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상고사,홍산문화

[스크랩] 신화로 포장된 지나국의 3황 5제들은 모두 고대 밝땅(배달) 한국인

설레임의 하루 2013. 5. 10. 00:12

 

[자료]마고.환국 문명을 계승한 신시 배달국

 

 

 

 

 

 

 

신시 배달국에서 나온 지나족 왕통의 계보(혈통)

 

 

*고시씨는 신시의 3대 성씨(치우씨.고시씨.신지씨) 중 하나로 농업과 공업을 크게 일으켜

우리가 농사나 건축할 때 감사의 표시로 술을 뿌리면서 외치는 '고시례'님을 의미한다.

 

고시씨는 주로 한반도지역으로 남하하여 농경문명을 크게 일으켰으며,

일부가 지나지역으로 이주하여 지나사의 주역이 되었다.

 

지나사의 실체

유전학적으로 북상한 동남아인들인 하족과 만주에서 이주해 온

화(배달족)이 황하상류지역에서 결합하여 이루어진 지나족의 시조로

알려진 공손헌원으로부터 소호(슈메르족), 전욱, 제곡, 요임금, 순임금과 그 뒤를 이은

하나라의 주임금, 상(은)나라의 탕임금,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은 모두 100% 동이족 혈통이다.

고대로부터 지나인들은 우리 민족을 ‘동이족’이라 불렀다.

'중국'이란 국호도 단군조선에서 지어진 것이다.(공자 7대후손 공빈의 자백내용)

 

지나국 고전 <초서>를 보면 ‘황제(黃帝)는 백민(白民)에서 태어나고… 

그는 동이(東夷)족에 속한 사람이다’ 라 기록하고 있다.

또 <맹자>와 사마천의 <사기>에는 ‘순임금은 동이인(東夷人)이다’, 라고 전한다. 

결론적으로 지나국의 고대사는 바로 우리 배달-조선민족이 직접 현지에서 개척하여

나라를 건설한 창업의 역사이다.즉, 지나사는 바로 우리 배달 조선민족의 역사이며,

오늘날 지나국은 한민족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14대 자오지 환웅천제(慈烏支, 109, B.C.2706, 일명 치우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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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성 화원현의 치우천자 동상

 

 

              

치우천황 누구인가? 

 

동방 해민족의 고대사가 송두리째 뿌리 뽑힌 지난 2천여 년의 세월속에서 잊혀졌지만,

치우는 바로 동방 배달국을 다스리면서 당시 우리의 영토를 가장 넓게 개척한 배달의 14세 자오지 환웅천황이다.

병법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다.

 

당시 염제 신농씨 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8대 유망이 쇠퇴의 길을 걷자,

 치우천황은 천하(지나땅)을 확실하게 배달국의 지배권에 두기 위하여

신시를 백두산 지역에서 지나땅으로 천도하고 서방으로 출정하여

모든 제후들을 정벌하고 유망의 수도를 함락시켰다.  이때 서토족의 우두머리였던

공손헌원은 배달국의 천황이 되려는 야망을 품고 지나지역의 배달국 제후들을 결집시켜 

 치우천황에게 대항하였다.  그리하여 동방 최초의 국제 전쟁인10년간의 '탁록 대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탁록대전 상상도 

 

10여 년간 무려 73회의 치열한 공방전이 오고 간 이 전투에서 치우천황은

쇠로 만든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연기를 피워 시야를 가리는 연막탄 작전을 사용했다. 

이 연막탄 술법에 대항하기 위하여 헌원은 지남차를 만들어 싸웠다 한다. 

당시 치우천황의 군대는 갈로산에서 쇠를 캐어 금속무기를 만들었는데 이 내용이

춘추전국시대에 기록된 [관자]에 전해져 온다. 

 

마침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은 치우천황은

그야말로 동방불패의 신화인 동방 무신의 시조가 되어

수천 년 동안 동방의 배달조선족은 물론 지나족에게까지 숭배와 제사의 대상이 되었다.

 

[사기]에 주석을 붙인 응소는 '치우는 구려(고리=코리아)의 옛 천자였다(蚩尤古天子)'라고 했고 ,

[사기정의]는 치우 군대가 '동두철액', 즉 '금속 투구를 머리에 쓰고 큰 쇠뇌 등

각종 병장기를 갖추고 출전하여 그 위엄을 천하에 떨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역사의 진실을 조작한 지나국

 

그런데 사마천은 사기를 쓰면서 이러한 역사의 진실을 '금살치우'로 완전히 뒤집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동북아 역사와 문명의 뿌리를 황제 헌원으로 조작하고,

"지나국이 천자국으로 천하의 중심이며 주변민족은 모두 야만족" 이라는

중화사관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중화사관 즉, 소중화 사대주의 발원의 시작이다.

 

 

승자와 패자가 뒤바뀐 탁록 대전

 

한국과 지나국의 고대사를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날조한 기록상의 첫번째 인물은

2100년 전 한나라 무제(BCE 141~BCE 87) 때의 사관, 사마천(BCE 145~?)이다. 

그가 왜 해민족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는지는 당시의 시대 배경을 살펴보면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북방 흉노족을 정벌한 한 무제는 동북아 전역에 한나라 군현을 설치하여 명실상부한 중화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심을 품었다. 

 

그리하여 위만조선(BCE 194~BCE 108)을 멸망시키고 이어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BCE 239 해모수가 개국)의 영토까지 넘보았다. 그러나, 혜성처럼 나타나

의병 5천명을 모아 격퇴시키고 부여5대 단제에 즉위한 동명왕 고두막 한(칸)때문에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이 같은 시대 배경 속에서 사마천은 중국 25사의 첫머리인 [사기]를 편찬했고, 

그 첫 번째 왜곡작품의 상징적 문구가 [오제본기] 서두에 나오는

'금살치우(치우를 사로 잡아 죽였다)'이다.

 


 
   배달국(九黎) 강역도 : (기원전 3897년 개국)

 

 

백두산에서 일어난 신시배달국 환웅 계보 (18대, 재위년수 : 1,565년)

 

1대 거발한 환웅(居發桓, 94, B.C 3897, 120세, 일명 배달 환웅)
2대 거불리 환웅(居佛理, 86, .C.3803, 102세)
3대 우야고 환웅(右耶古, 99, B.C.3717, 135세)
4대 모사라 환웅(慕士羅, 107, B.C.3618, 129세)
5대 태우의 환웅(太虞儀, 93, B.C.3511, 115세)
6대 다의발 환웅(多儀發, 98, B.C.3419, 110세)
7대 거련 환웅(居連, 81, B.C.3320, 140세)
8대 안부련 환웅(安夫連, 73, B.C.3239, 94세)
9대 양운 환웅(養雲, 96, B.C.3166, 139세)
10대 갈고 환웅(葛古 또는 독로한(瀆盧韓), 96, B.C.3070, 125세)
11대 거야발 환웅(居耶發, 92, B.C.2970, 149세)
12대 주무신 환웅(州武愼, 105, B.C.2878, 123세)

13대 사와라 환웅(斯瓦羅, 67, B.C.2773, 100세)
14대 자오지 환웅(慈烏支, 109, B.C.2706, 일명 치우천황, 151세)
15대 치액특 환웅(蚩額特, 89, B.C.2597, 118세)
16대 축다리 환웅(祝多利, 56, B.C.2453, 99세)
17대 혁다세 환웅(赫多世, 72, B.C.2452, 97세)
18대 거불단 환웅(居弗檀, 48, B.C.2380, 일명 단웅(檀雄), 82세) 

 

 

 

 

 

 

 밝땅국을 개국하신 초대 커발환 환웅천제께서는 환국 말기인 약 6천년 전 환국의 마지막 환인천제인  지위리 환인으로 부터 명을 받은 환웅(桓雄)께서 정통의 증표인 천부(天符)와 인(印)세 개를 전수받아  풍백, 우사, 운사를 비롯한 문명개척단 3000명을 거느리고  동방 태백산(백두산)아래 신시(神市)에 와서 토착족인 웅족과 호족을 통합하여  밝땅(배달)국을 건국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동물이 아닌 토템사상에 의해 부족명를 나타낸 것임/웅족은 함께 살았으나 호족은 결별하였다는 내용이 상징적 언어인 단군신화로 축약되어 있다.단군신화의 역사성은 곰족이 살았던 홍산지역에서 발굴된 환웅과 곰녀상에서도 입증된다.]

 

     이때 환웅천제는 신교 신앙을 기반으로 백두산지역인 신시에서 배달나라를 일으키고, 백성에게 천경신고(天經神誥: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치고  삼신(三神) 사상으로 백성을 교화하였습니다.

 

이러한 삼신사상은 압록강지역에서 고리국을 개국한 고추모의 개국훈시에도 잘 드러나 있다.("사람은 삼진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으니 능히 삼신을 대신한다.")

 

 

 

 

                천부경

                                                  

 

 

배달 환웅천황의 가르침

(환단고기 태백일사 - 소도경전본훈)   


일신강충 - 하나님이 참마음을 내려주셨으니
성통광명 - 너의 본성이 광명을 통하게하라
홍익인간 - 인간세계를 널리 이롭게하고
제세이화 - 신교의 삼신진리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라 

이로써 상고시대 동방 한민족사의 최초의 도시국가인 제정일치의 신시(神市)를 열고

민족사의 첫 기원을 열었다. (5903년前, 2006년 기준)

 

                           한민족의 정기가 서린 민족의 영산 - 태백산(백두산)

단군조선 건국이념으로 잘못 알고 왜곡된 채 세뇌되어 온 홍익인간, 재세이화, 광명개천의 
3대 건국이념은 본래 환국의 환인천제께서 환웅에게 내려 주신 배달국 건국이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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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지금의 개천절(음력 10월 3일)은 단군조선 건국일이 아니라 신시배달국 건국일이다.
따라서 환웅천제는 인류 시원 문명국가인 환국의 정통성을 그대로 계승한 해민족 적통 장자족이다.


환웅은 해남자라는 의미란 뜻이며.

배달은 하늘의 광명이 비친 땅이란 뜻이며,

신시란 신의 도시란 뜻이다.


환웅천제께서는 환국의 종통을 계승하여 친히 제단을 쌓고

삼신께 천제를 올렸으며 삼신의 신교로써 백성을 다스렸다. 

 

우리 민족을 배달 민족, 배달의 후예라고 일컬어 온 것은  
단군조선 이전에 존재했던 환웅의 배달국 신시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월드컵을 통해 크게 알려진 ‘치우천황’이 배달국의 제후로 배달국의 황권에 도전한

공손헌원과 10년간 전쟁을 벌여 백전백승하여 굴복시킨 배달국 14대 환웅천황이며,

인류문명의 시조인 태호복희씨, 의학의 시조인 신농씨 등 지나인인들이 신화로 모셨던

인물들이 사실상 모두 배달국시대 실존했던 우리의 선조들인 것이다. 

 

 

 

배달국 시대의 주요인물과 업적

 

 

태호복희太昊伏犧 (BCE 3528 ~ 3413): 역사상 최초로 우주관 정립

 

  배달의 동방 9족(九夷) 가운데 풍이(風夷)족 출신으로

  인류역사상 최초로 풍씨 성(姓)을 썼음.

 

「태백일사」의「신시본기」의 기록에 의하면

  제5대 태우의 천황의 12대 막내아들임
 ‘태호’는 복희의 호이며 ‘크게 밝다(대광명)’는 뜻임.

 

송화강에서 하도(河圖)를 계시받아 태극기의 팔를 최초로 그으신 분임

우주의 변화원리를 음양논리로 처음 밝혀 역철학(태극·음양·오행·팔괘)의 창시자가 됨

 

 

 

             복희팔괘

 

  

따라서 주역은 중국이 아니라,

바로 우리 민족에서 시작된 것이다.

 

뒤에 역학을 계승 발절시켜 나간 성인들이문왕, 주공, 공자, 소강절, 김일부 인데,

모두 동이족 혈통출신이다.

 

주역이라 불리게 된 것은 복희 8괘가 후일 신농씨를 거쳐 주나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태호복희의 하도 : 하도는 상생의 순환도

 

                                                   

                                                                                      

 

 

 

 

 

 

 

 

 

 

 

  염제신농

 

 

배달국 제8대 안부련 환웅의 신하로서 웅씨족의 후손이었던 소전(少典)의 아들임.
중국 섬서성 강수(姜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성을 강(姜)씨로 정함.

 

풍씨 성이 15대에서 단절되어 염제신농의 강씨 성姓이 현존하는 인류최초의 성씨가 됨
쟁기와 보습을 처음 만들어 경농을 시작함.

 

백가지의 약초를 맛보아 동양의학을 창시하여 경농과 의학의 창시자로 불림

즉 그는 중국의 농업 ·의약 ·음악 ·점서(占筮) ·경제의 조신(祖神)이며,

중국문화의 원천으로 알려져 있다.

 

 

황제헌원

 

파일:Yellow Emperor.jpg

염제신농의 아버지인 소전의 후손 지파중에 공손公孫이라고 있었는데

공손의 후손중에 황제헌원(BC 2692~2592)이 나왔다.

 

(소전少典(염제신농의 아버지) → 공손씨公孫氏 (소전의 후손) → 황제헌원)

"황제(黃帝)는 백민(白民)에서 태어나고...

그는 동이東夷족에 속한 사람이다." -중국: 초사-

 

 

제14대 자오지 치우천황(BCE 2706 ~ 2598): 배달문화의 최고 전성기

- 도읍을 청구(산동반도에 소재)로 옮김

 

중국의 하북, 하남, 산동, 강소, 안휘, 절강설까지 영토를 크게 확장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동방을 대통일함

중국의 시조로 알려지고 있는 황제 헌원(기원전 2692~2593년)과 그 유명한 탁록(하북성 소재)에서

10년간 73회의 전투를 벌여 마침내 그를 사로잡아 신하로 삼음.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치우천황의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했고, 그를 무신(武神)의 원조로 섬기게 됨.

한고조 유방도 무신의 원조(兵主)인 치우천황에게 제사지낸 후 군사를 일으키며, 항우에게 이긴 뒤에는

치우천황의 사당을 장안(지금의 서안)에 짓고  제를 올리고 공경함.

 

당시 치우천황의 국사(國師)인 자부(紫府) 선사는 황제헌원에게「삼황내문」을 전하고

창힐에게는 문자를 가르쳐 줌으로써 한족의 황하문명의 뿌리역할을 함

신교의 대도를 전수받은 황제 헌원은 ‘황노학(黃老學)’ 이라 불리는 도교의 시조가 됨

 

 

결론적으로 위대한 우리 한민족은 

 

인류 최초의 시원역사인 환국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여

신시 배달국을 열어 동방문명의 뿌리가 되었으며,

중국 한족이 그토록 자랑하던 황하문명의 모태가 되었던 것이다.

소위 발해연안문화인 홍산문화, 요하문화, 우하량문화가 그 확실한 증거다.

 

이 배달국을 이어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으로 국통맥이 이어져 한민족 상고문화의 최고 전성기인

47대 단군(2,096년)의 찬란한 역사가 펼쳐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국 한족과 일본에 의한 상고역사의 왜곡으로

이러한 우리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리고 자기 정체성을 정립하지 못하여 

한민족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안타깝고 서글픈 역사현실인가!  

 

 

 

  

 

 

 

 중국의 홍산문화 충격 고고학!  [동영상]China's History Distortion

 

 

 

홍산문화를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은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였습니다.

1906년 적봉 일대 지표조사를 하던 중 수많은 신석기 유적과 적석묘 등을 발견했는데

동북지방과 만주, 한반도 일대에서만 발견되는 무덤 형태였습니다.

 

1955년 이를 ‘홍산문화’로 이름 붙였는데 이후 1982년 요녕성 뉴허량(牛河梁)에서도 같은 유적이 대거 발굴되자

각국 언론들은 ‘5천 년 전 신비의 왕국’이라며 대서특필 했습니다. 이 일대는 현재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황하문명보다 앞선 기원전 3천500년경으로 추정되는 홍산문화는

통상 청동기 시대에나 출현 가능한 분업화가 이뤄진 국가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특히 가면과 玉(옥) 장식 등에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대거 발견돼 국내 학자들은 곰 토템을 지닌 웅족과

고조선(청동기 시대) 이전 한민족 원류 중 하나인 배달국(신석기 시대)이 자리했던 곳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홍산문화는 단군조선 건국의 토대일 가능성이 높은 유적입니다.

특히 비파청동검이 가장 많이 출토된 조양지역이 단군조선이 개국된 지역이라 봅니다.

 

 

<홍산문화 발견의 위치와 파장>

 

황하문명보다 고대국가를 먼저 형성시킨 문명이 요녕에서 발견되었는데 발해만 북쪽에서 신석기 문명 중 가장 주목할 문명이 홍산문화입니다. 이 문명의 발견으로 중국은 황하중심 문명전파론을 철회하게 되었으며 '다중심문화론'을 인정하고 산동에서 발견되는 북신문화,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가 바로 이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론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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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홍산문화가 바로 한(韓)민족의 나라인 고조선의 중심지로 인정되는 요녕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한국학계의 일부에서도 홍산문화를 보고 고조선이 실제로 BC. 2333년에 건국이 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부근에서 발원한 부여와 고구려의 역사 또한 고대 황화 중심의 한(漢)족이 아닌 환(桓)족..즉 한(韓)민족에 가깝다는것이 중국 사학계의 터부시 되는 고민입니다. 이 문명은 또한 강단 사학계를 '반도중심의 식민사관'이라 비판했던 사학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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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는 황하문명보다 먼저 고대국가를 형성한 유적으로 성곽과 왕궁터가 발견되므로 고조선의 건국전에 이미 고대국가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사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에서 나오는 환국이 바로 홍산문화(BC.4500~BC.2500)이고 홍산문화는 흥륭와문화,

신락문화(BC.6000~BC.5000)를 기반으로 세워졌다는 주장이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매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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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는 요녕지역과 내몽고 동부지역에 넓게 전개된 BC.4,000년의 신석기 중기에 해당하는 2단계 신석기문화로 인식되고 있으며 사해문화와 연속고선문계 토기와 세석기 등을 융합하여 한 단계 발전하여 전개되었고 그 후에 하가점-하층문화에 연결되며 중국 황하유역과 산동반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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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족(東夷族)의 활동영역을 문헌으로 보면 하북성 동북부와 산동지역 그리고 양자강 하류지역인데 산동지역에서 가장 앞서는 신석기 유적은 북신문화이고 북신문화는 BC.5000년전까지 소급되며 황하의 자산-배리강문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고 BC.4500년경에 이 지역에 있었던 대문구문화와도 직접적인 연원관계에 있습니다. 대문구 문화는 하남성 서쪽의 앙소문화와 대비되는 문화로 동이계(東夷系) 소호씨(슈메르족) 문화이고 이후의 용산문화에 연결됩니다.

 

  

<홍산문화 특징>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가 묘장법인데 죽은 사람의 장례의식은 오랜 기간 변하지 않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홍산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석묘계(石墓系) 돌무덤인데 돌을 쌓아 묘실을 구성하는 적석총(돌무지무덤)과

돌판을 잘라 묘실벽을 짜는 석관묘(돌널무덤)가 대능하 상류지역 요녕성 우하량유적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반면에 중국의 화하족은 땅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시신과 유물을 안장하는 토광묘가 유행하였고 주(周)나라시대에 들어서  나무로 관을 짜서 묘실을 만드는 목관묘가 유행합니다.

 

 

역사에서 홍산문화와 동일한 석묘계의 묘장법을 채용하고 있는 나라가 고조선이며 고조선의 전단계인 홍산문화는

고조선의 선조들이 이룩한 문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돌을 이용해 구조물을 축조하는 방식이 고조선 이후 부여, 고구려 그리고 백제에도 계속해서 계승되는 한(韓)민족 고유의 풍습이기도 합니다. 이 곳 홍산문화는 중국의 사서에 나오는 헌원과 전쟁을 했던 치우의 근거지로 지적이 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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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과 결전을 벌이며 하남, 산서와 산동일대를 개척하여 청구국을 세웠다는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홍산문화 이후 하가점-하층문화(BC.2000~BC.1300)가 그 지역에 광범하게 확산되는데 홍산문화는 하가점-하층문화로 이어졌고 하가점-하층문화는 고조선의 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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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는 소하연문화를 거쳐 하가점-하층문화로 연결되는 것은 지나국 학계에서 공식화 되었습니다.

더구나 소하연 문화에 이어지는 하가점-하층문화, 구체적으로 풍하문화에서는 고조선의 건국 연대보다 조금 앞서는

BC.2400년경으로 보이는 청동기 유적이 발굴되는데 출토된 유물을 보면 화살촉, 칼, 창 등도 발굴되어

BC. 2333년 고조선 건국의 신빙성을 높여 주고 있습니다.

 

이 요동, 요서일대에서 발굴된 청동기 유물은 황하유역에서 발굴되는 청동기 유물보다 연대가 앞서며

중국 동부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홍산문화 의미>

 

홍산문화의 발견은 한국과 중국의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파장이 큽니다. 중국의 학자들은 지금까지 중국의 앙소문화와 대비되는 문화로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로 보았는데 홍산문화를 발견한 후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의 주인공으로 홍산문화를 듭니다.

 

즉 홍산문화의 주인공이 동이족이므로 한(韓)민족의 선조들이 중국의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하북, 산동의 동이족이 한민족의 선조였다는 근거가 됩니다.

 

또한 북신문화, 대문구-용산문화, 악석문화로 이어지는 [산동문화]와 흥륭와문화, 신락문화, 홍산문화, 하가점-하층문화로 이어지는 [요령문화]의 주인공이 한(韓)민족입니다. 그래서 중국학자들도 산동문화의 주인공인 동이족이 동북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느 민족인지 밝히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전백찬 같은 중국학자의 일부가 개인적으로 고조선(古朝鮮-辰國)이 동이족의 중심지였다고 주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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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는 고조선의 선조가 일으킨 문명이고 그 당시에 화하족은 하북성과 산동성을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홍산문화가 주인공이 동이족이라는 것은 중국학계도 인정하고 있고 그 동이족이 고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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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학계에서도 고조선의 중심을 평양에서 요서,요동의 요녕지역으로 보고 있으며 한(韓)민족의 기원도 요녕지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중국문화에 중요한 획을 그었던 홍산문화이고 그 주인공은 동이족이 됩니다. 이 홍산문화의 주인공이 고조선을 건국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중국이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홍산문화가 본격 발굴된 지 3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중국은 서남공정, 탐원공정 등과 함께 중국을 제국화하고, 중국 소수민족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 조작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그 중에서도 홍산문화 유적에 깜짝 놀라 동북공정을 본격 추진하게 됩니다.

홍산문화 유적 주변에 도로를 내고, 수몰시키고, 나오면 일부러 다시 묻어 버리는 등 행위를 일삼는다고 합니다.

옥저룡은 홍산문화의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용처럼 생기기도 하고, 돼지같이 생기기도 해서 옥저룡이라고도 하고,

곰같이 생겨서 옥웅룡玉熊龍으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 문화는 고조선 이전의 배달국 문화 유물입니다.

그렇다고 할 경우 환웅과 웅녀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옥웅룡  


 

중국에서는 이것을 자기네 유물인양 아주 크게 조각을 해 놓았네요. 미국과 대결하려면 소프트파워도 키워야 하고, 자국의 우월성을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하는데 홍산문화는 아주 제격입니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보다 시기가 빠른 유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어서 고고학 역사를 다시 써야할 판이거든요.

 

 

                          사진에 보이는 산이 홍산입니다   


한자로 표현하면 적봉赤峰, 붉은 봉우리, 홍산, 같은 말이죠. 예전에는 저곳에 물이 없었는데, 댐을 만들면서 지금은 수몰되었습니다. 수몰되기 전에 유물을 발굴하기는 했는데요. 더 있을지도 모를 유물을 이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술병입니다. 위 사진에 있는 옥웅룡과 꼭 같이 생겼죠?

 

이렇게 유물은 숨겨지고, 자기네 유물로 만드는 작업들이 하나둘 착수되고 있네요.

 

옥웅룡이 술 브랜드로 만들어졌습니다. 조양시에서 나온지 얼마 안 된 최고급 고량주라고 합니다.
옥저룡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주로 측면 사진이 많이 돌아다닙니다. 이 술병 덕분에 옥웅룡 정면 모습도 알 수 있게 되었네요.

 


술병 태그에 홍산문화의 또 다른 대표 유적인 우하량 제천단이 함께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에 보면 붉은 글씨로 세로로 중국홍산문화표지식품이라고 표기를 해 놓았습니다.

 

홍산문화를 알리는 대표 식품이라~~ 그것도 홍산문화가 아니라 중국 홍산문화... 완전히 자기네 것이라고 대 놓고 자랑질입니다. 씁슬합니다.



 


이렇게 빼앗기는 우리역사를 보면서도 중국에 큰 소리도 못하고, 항의다운 항의를 제대로 못하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중국이 망하면 경제 때문에 문제고, 안 망하고 계속 국력을 키우면 더 큰 문제고... 이러다가 고래 싸움에 세우 등터진다고, 미국과 중국 틈바구니에서 애매하게 우리가 피해를 볼 가능성도 많아질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중국은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국가입니다.

 

 

 

홍산문화시대 (B.C4100-2900)의 다양한 곡옥(曲玉;Pig Dragon)들..

 

曲玉,玉龍,Pig Dragon,Jade Dragon등으로 불리며, 반드시 물고기와 용의 형상만을 한것은 아니다. 그 재질과 크기도 다양하다.

 

 

 

중국 한족의 기원이 인류 4대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인 황하문명이라고 여태 배워왔고 중국인들도 그렇게 알아왔다.

그러나, 요하문명이 그 보다 1000년 이상 더 앞선 것임이 밝혀져 중국역사학계뿐만 아니라 세계는 충격에 빠졌었으나

이제는 이 홍산문화마저도 자기네들의 중화문명권으로 우겨넣으려는 작업이 끝나버렸다.

 

요하는 만리장성 북쪽에 위치한, 몽골 & 동이족이 활동하던 곳이다. 고조선의 정확한 위치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요하문명권에서 발견되고 있는 유물들은 (비파형 동검, 다뉴세문경, 그리고 곡옥) 한민족의 선조가 이들과 같은 문화권이었으며 요하상류에서 동남쪽으로 이동했거나 비슷한 시기에 같은 문화공동체를 이룬 증거라는 주장이 제시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B.C. 4000년이면, 서양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지창조하던 때 아닌가? 우주의 역사가 기껏 6천년 밖에 되지않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앞뒤가 맞지않는 부분이 많을뿐만 아니라, 자기네 역사와 문화는 등한시 한 채 중동의 한 쪽 구석 사막지방에서 유래된 종교를 자기 것 인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출처 : 삼태극
글쓴이 : 코리아 대칸 윤복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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