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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옛 기록 - [한국은 천제(天帝)의 나라]

설레임의 하루 2012. 5. 7. 20:51

*출처:다음카페-한국 고대사 글쓴이-한밝의 후예 |2012.04.22. http://cafe.daum.net/121315/CK3e/251 

 

 

 

 

한국과 중국의 옛 기록 - [한국은 천제(天帝)의 나라]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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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예전 글에 나왔던 내용들인데

정리의 의미로 한번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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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만주 등을 아우르던 고조선이 2천여년전 그 중앙정부가 사라지고  고조선 각 지역은 모두 독립국들이 됩니다.

이를 한국의 열국시대(원삼국시대)라 하죠.

 

그 중에 큰 나라가 북부여(北扶餘)였다 하겠는데 북부여를 창건한 해모수(解慕漱)임금은 천제(天帝)라 존칭됩니다.

 

삼국유사 북부여(北扶餘) 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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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古記)>가 전하기를  

"전한(前漢) 선제(宣帝) 3년 4월 8일에 천제(天帝)가 흘승골성(訖升骨城)에 내려왔다.

오룡차(五龍車)를 타고 도읍을 세우고 왕이라 일컫고 국호를 북부여(北扶餘)라고 하고, 스스로 이름을 해모수(解慕漱)라

했다.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부루(扶婁)라 하고 해(解)로 성씨(氏)를 삼았다.

후에 왕은 상제(上帝)의 명령으로 도읍을 동부여(東扶餘)로 옮겼다.

동명제(東明帝)는 북부여(北扶餘)를 계승하여 일어나서 졸본(卒本州)에 도읍을 정하고 졸본부여(卒本扶餘)가 되었으니,

이것이 곧 고구려(高句麗)의 시조(始祖)이다. 

 

(원문)

古記云: [《前漢書》<宣帝><神爵>三年壬戌四月八日, 天帝降于<訖升骨城>, 乘五龍車, 立都稱王, 國號<北扶餘>,

自稱名<解慕漱>, 生子名<扶婁>, 以<解>爲氏焉. 王後因上帝之命, 移都于<東扶餘>, <東明帝>繼<北扶餘>而興, 立都于

<卒本州>, 爲<卒本扶餘>, 卽<高句麗>之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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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록을 보면 천제(天帝)인 해모수(解慕漱)임금이 북부여(北扶餘)를 세웠는데 후에 상제(上帝)의 명으로 도읍을 동부여

(東扶餘)로 옮겼다 하죠.

 

예로부터 상제(上帝)는 최극존칭으로 하느님(창조주 = 천주(天主))을 뜻합니다.

하늘에서도 가장 높은 분을 뜻합니다.

신중의 신, 창조주 하느님.

 

 

상제(上帝) - 창조주 , 최고의 신(神).

천제(天帝) - 창조주 아래 여러 조물주

 

 

고대 한국 사람들이 북부여를 창건한 해모수(解慕漱)임금을 천제(天帝)라 부른 것은 한국의 임금은 [하느님(창조주)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죠.

 

중국 역사를 통틀어 천제(天帝)라 불린 임금은 없었죠.

  

해모수(解慕漱)임금이 상제(上帝) 즉 하느님(창조주)의 명을 직접 받는다 하는 것은 중국 등 어떠한 다른 나라의 간섭도

웃기는 소리라 하는 것이죠.

 

즉 한국의 일은 오로지 하느님(창조주)의 명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인식이죠.

 

상제(上帝 : 하느님)의 명으로 해모수(解慕漱)임금은 도읍을 동부여(東扶餘)로 옮기고 북부여(北扶餘) 자리에는 동명제

(東明帝 : 동명성왕)임금이 졸본부여(卒本扶餘)를 세웠고 이는 고구려의 뿌리라는 얘기이니  예로부터 한국인의 의식

속에는  [ 한국은 하느님(창조주)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는 나라다.

어떠한 외세의 간섭도 웃기는 짓이다. ]

하는 인식이 강력하게 있었다는 얘기죠.

 

후에 [광개토대왕비문]에도 다음과 같은 예기가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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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시조 추모(주몽)왕이 나라(고구려)를 창조하시었다.
북부여에서 나오셨는데 천제(하늘의 임금)의 아들(天帝之子)이시고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딸이시다.
수레를 타고 남으로 순행하시다가 부여의 엄리대수에 이르렀다.
왕이 (강)나루에 이르러 말하길

" 나는 황천의 아들(皇天之子 - 가장 높은 하늘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딸인 추모왕이다.

나를 위해 갈대는 엮어지고 거북은 떠올라라." 하니 갈대가 이어지고 거북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물을 건너게 되고 비류곡의 홀본 서쪽의 성 위에 도읍을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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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예로부터 한국의 임금은 천제(天帝)라 불리었고 따라서 한국이 다른 나라에 합병되는 것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되었고 사대주의를 한 기간은 있었어도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한번도 다른나라에 합병된 적은 없었죠.

그토록 강성했다는 원나라 역시 그 공주를 고려임금에게 시집보내기는 했지만 고려를 완전히 합병하지는 못했죠.

이는 삼별초의 저항 등 고려의 자주독립의지가 너무나 강해서 그런 것이라 할 수 있겠죠.

 

( 일본의 경우 결과적으로 우리 한국이 대륙으로부터의 수많은 압박을 막아주어 역사상 한번도 외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아본

적이 없죠.

한국이 없었으면 일본은 여러번 외국의 침략을 받았을 것이고 아마도 오래 전에 중국의 일부가 되어버렸을 가능성도

높겠죠.

한국 덕분에 일본은 외세의 혹독한 시련을 한번도 받아 본 적이 없죠.)

 

 

 

한국의 임금이 천제(天帝)로 존칭되는 것은 북부여 때보다 훨씬 더 전부터인데 산해경 등 중국 고대책들에 보면 동방의 임금

즉 한국의 임금 [천제(天帝) 제준(帝俊)] 이야기가 나오죠.

 

4천 수백년 전 요임금 시대에 하늘에 태양이 10개나 떠서 요임금의 나라가 망하게 되었을 때 요임금은 바다 건너 동쪽에

사는 천제(天帝)인 준(俊)임금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천제(天帝) 준(俊)임금은 활 잘쏘는 신하 예(羿)를 보내서 요임금

나라에 뜬 10개의 태양 중 9개를 떨어뜨리죠.

 

고대한국은 천제(天帝)의 나라 <- 관련글

 

 

이러한 기록은 한국의 기록이 아닌 중국의 기록에 나오는 얘기로이미 수천년 전부터도 중국인들은 한국을 천제(天帝)가

사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얘기이고 자신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로 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미 수천년 전부터도 중국인들은 한국을 천제(天帝)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고물론 한국인들 역시 스스로를  천제(天帝)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겠죠.

 

후에 중국이 차차 강성해지면서 고대의 기록을 차차 없애고 왜곡하여 마치 중국이 원래부터 독자적으로 생긴 문명이고

중국문명이 원조문명인 듯이 알려져있다 하겠으나   특히 21세기 들어 차차 한국이 고대문명의 원조이자 중심임이 가면

갈수록 드러나고 있다 하겠습니다.

 

 

한국이 세계 최초인 것들  <-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