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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요사지리지의 지명기록 보는법.

설레임의 하루 2011. 10. 20. 21:12

아래의 글은 운영자가 공부하는 중국역사와 지리의 비정이 아래의 글과 거의 일치함을 발견하고 동의하는 내용이다. 고려가 대륙 하북성 동편에서 사라진후 명나라는 고려가 차지하고 있던 고유지명들을 모조리 현재의 요동으로 밀어버렸다.   

 

당나라시대의 갈석은 산서성남부인데  2000여리 이상 북동으로 이동했다!!!

 

 

 

◆ [요사] 지리지를 분석해본 결과, 요의 오경 중 서경도를 제외한 상경도, 동경도, 중경도, 남경도 등 4경은 지역이 여러 벌로 겹치는 것을 확인하였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요의 동경도는 난하까지였다는 것이다.

난하 동편 고구려 7백 년 고지에도 일부 지명을 걸쳐두기는 하였으나 사실은 이마저도 고려지(중세)였다. 왜냐하면 요․금까지도 고려 서경이 평양이였기 때문이다.

창려는 고조선 수도 평양이자 고구려수도 평양이었고 이 지역은 [삼국사기]에서 남옥저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발해가 거란에 망했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요의 동계를 발해고지까지 비약하여 연결해두고 있었다.

 

말을 바꾸면 북경부터 今요동반도까지의 초기신라사와 고구려사, 후기신라사, 고려사를 모조리 증발시켜버린 것이다.

 

그러기 위해, ‘유성현’ 위치비정에서 상곡군 수성현과 요서군 유성현의 지명이 일란성쌍생아 처럼 중복된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는데, 하나의 지역을 두고 두 벌 이상의 행정단위를 만들어 중복되는 것을 동으로 2천 리 이상 전개시켜 확장하는 방법을 구사한 것이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확장된 지역에서 있었던 동시대와 그 이전의 다른 나라 역사가 증발돼 버리는 것이다. 


 후에 상세히 분석하여 제시하겠지만 간단히 예를 들면,

요의 상경 임황부가 전한 요동군 서안평현이었다는 것이다

[上京道上京臨潢府 本漢遼東郡西安平之地. 新莽曰北安平].

 

서안평이 어디인가?

지도9에서 가운데 보이는 안평(동그라미)이 바로 요동군 서안평이다.

 

 

요의 수도가 바로 이곳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학계의 통설은 어떠한가?

요동 서안평을 평북 신의주 맞은편 丹東(단동)이라 하고 있지 않은가?

이 역시 2천 리 이상을 동으로 밀어놓은 위사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례인 것이다.

한일양국 학계에 묻는다.

정말로 요의 수도가 단동이었단 말인가?


이러한 방법은 앞서도 전국시대 진개 동정전과 동정후 연지 설명에서도 보인 바 있다.

이것은 치명적인 위사기술기법이다.

 

그와 동시에

 

[후한서]와 [삼국지] 동이전에서 증발시킬 대상이 되는 동이제국의 강역 설명 역시 동으로 2천 리 이상 밀어내기하여 지역을 이동시킨 구도에 맞춰 위사를 썼다는 것이다.

 

한국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런 위사기술기법을 모르면 사서를 덮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대륙사서의 위사를 합리화시켜주는 길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중인학자들이 한인학자들의 논문과 책을 수거해 가서 동북공정에 역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만리장성이 압록강까지 뻗쳤다고 주장한 것도 한인학자가 연 장성이 요동까지 뻗어 있다고 한 설을 거꾸로 들이미는 것 같다.

 

이럴 경우 자가당착에 빠지기 때문에 반박을 못하게 된다. 

 

고대사산책님의 글 발췌

출처 : 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 心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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