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대진국(발해)

DNA분석 가능한 발해人骨 처음 찾아

설레임의 하루 2013. 7. 2. 21:40

*출처:다음카페-한국고대사  글쓴이-빛과소금 2013.07.02.  http://cafe.daum.net/121315/BVCR/4567 

 

 

DNA분석 가능한 발해人骨 처음 찾아
[조선일보 2004-07-27 18:35]

연해주서 나온 ‘발해 武將 전신 유골’
9C 발해 전성기 사람 창검·갑옷조각도 처음
“中 역사왜곡 대응할 가장 실증적인 사료”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이건 사람 뼈 같은데요!”

지난 10일,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부근의 ‘체르냐치노 5’ 발해고분 유적 발굴조사 현장. 횡혈식 석실분인 71호 고분을

발굴하고 있던 한·러 공동 발굴조사단의 한 한국인 학생이 돌연 소리를 질렀다.

조사단장인 정석배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모자를 벗고 황급히 달려갔다.

사람의 발 부분이 확실했다. 조심스레 주변의 돌을 하나씩 걷어내자, 다리와 엉덩이, 팔, 어깨뼈와 두개골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9세기 연해주 벌판을 호령했던 발해 무장(武將)이 1200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발해 청년의 발견=유골을 맞춰본 결과 키 165㎝, 30대 남자로 드러났다. 엉덩이와 정강이에서 화살촉과 창 끝부분이 발견된 것은 이 남자가 당당한 무사로 전쟁터에서 사망했음을 보여준다.

300년 전 인물인 백제 무령왕의 키가 180㎝로 장골(壯骨)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다지 크지는 않은 체격으로 여겨진다.

유골은 무엇보다 ‘형질인류학적 분석이 가능한 최초의 발해 인골’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연해주와 중국을 통틀어 이런 자료는 발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이마와 후두부·턱 등 생김새 분석과 치아 DNA 조사를 거치면 이 유골이 어느 인종에 속했는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의 통설은 ‘발해 지배층은 고구려인이고 피지배층은 말갈인’이라는 것이지만 “당시에 ‘말갈인’이란 중국에서 낮춰 부르던 말로, 발해의 주요 구성원은 고구려인이었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된다.

 

◆정확히 어느 때 사람인가=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부장품 등을 측정한 결과 서기 830~840년에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이 시기는 발해의 전성기인 10대 선왕(宣王·818~830)과 11대 왕 대이진(大?震·831~857) 때다.

당시 발해는 연해주 흥개호(興凱湖) 부근 정복사업을 펼쳐 여러 부족을 복속시켰다.

 

◆연해주를 정복했던 발해 무인의 기상=발해 고분 중 처음으로 창검과 갑옷 조각이 발견됐다.

정 교수는 “발해 무인들이 철제 갑옷을 입고 세련된 모양의 창과 짧은 검, 대도(大刀), 활과 화살로 무장을 한 기병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길이 40.5㎝의 검(劍)은 예봉과 날카로운 날을 가지고 있어 적을 살상하기에 매우 적합한 무기였고 육박전에서도 대단히

능했음을 말해주며, 함께 출토된 휴대용 숫돌은 무장을 경량화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동북공정에 대한 실증적인 대응”=이번 연해주 발해 고분의 본격적인 발굴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옛 발해 솔빈부

(率賓府)가 있던 이곳에서 지금까지 석실분과 토광묘 17기에 대한 조사가 끝났다.

정 교수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역사는 중국의 주요 왜곡 대상 중 하나이며, 이곳에 대한 발굴조사야말로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실증적인 작업”이라고 말했다.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