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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는 300년 전 세계가 인정한 ‘한국해’다

설레임의 하루 2011. 8. 15. 20:58

동해는 300년 전 세계가 인정한 ‘한국해’다 
2011년 08월 15일 (월) 13:30:28   연합뉴스 b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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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룡 영월 호야지리박물관장 "17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세계 모든 지도 '한국해' 표기"

(영월=연합뉴스) 일본이 독도에 이어 동해 표기까지 도발하는 가운데 '기호로 표시한 세계인의 약속'인 지도들은 300여 년 전부터 '동해가 한국해'라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15일 강원 영월군 수주면 호야지리박물관 양재룡 관장이 펴낸 '우리 땅 독도 동해바다 한국해'에 따르면 서양에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가 서양에 처음으로 알려진 때는 하멜표류기가 나온 1668년 이후이다.

한국에서 생활한 최초의 서양인 하멜이 반도라는 사실을 알리기 전까지 서양지도에 한국은 섬으로 표시됐다.

이때까지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 대륙의 동쪽바다, 즉 동방해(Mer Orientale) 속에 있는 섬이었다.

하지만, 하멜표류기로 한국이 섬이 아닌 반도로 밝혀지면서 한국 동쪽과 일본 서쪽 사이에 작은 바다가

생겼다.

이 새로운 바다 이름이 바로 '한국해(Mer de Coree)'다.

이를 시작으로 17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세계 모든 지도는 한반도 동쪽 바다를 '한국해(Sea of Korea)'로

표기했다.

1748년 프랑스 발랭의 중국지도(L'EMPIRE DE LA CHINA), 1749년 프랑스 보간디의 일본도폭지도

(LE JAPON) 등 호야지리박물관이 소장한 서양 고지도에는 이 바다 이름이 모두 한국해(Mer de Coree)로

나타나 있다.

당시 '일본해(Sea of Japan)'는 동해(한국해)가 아닌 일본 혼슈 남쪽 바다였다.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1752년 발랭의 일본지도(CARTE DE L'EMPIRE DU JAPON)에는 이 같은 한국해

(MER DE COREE)와 일본해(MER DE JAPON) 위치가 명확하다.

양 관장은 이 책에서 한국해가 19세기 이후 서양의 근대지도에서 일본해로 바뀌기 시작했으며 이는 당시

일본이 한국보다 서양세계에 더 잘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815년 톰슨이 그린 지도 '한국과 일본(호야지리박물관 소장)'에는 한국해가 일본해로 바꿔 표기돼 있다.

그리고 이 일본해는 국제수로기구(IHO)의 1929년 세계의 바다 이름 결정으로 현대 세계 각국 지도에 한국해

대신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은 1882년까지도 자국 지도(대일본조선팔도지나삼국전도)에 한국해를 일본해가 아닌 '조선해'로

 썼다.

조선해는 우리나라가 조선시대 표기하던 한국해 이름이다.

조선해는 대한제국시대에는 '대한해'로, 대한민국시대에는 '동해'로 각각 통용됐다.

양 관장은 이런 일본이 러일전쟁(1904∼1905년) 이후 독도 영유권은 물론 동해 표기까지 넘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1904년까지만 해도 독도와 울릉도 위치를 잘못 표기할 정도였던 일본은 동해에서 벌어진 러일전쟁으로

독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시마네현 고시'를 서둘러 발표하는 등 침탈 야욕을 노골화하기 시작했다.

서양은 물론 일본 고지도에서 독도와 울릉도의 위치가 바뀌어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 고지도의 제작비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고지도 제작자들은 울릉도 동쪽 먼바다에 있는 독도를 같은 지도에 표기하기 어렵게 되자 독도를

울릉도 서쪽에 그리는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1905년까지 일본에서 제작된 모든 지도에는 다케시마(竹島), 즉 독도가 마쓰시마(松島)로 쓰인

울릉도 왼쪽 안쪽에 표시됐고 이런 오류를 일본이 수정하지 않은 것은 독도와 울릉도가 자국 영토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고 해석했다.

양 관장은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려고 최근에는 '일본해 표기' 논란을 일으키면서 대한해협까지 일본해협

(쓰시마해협)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라며 "이를 차단하려면 감정적 대응보다는 세계인이 표시로 약속한 지도

등 더욱 확실한 증거를 객관화하는 등 논리적으로 당당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