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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독교와 몽골제국

설레임의 하루 2009. 5. 24. 20:30

오늘날 대다수의 몽골인들은 티베트계 불교를 믿고 있지만, 13세기 몽골 제국 시대 때는 많은 몽골인들이 기독교의 일파인 네스토리우스 교를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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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콘스탄티누스와 헬레나로 불린 훌라구 칸과 도쿠즈 카툰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가 몽골 초원에 전파된 것은 7세기의 일이었습니다. 11세기에는 강력한 몽골 부족인 케레이트 족이 기독교로 개종했고 이후에는 나이만, 메르키트 같은 유력한 부족들이 기독교를 받아 들였습니다. 위대한 정복자 징기스칸은 전통적인 무속 신앙을 갖고 있었지만, 몽골 초원의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 관용적이었습니다. 그의 아들들과 유력한 몽골 귀족들은 케라이트 족의 기독교도 여인들과 혼인을 맺었습니다. 징기스칸의 며느리인 소르각타니 베키를 비롯해 몽케 칸, 쿠빌라이 칸, 훌라구 칸, 그리고 아릭 보케의 부인들도 기독교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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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토리우스 파 수사들을 묘사한 벽화

 

 

몽골인들은 자신들 나름의 방식으로 기독교를 받아 들였습니다. 예수가 아픈 자들의 병을 고쳐주고 죽음으로부터 부활했다는 이야기는 무속적으로 해석되었고, 예수는 일종의 위대한 샤먼으로 추앙받았습니다. 또한 몽골인들이 신성하게 여긴 숫자 '9'의 몽골어 발음이 '예수'였고, 징기스칸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게이'였다는 사실은 기독교 신앙이 몽골 초원에 퍼지는데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그리고 성서 속 유태인들의 유목 생활은 몽골인들이 친근감을 가질 만한 소재였습니다. 십자가는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신성한 표식으로 여겨졌고, 몽골인들이 즐겨한 육식과 술도 종교 의례의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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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시아에서 발견된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인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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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의 손자로 기독교인 어머니와 부인을 둔 훌라구 칸

어려서 기독교 교육을 받았고 불교에도 관심이 많았다
 


징기스칸의 손자인 훌라구는 서유럽 십자군 세력과 연합해 이슬람 제국을 공격합니다. 훌라구의 지휘 아래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을 제외한 전 이슬람 제국이 붕괴되었고, 몽골인들은 새로운 정복지에 일한국(일汗國)을 세웁니다. 곧 몽골과 서방 국가 사이의 혼담이 오고갔고 1265년 비잔틴 황녀 마리아 데스피나와 훌라구 칸의 아들 아바카의 혼인이 성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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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국의 몽골 군인들

 

 

당시 중동 정세는 강력한 일한국과 조그만한 십자군 국가들이 남쪽에서 끈질기게 항전하던 이집트와 대립 구도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비록 유럽과 몽골 각각의 내부 혼란 때문에 대규모의 합동 작전은 계획 단계에서 끝나버렸지만 작은 규모의 군사 연합이 이루어져 이집트를 압박했습니다. 몽골 침략 이전부터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던 십자군 국가들이 이집트의 적극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꽤 오래 동안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일한국의 몽골인 덕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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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지방의 뿌리 깊은 종교 갈등은 몽골 지배층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서방 몽골 제국은 훌라구의 일한국과 베르케의 금장한국으로 양분된 상태였습니다. 금장한국의 몽골인들은 일찍이 이슬람교로 개종했기 때문에 기독교와 불교가 지배적이었던 일한국과 중동 정세를 두고 대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세습 문제와 영토 갈등까지 겹쳐 결국 두 한국 사이의 내분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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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에 탄 인물이 훌라구 칸의 아들로 제 2대 칸인 아바카이고

왼쪽에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이 아바카의 아들로 4대 칸인 아르군

그리고 안겨 있는 아이가 아르군의 아들로 7대 칸인 가잔

 

 

일한국의 몽골인들은 기독교 및 불교를 고수했지만 절대 다수의 피지배층이 이슬람교도라는 사실은 바꿀 수 없었습니다. 결국 몽골인들도 서서히 현지의 문화에 동화되기 시작해 제 7대 칸 가잔이 이슬람교로 개종한 이후 몽골인들은 이슬람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한편, 몽골초원과 중국의 몽골인들 사이에서는 점차 티베트계 라마 불교가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를 밀어내고 지배적인 종교로 자리 잡아 오늘날에 이릅니다.

출처 : 몽골여행
글쓴이 : 몽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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