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삶의 흔적

흥수아이

설레임의 하루 2011. 11. 25. 02:08

*출처:수원지기학교수원지기학교다음카페-수원지기학교   글쓴이-  신영주 2008.04.20        http://cafe.daum.net/jigiclass/I0Ry/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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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수아이

지구의 생물체 가운데 인류는 100만년을 살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100만 년 전을 인류역사의 여명기, 서막이 열리는 구석기시대라고 한다.

1966년 평양시 상원군 동굴에서 조잡하고 투박하기는 하나 노동도구인 주먹도끼나 찍개 등을 발굴하였다. 원시인들이 남긴 것들이다.

그들은 유인원에서 갓 벗어난 최초의 사람인 원인들이다.

오래 전에 사라진 큰쌍코뿔소나 상원말 등은 화석으로 남았다.

이 화석으로 보아 기후는 열대성이거나 아열대성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동굴에 살면서 먹을 것을 찾아야 했고 맹수를 비롯한 힘센 적을 막기 위해서 이곳저곳으로 무리를 지어 옮겨 다녔다.

또한 그들은 비록 불을 만들 줄은 몰랐지만 이용할 줄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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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은모루동굴유적전경

 

 

 

우리 민족의 역사적 뿌리는 이처럼 인간발생의 첫 시기에 이른다고 한다.

이 유적지는 구석기시대 전기유적지로서 인류역사의 첫 페이지에 자랑스럽게 올라 있다.

 

1973년 평양에서 멀지않은 대동강유역인 평안남도 덕천시 승리산 동굴유적의 아래층에서 치아와 어깨뼈가 발견되었고 이

위층에서는 아래턱뼈가 나왔다.

아래층의 차아와 어께뼈의 주인은 (덕천사람)이라고 명명하였고 아래턱뼈 주인은 약 4~5만 년 전의 사람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승리산사람>이라 부른다.

1979~1980년에 평양 승호구역 만달리 동굴에서 거의 완전한 형태의 골격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만달사람>이라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2만 년 전의 사람으로 추정했다.

만달사람은 얼굴을 되살려낼 수 있는 머리뼈와 아래턱뼈를 남겨 복원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뇌의 용량은 1.676.8입방센티매터로 추정되며 흑요석을 이용한 석기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흑요석 석기에 자루까지 달아 사용하였다.

만달사람은 <조립식도구>를 만들 정도로 높은 문화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승리산사람들은 짐승가죽을 이용하여 체온을 의도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을 알았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승리산 동굴 유적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만 년 전의 (만달사람). 5만 년 전의 (승리산사람).

10만 년 의 (덕천사람)

 

만달동굴에서 인골화석으로 발견된 사람을 우리 민족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보는 여러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승리산사람이나 만달사람은 조선옛류형사람으로서 오늘 우리민족의 선조라고 한다.

북쪽 고고학자들은 이 신인들은 이 지역에서 발견된 고인과 연결되는 특징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오늘 우리민족의 고유한 특징도

이들 신인들에게서 처음으로 발견된다고 밝히고 있다.

원인의 후예들이 고인을 거쳐 신인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1981년 평양시 상원군 용곡동굴에서 출토된 4개의 머리뼈와 8개의 넓적다리뼈 등 모두 10명에 해당하는 인류화석으로 4만5천년전

후기구석기시대로 밝히고 있다.

이 동굴에서 얼굴뼈까지 보존되어 있는 2개의 머리뼈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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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2월, 충북 청원군 문의면 두루봉 흥수동굴 유적지는 어느 석회석채굴회사의 직원 김흥수의 제보로 충북대학에서 발굴하였다.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오늘 우리 앞에 나타났다. 흥수굴은 두루봉의 가장 낮은 곳인 9굴의 동북쪽 아래에 있다.

발굴 당시 굴의 중요부분이 석회석 발파작업으로 파괴된 상태에서 발굴 조사되었다고 한다.

구석기유물, 코끼리 사자 원숭이 쌍코불이, 국화 진달래 등 많은 동식물화석이 발굴되었다.

1983년 발굴 당시 이 아이는 펀펀한 석회암 널판 위에 누워 있었는데 주검 곁에는 여러 종류의 식물꽃가루가 있었고 동굴 입구 한쪽

모서리에서는 많은 양의 진달래꽃가루가 채집되었다고 한다. 진달래나 국화는 산성토질에서만 자란다.

주검 곁에 있는 꽃들이 사람의 죽음에 대한 의식의 한 수단으로 쓰인 것인지 혹은 실내장식용으로 쓰인 것인지 하는 견해들이 있다.

이들 꽃으로 하여 흥수아이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석회암으로 된 장소에 시체가 묻히게 되면 석회암이 녹으면서 형성된 광물질이 많은 지하수나 물기가 계속 유골에 작용하여

뼈세포 속에서 광물질이 석출되어 그곳에 채워지고 또 삭아 없어지는 빈자리에도 광물질이 들어가게 된다.

또 분자 수준에서 유골과 광물질 사이의 자리바꿈도 진행된다.

이 경우 유골은 돌과 같이 굳어지면서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게 되며 부패작용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외력에 대해서도 저항력이

강해지므로 상황에 따라 장기간 보존이 가능한 것이다.>

 

 

흥수아이가 특별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것은 흥수아이가 장례 풍습에 의해 매장되었기 때문이다. 

1983년 발굴 당시 흥수아이는 편편한 석회암 낙반석 위에 누워 있었는데 일부러 시신을 바로 펴놓은 후 고운 흙을 뿌렸다는 사실이 

관찰되었다. 

주검을 아무렇게나 마구 버리지 않고 고이 장례를 치러 주었다는 뜻으로 더욱 놀라운 것은 흥수아이의 주검 곁에서는 여러 종류의 

식물꽃가루가 채집되었다는 점이다. 

이들 꽃가루 분석에서 국화꽃가루가 가장 많았는데 학자들은 흥수아이가 죽었을 당시 국화꽃이 주검 주변을 치장한 장의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상당히 높은 지대인 석회암동굴에 국화꽃이 자생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국화꽃은 장례를 위해 의도적으로 다른 곳에서 꺾어왔다는 

추정이다.

또한 동굴 입구 한쪽 모서리에서 많은 양의 진달래꽃가루가 채집되었다. 

진달래는 본래 호산성식물인데 두루봉 일대는 알칼리성 토양으로 되어 있다. 

학자들은 두루봉동굴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이 이당시 이미 아름다움을 식별하는 심미안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장례용으로 꽃을 

사용했다고 인식한다. 

물론 국화꽃이 가을꽃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흥수아이가 사망한 시기도 가을로 추정했다. 

고인류학계에서 네안데르탈인들을 중요시하는 것은 정신적인 면모도 발달하여 죽은 자의 장례를 치르는 풍습도 가졌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무스티에 유적지에는 10대 소년이 옆으로 누워서 머리를 팔위에 얹어 놓은 상태로 매장되어있었다. 

그의 손 옆에는 훌륭한 돌도끼 한 개가 놓여있고 소의 뼈가 둥그렇게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들은 소년의 사후에 있을 여로에 도움이 되도록 무덤에 놓여진 것이었다. 

특히 이라크의 샤니달 동굴에서 발견된 인골은 40세 정도의 남자인데 다리가 접히고 구부러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인골 주위에서 접시꽃, 푸핀, 엉겅퀴, 무스카리 등을 비롯한 많은 꽃가루 화석이 발견되었다. 

죽은 자에게 꽃을 바치는 마음을 간직했다는 사실은 시체를 정성스럽게 묻었다는 것으로 원시인의 이미지를 근본부터 뒤덮는 

일이었다. 

체코의 한 고분에서는 시체 위에 돌로 만든 보호층 아래 14개의 인골이 있었는데 이들 시신은 내세에서도 계속 가깝게 지내겠다는

 뜻에서인지 서로 붙어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모라비아의 한 고분에서는 매머드의 거대한 견갑골밑에서 여자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시신 위에 적색의 

황토가 소량 뿌려져 있었다. 

생명을 주는 혈액으로 추정했을지도 모르는 적색 황토는 유럽 지역의 여러고분에서 자주 발견되는데 주로 웅크리거나 자궁 속의 

태아 모습으로 수습된시신 위에 뿌려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남북한의 고고학자들이 흥수아이를 그토록 열광한 이유는 고고 인류학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네안데르탈인과 

유사한 풍습이 한반도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유적에서 출토된 뼈화석을 자료로 얼굴을 복원했는데 이 얼굴을 보면 매우 귀여운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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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전 세계에 알려진 인류화석이며 더 귀중한 민족유산이 폐광의 깊은 물 웅뎅이에 잠겨 있다.

흥수아이는 집에서 쫓겨났다.

태고적 살림살이도 석기제작 자리나 화덕자리도 지질조사도 흥수아이와 <승리산사람>들과의 관계도 여기서는 영 사라져버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미터 물 웅덩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