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독도

[스크랩] 독도가 절대 일본땅이 될 수 없는 이유

설레임의 하루 2011. 4. 2. 03:50

 

열 살 어린이가 묻습니다. “독도를 두고 왜 싸워요?”

“독도는 겨울에 눈도 많이 오고, 날씨도 안 좋은 때가 많은데, 왜 우리나라랑 일본은 독도를 서로 자기네 땅이라고 하면서 싸워요?”

 

이 질문에 속 시원히 대답해 줄 수 있는 분, 계신가요? 아마 바로 대답을 할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저,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니까 그렇지! 원래부터 우리 땅이었어!”라고 대답할 수 있을 뿐, 실제로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왜 그것이 틀렸는지 대답할 수 있는 국민은 소수일 것입니다.

 

요즘 일본 문부성(교육부)에서 발표한 일본 중학교 교과서가 큰 이슈가 되고 있는데요. 내용을 보면 “독도는 일본땅 다케시마인데, 한국이 역사적·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이 실렸다고 하는군요. 이에 대해 일본대지진 구호성금 모금 및 일본에 대한 지원을 준비하던 한국 사람들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심지어, 일본을 돕지 말자는 격한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는데요. 해마다 터져나오는 독도 문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독도

 

 

일본의 독도사랑은 1905년 러·일 전쟁부터

조선 숙종때, 일본으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낸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안용복(安龍福)인데요. 그는 1693년(숙종 19년)과 1696년 두 차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들이 우리 영토인 울릉·독도 주변 해역에서 불법으로 고기잡이와 나무 도벌을 일삼고 있다" 며 일본 막부로부터 울릉도·독도가 조선땅임을 확인하는 서계를 받은 인물로 후세 민초들로부터 장군이란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 후, 일본의 막부 체제가 무너지고 메이지시대가 열리면서 일본 메이지 정부는 국가체제를 정비하는 한편, 전국 지도를 제작하게 되었는데요. 이런 과정에서 시네마현은 ‘울릉도와 독도를 시네마현에 포함시킬 것인가’의 여부에 대해 내무성에 질의했으며, 내무성은 1877년 태정관(太政官)지시문을 통해 ‘이 문제는 17세기에 끝난 사안이고, 울릉도 외 일도(一道)의 건에 대해서 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내용출처.독도연구소)

 

 

 

 

1877년 태정관(太政官)지시문 ⓒ독도연구소

 

 

일본은 1905년 이전까지,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하지 않다가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제정러시아와 한반도 패권을 놓고 싸우게 되면서 동해상에 단 두 개뿐인 섬, 울릉도와 독도에 망루를 설치합니다. 세계최강 러시아 발틱 함대를 이긴 일본은 전쟁의 승리와 함께 독도의 전략적 중요성에 눈을 뜨지요. 이후 일본정부는 시마네현 지방정부를 시켜 시마네현 고시 40호를 통해 독도를 편입하게 합니다. 이때부터 일본의 ‘독도’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독도 문제 한-일 양측 주장 및 반박 비교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일본측의 주장과 한국측의 반박을 총 3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일본 측 주장  한국측 반박
 

-1618년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 어업가문에게 내준 독도 도해면허와 1661년에 내준 울릉도 도해면허를 들어 영유권 주장

 

- 신라 지증왕(512)때 이사부 장군을 시켜 우산국을 병합.

- 일본인이 일본 땅을 가는 데 외국갈 때 필요한 허가장을 굳이 발급받는다는 것 자체가 일본 주장의 허구성을 잘 보여줌.

 

- 1905년 시마네현 고시로 주인 없는 땅인 독도를 일본영토로 편입함.

 

- 독도는 애초부터 주인없는 땅이 아니었음.

- 대한민국영토란 사실은 삼국사기(512년), 세종실록지리지(1454년,단종 2년), 팔도총도(1531년,중종 26년) 등 한국의 수많은 역사 자료를 보면 알 수 있음. 다케시마가 속한다고 주장하는 시마네현은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에 불과함.

 

-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 제1항에서 일본이 포기해야 할 섬으로 한반도 본토, 제주도, 울릉도만을 언급하고 있으며 여기에 독도는 없으므로 독도는 일본 영토임을 주장.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패전국 일본과 전승국 48개국이 맺은 조약임. 따라서 조약 당사자 이외의 제3자(한국)에게 독도에 대한 불리한 의무를 부여할 시에는 동의를 반드시 얻었어야 함.

-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한반도 주변 4000여개의 섬 중에서 주요한 3개섬을 예시한 것에 불과하며, 따라서 독도가 빠졌다 하더라도 이는 일본측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될 수 없음.

 

 

 

 

*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조약

(Treaty of Peace with Japan)의 관련조문

 

 

Article 2

 

(a) Japan recognizing the independence of Korea, renounces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Korea, including the islands of Quelpart, Port Hamilton and Dagelet.

 

제2조(a)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도쿄전범재판소는 일본 침략 전쟁의 책임이 큰 전쟁범들을 석방하면서 과거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나쁜 행동들을 주변국들에게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끊임없이 주변국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데요. 과거 독일전범재판소가 전쟁범들을 처벌하고 나치 가담자들이 공무원이 되지 못하는 법을 주변국들과 함께 만들어, 과거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을 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 아쉽기만 합니다.

 

 

일본의 태도 아쉽지만, 독도의 주인답게 유연히 대처하자

얼마 전 일본대지진 참사에 제일 먼저 발 벗고 나선 나라는 일본의 가장 가까운 이웃, 대한민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독도 문제를 계기로 일본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지원 열기가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현재 일본 교과서의 왜곡된 내용 때문에 마음이 상한 것은 사실이지만, 독도 문제 등 한·일간 역사 문제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일본 사회 전체의 시각이 아닙니다. 일례로 “일제 36년에 대해 일본은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정신대 문제도 보상해야 한다.”고 했다가 일본 언론의 빗발치는 공격을 받고 민주당을 탈당한 도이 류이치 의원처럼 양심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독도 문제를 일본대지진 구호와 연계하기 보다는 대지진의 아픔은 함께 나누면서 더 나아가 일본 사회의 양심적인 정치인, 지식인, 국민들과 끊임없이 교류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본 사회 스스로가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러한 공감대가 형성될 때 일본이 세계무대에서 주변국들의 박수를 받는 진짜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은 상하겠지만, 우리 국민들 모두가 독도의 주인답게 의연하고도 철저히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일본도 더 이상 욕심을 부리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글 = 정승호기자

이미지 = 아이클릭아트

1877년 태정관(太政官)지시문 사진 = 독도연구소

도움말씀 = 이장희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국제법 교수)

안용복 이야기 = 매일신문 2010. 12. 11.

샌프란시스코조약 = 보통사람들의 독도 문제연구 블로그

 

 

 

 

 

 

 

 

 

 

 

                   

출처 : 행복해지는 법
글쓴이 : 법무부 블로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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