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스토리텔링 칸네트 작성자-hanmom http://www.khaan.net
fake bible 조작성경 돋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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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 편집된 신약성서 로마시대에 성경을 조작하고 교리를 형성하여 예수를 우상화시켰기에 역사적인 예수의 모습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도올 선생님의 강의중 이집트의 쿰란동굴이나 사해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문서에는 예수의 역사적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데 그러한 문서들은 로마시대에 조작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래 글은 복음서의 조작과정을 어느정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불일치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이러한 불일치는 예수의 출생에서부터 죽음과 부활장면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볼 때 그러한 전승이 의존하고 있는 복음서들은 그 문제에 관하여 훨씬 더 모호하다. 오로지 두 복음서 들만이, 즉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만이 예수의 혈통과 출생에 관하여 조금이나마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정당하고 합법적인 왕은 아니지만 다윗으로부터 솔로몬을 통하여 계승된 귀족이었다.반대로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가문은 다윗의 집안으로부터 이어져 온 가문이긴 했지만 약간 지위가 낮은 가문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두 개의 족보는 너무나 불일치하기 때문에 마치 그것이 두 명의 다른 사람을 지칭한 것처럼 보이기끼지 한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그는 박사들의 방문을 받았다.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가족은 나사렛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인구조사를 위하여 나사렛에서 예수가 구유의 비천한 몸으로 출생한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가족은 대단히 유복한 생활을 하면서 쭉 베들레헴에서 살아왔었다. 마태복음의 설명에서 보면 헤롯의 유아 박해 때문에 예수의 가족은 이집트로 도망치게 되었으며 그들이 나사렛에 정착한 것은 이집트에서 돌아온 후였다. 복음서들을 더 많이 연구하면 할수록 그만큼 그들 사이의 모순들은 분명해진다. 실제로 복음서들은 십자가 사건의 날짜에 대해서도 일치하지 않는다.요한복음에 따르면 십자가 사건은 유월절 전날에 발생하였다. 마가복음,누가복음,그리고 마태복음에 다르면 그 사건은 유월절 다음날 발생하였다. 예를들면 누가복음에서는 온유한 양같은 구세주로 묘사되어 있으며,마태복음에서는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온 강력하고 장엄한 주권자로 묘사되어 있다.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예수의 마지막 말에 대해서도 불일치하고 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이 말이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단지 <다 이루었다>라고만 되어 있다. 없음은 확실하다.그러므로 그 복음서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을 나타내는 신성불가침의 것은 될 수 없다. 설사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 대단히 개방적으로 검열되고 성서는 단지 하나의 발췌록일 뿐이며 많은 점들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독단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모두 적용된다. 소실'되었기 때문에 빠진 책들에 관해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책들이 고의로 제외되었다. 이 교회 회의들에서는 신약성서를 발췌하여 구성하자는데 의견이 일치되었다. 어떤 책들은 수집되어 오늘날의 신약성서에 수록되었으며 다른 것들은 단호하게 무시되었다. 어떻게 성직자들의 회의가 어떤 책은 성서에 속하고 다른 책들은 속하지 않는가를 무모하게 결정할 수 있었는가?
특히 제외된 책들 중 몇권이 역사적 정확성에 대하여 완전히 확고한 자격을 가지고 있을 때는 어떤가? 개정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1958년에 콜롬비아 대학교의 몰톤 스미스(Morton Smith) 교수는 예루살렘 근교의 한 수도원에서 마가복음의 없어진 단편을 담고있는 한 편지를 발견했다.그 단편은 복음서를 편집할 때 소실되어 없었기 때문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그와는 반대로 그 단편은 초기 교부들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의 하나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주교의 선동으로 고의적으로 제외되었다. 카르포크라테스파의 사람들은 마가복음의 어떤 구절들을 그들 자신의 원칙,즉 클레멘스와 데오토레투스의 입장과는 다른 원칙에 따라 해석하였다. 결국 데오도레투스는 그들을 공격하였으며 그의 행위를 클레멘스에게 보고하였다. 스미스 교수에 의해 발견된 그 편지에서 보면 클레멘스는 그의 제자 데오도레투스에게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예언서에서 언급된 '유성들'로 계명의 좁은 길로부터 육욕적이고 신체적인 끝없는 죄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자들이기 때문이요,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듯이 <사탄의 깊은 것들에 대한>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거짓의 어두운 지옥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알지 못하며,그들이 자유롭다고 자랑하지만 그들은 비굴한 욕망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요, 그러한 사람들은 모든 방면에서 그리고 전적으로 적대시되어야 하오,왜냐하면 그들이 비록 참된 어떤 것을 말한다 할지라도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동조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요, 왜냐하면 참된 것이라고 다 진리가 아니며 단순히 인간적인 견해에 따라 참된 것처럼 보이는 진리도 참된 진리 즉 신앙에 따르는 진로보다 우선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요. 그것을 부인해야 하며 그를 논박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오>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그리하여 진실이긴 하나 그들의 마음에 들지않는 마가복음의 다음 구절을 삭제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예수를 바라보자 그를 사랑하게 되어 그와 함께 있도록 해달라고 예수께 간청하기 시작했다. 무덤에서 나와 그들은 그 청년의 집으로 들어왔다.그 청년은 부자였기 때문이다. 엿새 후 예수는 그 청년에게 해야 할 바를 말했다.그날 밤 그 청년은 그의 벗은 몸에 베옷을 입고 예수에게 왔다. 그는 그날 밤을 예수와 함께 지샜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옷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옷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그러나 그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단히 낯익은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요한이 기록했다고 생각되는 제4복음서에서 기술된 나사로를 살린 이야기이다. 하지만 위에 인용된 설명에서 보면 몇몇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이것은 무덤에 있던 자가 죽지 않았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사건이 기적적이었다는 것을 단번에 부정하고 있다. 목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구절이지만 스미스 교수가 주장하고 있듯이 그 사건 전체는 전형적인 신비학파의 비법전수,즉 그 당시 중동 지방에 널리 퍼져있던 종류의 의식적이고 상징적인 죽음과 재생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실제로 신약성서에서 나사로 또는 나사로라는 인물에 관한 언급들은 요한복음에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클레멘스의 조언은 데오도레투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그 후의 대가들에 의해서도 받아들여졌음이 분명하다.나사로 사건 전체가 마가복음에서 완전히 삭제되었음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원본에서 보면 마가복음은 십자가 사건,장례,그리고 빈 무덤으로 끝나고 있다. 거기에는 아무런 부활 장면도 없으며 제자들과의 재회도 없다. 그렇지만 몇몇 현대의 성서들은 보다 인습적인 마가복음 종결,즉 부활을 포함하고 있는 종결을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현대의 성서학자들은 이러한 확장된 종결이 2세기에 기원되어 원문서에 부가된 후대의 첨가물이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마가복음만이 유독 변경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마가복음이 그렇게 쉽게 수정된 것이 분명하다면 다른 복음서들도 마가복음과 유사하게 취급되었으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로마에서는 그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었다.그리고 시이저는 이미 공식적으로 신으로 취임했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예수도 신격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런데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예수를 신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바울에 의해 그는 신격화되었다. 그 당시 로마인들에게 널리 숭배받던 오시리스,탐무즈,아도니스.아티스 같은 신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부활한 것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자연히 예수도 동정녀 몸에서 태어났고 또 부활한 것으로 만들어졌다. 성서학자들은 마가,마태복음의 부활 장면은 원본에는 없었는데 후에 첨가된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띄는 모든 기독교 서적을 파괴하여 로마에 있는 기독교 문서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현존하는 5천 개의 초기 신약성서 사본 중 4세기 이전의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신약 성서의 변형 독본들의 대부분이 이때에 만들어졌으며,예수가 그 후 지금까지 알려져 온 대로의 독특한 지위를 기지게 된 것도 이 때이다. 로마에 건너오기 전에 기독교는 유대교의 안식일인 토요일을 거룩한 날로 지켰었다. 그러나 A.D.321년에 콘스탄틴은 칙령을 선포하여 일요일에 쉬도록 명령했으며 그것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는 유대교적 기원에서 더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4세기끼지는 예수의출생일이 1월 6일에 지켜져 왔었다. 그러나 로마의 전통적인 종파인 <솔 인빅투스Sol Invictus -무적의 태양> 와 <미트라>에서는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는 12월 25일을 태양 탄생일로 기념하고 있었다. 콘스탄틴은 정치적 통일이 이루어질려면 먼저 종교가 통일되어야 된다고 보고 모든 종교를 하나로 싸잡아 기독교에 혼합시켰다. 이 공의회에서는 부활절의 날짜가 확정되었고 주교들의 권위를 명백히 규정했다. 예수가 인간적인 성향을 지닌 예언자가 아니라 신이었다는 것을 투표로 결정한 것도 이 회의에서이다. 니케아 공의회 1년 후에 콘스탄틴은 정통주의적 가르침에 도전하는 모든 저서들 즉 '이단적'인 기독교인들의 저서들은 물론이고 예수에 관해 언급하는 이교적 저자들의 책도 몰수하고 소멸시킬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는 또한 교회에 고정된 수입이 할당되도록 조치하기도 했으며 로마의 주교를 라테란 궁에 취임시켰다.이렇게 하여 권위를 부여받은 로마 주교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지않는 여러 복음서들을 삭제하고 개정하고 첨가하여 오늘날의 성경을 만들었다. 그래서 현재의 기독교를 사기 종교라고 할 수 밖에 없고, 교회에서 거짓과 사기를 배운 많은 사람들이 쉽게 범법자의 길로 빠지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출처:스토리텔링 칸네트 작성자-hanmom http://www.khaan.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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