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사국시대

또 하나의 고려-훈제국과 아틸라

설레임의 하루 2009. 8. 23. 00:16

*출처:다음카페-삼태극     글쓴이: 소서노     http://cafe.daum.net/mookto/GXdu/226

 

 

 

 

 

 

 

또 하나의 고려-훈제국과 아틸라

광개토태왕이 동방에서 고토회복전쟁에 전념하는 사이 서방에서는  스키타이(단군조선의 후예)->흉노(단군조선의 거수국)->훈으로

이어지는 한겨레가 아틸라라는 걸출한 영웅의 탄생과 더불어 서양인들의 우상, 로마제국을 초토화시키며  유라시아와 유럽에 걸쳐 대

제국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바로 훈 제국이었습니다.

 

서양중심의 세계사와 사대주의 역사책에서는 이런 소리 전혀 안합니다.

그냥 무슨 원시야만족의 침입즘으로 간단하게 처리하고 말죠.

 

서방에서는 당시 최강을 자랑하던 로마군단도(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분열된 시기임) 고려말(高麗馬)인 과하마를 타고 배사법

(背射法=말위에서 뒤돌아 활을 쏘는 전술)을 세계최초로 구사하는 훈 기마군단에 추풍낙엽처럼 사라져 갔습니다.

 

당시 훈제국 전사들이 말위에서 자유자재로 전후좌우 화살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쇠로된 등자에 발을 끼우고 온 몸을 지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서양 로마제국은 등자를 발명하고 있지 않은 미개한 상태라 훈제국 전사들의 활과 화살 그리고 등자는 보도 듣지도 못한 첨단

신무기에 해당하였습니다.

 

현재 프랑스 어느 지방에는 우리 한겨레와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데, 자신들의 조상은 동방에서 온 훈제국의

후손들이라고 한답니다.

 

깨어있는 푸른역사  http://cafe.daum.net/mookto

 

 

 

고구려 이전사 뚝잘라 반토막 낸 어리석음을 바꿔야 

출처:데일리 서프라이즈로 추정함

 

본보는 인터넷 신문 본연의 기능 중 하나가 누리꾼들의 직접 참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동안 그런 점을 적극 반영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해년 새해, 데일리서프라이즈 열정의 4년차를 맞으면서 누리꾼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본보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누리꾼 칼럼]이라는 코너를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이 코너는 누리꾼들의 글을 옮겨 실음으로써 전문 기자들과는 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다만 누리꾼들이 자유롭게 인터넷 각 공간에 실었던 글임으로 표현상 다소 언론매체에서 사용하기 부적절한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해서는 본인들의 양해를 얻어 언론매체에 맞는 표현으로 바꿨습니다. [편집자 주]

1. 구리족

어느 나라든 그 나라마다 역사와 전통이 있다.

미국과 같이 역사가 짧은 나라는 국민들의 단합을 위하여 오르지 할리우드식 영웅전을 통하여 애국을 호소하고 있다.

반면 중국같이 이합집산이 심한 나라는 남의 나라 역사마저 자기것으로 병합하려하는 무모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나라의 분열을 방지하고 국민들을 단합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들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만년의 방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이전의 역사를 뚝 잘라내어 신화로 만들어버린

어리석음을 전혀 고치려 하고 있지 않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먼 옛날 천혜의 땅 흰머리산(히말라야, 실제의 백두산)에서 밝달호수(바이칼) 사이의 드넓은 땅에서 번영의 시대를 구가하던 우리

구리족(한민족)은 급작스럽게 찾아온 소빙하기와 내부 분열로 인하여 세갈래로 흩어져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첫번째 부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와 만주벌에서 몽골벌에 이르는 대평원에 정착하였고

두번째 부류는 남미 북미를 아우르는 아메리카 전대륙이고 세번째는 헝가리와 터키 그리고

터키메티스탄 라인인 것이다.

본격적인 글쓰기에 앞선 구리족의 어원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우리 민족을 뜻하는 동이(東夷)는 구이(九夷)가 원래의 한자말로 나중에 지나(옛날 중국 진나라, China)인이 우리를 얕잡게 말하면서

구자를 방향을 뜻하는 동(東)으로 바꾸어 붙였고 또 다시 이(夷)자 마저 오랭캐라는 뜻으로 바꿔 부르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 한자사전의 변경을 강력히 요구한다.)

한자는 단순히 음을 달기 위해서 사용한 면도 있고 그 음을 빌려 쓰기 위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우선 파자(한자의 분해)를 통하여 그 뜻을 유추해 보자.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夷는 弓+大가 아니고 정확하게는 十 + 人 + 弓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十'은 열십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을 뜻하며 '弓'은 활이 아니라 윗쪽의 하늘과 아랫쪽의 사람을 이어줌을 뜻한다.

종합하면 '하늘과 뜻이 통하는 사람들'이라는 뜻, 또는 '향불을 피워 하늘에 제사 지내는 사람들'이라는 숭고한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뒷바침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민족을 뜻하는 또 다른 말 하늘족(한민족)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예로부터 하늘을 숭배해 왔다.

하늘에 제사지내고 항상 하늘에 감사하며 살아온 것이다.

예를 모르는 미개인인 지나족이 볼때는 경원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옛 지나땅에 유교를 전파한 공자도 동이를 흠모하며 그들의 땅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지나의 일부 식자들은 우리민족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참고로 우리의 역사책이 아닌 중국의 역사책을 보면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에서 '동방을
이(夷)라고 한다.

夷는 곧 뿌리이며 어질게 산다고 한다.

모든 것은 땅에 뿌리 박고 있으므로 천성이 유순하고 道로써 다스리며 군자의 나라이자 죽지 않는 나라(不死國)인 것이다.'라 하고

있다. 또한 사마천(史記)에서는 '은나라의 건국시조 설은 동이족이다.'라고 쓰여 있다.

또한 고사변에서는 '중국 민족의 조상은 바로 동이족이다.'라고 할 정도로 우리민족을 숭상경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민족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인내천)을 제일 중요한 삼대요소로 삼고 있다.

다시 하늘과 달리 땅의 개념인 구이(九夷)에 대하여 알아보자.

구이는 발음 자체를 한자음으로 옮긴것으로 실제 어원은 '구리'이다.

구이의 '이'자는 '리'와 동음으로 실제로는 '구리'라고 발음해야 하는 것이다.

구리는 무엇인가?

이것은 다시 굴 또는 골로 해석될 수 있다.

골이라는 것은 땅과 땅 사이에 생긴 골짜기를 뜻하며 동시에 땅을 경작하는 골파기로 만들어진 '골'로 해석할 수 있다.

옛부터 사람살기 좋은 터는 십승지라고도 하는 높은산 안쪽의 양지바른 골짜기이다.

그래서 지금도 '안골', '뒷골', '황골'등과 같은 마을이름이 쓰이는 것이다.

골의 또다른 의미는 밭갈기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살이에 가장 중요한 먹거리를 만들기 위한 기초작업인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밭갈기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시작하여 구리족이 된것이다.

구리는 옛부터 근래까지 계속 이어져 나라이름으로 쓰여지고 있다. 고려는 구리가 변하여 (고)구려가
되고 나중엔 고려로 이어져

유럽으로 넘어가 꼬레아(Corea-Korea)로 변해 다시 역수입된 것이다.

옛날의 말갈 돌궐족의 '갈'과 '궐'도 같은 의미이며 몽골의 '골' 또한 같은 의미이다.

유럽에 있는 형제국인 터키와 헝가리도 같은 의미이다.

터키는 돌궐의 다른 이름인 투르크가 변하여 터키가 되었고 헝가리(Hungary)는 '훈갈'의 유럽식 발음으로서 실제로도 헝가리에서는

'훈의 땅'이라는 의미로 부른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하나 더 얘기하자면, 구리족에 대한 또다른 의미로는 청동의 최대원료인 구리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선사시대에 땅을 경작하여 곡식을 걷어들였다면 청동기시대에는 땅에 있는 돌을 제련하여 구리를 만들어 창과 칼 또는 여러가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것은 엄청난 발명으로서 구리족이라는 별칭이 붙여질만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던것이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이 동이족이 아닌 쇠를 의미하는 동철족이라고 부르자고 하는 것은 이에 맞지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2. 훈 제국


한여름으로 접어드는 로마제국 동부의 광활한 평원, 밤을 지새운 2만여명의 로마군단이 일세를 풍미하고 있는 최고의 보병답게

겹겹이 늠름한 자세로 고요한 새벽의 지평선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그러나 붉은 털장식 투구 아래 수많은 눈들은 왠지 초조한 눈빛이다.

이틀전 동양에서 밀려오는 야수와 같은 전사집단의 최후통첩을 받았기 때문일까?

'우리는 하늘의 자손이다. 항복하라. 항거하는 자는 죽음을 맞이하리라'

선전포고는 의외로 간단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든 로마의 통치자와 그 일족들은 전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시아 대륙에서 밀려오는 무시무시한 피바람의 폭풍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악마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신이 보낸 인류 말살자들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로마인, 그들이 누구인가?

전 유럽을 호령하며 북아프리카와 동아시아를 주름잡고 있는 패자중의 패자가 아닌가?

길게 겹겹이 늘어진 로마군단의 시야로 동녘의 붉은 해가 지평선을 녹이며 떠오른다.

파리한 새벽하늘에 퍼져있던 구름들이 태양을 호위하는냥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서 병사들의 굳은 얼굴도 덩달아 붉게 물든다.

태양의 일렁이는 마지막 꼬리가 대지에서 떨어질 무렵 뿌연 흙먼지가 따라 올라간다.

그 흙먼지는 점점 커지며 좌우로 흩어지고 있다. 바람인가?

그 흙먼지는 이내 여러 무리의 인마로 변해간다.

태양을 등지고 쏜살같이 달려오는 기병들 드디어 올것이 왔다.

점점이 보이던 무리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올 무렵, 하늘에서 한줄기 검은 비가 몰려오나 했더니 귀를 찢는 무시무시한 파열음이

들려온다. 그것은 검은비가 아니라 화살이었다.

그 화살들은 보병의 뒤에 말을 타고 서 있는 지휘관들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혼비백산한 말들이 먼저 날뛰면서 장수들을 내동댕이친다.

그 위로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는 화살들이 내리 꽂히면서 그 근방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이어서 앞서 내 달려오는 무리들이 로마 보병의 가슴팎으로 화살 한대에 한명씩 정밀 사격을 가하고 있다.

실로 무시무시한 일이다.

맞서서 칼 한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후방의 지휘관들이 고꾸라지고 둥그런 방패와 칼을 꼬나잡고 있던 제1선이 어이없게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들은 내쳐 달려오지 않고 어느정도 교전 거리에서 말을 돌려 달아나고 있었다.

이 모습에 힘을 얻은 2선의 로마 보병들이 와하며 칼을 들고 달려나간다.

그것도 찰라, 말을 돌려 달아난 흙먼지속에서 또 다른 무리들이 활을 쏘며 내쳐 달려나오고 있다.

그들의 사격은 너무나 정밀했다.

말을 타고 짖쳐오면서도 화살은 정확하게 로마군단의 가슴팍에 꽂혀들었다.

실로 어이없는 광경이었다. 2선이 어느정도 무너질 무렵 그들은 다시 달아났다.

실로 더 가공할일은 그들은 등을 돌려 달아나면서도 상체를 돌려 활을 쏘고 있었다.

순식간에 말을 돌리고 흔들리며 뛰어가는 말 위에서 뒤를 보며 활을 쏘아대는 솜씨는 반인반마 괴수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들은 질서정연했던 로마군단의 대오를 어느정도 흩트려 놓은 다음 일제히 총공격을 가하며 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

지나가다 했더니 어느새 좌우로 흩어져 두개의 커다란 원을 그리며 로마군단을 에워싸며 옆을 보며 화살을 날렸다.

두개의 무리로 쪼개진 군단은 다시 네개 여덟개로 쪼개지며 사분오열이되고 커다란 시체더미가 되어갔다.

몇세기를 걸쳐 그들앞에 맞설 수 있던 강자가 없었으나 그들은 이렇게도 어이없이 아시아에서 밀려온 1천 단기의 기병앞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막강한 로마군단을 그렇게 간단하게 제압해버린 그들은 도대체 누구였던가.

그들은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이라 했다. 그런 그들을 유럽인들은 '훈족(The Huns)'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훈족의 대왕을 그들은 '아틸라'라고 불렀다.

아틸라가 통치했던 훈족은 이렇게 파죽지세로 몰아치며 동아시아대륙과 서유럽을 정복하고 통치했다. 그들은 서아시아에서 목초를 찾아 동으로 진행하던 소수민족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그 넓은 땅을 정복하고 통치했을까? 그 답을 찾아보자.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뭉칠 수밖에 없는 단결력이었다.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 몇개의 무리를 지어 광야를 떠다니면서도

어떤 위험이 초래되면 그들이 일시에 거병할 수 있는 것은 한 하늘의 한 자손이라는 종교적인 믿음과 서로간의 유대감이었다.

말을 이용한 빠른 통신수단도 한자리에 일순간 모일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두번째로는 훌륭한 지도자와 전략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아틸라'라는 부족장이 그들을 이끌어 나갔던 것이다.

아틸라는 다른 부족의 왕들처럼 권위나 위세를 부리지 않았다.

부족들과 함께 바싹마른 육포를 씹으며 말위에서 잠을 잤고 허름한 천막에서 잠을 잤으며 조직 내부의 다툼을 화해시키는 중재자였다.

그리고 그는 뛰어난 전략가였다. 아틸라는 이름은 후세의 세인들에 의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아틸라의 원뜻은 '아버지'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들의 전략은 전장에 임하는 전술전략과 점령지를 통치하는 통치전략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장에 임하는 전략에 있어서 그들은 심리전의 대가들이었다.

목표 지역을 점령하기 전에 그들은 공격 몇일 전 최후통첩과 같은 선전포고를 한다.

그것은 항복과 죽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만약에 항복을 하면 그들은 정복지를 털끝하나 건들지 않고 지나갔다.

오히려 정복지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생업과 통치를 보장해 주었다.

그 조건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후방지원이다.

반대로 대항하게 되면 그 일대를 개미새끼 하나 남지않을 정도로 무자비하게 초토화시켰다.

그것은 또 다른 미래의 적에 대한 경고의 의미였던 것이다. 그것은 심리전이다.

이런 전략외에 휘파람소리가 나는 화살과 울긋불긋한 치장은 전술적인 심리전 무기였다.

세번째로는 그들만의 신병기가 있었다.

말을 타고 유목생활을 하는 훈족은 태어나면서부터 거의 모든 생활을 말잔등에서 지내다 말잔등에서 죽는다. 그만큼

그들은 반인반마(半人半馬)라고 불려질 정도로 말을 부리는 기술이 뛰어났다.

또 한가지는 말 잔등에 단단히 붙들여 매어져 있는 안장과 발을 받쳐 중심을 잡게하는 등자이다.

사람의 몸을 안정되게 지탱해주므로 해서 달리는 말 위에서도 등을 돌려 활을 쏘는것과 같은 기술이 가능했던것이다.

훈족들은 보통 개인당 서너마리씩의 말을 몰고 다녔다.

이 말들은 유럽의 말들과 달리 몸집은 작았지만 영민하면서도 민첩했다.

훈족의 전투 모습을 암니아누스 마르켈리누스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회오리바람처럼 높은 산에서 휘달려 내려와, 적들이 누구인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진영으로 몰려들었다.'

마지막 세번째 신병기는 활과 화살이다.

동물의 뼈로 만들어진 활은 유럽의 커다란 활들과 달리 짧았지만 탄력이 매우 좋았다.

전체적으로 'S'자 두개를 돌려붙인 모양으로 '복합곡궁' 또는 '불균형반사궁'이라고 불린다.

근세에 들어 유럽인들이 이 유물을 재현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활은 우리나라에서는 맥궁 또는 각궁이라 부르는 것으로서 국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다.

화살 또한 유럽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신병기이다.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쇳조작을 댄 화살은 탄력이 좋은 활로 쏘아져 유럽 병사들의 갑옷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여기에 구멍뚤린 방울을 붙여 기분나쁜 소리를 울려줌으로해서 기절초풍하게 만들었다.

서기 400년경, 동방에서 갑자기 나타난 훈족은 정체는 무엇인가?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훈족의 정체는 크나 큰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와서 이 수수께끼가 하나씩 풀리고 있다.

독일 ZDF TV의 역사 다큐멘터리 시리즈에서는 '375년 유럽을 강타, 게르만족 대이 동을 촉발시킨 훈족'을 추적했다.

이 유목민의 정체와 이동 경로를 추적하여 Q채널로 방영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그들은 동방의 작은나라 대한민국까지와서야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다.

그들은 많은 우리의 유물과 옛이야기를 검토 비교하여 징기스칸보다 8백년 전에 유럽을 정복한 훈족이 아마도 한국인과 같은 조상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프랑스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이종호박사는 좀더 치밀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그는 자신이 저술한 '로마제국의 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이라는 책에서 훈족이 한민족이라는 다음과 같은 근거와 결론을 제시하였다.

저자는 AD 8세기 활약한 고구려 유민 후손 고선지에 의한 종이 전파가 서구유럽문명의 문화적인 성장을 가져왔다면 아틸라에 의해

촉발된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인해 서구유럽문명은 정치적 완성을 이룩했다고 평가한다라고 하면서, 저자는 이 책에서 아틸라와

훈족이 흉노족 일파이긴 하지만 투르크(돌궐)계라는 종래 지배적인 견해를 반박하면서 한민족과 같은 몽골리안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저자는

첫째, 훈족에게 몽골리안 반점이 발견되고,

둘째, 그들이 특유의 복강궁이라는 활을 사용했으며,

셋째, 그들의 머리 골상이 편두(偏頭)라는 사실을 든다.

 

복강궁이란 활은 고구려 고분벽화인 무용총 수렵도에 나타난 고구려 활과 똑같아 이것이 중국 고대문헌에서 확인되는 예맥족

특유의 활(예맥각궁,濊貊角弓)이라는 것이다.

편두가 한민족 계열에게 나타난다는 근거로는 진한(신라)·변한(가야)족 역시 편두였다는 기록을 주목한다.

그러므로 결론은 훈족은 한민족이다.


2003년 12월 31일자 헤럴드경제에서도 이종호 박사의 말을 빌어 기사의 말미를 다음과 같이 장식하고 있다.

훈족의 서방 이동로에서 발견한 유물과 가야·신라의 것을 비교 검토한 결과 한민족을 훈족의 원류로 추정했다.

한민족이 훈족의 주류였다는 것이다.

아틸라는 칭기즈칸, 알렉산더와 더불어 세계 3대 제국을 건설한 대왕이다.

훈족은 375년부터 469년까지 거의 100년간 유럽을 지배했다.

당대 최고 문명국 겸 초강대국 로마와 이란을 복속시켰다.

훈족의 영향권은 사실상 지구 전체였다. 북아프리카, 영국에서도 훈족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박사는 “훈족은 중국보다 3배 큰 제국을 건설했고 아틸라는 세계를 지배했던 한민족”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쯤은 가소로울 정도다. 우리 민족은 이미 세계를 정복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