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거란,몽골,원,금.청,터기,요,왜,일본

요(遼).금(金).원(元).청(淸)의 역사.

설레임의 하루 2011. 2. 14. 00:27

*출처:다음카페-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心濟  http://cafe.daum.net/dobulwonin/MJS8/5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요(遼).금(金).원(元).청(淸)의 역사는 우리 역사다

오늘날 중국은 현재의 중국의 영토와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을 합한 즉 중화민족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라고 규정짓고 있어 몽골의

원나라의 역사나 만주족의 청나라의 역사는 모조리 중국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몽골이 그 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현 국가체제를 엄연히 이루고 있는데도 말이다.

몽골의 역사가 징기스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징기스칸 이전의 역사는 어디에 속하며 그
뿌리는 어디일까?

필자는 징기스칸이 나오기 전의 몽골은 분명한 우리민족에서 나온 한 갈래의 역사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또한 근대까지만 하여도 동이. 북적. 남만. 서융을 사이(四夷)라 하고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고
흉노와 선비 그리고 몽골 등의

기원을 살펴 우리의 역사임을 밝히고자 한다.

가륵단군시대 욕살 색정이 흉노 조상

고려 말 이암이 쓴 <단군세기>를 보면 3세 가륵단군 조에 이러한 기록이 나온다.

“갑진 6년(BC 2177), 열양(列陽)의 욕살 색정(索靖)에게 명하여 약수(弱水)로 옮기게 하고 종신토록 가두도록 하였다.
뒤에 그를 사면하시고 곧 그 땅에 봉하니 그가 흉노(匈奴)의 조상이 되었다”라고 되어있다.

또한 “병오 8년(BC 2175), 강거(康居)가 반란을 일으켰다.
임금께서 이를 지백특(支伯特)에서 토벌하셨다.
초여름 4월에 임금께서 불함산에 올라 민가에서 밥을 짓는 연기가 적게 일어남을 보시고 조세를 줄이고 차별을 두도록 명하셨다”

라고 되어 있다.

이는 흉노와 티베트의 기원과 뿌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여기에서 약수(弱水)지역은 지금의 중국 감숙성과 그 서쪽 지역인 옛 토곡혼 지역을 흐르는 강 이름이며,

강거(康居)는 <한서(漢書) 서역전(西域傳)>에
“강거국왕(康居國王)이 동치(冬治), 악월특(樂越慝) 땅에 있다.
대월지와 더불어 풍속이 같고 동쪽으로 흉노를 섬긴다”라고 되어 있다.
지백특(支伯特)은 현 티베트를 가리킨다.

<단군세기>를 통하여 보면 흉노는 단군조선의 통치강역 안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조선시대 북애 선생이 쓴 <규원사화>를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규원사화 단군기>에서의 조선의 강역을 보면
“당시에 단군의 교화는 사방에 두루 미쳐 북으로는 대황(大荒)에 다다르고 서쪽은 알유(猰貐)를 거느리며, 남쪽으로 회대(淮岱)의

땅에 이르고 동으로는 창해(蒼海)에 닿으니, 가르침이 점차 퍼져나감은 위대하고도 넓은 것이었다.

이에 천하의 땅을 구분하여 나누고 공훈이 있는 친족에게 주어 제후로 삼았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무릇 큰 나라는 아홉이요 작은 나라는 열둘로서, 천하의 모든 고을을 나누어 다스렸는데 지금은 상세하지 않다”라고 하여
단군조선의 강성함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서 알유(猰貐)는 <사기>에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하(夏)나라 때는 훈육(獯鬻)이라 하였고, 은(殷)나라 때는 험윤(獫狁)이라 하였으며 진(秦)․한(漢) 때는 흉노(匈奴)로 불리던

단군조선의 일파이다.

흉노가 강성할 당시에 나라의 강역은
동서 만 2천리, 남북 7천리의 강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한(漢)나라로 부터 조공을 받았었다.
중국의 역대 4대 미인 중의 하나라는 왕소군이 흉노로 시집을 간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선비, 단군조선 강역 안의 부족 중의 하나

선비(鮮卑)도 우리의 역사다.
흉노가 망하고 선비가 유라시아의 넓은 대륙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선비를 고구려 2대 임금인 유리명왕 때 유리명왕이 부분노 장군과 함께 쳐서 고구려 속국으로 삼았다는 것은 <삼국사기>에

나와 있고 이미 언급을 한 바 있다.

<후한서>를 보면
“선비는 동호(東胡)의 갈래로서 선비산에 의지하여 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그 언어나 풍속은 오환(烏桓)과 같다”고 되어 있다.
같은 책에서 오환(烏桓) 역시 동호의 갈래라고 되어 있다.

동호(東胡)는 <삼국지 위지>에 인용된 <위략>에는 동호라는 이름대신 조선이라 되어 있다.

선비는 흉노와 마찬가지로 단군조선의 강역 안에 있던 하나의 부족을 일컫는 이름이며 그 위치에 따라 부르는 이름을 달리 불렀을

뿐이며 단군조선이 망하고 흩어져 있던 것을 고구려가 다시 복속을 시킨 우리의 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환이나 선비는 왕이 없고 대인(大人)으로 불린 것은 고구려 연방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왜곡된 삼국시대의 지도 - 선비와 고구려라고 쓴 부분은 고구려로 표시하여야 하며
백제와 신라도 당연히 그려 넣어야 한다. 위와 오의 강역도 다시 바뀌어야 한다.>



고려시대에 거란 즉 요(遼)나라의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강동6주를 돌려받은 서희 장군의 외교력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싸우지 않고도 승리를 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이다.

그런데 담판 내용을 보면 요나라도 분명히 고구려의 땅에서 일어난 고구려의 후예임을 밝히고 있다.

고구려가 망하고 발해가 뒤를 이었지만 그 땅에 말갈, 거란, 몽골 등 여러 부족들이 있었으며 이 들 모두는 고구려의 후예이다.

요나라를 세운 사람은 야율아보기이다.
아보기(阿保機)는 우리말의 아버지와 그 뜻과 음이 같다.

야율아보기의 호(號)가 안파견(安巴堅)인데 안파견이라는 말은 나라를 세운 국부(國父) 즉 나라를 세워 크게(암바, 大) 다스린(검,

理) 임금이라는 뜻이다.

요나라를 무너뜨리고 금(金)나라를 세운 아골타는 신라사람 김함보의 후손이다.

통일신라의 강역이 만주 지역 즉 현 중국의 동북3성까지였다는 <만주원류고>를 토대로 보면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가 어디에 살았고

같은 뿌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금나라 아골타, 신라 김함보 후예

대원제국을 세운 몽골의 징기스칸 또한 ‘징기스칸’이라는 말을 이해하면 몽골의 근원이 우리임이 분명하다.

청나라 때 간행된 <몽골원류>라는 책을 보면
“테무진이 나이 28세가 되던 기유 년에 이르러 극로륜하(克嚕倫河) 북쪽 근교에서 한(汗)에 즉위하였는데 즉위하기 전 3일 동안

맑은 새벽에 집 앞의 돌 위에 다섯 가지 색깔을 지닌 오색의 새가 날아와서 울었는데 이를 ‘징기스(青吉斯)’라 하며 마침내

징기스라는 그 상서로움에 부합하여 <색다 박극달 징기스한(索多 博克達 青吉斯汗)>이라 하였다”라고 되어있다.

3일 동안 날씨가 쾌청하여 하늘이 맑고 밝고 환한 것을 <박극달(博克達)>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말의 박달 또는 배달의 의미하고

똑 같다.

또한 오색의 새는 바로 우리의 봉황이며 봉황이 날아와 울고 상서로운 조짐을 보인 것을 ‘징기스’라고 함을 유추할 수 있다.

‘색다(索多)’는 몽골어로 ‘수도’정도로 발음되는데 이는 매우 뛰어난 모습이나 인물을 뜻하므로 우리말의 신성한 곳을 지칭하는

‘소도’, ‘수두’와 음원이 같으며 또한 한웅의 웅(雄)을 뜻하는 ‘숫’하고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종합하면 ‘색다 박극달 징기스한’이라는 말은 ‘숫 배달 징기스칸’이며 곧 ‘한웅 배달 징기스칸’이라는 말로 풀이가 되어
한웅천왕의 신시시대와 단군조선 시대 그리고 고구려를 계승한 배달의 후예라는 것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는 말이다.

이는 <단군세기>의 4세 오사구단군 조에
“갑신 원년(BC 2137) 임금의 동생 오사달(烏斯達)을 몽고리한으로 봉하였다.
혹자는 지금의 몽고족이 바로 그의 후손이라고 한다”고 한 것과도 그 맥을 같이한다.  




<징기스칸의 모습: 그는 배달의 후예다>

청나라를 세운 민족은 만주족이다.
<만주원류고>를 보면 만주족은 숙신→읍루→말갈→여진→만주족이라는 이어져왔다고 보고 있다.

숙신은 단군조선의 한 백성이며 말갈은 고구려와 발해의 한 부족이고 여진은 신라의 후손들이며 만주라는 말은 ‘주신’이라는

말과 같고 고대의 숙신의 뜻과도 같으며 나라의 관경(管境)이라는 말이다.

숙신이나 주신이나 만주라는 말은 쉽게 표현한다면 그냥 ‘우리나라’라고 하는 말로 설명을 하는 것이 가장 어울릴 것 같다.

중원을 포함하여 상고대시대부터 가장 강대했던 나라를 차례로 열거한다면 신시(배달)→단군조선→고구려→원→청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어린 시절 역사를 배울 때 의문점이 있었다.
그것은 세계를 제패한 몽골의 원나라나 청나라가 그 많은 나라를 정복하여 복속을 시켰음에도 왜 유독 고려와 조선은 멸망시키지

않고 놔두었을까하는 의문이 있었다.

원나라나 청나라는 역사 속에서 그들과 우리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며 우리가 일만 년 천손민족의 적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원나라나 청나라가 고려나 조선하고 전쟁을 벌여 많은 피를 흘렸지만 고려에 흉년이 들면 중원의 식량을 거두어 고려에

공급해 주는 것이라든가 청나라가 만주 지역을 신성시하여 중국의 한족들이 들어갈 수 없도록 봉금지역으로 한 것 등을 보면

더욱 그렇다.

몽골 숫 배달 징기스한’.. ‘한웅 배달 징기스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흉노, 선비는 물론 요와 금 그리고 몽골의 원나라와 청나라의 역사는 친화적 친연성과 근원적으로

볼 때 현 중국의 역사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중국은 원.청은 물론 심지어 고구려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라고 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현 자국의 영토를 중심으로 한 속지주의 사관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며 역사적 뿌리의 근원을 살펴보면 우리의

역사로 볼 수밖에 없다.

근대까지만 하여도 중국의 한족들은 흉노와 선비 그리고 몽골과 만주족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최근에 들어와서야 통치수단으로 정치적으로 역사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나라의 주인이었던 만주족은 중국 내의 소수민족이 되어 그들의 역사나 말과 글
그리고 문화까지도 거의 잃어버리고 한족에 흡수되어 살아가고 있다.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리고 말과 글마저도 잃어버리면 그 민족은 영원히 다시 살아날 수가 없다.

일만 년의 천손민족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라 할지라도 우리 스스로 역사를 부정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언젠간 자기 선조들이

위대한 제국을 세워 통치하였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아가는 만주족처럼 될 지도 모른다.

뿌리 없는 나무 없고 조상 없는 자손 없듯이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살아남기 힘들다.

흉노와 선비를 비롯하여 요나라와 금나라 그리고 원나라와 청나라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로 편입하여야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역사가 하나로 통합이 되어 신시와 단군조선시대처럼 하나의 국가로 다물과 복본을 이루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세계에 펼치기 위해서 남북을 통일하고 몽골과 국가연합을 추진한다면 그 길은 훨씬 단축될 것이다.  

(완)


신완순 (2008-09-08 12:12:56)  

필자는 지난 8월 (사)한민족생활문화연구소 주관으로 광주의 광산유스호스텔에서 열린 한민족생활학교에 ‘한민족의

뿌리와 상고사의 이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바 있다.

필자가 위 단체에서 상고사 강의를 한 지는 2년 정도 되었지만 이번의 강의는 여느 때와 다른 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사)한민족생활문화연구소에서 주관하는 한민족생활학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건강과 우리 민족의 생활과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석이 가능하며 미국 등 해외에서도 수련생으로 많이 참석하고 있다.

몽골의 유명한 한 라마승도 이번 한민족생활학교의 수련 과정에 수강생으로 참여하였다.
필자가 강의하기 전에 그 라마승이 짤막한 강의를 하여 필자도 라마승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강의의 요체는 한 국가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간직하여야만 된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종교적 깨달음에 관한 것이었다.

몽골은 (구)소련으로부터 주권을 상실당하고 공산화가 되었었다.
소련은 몽골을 소련의 위성국가로 만들고 몽골민족 500만 명이 흥기하면 세계가 흔들린다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기 위하여 5개의 나라로 나누고 몽골의 수많은 역사 유적과

사찰을 불태웠다.

과거 세계를 정복하였던 몽골의 역사와 문화와 혼을 완전히 짓밟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하려 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련의 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온 라마승과 애국지사 그리고 유목민 특유의

근성이 역사와 문화를 지켜냈다.

또한 13세기 몽골의 초원을 통일하고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며 유라시아 대륙을 소통시켜 역사상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했었던 징기스칸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몽골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과거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빼앗기고 식민통치를 경험하였던 우리로서도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