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풍습

[스크랩] 상투로 보는 참역사

설레임의 하루 2009. 7. 1. 04:01

 

상투 보는 참역사


1. 한겨레 머리모양

오늘날 한반도 한겨레의 머리모양은 서양문물이 들어온 이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그러나 불과 1백여년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길게 딴 머리(댕기머리)와 머리 정수리 부분에서 머리카락을 모아 틀어 올려 묵는 상투를 하고 살았다. 그런데 댕기머리와 상투를 일반적으로 리조선시대의 머리모양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리조선시대 이전의 문헌기록이나 유물에서도 상투풍습이 나오고 지금도 한대륙에서 소수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형제겨레는 댕기머리나 상투 풍습을 아직도 유지하며 살고 있다.  물론 한반도 한겨레의 것과 똑같지는 않고 다소 변형된 모양을 띠고 있다. 문헌기록과 한대륙(소위 중국)의 소수민족 우리형제겨레의 경우를 미루어 보아 댕기머리와 상투는 결코 리조선시대의 풍습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부터 내려오는 한민족 고유의 머리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딴머리는 보편화되어 우리겨레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다. 서양인들도 댕기머리를 하고 다니는 것을 이따금 볼 수 있다. 여기서는 문헌적 고고학적 생활사적인 측면에서 한민족 고유머리모양인 상투의 기원과 의미에 대하여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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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투머리의 기원


1)문헌적 고찰

상투에 관한 기록이 가장 오래된 문헌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서기전 약 100년전의 기록으로 알려진 사마천의 ‘사기’다. 사마천이 썻다는 ‘사기’의 조선열전朝鮮列傳에는 (차이나족)의 연나라 사람 위만이 상투머리를 하고 오랑캐 옷을 입었다(魋結蠻夷服)고 한다. 또한 차이나족 사서인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 한韓편의 주석에 나온 위략에는 ‘조선과 연나라는 경계를 패수로 하고 ...연나라사람 위만이 오랑캐 옷을 입고 패수를 건너 망명해 왔다.’고 한다. 이와 같은 기록을 볼 때 이미 단군조선시대에 상투풍습이 한국인의 보편적인 머리모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차이나족 입장에서 하늘자손(천손)인 우리를 오랑캐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며 차이나족 연나라 사람 위만이 오랑캐인 우리의 머리모양과 옷차림새를 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투머리는 차이나족(중화족)의 머리모양이 아니라 다른 민족 즉 우리 한겨레의 머리모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 상투관련 문헌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에 의하면, 전족은 서남이(西南夷)의 일종으로 야랑국(夜郞國) 서쪽에 분포하여 촌락을 이루고 살면서 농업을 경영하였으며,  머리는 뒤쪽에 몽치 모양의 상투를 땋았다. 전족은 고대의 복료(濮僚) 계통에 속하며 지금의 맹고면어(孟高棉語)계 민족(더앙족, 부랑족 등)이나 좡어(壯語)계 민족(좡족 등)과 연관이 있다.( 이상 네이버지식인 발췌) 

 

고려시대의 《고려도경》에서는 “왕 이하 서민에 이르기까지 속발(束髮)을 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증보문헌비고》에는 “단군 元年에 나라 사람들에게 머리 빗는 법을 가르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http://www.koreandb.net/dictionaries/Viewframe.aspx?id=2114   또한 1278년(충렬왕 4) 왕의 명에 의하여 모든 관료층에서는 정수리부분의 머리카락만 남기고 뒤통수에서 묶어 길게 땋아 내린 몽고식 개체변발을 하였다. 그러나, 일반백성들까지 그에 따랐다고는 볼 수 없다. 공민왕의 복구적인 중흥정책 이후에는 다시 상투를 하게 되었다. *엠파스 백과사전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s=K&i=242356  문헌기록은 위 기록외에도 차이나족 여러사서에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상투머리는 고구려 백제 신라 등 한겨레 나라에서도 어김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우리민족은 모자를 많이 썼는데 이 모자를 보면 상투머리를 고려해서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의 유물로 알려진 기마인물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신라가 북방초원과 유라시아를 호령했고 60년이 넘게 ‘한나라’를 속국으로 지배했던 흉노와 같은 계열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따라서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는 야만족으로 평가받는 흉노겨레도 상투를 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사실 단군세기에는 흉노는 단군조선에서 분가해 나간 우리형제임을 알리는 기록이 보인다. 3세가륵단군 갑진6년(서기전2177년) 열양의 욕살색정에게 명하여 약수(한대륙 감숙성)로 옮기게 하고 종신토록 갖혀 있도록 하였다. 뒤에 이를 용서하시고 곧 그 땅에 봉하니 그가 흉노의 조상이 되었다. 흉노는 후에 훈족으로 이어지고 이들은 5세기 동방에서는 광개토태왕이 동아시아를 호령할 때 같은 시기 서방로마제국을 발아래 두고 유럽전역을 휩쓸었다(아틸라의 훈제국). 현재는 유럽각지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거나 현지인들과 섞여 살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헝가리(훈가리=훈겨레=한겨레)이다.

 

 고구려 각저총의 씨름도-두 사람 모두 상투머리를 하고있다.

 

 

 신라의 기마인물상 동복-자세히 보면 상투머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수메르어 '상두'관련기록

수메르 문명은 서양학자들에 의해서 인류의 세계최초의문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약 5천년된 문명으로써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발생하였다. 그런데 이 문명이 사실은 동방에서 온 이민족에 의해서 건설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아래는 쇄기문자로 알려진 수메르어 사전에서 발췌한 것이다. 아래 푸른색으로 칠해진 부분을 보면 현재 우리말 처럼 '상투'로는 정확하게 발음되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같으며, 상투가 두 문자로 분류되어 각각 뜻을 갖고 있다. 이것이 합쳐져서 또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으나, 각각의 낱말의 뜻을 합쳐보면 현재 상투속에 녹아 있는 뜻과 거의 같다. 즉 '머리를 세운다' 라는 뜻이 수메르어 '상두'에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 말미에서 상투가 갖는 의미를 밝힌바와 같이 대체적으로 같다.

 

 

http://psd.museum.upenn.edu/epsd/epsd/cf-toc-S.html


 

 

 


 


3)고고학적 고찰

한대륙의 내몽골 고비사막지역에서 약1만5천년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흑피옥 유물이 대량으로 발굴되었는데 이 유물을 대량으로 보관하고 있는 사람이 전남 광주에 사는 한국인이다. 그리고 같은 내몽골 적봉 홍산지역에서는 역시 관련 옥기류들이 대량으로 발굴되었다. 그런데 이 홍산문화유적에서 역시 혹피옥이 나왔는데 고비사막에서 발굴된 것과 모양이 다소 차이가 난다. 고비사막에서 나온 것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성교조각상의 혹피옥이 있는데 홍산문화유적에서는 보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임을 암시하는 기도하는 신상을 한 흑피옥이 나왔다. 머리정수리 부분에는 머리를 틀어 올린 것으로 보이는 세 번 주름진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이 머리 모양에서도 삼사상(삼태극사상)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일반 돌로 조각된 상투머리 신상도 발굴되었는데 리조선시대의 성인손가락 두개 합친 두께정도의 상투가 아니라 훨씬 두꺼운 상투머리다. 이들 상투머리 조각상은 대략 6천년전후의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상투머리 유물이다. 따라서 이 유물로 보면 한겨레의 상투머리기원은 단군조선시대를 넘어 신시배달국시대 초기 또는 한국시대 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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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륙 내몽골 홍산문화유적지에서 발굴된 상투를 튼 모습의 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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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륙 내몽골 홍산문화유적에서 발굴된 흑피옥으로 된 상투모양의 머리를 하고 있는 기도하는 모습의 신상

 

 

 

별자리와 함께 그려진 여와도-상투를 하고 있다. 한단고기에 관련기록이 나온다. 연대는 대략 6천년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티벳의 석가모니 부처그림- 상투를 틀고 있다. 이러한 상투를 튼 모습의 석가모니부처는 파키스탄 인디아 등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4) 이른바 ‘진시황’ 병마용갱의 상투머리도용陶俑

‘진시황’ 이라는 말을 역사를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은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너무나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소위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사람이며 최초의 제국을 건설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진시황과 관련된 유적이 소위 ‘진시황의 병마용갱’이다. 그리고 차이나족의 일방적인 발굴과 발표로 알려진 한대륙 서안의 소위 ‘진시황’의 병마용갱의 도용을 보면 모두 머리를 빗어 머리꼭대기로 틀어 올린 상투머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상투머리를 하던 당시의 사람들은 현재의 한대륙 소수민족인 강족羌族이라고 한다. 강족은 원래 북방유목민족이다. 이들은 한겨레의 전통뿌리문화인 무당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지금도 무당문화의 한 모습인 전형적인 북방 샤머니즘(몽골, 부리야트 등)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서기2008.10. 에는 전남 목포에서 명량해전 기념축제를 열면서 세계무당문화축제도 같이 열었는데 여기서 강족의 무당굿판도 벌어졌다.

 

한대륙 사천성 문천지역에 강족이 모여살고 있다.

 

 

  중국 사천성 문천지역의 강족- 축제에 참가하고 있는 강족여인네들모습 http://cafe.naver.com/uighur/2487

 

 

한대륙 강족이 서기2008.10.12. 전남 진도군 녹진광장에서 세계무당문화잔치 중 '석비굿' 공연 펼쳐고 있다.

 

 

 


 이것을 볼 때 이 병마용갱을 만든 주인공들은 화하족(중화족=차이나족)이 아니라 우리 한겨레라는 것이 증명된다. 지금이야 강족이라고 소수민족 명칭이 붙여져 있지만 당시에는 다 같은 단군조선의 식구들이었다. 앞서 사마천의 사기의 기록에서도 밝혀졌듯이 상투머리는 결코 중화족(차이나족)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소위 진시황의 병마용갱으로 알려진 유물유적은 우리 한겨레의 작품이다. 병마용갱에서 발굴되는 이외의 다른 유물, 예를 들어 일산청동마차를 보아도 병마용갱은 중화족의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일산마차는 단군조선의 것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일산마차는 한대륙 동북부는 물론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며 북방초원의 흉노와 투르크(돌궐)겨레에서도 발굴 된다. 그럼 이 병마용갱이 진왕정(진시황)이 만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는 진왕정의 출신성분 파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사람이 하화족(중화족=차이나족)이라기보다는 북방의 유목민출신이라고 하는 기록과 견해도 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병마용갱은 진왕정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고 관련문헌과 유물을 심층 조사한 결과 병마용갱은 진왕정이 만든것이 아니라는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참역사동아리 삼태극 다음까페 ‘한겨레참역사’ 진시황 관련게시물 및 '역사종합탐구'방 진시황 게시물 참조 http://cafe.daum.net/mookto/GXe9/581)

 

 한대륙 섬서성 서안의 이른바'진시황'의 병마용갱의 도용들-모두 상투머리를 하고있다.

 

 

 

 


3. 상투머리생활 분포지역

 

1)한반도 한국인

 

위 두사진은 서기1871. 신미양요때 미군이 찍은 사진이다. 첫번째 상투는 건상투로 불리고 두번째사진은 갓을 쓴 사람외에 모두 민 상투를 하고 있다. 현재도 유명한'청학동'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상투머리를 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2)청나라의 상투

흐릿하게 나오지만 상투를 튼 모습이 보인다. 만주한겨레가 세운 청나라의 머리모양이 보통 외딴 댕기머리로 알려져 있는데 상투를 튼 머리모양도 보인다. 참역사동아리 삼태극'소나무-숲'님 제공

 

 

 

 

3)일본의 상투

 일본에서 현재 상투가 남아있는 곳은 일본 씨름계(스모)다. 씨름이 전통문화유산이고 이 씨름선수들이 머리모양을 상투로 하여 알리고 있다.

 

일본 무사들의 상투튼 모습- 일본무사들의 저런 상투를 '존마게'라고 한다.

 

 

 

 

4)한대륙 묘족의 상투

신시배달국 14대 자오지 치우천황의 후예로 알려진 묘족은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고 살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상투머리풍습니다. 아래는 남녀노소 할것 없이 상투머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성의 경우 우리나라 여성의 쪽머리와는 다르게 앞 쪽으로 머리를 모아 틀고 있다.묘족안에서도 여러 부족으로 분류되는데 아래는 삐아사 부족이라고 한다.

 

 

성장(盛裝, 명절이나 축제 때 입는 전통복장)에 열중인 한 묘족 여성. 성장 한 복을 맞추는 데 적어도 1500위안(한화 약 18만원), 순은을 사용할 경우 1만 위안(한화 약 120만원)이 든다.

 

삐아사 전통의복인 ‘타오부’에 수놓을 자수를 놓는 여인들. 삐아사 묘족은 현대문명과의 다양한 교류 속에서도 전통문화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벌목 후 나무를 나른 뒤 잠시 쉬고 있는 삐아사 남자들. 삐아사에서는 주민이 사는 집을 짓을 때에만 벌목을 한다. 삐아사 사람들은 나무에 자신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맨손으로 일일이 대나무 상자를 만드는 두 남자. 삐아사 남자들에게 칼은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는 휴대용품이다.

 

 

삐아사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체육수업 중인 어린이들. 현대적인 의복과 머리모양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대다수 삐아사 사람들은 전통적인 생활습관을 고집스레 지켜가고 있다.
 

 

'타오부' 옷감에 아교액을 덧칠하는 두 여인. 타오부의 제작과정은 아주 복잡한데, 아교액을 덧칠함으로써 방수·방풍 효과를 낸다.

 

 

 

붉은 묘족 여성 혼례복을 입고 양산을 든 채 잔치행진을 벌이는 젊은 묘족 여성들.

이상 묘족사진과 설명은 오마이뉴스 모종혁기자님 자료에서 발췌하였다.

 

 

 

5)인디아(인도)의 상투

인도인도 상투를 틀고 사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인도서북부 암리차르에 황금사원 본부를 두고 있는 시크교도들이다. 앞으로 머리를 또아리 틀어서 고정시키고 천을 머리에 두르고 다닌다.

인도인의 상투-서기1927. 에 찍은것이라고 한다. 이 그림은 시크교도의 상투머리와 다른것으로 보인다.

참역사동아리 삼태극 '소나무-숲'님 제공

 

 

 

 

 

6) 인디한대륙의 인디한겨레

인디한대륙(소위 미주 아메리카)에는 약1만년전후해서 극동아시아에서 건너간 인디한겨레가 살고 있다. 서양기독교세력에의해 거의 멸종되거나 이들에게 오염되어 각종질병과 비만속에서 힘들게 살아가지만 그래도 일부 부족은 아직도 한겨레전통풍속을 이어가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다소 변형되었지만 상투머리를 하고 살았다는 것이 확인된다. 아래 사진들은 약 1백여년전에 서양인들이 촬영거나 그린 인디한겨레의 상투머리 사진이다.

 

 

 

 

 

 

 

3.상투머리의 의미

이와 같이 상투는 한민족 고유의 전통머리모양이다. 그러면 우리 조상님들은 다른 민족과는 달리 왜 이 상투머리를 하고 살았을까, 이 상투머리를 하게 된 동기나 어떤 뜻이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하늘자손의 측면이고 둘째는 생활적 측면이다.


1) 하늘자손의 상징 상투

참역사동아리 삼태극(cafe.daum.net/mookto)에서는 우리 한겨레가 하늘자손 즉 ‘하나님’이 낳으신 자손이라는 사실을 입체적인 분석을 통해서 이미 증명해 놓고 있다(삼태극 다음까페 ‘한겨레참역사’방의 관련공지 게시물 참조). 그 대표적인 사상이 칠성신앙이다. 북두칠성은 우리겨레에게는 민족의 뿌리상징이다. 1만년을 아우르는 이 북두칠성 신앙은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뿌리박고 있다. 사람이름에서부터 지명 그리고 건물, 물건이름에까지 칠성사상이 안 들어 간 곳이 없다. 성칠이, 칠보산, 칠성시장, 칠성사이다. 심지어 조직폭력세력의 이름에 까지 사용될 지경이다. 칠성파! 오늘날에 와서는 ‘칠성’ 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면 촌스럽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모두 서양문물사대주의 독극물 때문이다. 칠성신앙의 가장 오래된 징표는 고인돌에 새겨진 북두칠성 별자리다. 한반도권의 고인돌 별자리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늘자손이라는 대표적인 징표문화다.


그런데 상투에 이 칠성사상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원래는 상투가 아니라 상두上斗라고 한다. 그리고 이 상두의 두斗에는 별이름이라는 뜻이 있다. 상투를 틀 때 앞으로 4번 뒤로 3번 꼰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의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상투를 앞으로 4번 뒤로3번 꼰다는 것은 북두칠성을 내려 받았다는 의미라고 한다.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아 이 땅에 태어나고 다시 북두칠성으로 돌아간다는 하늘자손사상이 상투에 스며있다. 또한 상투는 머리꼭대기에 틀어 올려 곳곳하게 세우는 머리기둥으로써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뜻을 받는 수신기를 상징한다고 본다. 사람의 몸에 세운 솟대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상투는 숫자로써 1을 뜻하는데 ‘하나’ 로 써  이후에 늘어나는 2,3,4,...10..100등 무수한 분화수의 어머니이고 뿌리다. 따라서 이 점에 착안하여 현재 지구촌을 꽉 메우고 있는 현생인류의 조상, 시원지, 뿌리라는 뜻도 녹아 있다고 본다.


2)생활문화의 지혜

아득한 옛날 인간은 머리를 다듬을 금속기구가 없었다. 지금이야 머리를 다듬을 기계가 있어 원하는대로 머리모양을 하고 단정하게 할 수 있지만, 소위 석기시대에는 지금처럼 누구나 쉽게 머리를 관리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머리를 산발하고 생활 할 수밖에 없었고 산발한 긴 머리 때문에  많은 불편함이 따랐을 것이다. 우리 한겨레는 이러한 불편한 생활을 개선하였는데 그것이 머리모양을 정리한 것이며 딴머리와 상투다. 머리를 단순히 묶어서 생활하는데 그치지 않고 고도의 생활상 지혜가 녹아들어간 머리모양을 개발한 것이다. 딴머리(댕기머리)속에 깃든 과학적 지혜는 이미 참역사동아리 삼태극 ‘한겨레참역사’ 방에 올라와 있다.

 

상투머리에 녹아있는 과학적 지혜는 댕기머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상투를 틀게되면 머리카락을 당기는데 이는 머리 살갗을 자극하여 머리에 피가 잘 돌게 한다. 피가 잘 돌면 머리가 맑아진다. 또한 머리감으려면 다시 풀어야 하는데 이를 반복하면서 역시 머리에 자극을 주어 위생도 챙기고 머리자극도 해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다. 이 상투머리는 하늘자손의 단정함의 상징이고 무엇보다도 최고의 위생상태를 자랑하는 머리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산발한 머리보다 외부의 먼지 등 외부환경에 노출되는 면적이 적어 그만큼 위생적이다. 땀이 나도 삭발한 것처럼 땀만 쏙 흘러내리지 산발한 머리처럼 머리카락과 땀이 뒤범벅이 되지 않는다.

 

참고로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모아 뒷머리에 틀어 하셨던 비녀꽂은 쪽머리도 상투머리와 같은 효과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조상님들의 이러한 머리모양이 구시대적이고 촌스럽다고 가볍게 볼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빨리빨리’ 로 내닫는 시대에 여유생활로 부활해 볼 필요가 있다. 빠른음식보다 느린음식이 한국인에게 좋다고 하듯이 말이다.

 

 


 


도움자료

금관의비밀(김병모)

단군세기(임승국)

신의자손한국인(김종서)

사기 조선열전(사마천)

삼국지 위지 동이전 마한전

기타 인터넷자료

http://hair.culturecontent.com/hairstyle/hairstyle_chosun_09.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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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삼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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