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역사스페셜·추적

‘1분 1촌을 살펴 강토를 헤아리네’ 측 우 기

설레임의 하루 2012. 11. 2. 00:45

  1분 1촌을 살펴 강토를 헤아리네 - 측우기  
방송일: 20120823  

‘1분 1촌을 살펴 강토를 헤아리네’
 측 우 기


 ■ 방송 : 2012. 8. 23 (목) 22:00~22:50 , KBS 1TV
 ■ 연출 : 양차묵 PD 
 ■ 글?구성 : 최미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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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을 다스리고자 했던 조선의 독창적 발명품

‘측 우 기’

세계 최초로 실시된 전국적 규모의 우량 보고 시스템

조선 왕조가 남긴 140년간의 우량 기록과

측우기 설계의 우수성을 살펴본다 ! 

 

 

■ 측우기 탄생 배경 ? 농업국가 조선의 절체절명, 봄 가뭄

벼농사를 근간으로 하는 농업국가 조선, 하지만 조선에는 오래 된 고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지독한 봄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 현상!
하늘이 주는 최대 재앙이었던 봄 가뭄은 농민들의 심정을 애타게 하기 일쑤였다.
따라서 농사철에 내리는 비의 양은 위정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 충남 예산 지역의 봄가뭄                       ▲ 모내기 하는 농민들

게다가 고려 말 전파된 신농법 ‘이앙’으로 가뭄의 피해가 확산되고 흉작의 규모는 더 심각해진다. 노동의 절감, 생산성 향상이라는 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앙을 금할 수밖에 없었던 조정은 물 관리 임무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고 이에 기상 변화를 파악하고자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 기후에 대한 조선의 도전, 측우기
 
갈수록 심해지는 봄 가뭄, 조정의 근심은 깊어져만 갔다.
측우기가 없던 시절, 조정은 비가 올 때마다 흙의 깊이를 측정하여 우량을 관측하는 ‘우택’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토양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우량을 일률적으로 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비 온 뒤 그릇에 고인 물의 깊이를 재는 도구’ 라는 세자(문종)의 아이디어에 착안하여 1441년 8월, 빗물의 양을 수치로 계측하는 첫 시도를 하게 된다. 이후 수차례의 실험과 수정 끝에 이듬해 1442년, 측우기의 이름이 실록에 정식으로 기록되고 그 크기 역시 구체화 된다. 세계 최초의 독창적인 천문기상 관측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측우기 발명 이전 우택 방법                 ▲ 측우기 제작 과정 재현

원리는 단순해보이지만 그 발상과 설계를 살펴보았을 때 측우기의 과학사적 의의는 충분하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우량계의 크기와 당시의 측우기 크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인공적으로 조성한 측우대의 설치 등은 설계의 과학성을 입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17년 일제강점기 조선의 기상 업무를 총괄한 와다 유지의 <조선고대관측기록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의 측우기가 세계 최초의 것이며, 독창적인 천문기상 관측 유물임을 밝히고 있어 그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 조선에서 우량관측 제도를 전도에 시행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71년 전의 일로, 구주 로마보다 200년 앞서도 에도보다 280년 이르다는 사실은 실로 경탄하는 수밖에 없다 ’
<조선측후사략 中 >



■ 강우량 관측과 측우 제도의 운영


  
▲   1442년 우량 관측망 지도                        ▲  금영 측우기

1442년, 호조에서는 전국 8도는 물론 지방의 군현 총 334개소까지 동일한 규격의 측우기를 보급, 전국적인 우량 관측망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사실 측우기의 발명뿐만 아니라 잘 짜여진 관측 제도와 오랜 기간의 강우량 기록 또한 주목할 만한 우리의 유산인 것이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는 과정에서 측우 제도는 무너진 듯 했으나 영조의 명령으로 복원되었다. 특별히 정조는 우택 보고에 큰 관심을 기울였고 7년가량 연간 총 우량을 비교 분석하게 했다. 이처럼 각 시대의 조정이 기울였던 우량에 대한 깊은 관심과 시도를 통해 현재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긴 강우량 기록 보유국이 될 수 있었다.



■ 현존하는 측우 기록의 의의  

 ▲ 측우기 관련 기록이 남아있는 미암일기      ▲ 미암일기를 살펴보는 연구진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이 남긴 방대한 기상관측 유산은 오늘날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조선왕조가 남긴 140년간의 꾸준한 우량 기록은 제도적 규율을 갖춰 관측된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기상을 알려주는 데이터로써 신뢰도가 높다고 한다.
<역사스페셜>에서는 인류가 경험한 가장 오래된 우량 계측기인 측우기의 역사와 함께 세계 최초로 시행된 조선의 측우 사업을 소개하고 그 가치를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