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사국시대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은 한반도에 건국되지 않았다.

설레임의 하루 2009. 5. 2. 01:49

*출처:다음블로그-인류시조성전건립회   글쓴이-한얼원   http://blog.daum.net/looktrue/20254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은 한반도에 건국되지 않았다.

 

 北夫餘紀上

<북부여기 상, 환단고기>
북부여의 시조 단군해모수는 45년을 재위하고 壬戌(임술)이 원년이 된다.
천제님의 자세는 영웅적 기질로서 용맹하신 神人(신인)이며 사람들이 바라보면 몸에서 빛이 발사되었다.

天王郞(천왕낭)은 나이 23세에 하느님의 명에 따라 세상에 내려오시니 이때는 단군 고열가 재위 57년이였다.

壬戌(임술) 四月八日(4월 초파일)에 熊心山(웅심산)을 의거하여 궁전을 건축하였는데 蘭州(난주)의 해변이였다.

항상 까마귀 깃을 의관에 꽂으시고 腰帶(요대)에는 빛나는 劍(검)을 패용하셨으며 五龍車(오룡차)에 오르시면 언제나 侍從(시종)

500명과 함께 거닐면서 아침에 政事(정사)를 들으시고 저녁에는 하늘로 등천하셨다.

癸亥(계해)에 즉위하고 2년 3월 16일에 하늘에 제사지내는 祭天壇(제천단)을 설치하시고 烟戶法(연호법)을 만들어 五加(오가)의

병사를 주둔시켜 지키게하고 밭을 만들어 자급하도록 하고 우범 지역에는 철저히 준비를 하셨기에 염려 할것이 없었다 註解:烟戶法

(연호법):광개토대왕의 碑銘(비명)에서 韓,穢(한,예)의 주민 三百三十家(330가)로 先王(선왕)의 묘소를 守墓(수묘)시켜 看守(간수)

하도록 하였다 로 되어 있습니다.

 

己巳(기사) 8년에 황제는 중생들을 거느리시고 故都(고도)에서 往生(왕생)에 대하여 강논하셨다.


五加(오가)들은 공화정치의 제도를 철수하니 이에 나라의 사람들이 단군으로 추대하였다.

이분이 북부여의 시조가 되신다.

겨울 10월에 인재를 양성하는 공립학교를 설립하시고 인간이면 반듯이 습득 해야할 母胎法(모태법:음양법)을 학교에서 처음으로

교육시켰다.

壬申(임신) 11년에 北漠(북막)의 추장 山只喀隆(산지객융)이 寧州(영주)를 습격하여 巡察使(순찰사) 穆遠登(목원등)을 죽이고 큰

약탈을 하고 달아났다.

庚辰(경진) 19년에 箕丕(기비)가 죽으니 아들 箕準(기준)이 父王(부왕)의 후계를 세습하고 番朝鮮(번조선)의 왕으로 책봉되었다.

官兵(관병)을 파견하여 燕(연)나라의 침공에 주력하여 대비하였으나 燕(연)은 장수 秦介(진개)를 파견하여 우리 나라를 침략하여

西鄙(서비)들이 番汗(번한)의 국경에 들어와 가득하였다.


辛巳(신사) 20년에 祭天壇(제천단)을 만들도록 명하시고 백악산 아사달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7월에는 366간의 새로 궁궐을 지어 이름을 천안궁이라 하였다.

癸未(계미) 22년에 창해의 력사 黎洪星(여홍성)과 張良(장량)은 秦始(진시) 왕정을 저격시키기 위해 박랑사에서 副車(부차)에 실어

명중시키려 하였으나 오발되어 적중 시키지 못하였다.

註解:張良將軍(장량 장군)을 기억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壬辰(임진) 31년에 陳勝(진승)이 병난을 일으키니 秦(진)의 많은 사람들은 大亂(대란)으로 피난을 하였다.

燕(연)나라 齊(제)나라 趙(조)나라 백성들은 番朝鮮(번조선)으로 망명하여 귀순자의 수만가구를 상하로

나누어 살도록 조치하고 雲障(운장) 장군을 파견시켜 감독하도록 하였다.


己亥(기해) 38년에 燕(연)나라 盧館(노관)은 요동의 옛 요새를 다시 수리하고 동쪽의 패수를 국경의 한계로 삼았다.

浿水(패수)는 지금은 약하라 한다.
註解:韓族(한족)의 오늘날 국사는 패수를 대동강이라 학습하고 있습니다.
이 패수의 위치만 깨달으면 이나라의 국사는 왜곡되었음을 인정할 것이다.

丙午(병오) 45년에 연나라 노관은 漢(한)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켜 흉노에 들어 가니 그 黨(당)의 위만은 우리 나라에 망명을 요구

하였으나 우리 나라의 황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황제는 병환으로 자신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여 番朝鮮王(번조선왕) 箕準(기준)은 많은 기회를 놓쳤다.
드디어 위만은 숭배하는 박사가 되여 상하의 땅을 구획하여 雲障(운장)에 왕으로 책봉하여 주시고는 이해에 황제가 붕어 하시니

熊心山(웅심산)의 동쪽 기슭에 장례하고 태자 모수리가 왕위에 옹립되었다.

2세 단군 모수리는 25년을 재위하시고 丁未(정미)가 원년이 된다.
번조선왕 箕準(기준)은 오랜 세월을 살면서 많은 백성들에게 부유하게 살도록 교육시켜 풍요롭게 하였으나  후에 戎賊(융적) 들인

諸加(제가)의 무리들이 公孫卓(공손탁)을 上將軍(상장군)으로 받들고 대거 쳐들어와月支國(월지국)을 패망시키니 海城(해성)으로

들어 간후 돌아 오지 않았다.
月支國(월지국)은 公孫卓(공손탁)이 출생한 고향이였다.
이것을 조선국의 三韓(삼한) 중에 마한이라 불렀던 것이다.
이리하여 弁韓(변한)과 辰韓(진한)의 二韓(두한) 역시 모두 그들의 무리 수중에 들어 가게 되었다.

그 들은 각자가 백리씩 땅을 받아 도읍을 설립하고 자신들 스스로 국호를 정하였던 것이다 .

이들은 모두 馬韓(마한)의 정치 강령을 적용하여 세상에 반란은 없었다.

註解:변한,진한,마한이 한반도에 있는 지역인지 당국자는 물론 한국의 모든 국민은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삼국사기에서 <마한은 고구려>라 하였거늘 어찌하여 오늘날 전라도 전주에 있는가?
지나가는 소는 알아듣고 빙긋이 웃고 있건만 어찌하여 한국민은 알아 듣지 못할고....

오늘날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삼한의 지도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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