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역사스페셜·추적

<발굴 추적> 50년 만에 찾은 훈장

설레임의 하루 2012. 11. 2. 00:33

 <발굴 추적> 50년 만에 찾은 훈장  
방송일: 20121101  

<발굴 추적> 50년 만에 찾은 훈장

■ 방    송 : 2012. 11. 1.(목) 22:00~22:50 (KBS 1TV)
■ 진    행 : 한상권 아나운서
■ 글, 구성 : 박성지 작가
■ 연    출 : 이원혁,장통우,신재룡 PD (TV유니온)

일제 강점기, 한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푸른 눈의 이방인.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라 불렸던 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

그는 왜 한국 독립운동에 투신했는가?
영국, 중국, 일본, 3개국에 걸친 3년의 끈질긴 추적

그에게 추서된 ‘건국훈장’이 반세기만에 전달되기까지의 과정과 그의 숨겨진 진실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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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루이스 쇼 (아일랜드계 영국인)

3년간의 추적!! 그리고 50년 만에 수여된 훈장

■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 조지 쇼! 그는 누구인가?
중국 단동에서 ‘이륭양행’이라는 무역회사 겸 해상운수회사를 운영하던 아일랜드계 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
상해에 임시정부가 세워지던 1919년,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이륭양행’ 2층을 임시정부 비밀 정보국으로 제공한다.

더불어 백범 김구, 동농 김가진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지사들의 탈출을 돕는 한편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폭탄, 비밀 정보 등의 운반에 앞장서며 우리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전설적인 인물’로 여겨진다.
이에 일제는 영국과의 외교적 마찰까지 불사하며 조지 쇼를 내란죄로 체포하기에 이르는데...

위험을 무릅쓰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나라 독립운동에 헌신한 조지 쇼는 과연 누구인가?
푸른 눈의 이방인, 조지 쇼의 한국 독립 투쟁기를 추적해 본다.


▲ 이륭양행을 통해 상해 임시정부로 탈출한 동농 김가진(대동단총재), 백범 김구(임시정부 주석)
▲ 동아일보 1920. 8. 11 [조지 쇼 체포]


■ 영국, 중국, 일본에 걸친 3년간의 추적! 50년 만에 수여된 훈장
1963년, 정부는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한 공로를 인정해 조지 쇼를 ‘건국공로훈장단장’에 추서했고 이 푸른 눈의 이방인은 대한민국 국가유공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라 불릴 만큼 모든 것이 베일에 쌓여있던 그의 행적은 물론 후손들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제작진은 영국, 중국, 일본에 걸쳐 3년간 끈질긴 추적을 진행한다. 그리고 마침내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조지 쇼의 손녀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이를 통해 조지 쇼의 훈장은 올해 8월 16일, 추서된 지 반세기만에 드디어 후손의 품에 돌아가게 되었다.

 

▲ 2012년 8월 16일, 국가보훈처장으로부터  훈장을 받는 조지 쇼의 손녀, 마조리 허칭스   
▲ 조지 쇼의 손녀 마조리 허칭스와 증손녀 레이첼 새시


■ 임정 비밀 아지트 <이륭양행>의 새로운 위치 제기
독립투사들에게 ‘철통 요새’로 불리며 임시정부와 국내를 연결해주는 안전통로이자 독립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임정 교통국이 소재한 조지 쇼의 ‘이륭양행’

건물.
그런데 제작진은 취재 도중 ‘이륭양행’을 둘러싼 새로운 문제를 확인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륭양행’의 위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중국 길림성 당안관(국가기록 보관소)을 찾은 제작진은 그동안 전혀 공개된 적 없는 ‘이륭양행’에 대한 새로운 자료들을 발굴했다.

이를 통해 이륭양행의 위치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한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던 이륭양행 창고, 그리고 독립투사들의 은신처로 제공된 조지 쇼의 집이

새롭게 밝혀진다.
 
 
▲ 기존에 알려진 임정 교통국(이륭양행) 건물  ▲ 새롭게 제기된 임정 교통국(이륭양행) 건물



새롭게 발굴된 조지 쇼의 항일 행적과 놀라운 가족사 공개!!

■ 추적 발굴! 사라졌던 조지 쇼의 행적, 드디어 밝혀지다!
1920년, 내란죄 혐의로 구속되었던 조지 쇼는 영국 정부의 강력한 항의로 수감 5개월만에 풀려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이지 석방 이후, 그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일본 외무성을 찾은 제작진은 외교사료관 문서 속에서 조지 쇼의 이름을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일제는 조지 쇼의 독립운동 지원을 막기 위해 대안기선공사라는 해운회사를 설립해 탄압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새롭게 발굴한 기록들을 통해 조지 쇼가 석방 후에도 변함없이 항일 활동을 계속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철저히 베일에 가려있던 조지 쇼의 석방 후 행적을 발굴 추적한다.

 

▲ 일본 외무성에 보관된 방대한 양의 영국인 ‘쇼’ 관련 문서들 (극비문서 포함)
▲ ‘쇼’의 비호 아래 있던 불령선인 (일제에 불만을 품은 조선인) 체포 기사


■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 3代에 걸친 일본과의 인연
일본 제국주의를 극도로 싫어했으며 평생을 항일운동에 바쳤던 조지 쇼는 그러나 놀랍게도 일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피의 인연을 맺고 있었다.
조지 쇼의 아내는 일본인 여성 ‘사이토 후미’.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중국인’으로 알려져 있었던 조지 쇼의 어머니가 사무라이 출신의 일본인임이 취재를 통해 밝혀졌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쇼의 아들 역시 일본 여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결혼증명서를 통해 밝혀졌다.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일본 여인과 결혼하고 일본 여성을 며느리로 둔 조지 쇼.
결국 한국 독립운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쇼’ 집안의 남자 3대가 모두 일본인과 결혼한 것이다.
더구나 조지 쇼의 동생과 일본인 아내 ‘사이토 후미’는 남편을 도와 항일운동과 한국 독립운동 지원에 함께 동참했음이 취재를 통해 확인되었다.

 

▲ 조지 쇼의 아내 [사이토 후미]                 ▲ 조지 쇼의 어린 시절 가족사진

일제의 온갖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항일정신을 놓지 않았던 조지 쇼와 그의 가족들.
<역사스페셜>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푸른 눈의 이방인, 조지 쇼와 그 가족들을 통해 한국을 위해 헌신한 보이지 않는 영웅들을 발굴,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