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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환국~단군의 역사는 실제 역사

설레임의 하루 2011. 4. 20. 07:21

 

SBS | 기사입력 2008.10.0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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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뉴스 >
< 앵커 >
고조선의 건국신화로 알고 있는 단군신화가 신화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역사라는 사실을 입증한 책이 나왔습니다. 일제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조선 관련 기술을 변조했다는 겁니다.

우상욱 기자입니다.
< 기자 >
고려의 승려 일연이 쓴 역사책 삼국유사입니다.
현재 출간된 대부분은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이 환인의 서자'인 것으로 기술돼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인'자는 간자체 '국'자에 가필된 흔적이 역력합니다.
일제시대 이마니시라는 일본 사학자가 변조한 것입니다.
변조 이전의 삼국유사를 보고 정리한 동경제대 발간본에는 '국'자로 분명히 기술돼 있습니다.

한민족이 단군 조선 전에 이미 '환국'이란 나라를 형성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일제가 왜곡했다는 분석입니다.

이런 주장을 책에 담은 저자는 사학자가 아닌 현직 교육과학기술부 과장입니다.
[성삼제/교과부 학교제도기획과장 : 그때 일본역사교과서 왜곡 사건 났을 때 그때 제가 실무반장을 맡았습니다. 한일 관계 역사뿐 아니라 고조선 역사가 왜곡됐다는 걸 알고 그때 대책반에서 이 관련자료를 조사했습니다.]

성 과장은 4년동안 방대한 사료를 모아 단군 조선이 허구적 신화가 아니라 실제 역사임을 조목조목 증명해 사학계에 큰 파장을 불렀습니다.

[성삼제/교과부 학교제도기획과장 : 학문적으로 한번 굳어지고 나면 이것이 회복되는 데 100년, 20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도그마에 잡혀 있기 때문에 우리 고조선의 본질을 보지 못한다고 봅니다.]

비단 역사학자 뿐 아니라 일반인도 바른 역사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성 과장은 강조합니다.

우상욱 woos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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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자 고꾜 야스히꼬(吾鄕淸彦) :

 

일본 학자 고꾜 야스히꼬(오향청언, 吾鄕淸彦, こきょうきやひこ)는 이렇게 썼다.

 

“사마천의《사기(史記)》25권은, 단군 조선

 

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

 

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 :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그의 저서《고조선(古朝鮮)》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諸侯國)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燕)나라나 주(周)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

 

그리고 기자조선(箕子朝鮮) 설은 주왕(周王)이 자신의 지배 하에 있지 않은 영토를 마치 통치한 것처럼 꾸민 전형적인 예라고 말하고 있다. 또

 

"중국의 역사가들은 연나라가 중국의 동북쪽 변방에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나라의 역할을 과장해서 표현해 왔다."

 

그러며, 당시 국력으로 보아 연나라가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長城)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10) 소련의 역사학자 시로코고르프 :

 

소련의 역사학자요 인류학자인 시로코고르프(シロコゴルフ)는《중국사》에서 이렇게 썼다.

 

"BC 3,000년경 동이족은 이미 황하 양자강 서강의 중류이동(中流以東)의 중간 지역에 살았으며, 지나족(支那族)은 이보다 1,500~2,000년 후에 동방천자 치우(蚩尤)가 다스리는 동이족의 나라인 강회(江淮)지방에 진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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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영역은 일제식민지때 축소된 역사-


<만주원류고>는 신라를 자신들의 뿌리로 여긴 여진족이 그들의 원류를 찾고자, 중국의 역대 사서와 서적에서 만주와 한반도에 관련된 자료를 모두 뽑아서 유목민의 관점에서 일일이 고증하여 수록한 책이다. 1,777년 청(淸)의 건륭제의 지시에 의해 43명의 학자가 참여하여 부족ㆍ강역ㆍ산천ㆍ국속(國俗) 등 4개 부문으로 나누어 총 20권으로 편찬된 책이기에 만주원류고는 만주와 한반도를 아우르는 역사서이자 문화사적 서적이라 볼 수 있다. 

만주원류고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비중 있게 인용한 뒤로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번은 접하고 넘어가야 할 책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를 다른 각도로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두 가지 이유로 우리들의 주목을 받는다. 한민족과 같은 계열인 여진족의 청(淸)이 그들의 시각을 담아 고증하여 편찬했다는 점과 중국의 정통사서가 중국을 중심축으로 만주를 분절시켜 기술한 데 반해 만주가 중심이 되어 각 시대별로 사건 기사가 집대성되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이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 만주와 한반도는 동일한 삶의 공간을 형성했었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살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영위해 갔던 일관성 있던 삶의 족적들이 중원의 사가들에 의해 시공간대별로 분절되어 마치 다른 부족이 다르게 활동한 것처럼 지금까지 이해되어 왔었다. 그에 따라 만주는 온갖 서로 다른 부족들이 뒤엉켜 야만적으로 살아간 지역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예전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이 계속 그 지역에 뿌리를 두고 살아갔음을 생각해 보자. 중국의 만다린어를 구사하는 사람과 광동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현재 모두 중화족을 형성하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만주 지역 부족들 간의 이질성은 지나치게 부풀려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고구려가 붕괴하고 그 자리에 발해가 건립되기까지 불과 한 세대(30여 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고구려를 구성했던 주민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말갈인만이 남아 발해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중국의 주장을 통해서도 만주와 만주의 사람들에 대한 중원 사서들의 기술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만주원류고는 중국 사서에서 자의적으로 기술된 부분을 언어적 관점에서 집요하게 추적하여 교정하려 했다. 여진족의 용어를 뜻글자인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하나의 객체가 시대별로 사가들의 무지나 자의에 의해 서로 다른 한자로 표기되어, 후대에 마치 서로 다른 것으로 오인되었던 것을 만주어의 관점에서 일일이 고증하여 바로잡으려 했다. 청대의 고증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그 권위를 부여받은 이러한 자세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역시 중국 사서에 나오는 한민족 관련 용어를 치밀하게 검증하여 그 역사적 인과관계를 따져봐야 큰 것으로 언어학을 통해 역사적 용어를 검증하는 새로운 학문의 계열을 마련해도 될 정도의 치밀성을 보이고 있어 중원사서에 나오는 한민족 관련 용어 역시 치밀하게 검증하여 그 역사적 인과관계를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먼 훗날, 중국의 커커우컬러(可口可樂)가 미국이란 변방에서 코카콜라로 표기되고 한국에서는 가구가락으로 표기되어 콜라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었다는 분석상의 우스꽝스러움을 피하기 위해서도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조선사연구초>를 통해 시도했던 언어학적 검증을 정통 사학계에서도 도입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만주원류고는 또한 만주와 한반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문화적 습속을 집대성하고 만주인의 시각으로 이를 분석 평가했다는 점에 그 소중함이 돋보인다. 모계사회의 전통을 유지하고 제천의식을 거행하며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즐기는 축제의 모습, 민주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제 부족집단들의 의사결정 모습 등은, 거대한 정치적 사건으로만 역사를 이해하려 많은 사람들의 선입관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도 남는다. 

여진은 신라의 후예라는 것, 통일신라의 강역이 길림에까지 미쳤다는 것, 삼한의 한(韓)은 지역명이 아니라 징기스칸과 같은 리더의 이름이라는 선언적 기술은 어쩌면 만주원류고가 우리에게 정신적 대리 만족을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만주와 한반도의 사람을 보는 관점을 중원에서 만주 중심으로 변화시킨 것에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관점을 변화시키면 역사에 대한 해석이 변할 수 있다. 중국이 진행하고 있는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 있는 길은 그들의 중화 제일주의에 기인한 시각보다 우리의 시각이 동아시아 역사를 이해하는 데 더 합리적이고 실체성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해 나가는 것이다. 만주원류고는 이런 측면에 우리의 훌륭한 반면교사가 된다.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통독할 수 있는 번역본이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했었는데, 늦게나마 만주원류고의 전 텍스트가 번역된 책이 나오게 되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출처 : 한국고대사
글쓴이 : 그레이트 코리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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