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분석의 틀 (Analytic Framework)
보스턴 대학의 인류학교수 Barfield(1989: 12)는 “몽골초원, 만주, 그리고 북중국을 하나의 역사적 체계를 이루는 구성원(parts of a single historical system) 으로 보고 분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 공개강좌의 목적은 (1) 만주대륙을 단순히 중국의 동북지역, 혹은 주변세력에 의한 점거투쟁 대상인 변강(contested borderland)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동아시아 제국(empire)들의 흥망성쇠를 결정 하는 핵심지역의 하나로 그 본질 적인 개념을 정립한 다음 (2) 이 새로이 정립된 개념(new conceptualization)을 Barfield의 제안과 접목하여 3극- 분석의 틀 (tripolar analytic frame-work)을 만들어 내고 (3) 이 새로운 인과관계 설정 (model-building)의 타당성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공개강좌 제1회는 우선 동아시아 역사 왜곡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다. 제2회는 전통적 으로 한족(漢族)의 본고장이라고 간주되는 만리장성 이남의 중국 대륙, 투르코-몽골족 의 본고장인 몽골초원, 그리고 한반도를 포함하는 선비- 퉁구스족의 “범-만주권” 등,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는 3개의 핵심 역사공동체 상호간의 과거 2천년간 작용과 반작용으로부터 결과된 제국의 형성-파괴 (empire-construction and empire-destruction) 현상을 요약한다.
제3회 는 만주족 왕조 정복-통치 형태의 반복적-진화적 현상(repetitive and evolutionary pattern)을 요약한다. 제4회부터 9회는 1-3회의 요약된 내용들을 선비-퉁구스 왕조들의 정복-통치 형태 진 화에 초점을 맞추어 구체적으로 기술하면서, 새로이 정립된 만주대륙의 개념과 새로운 동아시아 역사 인과관계 틀의 타당성을 검증해 보려 한다. 제10회는 고대 한일관계 역사 왜곡을 1-9회의 주제와 분리하여 별도 로 분석한다.
왜곡의 핵: 만주족 정복왕조
전통적인 동아시아 역사 서술: 한족 중심의 접근법
한족 중심의 중심부-주변부 (center-periphery) 접근법은, “천하의 중심에는 천자(天 子)가 다스리는 한족 중국이 있고, 그 주변의 비한족 야만인들은, 중국 천자가 확립한 질서에 순응 해, 조공을 바치며 중화 문명의 은택을 보고 살아왔다”는 식으로 동아시아 역사를 서술한다. 소수의 사학자들이, “이따금 씩은 중화 중심 세계 질서에 중단현상이 있 었고, 예컨대 송 왕조는 북중국을 점령한 야만족들을 동격으로 대하는 현실적이고 유연한 전략을 채택할 수 밖에 없었다”며 아주 조심스럽게 이견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소극적 으로 나마 거론되는 역사적 사실은 아예 사소한 예외적 현상으로 무시된다. Rossabi, et al. (1983: 1-12) 참고.
좀 객관성이 있어 보인다는 유목민족 대 정주농경 한족이라는 (unified nomads vs. unified sedentary China) 양극 접근법은 “유목민족 들이 정착 농경민족인 한족들로부터 공물(貢物), 특혜적 국경무역, 혹은 왕실간 혼인을 통한 지참금의 형식으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곡물과 직물 등 생활필수품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는 중국을 침략하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약탈해 갔으나, 한족들이 순순히 이 생필품들을 유목민 들에게 제공을 해 주면 평화가 유지되었다”는 식으로 얘기를 엮어 간다.
“유목민족들이 한족과 명목상의 조공관계를 받아들이는가 혹은 쳐들어가 약탈을 할 것인가는 유목민과 한족 간의 상대적인 힘의 크기 초원지역의 기후 변화와 전염병이 그들 가축들에게 미친 영향 각 조정 내부 세력권의 움직임 양측의 정치적-심리적 동기 국경지방의 혼란상 국경지역에 배치된 중국 관료들의 부패상 등등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Jagchid and Symons (1989: 14) 서구 대학의 저학년 역사교과서들은 대부분 비한족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는 왕조 -주기 (dynastic cycle) 허구적 모델(fiction)을 가르치고 있다. Hansen (2000) 참조.
만주족 정복왕조: 역사가들이 무시 해 온 선비-퉁구스 범-만주권
중국의 사서들을 보면, 대흥안령(大興安嶺) 동쪽의 소위 “야만인” 들을 크게 둘로 나누어, 서부만주 요서 (遼西) 초원지역의 오환 (烏丸), 선비 (鮮卑) 부족 등을 동호 (東胡)라 불렀고, 중부와 동부 만주의 퉁구스족 들을 모두 함께 동이(東夷)라 불렀다. 오환 부족은 3세기 이후 역사에서 사라지고, 동호라 하면 주로 선비 부족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들 언어는 소위 알타이어의 몽골계통에 속한다. 동이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삼한 등을 세운 예맥(濊貊) 퉁구스와 숙신-읍루의 후예로서 핵심 만주족의 선조인 말갈-여진 퉁구스로 나뉘며, 이들 “동이족”의 언어는 (알타이어의) 범-퉁구스 계통에 속한다.
중국대륙을 정복한 이민족 왕조가 5개가 있는데, 그 중에 원 (元, 1206-1368) 제국 하나만 몽골초원으로부터 내려왔고, 나머지 4개는 만주 에서 왔다는 아주 간단한 역사적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다. 즉, 탁발선비 북위(拓拔鮮卑北魏,386-534)와 거란선비 요(契丹鮮卑遼,907- 1125)는 모두 서부만주 초원지역 출신인 동호-선비(東胡鮮卑)족들이 세 운 나라들이고, 금(金,1115-1234)과 청(淸,1616-1912)은 모두 동부만주 삼림지역 출신인 여진-만주족이 세운 나라들이다. 후대에 끼친 영향력이란 측면에서 보면, 서부만주 출신 명단에다 352년에 북중국을 차지해 잠시나마 정복왕조를 한번 실현해 보인 단명의 모용선비 전연(慕容鮮卑前燕,337-70)도 추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한번도 남쪽으로부터 정복 된 적이 없다.
구당서에 의하면 징기스칸(b.1162/7)의 몽골족은 거란(契丹)족의 별종인 실위-몽올 (蒙兀) 부족에 속한다. 북사(北史)에 의하면 거란족은 서 부만주 우문선비(宇文鮮卑)족의 후예다. 10세기초, 실위-몽골족은 북부 만주 눈강(嫩江)-흑룡강(望建河/完水/ 混同江) 주변에서 아르군강 동쪽 초원 으로 이주했고, 11세기에와서 오논-케룰렌강 유역에 정착해 전업 유목민 생활을 하게 되었다.Franke and Twitchett (1994: 329) 참조.
舊唐書 卷一百九十九下 列傳 北狄 室韋者 契丹之別類也…東至黑水靺鞨 西至突厥 南接契丹…大室韋部落…傍望建河居 其河源出突厥東北界…又東經 蒙兀室韋之北…忽汗河合 又東經南黑水靺鞨之北…東流注于海 唐書 卷二百一十九下 列傳 北狄 契丹 本東胡種... 室韋 契丹別種 東胡之北 邊... 大室韋… 河南有蒙瓦部...水東合…忽汗河又東貫黑水靺鞨 北史 卷九十四 列傳 第八十二 奚本曰庫莫奚 其先東部胡宇文之別種也… 契丹國... 與庫莫奚異種同類 並
따라서 아주 그 근본을 따진다면, 징기스칸의 부족 은 몽골선비(蒙兀鮮卑) 족이라고 부를 수 있다. 무슨 큰 비밀도 아니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에 속한다.
한족 제국으로 왜곡된 수와 당: 서만주 선비족 정복왕조의 후계자
탁발선비 북위는 534년에 고환(高歡)의 동위(535-50)와 우문태(宇 文泰)의 서위(535- 56)로 갈라졌다. 동위는 북제(550-77)가 된다. 고환은 발해사람으로, 6대조가 서진 때 현도태수를 지냈고, 그 후손들이 선비왕조를 섬기게 되었다. 대대로 북변에 살다보니 선비족과 똑같이 되었다한다.
北齊書 卷一 帝紀 第一 神武上 姓高名歡…渤海蓚人也 六世祖…晉玄莵� 守…生…三世仕慕容氏 及慕容寶敗…率衆歸魏 爲右將軍…生…坐法徙居懷朔 鎭 …生皇考… 旣累世北邊 故習其俗 遂同鮮卑
우문태는 우문선비 부족의 후예이며, 선조가 요서로 남하해 살다가 모용황에게 흡수되어, 전연때 현도공에 봉해졌다. 후에 북위를 섬기게 되면서, 무천에 정착 하게 되었다.
周書 [557-81] 卷一 帝紀第一 文帝上 太祖文皇帝 姓宇文氏 諱泰…代郡武川 人也… 鮮卑慕之奉以爲主...其俗謂天曰宇 謂君曰文 因號宇文國 幷以爲氏焉 …自陰山南徙始居 遼西…爲慕容晃所滅…仕燕…封玄莵�…寶敗…歸魏…遷武川
선비 전통이 가장 강했다고 흔히들 말하는 서위는 557년에 북주(557-81)가 되어, 577년에 북제를 정복하고, 579년에 진(陳)의 강북 땅을 차지해, 짧은 기간 동안 이나마 북중국을 재통일할 수 있었다. 수(581-618) 나라는 선비족 북주의 후계자로서 천하를 통일했고, 당(618-907)은 단명의 수나라를 승계한 것이다.
수 나라를 세운 양견은, 북위-서위-북주 (386-535-557-581) 등 선 비 정복왕조에서 6대에 걸쳐 태수와 장군 노릇을 한 관롱 (關中隴�/陝西, 甘肅) 핵심 선비 지배씨족 출신이었다. 수서는 양견의 조상이 후한의 태위 벼슬을한 양진(震)에서 비롯한다고 말하지만, 진의 8대손으로 모용선비 전연의 북평태수를 지낸 양현 (鉉) 이전으로 올라가면 구체적인 기록이 전 혀 없다.
隋書 卷一 帝紀第一 高祖上 高祖文皇帝…漢太尉震八代孫鉉…仕燕爲北平 太守 鉉生元 壽 後魏代爲武川鎭司馬…元壽生太原太守惠嘏嘏染쥬�솽見� 烈生寧遠將軍禎 禎生忠 忠卽皇考也 皇考從周太祖…位至柱國…隋國公
양현의 아들이며 양견의 5대조인 양원수(元壽)는 무천진(武川鎭) 에 자리를 잡고 탁발선비 정복왕조를 섬기기 시작했다. 4대조와 3대조는 북위의 태수였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북위의 장군이었다. 양견의 아내인 문헌황후는 무천진 독고신(信)의 딸이다. 독고신은 무천진의 우문태(507- 56) 를 섬기며, 서위를 세우고, 후에 북주를 창건하는데 큰 공을 세운 8주 국(八柱國)의 일원이었다. 독고신의 맏딸은 우문태의 장자로 북주의 첫 번째 황제가된 명제(明帝,r.557-60)와 결혼을 했고, 일곱번째 딸은 수 문제 (r.581-604) 양견과 결혼을 했고, 넷째 딸은 당 고조 이연의 아버지와 결혼을 하였다. Twitchett (1979: 63-4, 151) 참조.
周書 卷十六 列傳第八 獨孤信…其先者…爲部落大人 與魏俱起 祖…和平中… ...自雲中鎭武川因家焉 父…爲領民酋長…建明初...信爲大都督...信與太祖鄕里 少相友...信長女周明敬后 第四女 元貞皇后 第七女 隋文獻后 周隋及皇家 三代皆爲外戚
舊唐書 卷一 本紀第一 高祖…姓李氏諱淵...皇祖諱虎…與周文帝及...大司馬 獨孤信等…稱爲八柱國家…追封唐國公...皇考諱昞 [北]周安州總管...襲唐國公... 追尊元皇帝…高祖七歲襲唐國公…文帝獨孤皇后 卽高祖從母也 北史 卷六十 列傳第四十八 王雄…開國公李虎…柱國大將軍…開國公獨孤信… 與周文帝[宇文泰]爲八柱國…開國公楊忠 是爲十二大將軍 독고신 휘하의
대장군 양충은 우문태에 의해 수국공(隋國公)에 봉해졌고, 양견은 부친 양충의 칭호를 물려 받아 후에 자신이 세운 나라의 이름으로 삼았다. 양견은 사위인 북주 선제(r.578-80)가 죽자, 외손자인 7살의 정제와 우문씨 일족을 모두 죽여 버리고 수나라를 세웠다. 양견의 집안은 선비 정복왕조 지배계급의 핵심씨족에 속한 것이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설사 양씨 집안이 한족 조상을 가졌다 해도, 모용선비 전연이 370년에 멸망하기 이전 (양진의 8대손이 전연 북평태수가 된) 언제인가 부터 선비어를 말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양견이 수 나라 를 세운 581년에는 최소한 211년간 선비말을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이연의 7대조는 이호(李暠,1.400-17)라 한다. 말인즉 흉노부족이 오늘날 감숙성 지역 에 북량(397-439)를 수립하자, 이호가 훨씬 서쪽에 위치한 돈황지역으로 가 서량을 세웠다 한다. 북량은 421년에 서량을 병탄했고, 북위는 439년에 북량을 정복해 북중국 통일을 완성 한다. 역사가들은 이호를 한족으로, 5호16국의 하나인 서량을 한족 국가로 분류하 면서, 당 고조 이연을 한족으로 간주한다.
이연(618-26)의 모친과 수양제의 모친은 자매 사이였다. 이연은 수문제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으며, 양제의 사촌으로, 당시 가장 세력 이 큰 수 나라 장수들 중의 하나이었다. 이연의 5대조는 북위의 홍농 태수, 4대조와 3대조는 무천(武川)에 정착한 위의 장수이었다. 할아버지 이호(虎)는 우문태가 서위/북주를 창건하는데 큰 공을 세운 개국공신 8주국 (八柱國) 중 한명으로, 당국공(唐國公)에 봉해졌다. 이호의 아들은 독고신의 넷째 딸과 결혼을 했다. 이연 자신은 (처가 북주 제의 누이) 수 나라 정주총관의 딸과 결혼을했다.
舊唐書 卷一 本紀第一 高祖...姓李氏諱淵 其先隴[西]涼배焚� 七代孫 暠生歆 [r.417-20] 歆生重耳 仕魏爲弘農太守 重耳生熙 爲…鎭將… 鎭武川因家焉 熙生天錫 仕魏爲幢主 皇祖諱虎 後魏左僕射…與周文帝及… 稱爲八柱國家…追封唐國公…皇考諱昞 周安州摠管柱國大將軍 襲唐國公… 追尊元皇帝 高祖...七歲襲唐國公 舊唐書 卷五十一 列傳第一 后妃上 高祖…皇后竇氏…隋定州總管…之女也 后母周武帝姉…養於宮中
우문태의 외손녀는, 외삼촌이며 우문태의 차남인 북주무제(r.560-78)의 궁중에서 자랐었고, 이연과 결혼하여 이세민을 낳았다. 이연은 당국공 칭호를 물려받아 후에 자신이 세운 나라 의 이름으로 삼았다. 이연은 양견과 마찬가지로 선비 정복왕조의 핵심 지배씨족 출신인 것이다.
설사 이연 집안이 한족 조상을 가졌다 해도, 탁발선비가 북중국을 통일한 439년 이후 (李暠의 손자가 북위 홍농태수가 된) 언제인가 부터선비어를말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이연이 당 나라를 세운 618년에는 이미 179년 가까이 선비말을 하면서 살았을것이다. 북주는 고사하고 한족국가로 간주해도 된다고 흔히들 말하는 북제 조정의 언어 역시 선비어 이었다.
따라서 무천진(武川鎭)출신 우문태가 세운 북주를 승계한 (무천진 출신) 양견이나 이연이 한족이라는 것은, 북위-서위-북주가 탁발 선비 정복국가가 아니고 한족 국가라 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 태종 이세민은 “몸소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했고, 타고있던 말이 네 마리나 죽었다. 그는 말들의 죽음을 애통이 여겨, 그들의 석상을 만든 다음, 화살을 몇 개나 맞았고 부상이 어떠했는가 뿐만 아니라, 그 말들 하나하나의 신체적 특징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말과 전쟁에 대해 이렇게 세세한 관심을 갖는 것은 유목민 지도자들의 특징이었다.” Barfield (1989: 141)
Ledyard(1983: 331)는 한족 서진이 멸망하고, 살아남은 왕공사족을 위시해 100여만의 한족이 강남으로 피난을 해 동진이 수립되는 “317년” 을,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중국 역사상 하나의 분기점으로 이해한다. 중국대륙의 핵심지역인 중원이 이민족에 의해 최초로 점령된 역사적 전환 점이 바로 317년 이라는 것이다. 당시 남중국은 한족들이 식민 정착을 대규모로 단행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쌀이 대량으로 생산된다는 경제적 이점을 제외하면, 사회-문화적으로 북중국과 전혀 비교를 할 수없이 낙후 된 미개척 변방 오지이었다.
북에서 도망을 해 온 교민(僑民) 집단인 남조 의 지배씨족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한족 문화전통의 후계자라고 믿었다. 만족 토호 (蠻族土豪) 장수가 남조의 마지막인 진(陳,557-89) 나라 를 세우게 되지만, 사학자들은 게르만민족 대이동의 결과 황폐화된 로마를 콘스탄티노플이 대신했던것 처럼, 건강(建康/남경)은 "한족 왕조인" 수 가 천하를 통일하는 589년까지 북중국의 장안과 낙양의 역할을 대신했다고 말한다. 당이 멸망한지 220년 후인 "1127년," 애당초 북경주변을 포기했 던 한족 송 왕조는 다시 회수 아래로 밀려 난다. 중원을 내어주고 정복왕조와의 국경선이 양자강 유역으로까지 계속 밀려 내려가게된 한족들은, 역사왜곡의 길을 택하지 않는한, 중화(中原華夏)를 내세우기가 힘들게되었 다. 사학자들은 화하(華夏)-만이(蠻夷)라는 문화적-민족적 대칭구조를 만 들기 위해,수-당을 (선비 정복왕조의 후계자가 아니라) 진-한(秦漢)에 필적하는 한족 제국의 귀감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언젠가 수-당을 사학계에서 탁발선비 정복왕조 북위-서위-북주의 직계로 분류하는 날이 오게되면, 지난 2천년 간의 한족제국의 역사란것 이 (소위 한족에 매번 즉시 흡수 동화되었다는) 이민족에게 간헐적으로 정복당한 역사가 아니라, (각자 고유의 전통을 고수하려던) 이민족 지배가 단 두 번 한족제국의 등장으로 중단되었던 역사가 되는것이다. 후한이 220년에 멸망한 이후 청조가 멸망하는 1911년 까지, 제대로된 한족 제국 이란 송(960-1127 -1279)과 명 (1368-1644) 밖에 없기 때문이다.
홍원탁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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