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고조선(한단고기)

[스크랩] 진나라에 붙잡힌 흉노 노예들, 한반도 영남지역으로 망명

설레임의 하루 2012. 6. 4. 20:47

진나라에 붙잡힌 흉노 노예들, 만리장성 노역에서 탈출하여 마한(한반도)의 영남지역으로 망명

 

 

[삼국유사 진한조]진한(辰韓; 진한秦韓이라고도 했다)

 

 <후한서(後漢書)>에 이렇게 말했다.  "진한(辰韓)의 늙은이가 말하기를 진(秦)나라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한국(韓國)에 오자 마한(馬韓)이 동쪽 경계의 땅을 베어 주었다.  그리고 서로 부르기를 도(徒)라고 하여, 마치 진(秦)나라 말에 가까웠다.  그런 때문에 혹은 이곳을 진한(秦韓)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12개의 조그마한 나라들이 있어 각각 1만호(萬戶)나 되는데 저마다 나라라고 일컬었다."

 

또 최치원(崔致遠)은 이렇게 말했다.  "진한은 본래 연(燕)나라 사람이 피난해 와 있던 곳이다.  그런 때문에 탁수(탁水)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사는 읍(邑)과 마을을 사탁(沙瞵)·점탁(漸瞵)이라고 불렀다."(신라新羅 사람의 방언方言에 탁의 음音을 도道라고 했다.  때문에 지금도 혹 사량沙梁이라 하는데, 양梁을 도道라고도 읽는다)

 

 (辰韓(亦作<秦韓>) 《後漢書》云: [<辰韓>耆老自言, <秦>之亡人來適<韓國>, 而<馬韓>割東界地以與之. 相呼爲徒, 有似<秦>語, 故或名之爲<秦韓>. 有十二小國, 各萬戶, 稱國. 又<崔致遠>云: [<辰韓>本<燕>人避之者, 故取<瞵水>之名, 稱所居之邑里, 云<沙瞵>ㅗ<漸瞵>等.(<羅>人方言, 讀[瞵]音爲[道]. 故今或作[沙梁], [梁]亦讀[道].)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한국에 오자 마한의 동쪽 땅을 내어주었다고 했다.

 

또한 최치원 선생의 글을 보면 신라인은 본래 연나라에 살았던 사람들인데 이들이 지금의 북경의 인근에 집단 거주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그렇다면 신라인들이 무슨 일에 종사하면서 북경 근처에 있었으며 왜 한국으로 망명을 하였느냐 하는 것이다.그것은 다른 기록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梁書卷54-列傳第48-新羅<新羅>者, 其先本<辰韓>種也. <辰韓>亦曰<秦韓>, [相去萬里], 傳言<秦>世亡人避役來適<馬韓>, <馬韓>亦割其東界居之, 以<秦>人故名之曰<秦韓>.<신라>는 그 뿌리가 <진한(辰韓)>이다. [<辰韓>은 <秦韓>이라고도 하며, 서로간의 거리는 만 리이다].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진(秦)>시절 중의 노역(노예살이)을 피하여 달아난 사람들이 마한땅으로 들어왔기에, <마한>이 동쪽의 땅을 떼어주어 살게 하였고, (이들이) <진(秦)>나라 사람들이기 때문에 <秦韓>이라 불렀다. 北史卷94-列傳第82-新羅<新羅>者, 其先本<辰韓>種也. 地在<高麗>東南, 居<漢>時<樂浪>地. <辰韓>亦曰<秦韓>, 相傳言<秦>世亡人避役來適, <馬韓>割其東界居之, 以<秦>人故名之曰<秦韓>. 其言語名物, 有似中國人,...不與<馬韓>同. 又<辰韓>王常用<馬韓>人作之世世相傳, <辰韓>不得自立王, 明其流移之人故也. 恒爲<馬韓>所制. <辰韓>之始有六國, 稍分爲十二, <新羅>則其一也. <신라>는 그 뿌리가 <진한(辰韓)>이다. 땅은 <고구려>의 동남지역인데 <한(漢)>시절의 <낙랑>땅이다. <辰韓>은 <秦韓>이라고도 하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진(秦)>시절에 노역(노예살이)을 피하여 달아난 사람들이 마한땅으로 들어왔기에, <마한>이 동쪽의 땅을 떼어주어 살게 하였고, <진(秦)>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기에 <秦韓>이라 불렀다. 이들이 쓰는 말과 물건의 이름함은 중원(秦)과 비슷하였는데,....<마한>과는 같지 않았다.


신라인은 진秦나라의 북방 흉노 정벌시에 미쳐 도망하지 못하여 전쟁노예가 된 사람들로써 이들은 지금의 북경 인근에 거주하면서 만리장성 축성에 동원되어 노역에 종사하다 한국으로 탈출한 흉노인 것이다.즉, 진나라 말기에 비로서 축조되어 비교적 축성 연대가 짧은 북경지역의 만리장성은 신라인의 노역에 의한 작품으로 성의 모습이 서역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인 것이다.


[삼국사기 혁거세]삼십팔년 춘삼월 호공을 보내어 마한에 조공을 하였다. 마한왕이 호공에게 말하되,변한, 진한 2한은 우리 마한의 속국인데 요즈음에 조공을 하지않으니 대국을 섬기는 예가 이와 같은가.

 

......이전에 중원사람들이 진나라의 난리의 고초를 겪어 동쪽으로 투항해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마한의 동쪽 여러 곳에 진한인과 함께 살았다.三十八年 春二月 遣瓠公聘於馬韓 馬韓王讓瓠公曰 辰卞二韓 爲我屬國 比年不輸職貢 事大之禮 其若是乎 .... 前此 中國之人 苦秦亂 東來者衆 多處馬韓東 與辰韓雜居


김부식도 신라인은 중원에서 진나라에 의해서 중국의 변방으로 사민된 것을 삼국사기에 적고 있다.진나라의 흉노 정벌로 서쪽으로 간 무리들이 훈족으로 오늘날 헝가리가 되었고, 노예로 끌려와 만리장성의 축성에 동원된 무리들이 한국의 영남지역으로 도망 와서 국가를 이룬 것이 秦韓신라로 진한의 교체기에 축성된 북경의 만리장성은 바로 신라인의 노역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출처 : 삼태극
글쓴이 : 윤복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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