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독도

독도문제는 미국 책임? -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독도 처리!

설레임의 하루 2009. 9. 9. 01:11
*출처:다음카페: 우포가 있는 풍경 아름다운 창녕  글쓴이-牛 浦
                                                                    http://cafe.daum.net/01044400480/JRVL/43 
 

1.
일본이 패전한 후에 국제사회에 복귀를 다시 하게 된 것은 195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다.

그 전까지는 GHQ라는 연합국 총사령부에 점령하에 놓여있었다.
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통해 일본이 전범국에서 탈출하게 되는데, 1945년 패전 후 이 조약이
가결될 때까지 독도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 지 알 필요가 있다.

아래는 일본 내 북방영토 문제 및 독도 문제를 그나마 객관적으로 기술한 일본 사이트에서 발견한
내용이다.

 http://www.ne.jp/asahi/cccp/camera/HoppouRyoudo/index.htm
(객관적이라 해도 한국쪽에서 보면 애매하거나 미흡한 것이 있음, 특히  독도에 관해서는 1905년
이전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지 않음)


일단. 원문을 전부 번역해보도록 한다.

2.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독도 취급

1952년4월28일,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이 발효되고, 일본은 독립을 회복했다.

 일본국의 범위는 기본적으로는, 이 조약에 나타나 있다.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제2조
 (a) 일본국은,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며,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조선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権原 및 청구권을

 방기한다.


 이렇게, 일본국은 조선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権原) 및 청구권을 상실했다.

 그러나, 독도에 대해서는, 조약 안에 명시하지 않고, 일,한 어느 쪽의 것인지, 불분명하다.

일본, 한국이 동시에 자국의 입장에 맞게 해석하고 있다.


 1946년1월29일의 GHQ지령SCAPIN677에서는, 독도의 일본국 시정권이 정지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시기, 미국은 독도가

 조선에 속하는 것은 판단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실제, 1949년 11월 미국평화조약초안까지는 모두 독도를 조선 영토로 하고 있다.

 이 상황이 갑자기 바뀌는 것은 1949년 11월이다.

 이 때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 동서냉전 중, 일본국은 미국진영의 최전선으로 위치 지어지게 된다.

이 시기, 한반도 남부는 미국의 입김이 들어간 대한민국 지배하에 있었으나, 남북한대립의 가운데, 한국은 일본만큼이나

미국진영속에 확고한 지위를 점하고 있지 못했다.

이 때문에, 동서냉전을 고려한다면, 되도록 많은 영토를 일본에 남겨두는 편이 미국으로서도 조금은 유리한 셈이었다.

실제, 이 시기에는 제주도도 일본령으로 하자는 주장이 미국에 있다고 알려진다.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하는 주장은 주일정치고문 윌리엄 J 시볼트 로부터의 의견서가 발단이 된다.

시볼트 가 어떤 역사적 근거에 의해,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생각했는지, 알 수 없다.

일본정부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미국에 대해서 36권에 이르는 자료를 제출, 일본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 때, 1947년 6월에는 [태평양 및 일본해 소제도]라는 제목의 문서를, 미국에 제출, 일본쪽 입장을 설명했다.

이 문서, 독도의 일본영유론의 근거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단지, 이 문서는 현재, 일본정부에 의해 비공개되고 있어서,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시볼트는 독도를 일본령으로 하는 한편, 일본이 포기하는 영토범위를 엄밀하게 해야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1950년 8월 미국초안에서는, 독도뿐 아니라, 제주도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영토문제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시볼트의 주장이 진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이 시기, 영국에서도 평화조약 초안이 만들어져 있었으나, 영국초안에서는 국경을 명확하게 표기하여, 독도가 조선령으로

되어 있었다. 1951년 5월, 미,영의 교섭에 의해, 공동안이 작성되었다.

공동안은 미국안이 강하게 반영되어서, 영국안은 그늘에 가려지게 된다.

단지,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조선령으로 명시하는 것은 부활하게 된다. 독도는 언급하지 않게 된다.

 미영공동의 평화조약 초안에서는, 독도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이 시기, 미국의 인식으로는 독도가 일본의 영토로 못박으려고 하는 생각이 명확하게 있었다.

1950년 가을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문의, 1951년 8월 한국정부의 문의에 대해서, 어느 경우든, 독도는 일본이 보유하고 있다

는 취지의 회답이 있었다.

 평화조약이 체결되고, 아직 발효되지 않은 1952년 1월 18일, 한국정부는 이승만 라인을 설정하고, 사실상,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삼았다. 평화조약이 발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독도에 대한 시정권을 정지당하고 있던 상태라, 한국의 조치에 대해 어떤 대항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독도를 점령하고 있던 미국은 한국의 조치에 대해서, 아무런 대항조치를 취하지 않고, 한국이 독도를 영유하는 것을 사실상 인정했다.



원문>
http://www.ne.jp/asahi/cccp/camera/HoppouRyoudo/Other/Ullundo/

HeiwajouyakuTakeshima.htm


3. 위 글을 정리해보면

1.  1946년 2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조약 초안에는 일본이 포기하는 영토에 독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2.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자,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될 것을 우려한 미국 정부는 자본주의 진영의 최전선으로 일본을 두고,

 되도록 일본영토를 더 많이 남겨두려는 생각에 독도의 소속을 애매하게 하기 시작한다.

3. 미국쪽 독도 입장이 변경되는 과정의 발단은 일본 쪽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주일 정치 고문 윌리엄 시볼트의 의견서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시볼트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된 독도안이 미국정부의 주요 방향이 된다.

4. 한국전쟁 발발 후 1950년 8월에는 독도 뿐 아니라 제주도도 일본 영토 포기 범위에 들어가 있지 않게 되었다.

5. 영국의 조약초안에는 명확하게 독도가 들어가 있었으나 미국에 눌려 힘 한번 못쓰고 밀리게 된다.

6. 1951년 호주 및 한국 정부가 독도의 소속을 묻자 미국은 일본령이라고 회답.

7. 결국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는 독도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이 끝나게 된다.

8.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이승만 라인을 긋고,  실효적 지배에 들어가자, 지금까지 미국이 그대로 묵인하고 있는 중이다.


즉, 제2차세계대전 후 연합국의 주축이었던 미국이나 영국의 원안으로서는 독도가 원래 한국 땅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나, 

중국의 공산화되면서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 될 것을 우려, 미국이 입장을 바꾸게 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한 때 제주도까지 일본 쪽으로 넘기려 했다는 이야기를 보니....어이가 없기도 하다.
요즘에는 미국이 아예 '나는 모른다.' 당사자끼리 알아서 하라니...허허 이것 참....
역시 국제정치바닥에서는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반증이려나!



* 이 일본어 링크는 제가 가끔 찾아가는 야후 블로거
 
http://kr.blog.yahoo.com/ppao2/1174?c=14 에서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