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풍습

[스크랩] Re:제주 창조신 마고..마고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호남 고인돌

설레임의 하루 2011. 9. 21. 02:09

 

신화는 역사적 사실이 상징화, 함축되여 전승되는 이야기다. 해민족의 시왕모는 제사장이자 통치자인 마고다. 모권이 강한 제주도를 포함한 서남해(호남) 지역은 마고전설로 가득한 고인돌들이 세계 최다로 밀집된 지역이다.

 

이는 1만년을 전후하여 서남해가 바다가 되기 전 마고문명의 중심지역이였음을 반증한다. 마고는 마고신앙을 가지고 동-서로 이주한 고대 한반도인들에 의해서 서왕모.천조대신.여와.마야.마리아 신앙으로 전승된 것이다.

 

오산리 선돌 대표 사진오산리 선돌과 고인돌

마고성을 떠나 북문을 통하여 만주 천산지역으로 이주하여 요하문명을 건설한 황궁씨의 후예인 환인시대는 여신 마고에서 남신 환인으로 바뀌는 시대다. 여신 마고에 대한 저항적 상징물이 바로 남근을 상징하는 한반도 선돌들이며, 고대 한반인들이 이주하여 세운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다.

 

[자료]제주 창조신 마고 이야기

 

아득한 옛날 『설문대 할망』이라는 할머니가 있었다.

 

얼마나 거대했던지 한라산을 베게 삼고 누우면 다리는 제주시 앞 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쳐졌다. 이 할머니는 빨래를 하려면 관탈섬에 놓아 발로 밟고, 손은 한라산 꼭대기를 짚고 서서 발로 문질러 빨았다 한다.

 

또 다른 전설에는 한라산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한쪽 다리는 관탈섬에 디디고, 또 한쪽은 서귀포시 앞바다의 지귀서멩 디디고서 소섬(牛道)를 빨래돌로 삼아 빨래를 했다 한다.

 

성산일출봉에는 높이 솟은 기암이 있는데, 이 바위는 설문대 할망이 길쌈을 할때 접시불을 켰던 등잔이라 하여 지금도 등경돌이라 부른다. 이 바위는 높이 솟은 바위 위에 다시 큰 바위를 얹어 놓은 듯한 기암인데 할머니가 등잔이 얕으므로 바위 하나를 더 올려 놓은 것이라 한다. 설문대 할망의 거대한 모습을 설명하는 설화는 이밖에도 많다.

 

큰 바위가 띄엄띄엄 몇 개 서 있으면 할머니가 솥을 걸어 밥을 해 먹은 바위라든지, 제주도 안에 있는 깊은 지소의 깊이를 재 보았더니 발등이나 무릎까지 밖에 안되었다느니 하는 식의 것들이다.

 

이렇게 설문대할망은 키가 너무 커서 옷을 제대로 해 입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속옷 한 벌만 만들어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했다. 너무나 몸이 컸기 때문에 속옷을 만드는데 명주 100동이 들었다.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준다는 말에 제주섬 안에 있는 명주를 모두 모았으나 99동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속옷을 만들다가 완성되지 않으니 할머니는 다리를 조금 놓았다가 중단해 버렸다

 

. 이 거대한 여신도 어느 날 한라산 중턱에 있는 물장오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재려고 그 물속에 들어섰다가 그만 빠져죽고 말았다 한다.

 

<다른 기록>

 

제주도의 거녀(巨女)인 선문대할망의 모습과 창조 업적·죽음 등에 얽힌 설화. 신이담(神異譚) 중 초인담(超人譚)에 속한다. 거녀의 이름은 지역에 따라 선문대할망·설문대할망·설명두할망·세명뒤할망 등으로 나타나고, 담수계(淡水契)편 ≪탐라지 耽羅誌≫ 등 문헌에는 ‘설만두고(雪慢頭姑)’라고 표기되어 있다. 제주도 전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단편적인 전설로 전승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선문대할망이라는 키 큰 할머니가 있었는데, 키가 엄청나게 커서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다리는 현재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쳐졌다. 빨래를 하려면 관탈섬에 빨래를 놓고, 팔은 한라산 꼭대기를 짚고 서서 발로 빨래를 문질러 빨았다고 한다.

 

제주도에는 많은 오름〔側火山〕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이 오름들은 할머니가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를 때에 치마의 터진 구멍으로 조금씩 새어 흘러서 된 것이라 하며 마지막으로 날라다 부은 것이 한라산이 되었다 한다.

 

할머니는 제주 백성들에게 속곳 한 벌만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했다. 속곳 한 벌을 만드는 데에는 명주 1백 통이 필요하였다. 제주 백성들이 있는 힘을 다하여 명주를 모았으나 99통 밖에 안 되어 속곳은 완성되지 못하고, 할머니는 다리를 조금 놓아가다가 중단해 버렸다 한다. 현재 그 자취가 조천읍 앞바다에 남아 있다.

 

할머니는 키 큰 것이 자랑이어서 깊은 물마다 들어서서 자기의 키와 비교해 보았다. 어느 물도 무릎을 넘는 물이 없었는데, 한라산의 물장오리에 들어섰다가 그만 풍덩 빠져죽어 버렸다고 한다.

 

물장오리는 밑이 빠진 깊은 물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설화는 할머니가 5백 인의 아들을 낳아, 그 아들들을 먹이려고 큰 솥에 죽을 끓이다가 잘못해서 빠져죽었다고 하여 할머니의 죽음이 다르게 나타나는 변이형도 있다.

 

이러한 거녀설화는 해남·강화도 등에 마고 할머니이야기로 그 잔영을 남기고 있어 널리 분포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본래 거인의 창조신화적 성격이 속화(俗化)되면서 단편적 전설로 된 것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韓國의 神話(張籌根, 成文閣, 1964), 南國의 傳說(秦聖麒, 一志社, 1968), 濟州島傳說(玄容駿, 瑞文堂, 1968),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4), 韓國文學의 淵源과 現場(張德順, 集文堂, 1986), 선문대할망說話考(任東權, 제주도 17, 1964).

 

 

 

 

13,000년 전에 해저 가스층 붕괴로 태평양에서 사라진 마(무) 문명-마(무).고구마.무(마)교.마고
 

 

무궁화 전파:한반도 서남해지역=>지나 동해안=>중동=>이집트

피라미드(적석총) 전파:한반도 서남해 석관묘=>만주(환인.요하)=>중동.이집트.남미

 

서남해는 마고문명의 중심지[보도자료]완도 소안면 월항리 일대가 노란색무궁화 자생지로 대규모 군락을 이룬 황근이 희귀종이라고 소문이 나면서 80년대 중반부터 외지인들의 무분별한 채취와 반출로 군락지가 심하게 훼손되고 멸종위기까지 처했다. 군락지을 훼손을 안타깝게 여긴 마을 주민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은 2007년 3월, 지역 주민과 외지인들이 가져간 황근을 제자리에 되돌려 옛 모습으로 재현하자는 ‘황근복원사업’을 꾸준히 추진했다. 한 때 훼손이 심해 1그루 밖에 남지 않을 때도 있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과 우리군 농업기술센터는 전문가들을 투입, 증식 복원을 통해 현재 500여 그루로 늘어나 원래의 모습을 찾는 중이다.

 

 

제주대학교 송창길 교수는 “황근(사진-노랑무궁화)은 가치가 있는 식물이다. 군락지를 보호해 주고 자생지를 유지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나무들이 외부로 반출되지 않도록 마을주민과 행정에서 관심을 갖고 보호,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주관을 담고 있는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이 증명하듯이 일찌기 우리 민족은 하나님.우주.인간에 대한 인식을 잘 하고 있었습니다. 해민족은 하늘에서 온 천손족이라고 하는데, 우리 선조들은 먼 옛날 북두칠성 자리에서 지구로 이주해 온 것이 아닐까요? 그것을 후손들에게 기억하라고 고인돌에 북두칠성을 새기고 칠성신앙을 지키도록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한반도 고인돌에 새긴 북두칠성

 

 

작은 곰자리-요하문명의 주역인 곰 토템족(곰자리 숭배)은 서남해 마고족(황궁씨)이다

 

마고가 다스렸던 서남해(호남)지역는 환국.배달국.단군조선을 낳은 어머니땅이였다

 


▲ 집안 피라미드 위의 고인돌.세계최다 고인돌 밀집지역 호남.요하에서 출토된 마고여신상
요하문명의 특징인 마고여신.암각화.옥 예술.석관묘 문화는 모두 한반도문명의 특징이다.



"마한(서남해)인들은 금.은보다는 주로 옥이나 구슬로 장식한다."(후한서)

 

마고가 다스렸던 마한지역인 서남해(호남)지역은 석관묘 양식의 고인돌이 세계 최다로 분포도어 있다.

 

작은곰자리는 북두칠성과 많이 닮은 작은 물주걱 모습을 하고 있지요. 그래서 북두칠성을 북쪽 하늘의 큰 물주걱이라 하고, 이것을 작은 물주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또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작은곰자리를 남두육성이라고도 합니다.

작은곰자리는 북극성(폴라리스)을 알파별(①)로 하고 있습니다. 베타별(②) 코카브(Kochab)는 북쪽의 별이라는 뜻인데요, 약 3,000년 전에는 코카브가 북극성이었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볼 수 없겠지만 또 1만 년쯤 지나면 다른 별이 북극성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북극성은 하늘의 북극으로부터 북극성은 1°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간 어선들이 이 별을 보고 배의 방향을 잡았고, 하늘을 날던 비행기도 이 북극성으로 항로조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육지를 가던 사람도 이 별을 길잡이로 삼았다지요.


그러나 하늘의 북극과 약간(1°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북극성도 하룻밤 내내 관찰하면 하늘의 북극 주위를 작은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북극성을 꼬리로 작은곰자리가 돌고 있지요.

출처 : 삼태극
글쓴이 : 윤복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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