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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의 쫓겨난 호랑이의 정체가 밝혀졌다!

설레임의 하루 2012. 4. 19. 08:03

 *출처:다음카페-삼태극 글쓴이-환국대형  2012.04.18   http://cafe.daum.net/mookto/GbHv/7607

                        이 글의 출처는 제 글(한국대형))입니다. http://ragwangfal.egloos.com/1676333

  

 

단군신화의 쫓겨난 호랑이의 정체가 밝혀졌다!





목차:


1. 홍산문명(황제헌원=환웅)의 형성의 주역 곰 토템족,호랑이 토템족


2. 환웅신화(=황제헌원신화)가 그려진 한나라 때의 산동 무씨사 화상석


3. 산동 무씨사 화상석은 호랑이 토템족이 홍산문명에서 밀려나 서남쪽으로 갔다고 말하며 호랑이 토템족이 '치우'라 말한다.

4. 링쟈탄 문화가 바로 홍산문명에서 밀려나 양자강(장강) 유역으로 이동한 치우족(호랑이 토템족)


5. 링쟈탄 문화가 이동하여 세운 량주 문명은 치우천황(도철 신)의 구려국(삼묘)


6. 량주문명의 도철 신(치우천황)을 숭배하는 량주인들이 북벌하여 천하를 두렵게하다.

 

7. * 결론 요약

1. 홍산문명(황제헌원=환웅)의 형성의 주역 곰 토템족,호랑이 토템족

황제헌원이 환웅이고 홍산문명임은 이미 여러차례 글을 통해 논증하였다.

황제헌원은 홍산문화(우하량 문화)의 주 지배 세력은 곰룡熊龍을 숭배하는 부족. 즉 곰 토템족이었으며 북방의 빗살무늬토기

문화권에 소속된 종족이었다.

이들은 북경 인근의 판천 일대에서 황하 중류의 염제신농의 앙소문화와 충돌하여 기원전 3500년 시기 홍산문화(우하량 문화)를

원시 국가 단계로 업그레이드시킨다.




그렇다면 황제헌원=환웅이니까 삼국유사에 적힌 환웅의 신화(단군신화)에서 환웅이 신시(神市:홍산문화)를 세울 때 곰 토템족이

주류가 되고 호랑이 토템족은 쫓겨나는 내용은 홍산문화의 고고학 발굴을 통해 증명되었는가?

홍산문화에서 호랑이 토템족이 있었던 증거는 발견되지않는다.




하지만 사마천의 사기 오제본기에

“황제가 판천(북경 근처 장가구 일대)에서 염제(염제신농)와의 싸움에 곰(熊), 큰곰, 비·휴(범과 비슷한 동물. 비는 수컷,

휴는 암컷), 추( ·큰 살쾡이), 호랑이(虎) 등 사나운 짐승들을 훈련시켜 염제와 싸웠다.” 라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황제헌원(환웅)의 홍산문화건국 초기 곰 토템족과 호랑이 토템족이 큰 역할을 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중국학자들은 황제헌원이 이런 짐승들을 토템으로 삼고 있는 족속들을 이끌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중국의 유명한 고고학자 궈다순(곽대순)은 “이런 기록으로 볼 때 황제헌원의 종족은 북방민족과 수렵민족의 색채가 짙다”고 표현했다.

즉 곰 토템족,호랑이 토템족은 모두 북방 시베리아 퉁구스 계열이나 혹은 그 혈연 비슷한 종족이거나 북방 문화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종족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시베리아 문화권에서 대표적으로 숭배하는 것이 곰,호랑이 숭배고 시베리아 문화권의 곰,호랑이 숭배에는 항상 빗살무늬토기가 같이 들어간다. 홍산문명도 빗살무늬토기를 쓰는 문명이란 점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황제(黃帝)를 유웅씨라 불렀다(又號有熊氏: 곰씨)”는 기록이 있고, 서진(西晋·AD 265~316년) 때 학자

황보밀이 쓴 제왕세기(帝王世紀)에는 “황제는 유웅이다(黃帝爲有熊)”라고 표현되어있다.
중국 고고학자 리스(李實)는 이 기록에 주목하여 훙산문화 영역에서 확인되는 곰의 흔적을 보고, “훙산인들은 곰을 숭배했고,
황제(黃帝:황제헌원)는 중국 고대사에 기록된 ‘유웅씨(有熊氏)’”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저명한 고고학자 쑤빙치(蘇秉琦)는 “황제헌원 시대의활동중심은 홍산문화의 시공과 상응한다”고까지 했다.
이 말은 ‘황제가 홍산문명의 왕이었다’는 말이다.

홍산문화가 곰 토템족,돼지 토템족의 연합이며 그것이 홍산문화에서 곰룡,돼지룡 숭배로 나타나고 홍산문화는 곧 황제헌원의

문명이라는 것은 중국 고고,역사학계의 정설이다.


(홍산문화의 곰룡 옥기)


                                         룡 :KBS 역사스폐셜 만주 시원 대탐사 홍산문명 편 중)


(상해박물관 소장 홍산문화 출토 옥곰룡玉熊龍. 사해문화 멧돼지룡은 이 옥곰룡과 달리 코끝부분이 올라가서 돼지처럼 되지만 이건

그렇지않고 오히려 내려간다. 입도 돼지와 달리 길지않고 짧다. )


"옥룡 머리 부분은 곰과 닮았는데. 큰 눈과 두드러진 코, 꽉 다문 입과 둥근 귀, C자 모양의 체구,머리와 리가 맞물려있다.

요녕성 조양현 우하량 여신묘 앞쪽의 한 구덩이와 제2지점 2호 적석총 대묘 옆의 워넣은 흙에서 곰의 아래턱이 출토된

것을 근거로, 또한 민속학 자료 중 동북 소수민족을 곰을 템으로 숭배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곰머리의 옥룡은 홍산지역 씨족들이 숭배하는 템의 신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황제가 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어 이른바 옥웅신玉熊神이라고 일컬어졌다고 한다.
동북 지역은 곰의 중요한 거주지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곰의 용맹한 힘이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하게 만들었고 라서 신을

보는 것처럼 숭배하는 전통의 원류가 오래전부터 있게된 것으로 생각하고있다.
홍산 옥기 중에도 곰 형태로 장식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우하량 유적지 제16지점 1번 묘에서 머리 두 개의 곰모양에

3개의 구멍이 있는 옥 장식품이 출토되었다.

(옥웅수삼공기) " -상하이 박물관 소장 중국 고대 청동기.옥기 전시 전집에서-



(곰룡 옥기는 홍산문명의 무덤에서 죽은 자의 가슴팍에 주로 놓여 있었는데. 가슴팍에는 가장 등급이 높은 옥기가 놓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일종의 신물(神物)이었다.
궈다순은 말하였다.
“홍산인이 숭배한 동물신은 여러 신(神) 가운데 으뜸인 주신(主神)이었을 것이고, 홍산인은 바로 곰을 숭배한 족속이었다.”)




(우하량(牛河梁) 16지점 3호 무덤에서 확인된 쌍짐승머리형 옥기를 가리킨 것이다.
두 개의 쌍둥이 짐승머리 형태로 3개의 구멍이 뚫린 희한한 모양이다. 우하량 16지점에서 확인된 곰형 옥기. 곰 두마리가 양쪽 끝에

원조(圓雕) 기법으로 조각됐다. 훙산문화 옥기예술의 정수다.
짐승의 머리는 곰이라는 것이 현재 중국고고학계의 정설이다. 짧지만 둥근 귀와 눈, 모가 났으면서도 둥근 이마, 뾰족하면서도 둥근

입, 얇고 벌어진 아랫입술은 영락없는 곰의 모습이다.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182 페이지에 표시된 우하량 여신묘에서 나온 진흙 곰발)




                                                         하량 여신묘에서 나온 진흙 곰턱)

                              SBS 역사 다큐 - 3천년의 퍼즐 신화를 찾아서 에서의 장면. 차인표도 출연한 흥미로운 다큐죠.)


                                                             (우하량 여신묘에서 나온 곰턱뼈 )


여튼 사기 오제본기에는 황제헌원이 곰 토템족과 호랑이 토템족을 이끌고 기원전 3500년경 염제신농의 앙소문화와 북경 근처

장가구 일대(판천)에서 대립하여 염제신농의 앙소문화를 흡수하여 홍산문화를 원시 국가 단계로 끌어올리는 모습이 적혀 있다.

그렇다면 호랑이 토템족은 건국에 일조를 하였다는 것인데. 호랑이 토템족의 흔적은 홍산문화 무덤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도대체 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2. 환웅신화(=황제헌원신화)가 그려진 한나라 때의 산동 무씨사 화상석

우리는 산동성 한나라 무씨사 화상석을 보면 이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이게 산동 가상현의 무씨사 화상석 중 '단군신화'와의 관련이 언급되는 것이다.
무씨사 화상석은 후한 대에 그려진거다. 이 무씨사에는 복희,여와,황제헌원,우임금,공자 등의 다양한 화상석들이 나와 중국 신화나

중국 역사에 대한 자세한 그림자료들의 보물 창고이다.


이 무씨사 화상석의 많은 화상들 중 이 화상석을 보면 화상석의 1층에는 하늘에서 구름 수레를 타고 내려오는 신인(神人)이 있으며


                                                      (하늘에서 구름수레타고 내려오는 하늘의 왕자 환웅)


2층에는 구름 수레를 타고 북을 망치로 치는 뇌공,수레의 뒤에서 바람을 입으로 부는 풍백,물단지 들고 땅으로 단지를 쏟아부어

비를 내리는 우사가 있다. (단군신화의 풍백,우사,운사 중 2명이 나오는것이다.
단기고사라는 고조선 관련 야사에는 풍백,우사,운사가 아니라 풍백,우사,뇌공 조합이 나온다.)
이 화상석 2층을 풍백,우사,뇌공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화상석 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다.
                                                         

                                                                                     (풍백)


                                                                                    (우사)

                                                                                    (뇌공)

그리고 화상석 3층을 보면 곰들이 무리를 지어서 어느 한쪽으로 몰려가는 가운데 3층의 맨 오른쪽 구석에선 여러개의 무기를 온

몸에 장착한 곰과 그에 대항하여 사람을 먹는 호랑이같은 신인이 서로 싸우고있다.

                                                                         (3층 화상석의 곰들)

                                              (티격태격 싸우는 5가지무기 장착한 괴물곰과 호랑이 신인의 대결)

그리고 화상석 4층을 보면 맨 왼쪽 구석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사람에게 크게 울어대며 사람이 도망가고있고 한 편을 보면 호랑이

2마리가 사람들에게 업혀진 채 사람들이 어디론가 도망가고있다.

                                          (4층 화상석의 패배하여 업혀진 호랑이들과 뭔가에 패해 도망가는 부족)


3층 화상석에는 곰이 압도적으로 등장하고 곰과 대치하는 호랑이같은 신이 등장하는 반면 4층에선 곰은 나오지않고 호랑이가

3마리나 등장하고 2마리는 업혀져서 도망가는게 나온다. 이 대치적인 구도는 명백히 단군신화의 곰 VS 호랑이를 보여주며 게다가

단군신화의 풍백,우사와 단기고사의 뇌공까지 등장하고 1층에선 신인이 구름수레를 타고 내려오고있으니 이야말로 완벽한 조합인

것이다.

그런데 3층 화상석의 여러 무기를 장착한 곰에 대해서 다른 해석을 하는 화상석 학자들도 있다.
그들의 말인 즉, 이 여러무기 장착한 곰은 한나라 때의 방상시를 표현한거지. 곰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단군신화와의 관련을

부정한다.

하지만 한나라 때 방상시가 여러 무기들을 쥐고 춤을 추며 귀신쫓아내는 의식을 거행한건 사실이지만 그 방상시도 곰 가면 곰

가죽을 쓰고 그런 의식을 거행했다는걸 잊어선 안된다.

또 그 사람들의 반박을 들어보면 사람을 먹고있는 호랑이 모습의 신인은 단지 호랑이처럼 보이게하는 신의 모자를
쓴거지. 호랑이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단군신화와의 연관성을 거부하지만 오히려 그들은 호랑이 모습의 신인의 정체를
잘못 짚고 있는 것이다.


무씨사의 3층 화상석은 거대한 신화적인 전쟁을 보여주고있으므로 이것을 단순히 방상시의 의식이라 보기에 무리인건 1층에서

4층에 걸쳐서 뭔가 장대한 서사적인 그림들의 연속을 보여주기때문에 그런 해석을 뭔가 바람직하지않아보인다.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왜 방상시가 여러 무기들을 온 몸에 장착하고 곰 가면 곰 가죽을 쓰고 하는 의식이 한나라 때 왜

존재했냐는 것이다. 그 의식들의 기원은?

그 의식들의 기원을 파헤치고 올라가보면 우리는 중국의 고대 기록들에 적힌 (노사,태평어람 용어하도 등의) 치우천황에 대한

묘사를 보면 "치우는 쇠뇌,창,칼,극,모 5가지 무기로 온 몸에 장착하였고 무기들의 시조이며 전쟁의 군신이다...,"라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기록에 묘사된 치우는 온 몸에 쇠뇌,창,칼,극,모 5가지 무기를 장착한 괴물이며 전쟁의 신이며 괴물이다.


(후한 산동의 무씨사의 다른 화상석에 나오는 치우의 모습. 단군신화와 연관되는 무씨사 화상석의 3층의 5가지 무기 장착한 곰과

 5가지 무기 장착한 모습이 흡사하다.)



그런 강한 존재에 대한 기억은 방상시를 통해 남겨지게된 것이다.
즉 화상석 3층은 치우나 그와 비슷한 신화적 괴물 '곰'을 나타낸거지. 절대로 방상시 따위의 시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화상석 학자들이 3층 화상석을 '귀신쫓아내는 그림'이라 해석하면서도 이런 해석들에 스스로 의문점을
표시하는 것은 뭔가 모를 석연치않은 구석들이 있기때문이다. 그들은 신화 전쟁의 거대한 서사시 그림을
한낱 귀신쫓아내는 그림으로 매도한 것이다.

또 화상석 3층의 사람을 먹고 있는 호랑이같은 모자를 쓴 신인 역시 호랑이라 볼 수 있는 것은 3층과 4층의 대비적 구도에서

3층에선 곰이 다수로 나오고 4층에선 호랑이가 다수로 나오며 곰은 승자,호랑이는 패자의 구도로 나온다.
이런 구도의 유사점으로 볼 때 호랑이같은 모자를 쓴 신인은 호랑이의 의인화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이 신인은 사람을 먹는 모습으로 나오는가?
고대 중국 신화에서 사람을 먹는 괴물은 '도철'이다. 중국 기록들에서 도철=치우라는 인식이 많이 등장한다.
혹은 치우는 여러 도철 중의 하나라는 인식도 등장한다. 아무튼 은나라의 청동그릇들을 보면 '호랑이의 모습'으로 묘사된 도철

괴물이 은나라의 왕이나 은나라인을 잡아먹는 모습이 나온다.



(호랑이 모습의 괴물 '도철'이 사람을 잡아먹는 상나라(은나라) 청동 술통)


괴물에게 잡아먹히는데도 평온한 은나라왕이나 은나라인의 모습에서 은나라의 신앙은 도철을 숭배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은나라

청동기에 도철문양이 자주 나오는 것인데,

노사의 치우전의 기록에 따르면 황제헌원이 치우를 죽인 후 치우의 목과 몸을 토막냈는데. 치우의 목만 남은 모습을 '탐욕'의

상징으로 여겨서 청동그릇들에 새기게했는데. 이것을 도철이라 부른다고 적고있다.

이것은 바로 은나라 청동그릇에서 자주 보이는 도철문에 대한 고대 중국의 신화적 설명이다.

아무튼 여기서 우리는 고대인들은 도철=호랑이=치우라고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화상석의 내용은 유웅씨有熊氏로 불린 곰족의 황제헌원이 1층에선 구름수레 탄 신인으로 등장하다가 3층에선 도철 치우와

싸워서 도철 치우를 물리쳤다는 내용이 되는 것이다.
(황제헌원은 자신의 나라의 관직 칭호를 운사雲師라 부르게했다던가, 황제헌원은 구름을 통해 나라를 다스렸다는 춘추좌씨전의

 기록은 바로 구름수레 탄 신인의 모습으로 그려지고있고 삼국유사에선 풍백우사운사의 '운사'로서 언급된다는 점을 기억.)

그렇다면 왜 곰족 황제헌원이 중국 기록들에 묘사된 치우의 5가지 무기 장착한 모습이 왜 황제헌원에게 표현되고있는가?

그것은 원래 황제헌원의 모습이 치우에게로 와전되었다든가, 아니면 치우의 무기를 황제헌원이 빼앗앗다든가 여러가지 추정이

가능하겠지만 아무튼 여러가지 증거로 봐서 이 무씨사 화상석은 탁록대전의 내용을 담고있다.

산해경의 기록으로 보아도 탁록대전에서 치우와 헌원의 전쟁에 풍백,우사가 가담하고  뇌공의 북과 망치도 등장할 정도이니,

이런 해석이 신빙성이 매우 높다.


3. 산동 무씨사 화상석은 호랑이 토템족이 홍산문명에서 밀려나 서남쪽으로 갔다고 말하며 호랑이 토템족이 '치우'라

말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황제헌원 = 환웅 = 곰족 치우 = 호랑이 이고 기원전 3천년대에 일어난 거대한 탁록대전을 그린 것이 무씨사 화상석이고,

탁록대전의 기억이 와전되어 형태만 남겨진게 단군신화이고 황제헌원(환웅)과 치우는 신시(홍산문명)를 대표하는

양대산맥이었으며 한국사의 시초 인물들이었으며 치우는 호랑이족의 대표 수장이었다는 것이고 홍산문명 성립 시기에

호랑이족은 곰족(황제헌원=환웅)에게 패해 어딘가로 가버렸다는 것인데.

화상석에서 호랑이족은 패하여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남쪽 부근을 말할 수 있는데. 중국의 앙소문화나 산동의

다원커우 문화 쪽으로 피난했다는 것이 된다.

                                          (4층 화상석의 패배하여 업혀진 호랑이들과 뭔가에 패해 도망가는 부족)


이 부분은 문헌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창해 가운데 도삭산이 있다. 큰 복숭아 나무가 있는데. 가지가 구불구불 서린 것이 3천리나 뻗어있다.

그 가지 사이 동북에 귀문이라는 것이 있다.
수많은 귀신이 그 곳에서 출입한다. 그 곳을 감독하는 자로 두 명의 신인이 있는데.한 명은 신도고 한 명은 울루다.

귀신들의 감찰과 지도하는 것을 맡고 있다.
악하고 해로운 귀신은 신도 울루가 그들을 갈대 밧줄로 묶어서 잡아 호랑이에게 먹이로 준다.
황제(黃帝:황제헌원)가 예법을 만들고 이들을 시시 때때로 부린다."
-논형 정귀편



즉 황제헌원과 관련된 신인(神人)인 신도와 울루와 복숭아 나무의 구도. 그리고 쫓겨나는 사람들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구도는

무씨사 화상석의 4번째 층 그림과 매우 유사한데.다만 틀린 점은 호랑이에게 사람 혹은 귀신들이 잡아먹히는 모습이 아니라 호랑이

역시 업혀져서 처량하게어디론가 도망가고 있다는 점이다.

즉 논형 정귀편의 기록과 무씨사 화상석은 서로 연관은 있지만 무씨사 화상석은 논형 정귀편의 원형인 '단군신화' 혹은 탁록대전

당시 호랑이족으로 대표되는 치우족이 황제족에게 패해 어디론가 대이동을 하고있다는것이고 논형 정귀편은 그런 원형의 신화가

와전,왜곡되어서 후세에 전해지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과연 홍산문화에서 밀려나 어디론가 이동한 호랑이족의 존재에 대한 고고학적인 증거가 있을까?
그렇다. 그것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었다.

4. 링쟈탄 문화가 바로 홍산문명에서 밀려나 양자강(장강) 유역으로 이동한 치우족(호랑이 토템족)



양자강 중하류 유역의 링쟈탄(능가탄凌家灘: 안휘성, 기원전 3500-기원전 3300년 전) 문화는 산동성의 다원커우 문화(대문구 문화) 일대에 속한 문화로 옥기 제작 기술이 매우 발달하여 옥기 제작에 서투른 다원커우와는 매우 큰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링쟈탄 문화)



링쟈탄의 옥기문화는 홍산문화의 영향이 매우 짙은데. 링쟈탄에서 발견된 옥룡은 홍산 문화의 저룡과 흡사하고 홍산문화의 특징을

지닌 옥결도 발견된다.
옥으로 대제사장을 만든 '옥인(玉人)' 역시 홍산문화의 영향이다.


                                                                              (링쟈탄의 옥룡)




<링쟈탄의 옥결은 사진 자료가 찾기 힘들다. 그냥 링 형태의 옥에 윗부분 중간이 끊겨졌다 생각하면 되는데. 홍산문화의 옥결의

원형인 요하문명 차하이 문화의 옥결로 대신하겠다.>


                                                                            (링쟈탄의 옥인玉人)

다원커우 문화에서도 역시 홍산문화의 수용 흔적이 일부분 보이는데. 다원커우 문화 중기에 해당하는 다원커우,에덴,장치우쟈오쟈

유적에서 발견된 두 개 또는 세 개의 구멍이 뚫린 옥 장식품, 두개 또는 네 개가 서로 이어져 있는 옥벽 등은 모두 홍산문화에서

들어온 것이다.

홍산문화의 옥룡,옥결의 전파는 이 당시 앙소문화 쪽으로 이루어지지않았다는 점을 감안하고 다원커우,링쟈탄에서 확인되는 것을

볼 때, 또 링쟈탄의 옥기 문화는 상당히 홍산문화의 영향이 짙고 또 그 기술이 매우 발달했다는 점으로 볼 때 홍산인들이 이 곳으로

이동했다는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린 이 링쟈탄의 옥룡이 바로 호랑이와 연결된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수 밖에 없다.

                                                (링쟈탄 두 가지 옥룡의 앞 부분을 그림으로 그린 것. )


그런데 링쟈탄의 옥룡의 모습은 홍산문화의 곰룡,돼지룡의 모습과는 달리 호랑이용의 모습이 아닌가?
그렇다. 홍산문화에서는 확인되지않는 호랑이 옥룡이 링쟈탄 문화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빨이 지나치게 긴 것은 사나운 맹수의 특성을 지나치게 표현한 것이다.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소의 용문화 전문가인 주나이청(朱乃誠) 교수는 이 옥룡이 '호랑이'라고 주장했다.
http://hk.feicui168.com/guyuxinwen/news5593.html




특히 두번째 링쟈탄의 옥룡의 앞 부분 그림은 치우천황의 모습을 그린 '도철문'을 연상하게 한다.

                                                                (백제의 치우천황 도철문 기와)


                                        (링쟈탄 문화의 태양새 + 돼지 숭배. 산동의 다원커우 문화의 새 숭배의 영향이었다.)


                                                   (링쟈탄 두 가지 옥룡의 앞 부분을 그림으로 그린 것. )

두 개의 발이 있는 흉악하고 무섭게 생긴 치우천황 모습의 호랑이 괴물 옥기는 중국 문헌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서쪽 변경 가운데에 있는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호랑이와 같으며 털 길이는 3척이다.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 발을 하고 있고 입에는 돼지 어금니가 나 있으며 꼬리 길이는 1장 8척인데 이름을 '도올'이라고

한다." -신이경 서황경


"서쪽의 변경 가운데에 있는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호랑이와 같으나 호랑이보다는 크고 털 길이가 2척이다.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 발을 하고 있고 돼지 입 모양에 어금니가 나있으며 꼬리 길이는 1장 8척이다.

싸움질에 능해서 물러서는 일이 없으며 서쪽 변경을 소란스럽게한다.
이름을 도올이라고 한다. 춘추에서는 전욱씨에게 불초 자식이 있다고 언급되어 있는데.도올이라고 하는 것이 이 짐승이다.

오흔,난훈이라고도 한다. 이 짐승은 사람을 먹는다."
-신이경 서황경

"궁기는 호랑이와 비슷하다. (..) 사람을 잡아먹는다. (..) 이리의 꼬리를 하고 있으며 꼬리는 길어서 땅에 늘어뜨리고

다닌다. (...) 갈고리 손톱에 톱 이빨이 있다." - 신이경 서북황경


도올,궁기라고 불리는 이 호랑이 괴물은 모두 '도철'이라는 괴물의 갖가지 종류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도철 역시 호랑이 괴물의 특징을 하고 있다.

"구오산 위에 옥이 많고 아래는 구리가 많다. 짐승이 있는데 양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눈은 겨드랑이 아래 있으며 호랑이 이빨에 사람의 손톱을 하고 있으며 그 소리는 아이가 우는 것같은데 이름이 포효라고

하며사람을 잡아먹는다.(곽박 주:동물처럼 탐욕스러우며 사람을 잡아먹을 때 다 먹지않고 그 몸을 헤집어 놓으며 형상이

하나라의 청동솥에 있으며 [좌전]에서는 도철이라고 한다." -산해경 북차삼경

                          (상나라(은나라) 도철무늬. 은나라 지배자가 호랑이 도철괴물에게 먹히고 있다.)


                                          (호랑이 도철괴물 입 안에 들어가있는 은나라 지배자)



                                 (은나라 청동그릇의 도철 : 위 3개 사진의 자료 출처는 '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 동녁 출판사)



5. 링쟈탄 문화가 이동하여 세운 량주 문명은 치우천황(도철 신)의 구려국(삼묘)


링쟈탄 문화의 호랑이 옥룡과 두 개의 발이 있는 흉악하고 무섭게 생긴 치우천황 모습의 호랑이 괴물 옥기와 링쟈탄의 발달된 옥기

문화는 양자강(장강) 이남으로 이동하여 홍산문화에 버금가는 량주 문화의 매우 발달된 옥기 문명을 일으킨다.

이 때 량주 문화에서 발생하는 것이 바로 '도철(호랑이와 돼지 특성이 결합된 모습의 무서운 괴물) 숭배'다.
이 도철 숭배는 링쟈탄 문화의 호랑이 괴물 숭배가 들여와서 발생한 결과이다.



(량주문화의 도철문 옥기. 인디언 추장같이 생긴 량주 문화 추장이 도철 위에 올라 탔다.)





(량주문화의 도철문 옥기)

6. 량주문명의 도철 신(치우천황)을 숭배하는 량주인들이 북벌하여 천하를 두렵게하다.

량주문화는 기원전 3천년경 북진하여 산동 다원커우 문화를 멸망시키고 다원커우인들과 융합하여 룽산 문화(용산문화)를

만들고 룽산 문화에서 도철 숭배는 더욱 번영을 이루었다.



                                      (룽산문화의 옥기에 새겨진 치우천황(도철)의 얼굴)


기원전 3천년~기원전 2700년 사이 룽산문화는 북경 일대 '탁록' 지역으로 북진하여 홍산문명과 충돌을 일으킨 흔적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되었다.(장자커우 유적)

이 당시 기원전 3천년 대에 홍산문화는 기후대재앙으로 이미 망해가고있었다

나중에 자세히 말할거지만 이 량주문화는 중국 사서에서 치우의 '구려국' 혹은 '삼묘'로 나오는데. 그 증거가 바로 량주문화의 도철

숭배다.

도철문이 치우천황의 기원이라는건 중국 기록에 이렇게 나오므로 타당한 증거가 마련된다.

"황제黃帝(황제헌원)가 치우와 전쟁을 하고 그를 죽였는데 이를 지해하고 한다. 전쟁으로 분노를 없애고 선정을 하였으며

하늘의 뜻을 따랐는데. 이를 태상이라는 깃발에 절비야라고 썼다.

치우의 몸과 머리를 각각 다른 곳에 버렸는데. 후대의 성인들은 그 형상을 예기에 새김으로써 탐욕을 경계하고자 하였다.

(라평 주:치우는 하늘의 명령을 받은 신으로 형상이 사람과 다르며 하상주 시기에 치우의 상을 많이 새겼는데 이는 탐욕자를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그 형상은 모두 동물모양이며 고기로 된 날개가 붙어 있는데 치우는 황제 때 시작되었다."
-노사 후기4 치우전







                                                   (상나라(은나라)의 청동그릇의 도철 무늬)


룽산문화의 도철 숭배는 하나라를 거쳐 상나라(은나라)로 계승된다.

그리고 도철 숭배는 상나라 -> 한나라 -> 위진 남북조 -> 고구려 -> 백제를 거쳐 오늘날 붉은 악마의 치우천황 마스코트에

까지 이르게 된다.
(치우천황 = 도철에 대한 자세한 정리는 http://ragwangfal.egloos.com/1670420 를 참조)


 


                                                       (한나라 때 화상석에 그려진 치우)


                                                               (고구려의 도철문 기와)


                                                                 (붉은 악마의 치우)

자. 이쯤해서 정리를 해보자.
7. * 결론 요약

1. 기원전 3500년경 홍산문화의 주 종족은 황제헌원(환웅)으로 곰 토템족이다.

2. 여러 사서,한나라 때 화상석을 통해 볼 때 홍산문명의 황제헌원은 곰 토템족,호랑이 토템족을 이끌고 홍산문화를 원시 국가

단계로 끌어올렷다.
이런 전체적 정황을 담아낸 것이 삼국유사의 환웅 신화(단군신화)이며 황제헌원 신화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곰 토템족,호랑이 토템족은 모두 북방 시베리아 퉁구스 계열이나 혹은 그 혈연 비슷한 종족으로 빗살무늬토기를 쓰며 홍산문화의

형성에 주된 역할을 하였다.

3. 한나라 때 산동 무씨사 화상석에서 황제헌원(환웅)의 신화가 그려져있는데. 호랑이 토템족이 헌원의 곰토템족에 패하고 서쪽으로

이동하는 그림이 있으며
이 내용은 호랑이 토템족인 치우가 곰 토템족인 황제헌원에게 부족 경쟁에서 밀려 서남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4. 고고학적으로 양자강 일대의 링쟈탄 문화의 홍산문화 성향을 강하게 띄는 옥기 문화와 호랑이 옥룡의 존재는 홍산문화의 호랑이

토템족이 홍산문화를 떠나 링쟈탄 일대에 정착했다는 증거로 링쟈탄 문화의 연대는 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 사이다.
링쟈탄 단계에서 이미 초기 도철(치우) 신의 숭배가 출현했다.


5. 링쟈탄 문화가 양자강 이남으로 이동하여 량주 문화를 세우며 수준 높은 옥기문명 '량주 문명'을 세우는데. 이 량주 문명에서

도철 신앙(치우 신앙)이 번성하였으며 중국 사서에 치우의 '구려국' 혹은 '삼묘'로 나온다.

량주 문화는 기원전 3천년 북진하여 산동의 다원커우 문화(소호국)를 정복하고 다원커우인들과 융합한 후 룽산 문화(용산 문화)를

일으켜 북경 근처 탁록으로 진격하여 홍산문명과 충돌한다.
기원전 3천년 이때 당시 홍산문명은 기후대재앙으로 이미 멸망 상태로 들어가고 있었다.

6. 도철 숭배(치우)는 룽산 문화->하나라->상나라->주나라->한나라->고구려로 이어져 한국의 붉은 악마 치우천황 문양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출처:다음카페-삼태극 글쓴이-환국대형  2012.04.18   http://cafe.daum.net/mookto/GbHv/7607

                        이 글의 출처는 제 글(한국대형))입니다. http://ragwangfal.egloos.com/1676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