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독도

박정희의 "독도밀약"

설레임의 하루 2011. 8. 27. 10:28

박정희의 "독도밀약"
글쓴이 : 독도야 미안테~ 날짜 : 11.08.02 조회 : 55

 

 

 

 

독도를 폭파하자고 했던 발언으로 한동안 구설수에 올랐던 사람,  김종필..
김종필이는 정치에 참 욕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국회의원 10선 한번 해볼라고 자민련 비례대표1번으로 자기 이름을 올렸는데, 그마저도 실패하고 사실상 정계은퇴를 했지요.
그리고나서 형의 입을 빌어 고백을 합니다. 그냥 죽으려니 참 미안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대사 발굴 大특종] 한일협정 5개월전 ‘獨島밀약’있었다
존재여부 논란 속 42년간 미궁 속에 묻혔던‘비밀협정’ 최초 폭로!!!
협상 주역 김종필 前총리의 친형 김종락 최초 증언
“전두환 신군부 등장 직후 밀약 문서 불태웠다” 
노 대니얼_ 월간중앙 객원편집위원 · 정치경제학 박사

정일권-고노‘미해결의 해결’ 대원칙 아래 모두 4개 항 합의1965년 1월11일 범양상선 박건석 회장 자택에서 서명 박정희 재가 뒤,

日側 보안상 美 용산기지에서 전화로 보고독도(다케시마)에 관한 비밀협정(일명 독도밀약)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일단 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한일기본조약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解決せざるをもって、解決したとみなす。從って、條約では觸れない).” 

부속조항 :
(1) 독도(다케시마)는 앞으로 한일 양국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고, 동시에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2) 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하는 경우 양국이 독도(다케시마)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획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3) 현재 한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의 건축이나 증축은 하지 않는다.

(4) 양국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나간다.
 

[현대사 발굴 大특종] 한일협정 5개월전 ‘獨島밀약’있었다
2007년 04월호 (2007.04.01) 노 대니얼_ 월간중앙
http://magazine.joins.com/monthly/article_view.asp?aid=259124

독도밀약 -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B%8F%85%EB%8F%84%EB%B0%80%EC%95%BD
한·일 '독도밀약' 실체 밝혀져 2007/03/19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703/h2007031908372121040.htm
일 정부 “독도 영유권 문제 한국과 밀약 없다”  2007-03-30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199773.html
지식채널e - 현실, 비현실, 바른 길, 어긋난 길 <독도밀약>
http://blog.daum.net/adarye/5342437?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adarye%2F5342437
‘독도문제’, 밀약파기가 유일한 해결책이다 2008년 08월 04일 (월) 11:30:06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9684#
그 문서는 “한국이 다께시마를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으니 하루빨리 탈환해야 한다”는 일본정부의

 

독도강탈야욕을 부추기면서, 독도분쟁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독도의 역사 < 박정희 정권의 독도밀약에서 한미 FTA까지>
http://cafe.daum.net/cbnuhotissue/WhVt/25?docid=1FXap|WhVt|25|20081210131839&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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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독도밀약
http://www.gesomoon.com/zboard/zboard.php?id=politic&no=42027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구체적인 증거
 
독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독도'라는 이름의 변천사를 살펴 보아야 한다.

이름이 바뀌는것 다 그만한 사연이(역사) 담겨 있기 때문이다. 
6세기 초 해상왕국 우산국이 신라에 소속되면서 우산국은 울릉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에 따라 울릉도에 딸린 섬 독도는 '우산'이 된다.

세종실록지리지, 고려사 등에 나와 있는 지도를 보면 동해에 우산도와 무릉도가 있는데 우산도는 독도를, 무릉도는 울릉도를

가르킨다.  

조선 성종 임금 시대에는 독도를 '삼봉도'라고 불렀다.

독도가 세 개의 봉우리로 보였기 때문. 정조 때는 가지도라고 불렀다.

가제(강치)가 많은 섬이라는 뜻으로 부른 이름.

고종 임금은 1900년 울릉도의 관할 구역을 울릉도 전체와 죽도 및 석도로 정했다.

석도는 지금의 독도를 가리킨다.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이 '독도'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다.
그런데 이 '독도'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첫 번째 기록은 어디일까?  
참으로 묘한 일이다. 우리나라에 보관된 문서가 아니라 일본 문서에 처음 등장한다는 것이. 독도라는

 

이름은 일본 군함인 '신고호' 항해일지에 처음 나온다.(1904년)

우산도(512년) ---> 삼봉도(1471년) ---> 가지도(1794년) --->석도(1900년) ---> 독도(1906년)

현재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죽도)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이 처음부터 그리 불렀던 것은 아니다.

옛날에 일본은 울릉도를 죽도라고 부르기도 했다.

19세기 초반 일본의 상인 다케시마 이치가쿠가 러시아를 다녀오다 울릉도를 발견했다.

 

그는 울릉도를 무인도라고 생각하고 제멋대로 '송도'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일본 정부에 '송도 개척 의견서'를 올렸다.

또 시마네 현 출신의 한 사무라이는 '죽도 도해 지원' 서류를 올렸다.

 

그들은 울릉도의 울창한 숲을 벌목해 큰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가 죽도라고 했던 섬 역시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였다.
독도는 나무가 많은 섬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일본은 곧바로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송도가 조선 땅이며 죽도(독도)는 그저 돌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 일본 정부는 이 두 섬이 일본 땅이 아니라고 인정한 것이다. 
19세기 말에는 일본 어부들이 울릉도에 들어와 고기를 잡은 일이 있었다.

조선 정부가 이 일을 일본 외무성에 항의했을 때 일본은 독도와 울릉도를 헷갈리고 있었다.

섬은 하나인데 이름이 두 개 인지 섬은 두 개인데 같은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일본은 부랴부랴 조사를 하여 자신들이 그 동안 송도라 불렀던 섬은 조선의 울릉도이며 죽도라 불렀던 섬은 바로

옆의 작은 독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 일본은 '독도와 울릉도가 자신들의 영토 바깥'이라는 문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자신의 조상들이 만든 이 문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울릉도와 독도 둘레 바다에 일본인들이 자꾸 들어오자 대한 제국시대에 우리 정부는 독도를
울릉군에 포함시켰다.
그때까지 독도는 무인도라는 이유로 행정 구역에도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 전도와 죽도와 석도를 관할하사..."
여기에서 죽도는 울릉도 근처에 있는 현재의 죽서도를 말한다. 석도는 돌섬,  즉 독도이다.

그런데 요즘 일본은 '석도'가 울릉도 둘레에 있는 암초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독도'는 '돌이 많은 섬'이라는 뜻인데 왜 '돌섬'이 아니고 '독섬(독도)'이 되었을까?
당시 울릉도에 살던 주민 중 80% 이상이 전라도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방말로 '돌섬'을 '독도'라고 부른 것이다.
전라도는 '돌'을  '독'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독도'는 전라도 사투리인 셈이다.

독도에 관한 일본의 중요한 자료들


1. 도해 금지 경고판

일본 시마네현의 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839년 만들어진 이 경고판에는 하지 우에몬이라는 사람이 바다를 건너 독도에 간 일로 처형되었다고 씌어 있다.

일본이 독도에 건너간 사람을 처형까지 할 정도로 엄격하게 다스렸다는 것을 알려 주는 증거이다.



2. 삼국 접양지도

1785년에 일본의 지리학자 하야시가 그린 <삼국접양지도>에는 동해를 '조선해(朝鮮海)'라고 썼고 울릉도를 '죽도'라고

썼다.

울릉도 오른쪽에는 작은 섬을 그려 넣어 독도를 표시했다.

두 섬 모두 조선 땅과 같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3. 일본 막부 공식지도

2005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동해 명칭에 관한 국제세미나’에서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한 일본 고지도가 새로 공개됐다.
본방서북변경약도(本邦西北邊境略圖)라는 이름의 이 지도는 1835년 일본 도쿠가와 막부의 지도 제작 및 기후 조사

책임자인 천문방 야스다 라이슈가 제작한 일본의 공식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