, 조선말 동학으로 연결되어 현재 증산도와

민간종교 에서 그 명맥을 찾을 수 있다.

 

6. 동북공정과 우리의 역사현실

 

우리의 역사현실을 설문조사 해 보니 반응이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속이 시원하고 한편으로는 역사왜곡에 대한 분개심이 일어난다는 그룹과 또 한 그룹은 ‘내용은 좋은데 너무 우리민족만

강조하는 것 아니냐’이다.

즉 국수주의, 민족주의 성격이 강하다라는 의미로 이야기를 한다. 때로는 의문이 일어난다.

우리 민족은 자기 나라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를 제시 ,토론, 학술논문을 바탕으로 유물을 통한 검증된 이야기 토론할 때 우리의

자국민은 스스로 순수 역사의식을 받아들이질 못하고 먼저 부정 한다.

우리나라의 일본치하의 강점기 때 역사왜곡이 우리나라의 정신을 말살시키고, 교과서 왜곡 과 문화왜곡으로 일본의 철처 한

속국으로 한국의 자국민 자체를 부정 하도록 정신교육 시킨 것이 현대에 이르기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상으로 결론을 짓고 싶다. 

 

신화로 이어진 우리의 문화가 중국의 계획된 정책, 동북아 공정을 통하여 오히려 분명하게 밝혀지고 있는 역사의 현실이 슬프고

또한 속속히 알려지는 것은 기쁜 일이다. 이것이 우리의 역사현실이다.

 

6-1 역사는 민족의 족보

 

최근 한창 독립이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사람들이 분신자살을 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우리민족과 역사뿌리가 연계된 ‘티벳’이라는 지방이다.

중국은 1950년 군사력으로 티벳이라는 나라를 정복했다. 티벳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역사에 사라졌다.

어떤 나라도 도와 줄 수가 없었다.

중국이 약소국을 침범할 때 하던 역사의 일련 흡수과정이 지금 한반도에서 예상하지 못한 중국의 역사왜곡이 바로 동북공정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하기 위해 그렇게 조선의 뿌리역사를 지우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중국도 똑 같은 절차를 통해 대한의

역사를 지우면서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고 있다. 티벳도 그런 절차를 통해 사라졌다. 우리는 역사 속에 호흡하고 있다.

한민족은 수천년 동안 우리 역사의 유전자를 전해왔다. 역사는 민족의 족보다.

가정의 혈통이 바뀌는 것을 혹은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혈통을 주장한다면 그대는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세계적인 것은 가장 민족적인 것이다.

세계의 각 민족마다 자기의 가장 보편적인 음을 내면서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 오케스트라를 통한 세계주의인 것이다.

한민족이 가야금을 연주한다면 세계 속에서 가장 가야금 소리를 조화되게 잘 내어야 전체가 어우르저 명곡이 된다.

한 순간 주변국의 피아노소리에, 기타소리에 매혹되어 가야금소리를 기타소리로,

피아노 소리로 바꾸어 내고자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이 일명 세계주의인가? 우리민족은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이다.

나라는 있으나 국민들은 혼을 잃어버리고 자기만의 행복을 위해 약육강식의 세계의 경제전쟁 속에서 자기 뿌리역사를 버리는

것이 잘 사는 첩경으로 알고 살아가는 민족이 되어져 버렸다.

뿌리 없는 민족과 개인은 결국은 사라진다.

비록 중국에 의해 발굴되고 밝혀졌지만 동방 문명의 뿌리, 인류문명의 뿌리는 동이의 대한이다.

신채호 선생께서 질책하신 것처럼 현시대의 대한국민의 가장 문제점은 “역사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국가와 국민은 결국 무관심의 나라와 무관심의 국민으로 전락하여 역사에 사라진다는 교훈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한민족은 과연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위기의식과 생사기로의 마지막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일까? 동서 역사를 통한 세계사는 평가한다.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니 민족이니 역사니 하는 대의가 사라진 세상이라 하지만 시대적 흐름의 필연인지 밝혀지고 있는 인류의 대의 홍산문화라는 

세계 인류의 보물역사가 우리 앞에 스스로 장막을 걷고 밝혀졌다.

그 주인공이 우리 한국인 였음을 천하가 알도록 대한민국인 이라면 당연히 역사회복과 옳곧은 역사인식이 필요 하지 않겠는가?

역사는 후손을 가르치는 거울이다

이것이 이 시대 우리선조들이 그렇게 염원하던 광명의 인간, 빛의 인간, 진리의 인간을 만드는 교육법이 아니겠는가?

“동양철학방법론연구“ 수업과 연관하여 나름대로 공부하고 싶었던 현시대를 역사적으로 조명해보면서 가슴에 품고 있는

동북아공정과 홍산 문화 통홰 우리역사의 밝은 내일을 제시하고, 알아야 내일의 세계사를 볼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고서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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