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고조선(한단고기)

천부인과 신지녹도전자 진본 천부경2.

설레임의 하루 2009. 4. 28. 03:59

 *출처:다음카페-산수유골에서 만난사람들   글쓴이: 부초      http://cafe.daum.net/baeksa./So8r/196

 

 

 

 

 

 

천부인과 신지녹도전자  진본 천부경2. (한국프레스센터 학술대회 강의 자료)

 1) 신지녹도문 창제의 유래
환숫(桓雄)은 하느님으로부터 입으로 물려받은(口傳之書) 천부경을 잊지 않으려고 아침저녁으로 그 무리들과

함께 외웠고, 또 그 후손들에게도 대대손손 아기가 태어나 말을 배우면 그것부터 외우게 하였는데, 이렇게

자주 외우다 보니 이것이 우리의 숫자 '하나, 둘, 셋... 열'의 體가 되었고, 그 후 이것이 用으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 숫자를 중요시해왔는데, 지금은 그저 숫자로만 아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말이란 언젠가는 변질이나 윤색되기 때문에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환숫은 그의 신하 신지에게 말을

보관하는 방법을 명했고, 녹음기가 없던 그 시절 신지는 사냥을 나갔다가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말의 보관도

이와 같이 한다면 될 것이라 하여 글자를 만든다.

이 내용은 <한단고기>에도 쓰여 있지만 <규원사화>에도 쓰여 있다. 
이 부분을 북애자(北崖子)의 <규원사화(揆圓史話)>에서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神誌氏世掌主命之職專管出納獻替之務而只憑喉舌曾無文字設存之法一日出行狩獵忽驚起一隻牝鹿滿弓欲射

施失 其踵乃四處搜探至平沙處始見足印亂鑽向方自明府首沈吟旋復猛省曰記存之法惟如斯而己夫如斯而己夫是

日罷獵 卽歸反復審思廣察萬象不多日悟得刱成文字是爲文字之始矣
 

이 신지가 처음 만든 글자를 배운 창힐은 이 글자를 가지고 자기 고향 중국에 돌아가 써놓으니 이 글씨가

마치 새 발자국 같으므로 새발작 글씨, 즉 鳥跡書라 할 수는 있으나 반대로 만약 신지가 그 조적서를 본떴다면

그도 당연히 조적서라 했을 것이지 뜬금없이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사슴 그림이라는 鹿圖文 소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또 이것으로 신지가 먼저 그 글자를 만들고 창힐이 나중에 배웠음이 증명된다.

즉, 신지녹도 문은 모두 16자이다.

즉, 신지는 순박하게도 천제 지낼 때나 쓰는 신의 글자는 꼭 16자이어야만 되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평양

법수교 아래 祈天文이나 성 예찬서가 모두 16자이다. 그러나 창힐의 조적서는 28자이다.

그렇다면 신지가 만약 창힐의 글자를 본떴다면 왜 12자를 줄였단 말인가?

그러니까 창힐은 신지한테 글자 만드는 법을 배웠으므로, 또는 그 글자가 꼭 신의 글자인 것을 인정할 필요도 

없고 단지 글자인줄 알았으니 12 자를 더 만들어 붙인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글자가 鹿圖文, 또는 鳥跡書로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것과 그 글자수를 비교해

보더라도 창힐은 신지한테 글자 만드는 법을 배웠다는 근거가 되며, 신지가 하느님 천부경인 口傳之書를

그대로 적었다는 말이 된다. 

 

5. 신지녹도 전자를 해독한 이도 오역하지 않았다는 증거
지금 글쓴이는 신지녹도문, 금문 등을 해독하여 위 신지녹도전자 천부경을 해석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글쓴이의 주장이라 오역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신지녹도전자를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으로 위 북한 <영변지>에서 발행한 3가지 종류의 옛 기록이

있는데, 그 뜻이 각자 다르며 또한 현재 우리가 아무 때나 가 볼 수 있는 중국의 국보 창성 조적서 비문의

글자도 같다.
따라서 글쓴이가 만약 그 신지전자 천부경 해독을 잘못하였다면 그 각기 다른 신지녹도는 같은 해독

방법으로 읽을 수 없었을 것이고, 해독했다 해도 말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글쓴이의 해독 방법으로 어느 신지녹도문이건 다 읽을 수 있으며 이는 또한 금문과 우리 뿌리말이

뒷받침해준다.
여기서 그 글자 하나하나 읽는 방법을 왜 그렇게 읽어야 하는가는 글쓴이 의 카페 게시판 '신지녹도전자  

천부경 해독'에 자세히 공개해 있으므로 여기서는 전체 뜻만 밝힌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지금 한자가 그렇듯이 이 원시 글자도 토나 접미사 등이 없다.

즉, 한자 '一石二鳥'를 해독하려면 '하나, 돌, 둘, 새' 이 외에 아무런 토나 접미사도 없다.

따라서 이를 한자 글자 뜻대로만 말한다면 '돌 하나에  새 두 마리가 앉았다'는 것인지, '돌 하나로 새

둘을 잡았다'는 것인지와 또 토나 접미사는 읽는 사람이 전후 문장을 보고 생각해 읽어야 하는 것과 같다.
 

제3장  <영변지>의 신지녹도전자 천부경과 해독 내용

1. 신지독도전자 천부경과 그  해독

우선 아래 <신지녹도 전자 천부경>의 글자나 <영변지>에 나오는 글자는 거의 누워있는 그림이다.

이는 편집상 그렇게 그렸는지는 몰라도 한자가 그렇듯이 이 옛글자도 반드시 세워서 우로부터 좌로

읽어야 한다.
 
 
(아래 그림은 위 그림을 세워놓은 것이다.) 
 
 

 
이 글자의 자세한 해석 내용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글쓴이 카페 '신지녹도전자 천부경 해석'에 있으므로  

여기서는 그 전체 뜻만 밝힌다.
 
신지녹도전자 천부경 해독 내용
하나 : 하늘의 빛인
둘    :  물질인 누리에 리워
셋    : 사내를 웠고
넷    : 너(女)인를 세웠나니
다섯 : (땅)위에 서서
여섯 : 어슷(여섯, 母, 번성)하여라
일곱 : 사내는 일구
여덟 : 여덟(果,처자식)의 집이 되니
아홉 : (아비, 남근)의 울타리(씨족)가 완성되면
열    : 고 나가리로다.
 
2. 평양 법수교 아래 기천문(祈天文)과 그 해독
아래 두 사진 중 좌측의 것은 창성 조적서 비문이고, 우측 것은 평양 법수교 아래에 있는 고천문이다.

(한글날 특집 KSS 보도)

 
평양 법수교 아래 기천문(祈天文) 해독 내용
 비나이다
 계집과 사내가
 땅 위에서 얼렸(성교)나이다
 비나이다
 빛님께 둘이서 비나이다.
 땅(겨집)과 뱀(사내)가
 땅에 서서
 열고 나가겠나이다.
 둘이 하나되어 씨를 뿌렸사오니
 빛님이시어
 곡간에 가득하게 세워주소서 
 
3. 창성조적서 비문과 그 해독
비는(기도하는, 바라는) 개울과(여음, 겨집)

비는(기도하는, 바라는) 뱀(男根, 사내)을

땅 위에 세우니 얼루는도다

빛을 향하여 둘이 열고 나아가 씨를 심고

둘이서 비니 빛과 땅과 얼루어

아기가 나오네

열고 나가 어미 되니

새끼 낳고 씻기어 터에 세우고

곡식을 갈무리 하여 달아매니

빛 받는 밝달(배달)에

집(나라)을 세우는도다.

 

4. <영변지> 성 예찬문과 해독 내용  
이 글자도 편집상 그랬인지 가로 누워있으나 옛 글자가 다 그렇듯이 세워서 읽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지면상 생략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위 가로 누운 전자는 <현대정치철학(공동문화사 1974년판)> 안영태(安永泰)의 저서 속표지마다 이 그림을

싣고 있다는데, 이것은 단군 시대의 신지전자로 심계(心溪) 정주영(鄭周永) 박사의 증언에 의하면, 안씨는

옛 황실 재산관리 소장인 윤우경(尹宇景)이 소장했던 것을 받아서 등재했다 한다.
그러나 필자가 해독해본 결과에 의하면 이는 천부경이 아니라 환웅 당시의 성생활로 자식을 많이 낳아

달라는 일종의 祈天文이며, 어미의 입장에서 자식을 낳게 해준 남근과 성에 대한 성예찬문이다. 
 
영변지 성 예찬문 해독 내용
하늘과 땅이
사내를 세우고
계집과 얼려 붙어
땅에 세우고
사내가 비니
아들 딸 낳고
어미 아비 둘이 비는도다
계집의 문을 사내가 여니
계집이 뱀(男根)에게
감사기도하는 도다
 
5. <영변지>의 잘못된 천부경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의 녹도전자는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위 진짜 천부경에서 둘째 줄과 셋째 줄이 뒤바뀐 잘못된

천부경이다.
 
이상을 보면 위 창성조적서 비문 하나만 빼고 신지녹도 전자가 모두 16 자이다.
이로써 신지녹도전자란 일반이 쓰는 글자가 아니고 신을 위한 신의 글자라는 말이 성립된다.

또한 당시는 글자라는 개념보다는 그저 말을 보관하는 방법으로만 알았으니 신지는 순박하게도 그 천부경을

보관하는 방법은 16 자에서 더해도 안 되고 덜해도 안 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따라서 이 신지녹도문 만드는 법을 배워 자기 고양에 돌아가 환숫의 밝달나라를 세우는 견문록을 쓴 창힐

말고는, 신지녹도전자 천부경은 물론 평양 법수교 아래 기천문이나 성예찬문, 그리고 심지어 잘못쓴

천부경까지 모두 16 자이다.
 

6. 창힐이란 어떤 사람인가?
천부경을 해독하면서 지금 우리가 실물을 볼 수 있는 글자는 바로 창성조적서 비문뿐이므로 그 글을

썼다는 창힐의 존재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본다.
이 글은 2002년 8월 14일 <우리글 서예발전을 위한 중한서예인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 일부를 소개한  

것이다. (중국 연길시 조선글 서예가협회와 한국 청주시예총회)

 

창힐의 생활 연대나 그의 직위에 대하여 학자들마다 다르게 말하고 있다.

공영달(孔潁達)은 상서정의(尙書正義)에서《그 창힐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말하였다.

<세본(世本)에서는 <창힐이 글을 만들었다>고 썼으며 사마천, 반고, 위단, 송충, 박현은 모두 <창힐은  

황임금의 사관(史官)이였다》라고 하였다. 최옹, 조식, 채옹, 삭정은 모두 <옛날의 왕이였다>라고 찍어서  

말하였다.

서정은 <신농씨와 황임금사이의 시기에 있었다.>고 하였다. 위씨는<포의와 창임금 때 있었다.>고 하였으며,

신도는<포의 앞에서 살았다>고 하였으며, 장집은<창힐은 임금으로서 신통(神通)시기에 살았다>고 하였다.

만약 장집의 말대로라면 창힐은 춘추 때보다 수만년 전에 살았을 것이다.

총체적으로 한나라 초의 사람들은 창힐은 임금의 사관으로 보았으며, 위진 때의 사람들은 그의 생활년대를

앞당기면서 임금으로 보고 있다.
또 이것 말고도 창힐에 대하여 기록마다 다른 것은

①순자(筍子)의 해페(海蔽),

②여씨춘추(呂氏春秋)의 군수편(君守篇),

③이사(李斯)의 창힐편,

④《효경(孝經)의 창힐 견구이작서(倉頡視龜而作書),

⑤왕충의 창힐은 새의 발자취를 본땄다(倉頡起鳥足跡),

⑥그 외에도 《창힐은 머리에 눈이 넷이 있어 신명하고 영롱하였다》느니《창힐은 거북이의 무늬, 새,  

짐승의 발자취를 보고 글을 만들었다》느니 하는 기록이 있다.

 

7. 창힐이 부도의 글을 배웠다는 <환단고기> 삼성전기 하편 
'천하가 셋으로 나누어 대치하고 있었으니 탁록의 북쪽에 대효가 있었고, 동쪽엔 창힐이 있었으며,  

서쪽엔 황제헌원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군대를 가지고 승리를 하려 했으나 아무도 이루지 못했다.

처음 황제헌원은 치우보다 일어남이 늦더니 싸움마다 이로움이 없자 대효에게 의존했으나 이를 수 없었고,

또 창힐에게 의존코자 했으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으니 이 두 나라는 모두 치우의 무리였기 때문이다.  

대효는 일찍이 간지의 술을 배웠고 창힐은 부도(符圖)의 글을 배웠다.

당시 제후들은 (금문, 신지녹도문을 가진 치우환웅을) 섬기지 않은 자가 없었다.'
(時天下鼎峙涿之北有大효東有倉詰西有軒轅自相以兵慾專其勝而未也.初軒轅稍後起於蚩尤每戰不利慾依大효 

而未得又依倉詰而不得二國皆蚩尤之徒也大효嘗學干支之述倉詰受符圖之文當時諸候岡不信事者亦以此也)
(필자주 : 부도의 符는 天符印의 符를 말하고, 圖란 그림이란 말이니 이는 그림글자인 금문이나  

신지녹도전자를 말한다.)
 
그러나 이런 글들은 창성조적서 비를 해독해보지 못한데서 나오는 오해이다.

창성 조적서 비를 해독해보면 창힐은 분명 환숫인 치우천황과 밝달임금 때 사람이고, 그가 왜 신지 밑에서  

글자 만드는 것을 배워가며 당시 환숫이 밝달나라를 세우는 것을 보고 그 견문록을 쓴 이유와 다른 데서

나타나는 이야기와 결합하여 추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8.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과 창힐(여러 문헌을 참고, 추정한 글임)
창성 조적서를 기록한 창힐은 중국의 삼황오제에 들어가는 황제헌원(黃帝軒轅)의 아들이다.

황제는 처음에는 환나라 환웅님이 중화족의 자치를 맡겼던 제후에 불과하였으나 모반을 일으키고 자칭

천자(天子)가 된 인물로, 치우 천황과 수없는 전투를 하고 겨우 살아남은 인물이다. 

황제 헌원은 천하에 없는 호색한으로 전쟁 중에서도 틈만 있으면 수많은 여자들과 정사를 벌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그가 가장 아끼는 여인은 흰 눈과 같이 하얗기 때문에 소녀(素女)라고 이름 지은 아름다운 백인

여인과 검으스레하고 매혹적인 현녀(玄女)라는 계집이었다.  
당시 우리 건국지 부근에는 현재 백계 러이아인과 곰네 할머니의 고향인 서남아시아의계의 검으스레한

사람들이 같이 어울려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우리 환웅께서 마늘과 쑥으로 천부인 의식을 치르게

한 호랑이나 곰 역시 이 백인과 흑인이라고 전술한바 있다. 

황제는 그때 이미 동두철액(銅頭鐵額)을 한 치우천왕과 수없는 전쟁을 하다 보니 일선의 병사들과 의사전달의

필요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고, 환웅의 ‘환나라’에는 이미 금문이나 신지문자(神誌文字), 또는 가림토의  

어머니 신지 신획(神誌神劃)이 있어 치우천왕은 문서로써 의사전달을 하나 글자가 아직 없던 황제 헌원에게는 

말로만 의사전달을 하자니 중간에서 말이 변질되어 정확한 의사전달이 되질 않아 낭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창힐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는 평소 하라는 무술연습은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방에 들어박혀

무엇을 생각하고 있거나 땅바닥에 무엇인가 그리는 것으로 소일을 하여 자기 아버지로부터 크게 빈축을 

사왔는데, 드디어 그가 문자라는 것을 만든다니 아비인 황제는 너무나 기쁘고 고마워 자기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소녀와 현녀를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 아들 창힐은 학자인데다가 자기가 만드는 글자가 완전하지 못했으므로 이 문자 연구에

전념하느라고 자기 여자가 된 그녀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한편 남자 없이는 하루도 견디지 못하는 소녀와 현녀, 그리고 얼떨결에 그들을 아들에게 주고 크게 후회를

하고 있던 황제는 사람을 시켜 그들에게 '저녁에 문안드리러  오라'고 청했고, 황제의 이 뜻을 알아차린

그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밤 문안을 드리러 갔으니 불이 더욱  뜨겁게 붙은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그래서 이 밤 문안은 매일 밤새도록 계속되었고 결국 화가 난 창힐은 신분을 속이고 동방의 환 나라로

공부하러 떠났다.  

창힐은 자신의 만드는 글자가 아직도 미숙하여 이를 보완할 필요도 있었지만, 동방의 환 나라에서는 아비와

아들이 한 여자를 대하지 않는다는 등의 예의라는 것이 이미 있어 이 예의라는 것도 배울 겸 떠난 것이다.

창힐은 동방 나라에서 당시 환 나라의 문서담당 관인 신지 밑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 결국 지금  

한자의 시초가 되는 창힐 문자와 금문을 중국인의 말을 붙여 한자로 바꾸는 일을 하게 되는데, 이런 이유로  

지금의 한문이 우리말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며, 여음(女陰)을 뜻하는 '구무비(屄)', '구무쥬 (尸밑에 徐)' 등

여성 성기나 성적 용어가 모두 주검 시(尸) 밑에 있듯이 유난히 성이나 성기용어를 더럽게 보는 것은, 자기

아버지와 자기 여자와의 추잡한 관계가 신성해야 할 생식행위를 오해하게 된 동기가 된 것이고, 우리는 이

한자의 영향을 받아 덩달아 성을 추한 것으로 보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한편 황제와 밤낮 없이 정사를 벌리던 소녀와 현녀는 결국 황제가 노쇠해져 만족한 정사를 치룰 수 없게 되자  

남자의 정기를 돋을 수 있게 하는 양생법(養生法)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양생법은 얼마나 신비한지 황제가 살이 찌고 노쇠해져서 성행위시 자신의 몸을 자신의 힘으로  

추스리지 못하고 네 명의 힘센 시녀로부터 팔다리를 잡게 하여 추슬러 올리고 내리게 하는 부축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어도 성기만은 항상 젊은이 같았다.  
그러나 결국 황제는 소녀의 배 위에서 복상사(腹上死) 했고, 이를 중국 사서에서는 '황제가 용을 타고

승천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아버지의 죽음을 안 창힐은 그간 만든 한자를 가지고 귀국했고, 이 글자로 무엇인가 기록해야 하는데

마침 마땅한 것이 없던 차에 그래도 자기 여자들인 소녀와 현녀로부터 '비록 네 명의 시녀로부터 사지를

부축  받아 방사(房事)를 치루더라도 성기만은 젊은이 같다'는 신비한 양생법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만든

글자를 최초로 사용하여 이 양생법을 적었는데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성(性) 경전(經典)인 소녀경

(素女經)이고, 언젠가 우리 문교부에서도 이 소녀경을 여고생들에게 성교육서로 추천했다가 말썽이 났던

책이기도 하다.  
 

제 4장 신지녹도전자 천부경 글자 해독 

▪  한 (하나)

1. 신지 녹도 전자 '한(하나)'의 뜻으로 본 증거 

 
하나 : 위 그림에서 '나무들'은 ''의 그림으로 '나무들이 햇빛 받는 그림'이다. 즉, 햇빛을 나타내고 싶었던

그림이다.
우리조상들은 이 햇빛을 내리는에게 아침저녁으로 경배했다는 것은 먼저 말했다.

즉, '...환국본기조대기에 말하되 옛 풍습은 빛을 숭상하여 해로서 神을 삼고 하늘로써 조상을 삼았으니  

만방의 백성들이 믿고 의심치 않아 환한 부족 방식으로 조석으로 경배하였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 해나 햇빛에게 아침저녁으로 절을 했다'는 것이다.
즉, 저녁에 해가 지면 '햇님, 안녕히 주무시고 내일 아침에 제발 꼭 다시 떠주세요'하고 절하고,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뜨면 '햇님,우리를 잊지 않고 또 떠주시니 정말 고마워요'고 또 절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그때 사람들의 생각으론 당연하다. 따라서 그들의 신앙의 대상은 당연히 '해'이며,  

해에서 나오는 '햇빛'이 곧 '하느님'이다. 그래서 그들은 질그릇을 구워 토기를 만들 때도 당연히 자기네

신앙의 대상인 '햇빛 무늬', 즉 '빗살무늬'를 그렸고, 혹시나 햇님이 노하실까봐 감히 꽃이나 다른 동물 등은 

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신지녹도전자 천부경 16자>에도 '빛에게 기도드리는 뜻의 글자가 무려 3개'가 

나온다.
 
 고조선 유적지에서 수없이 나타나는 빗살무늬 토기 사진
  

2. 우리 뿌리 말로 본 증거
천부인으로 만든 ㄱ, ㄴ, ㄷ... ㅎ 속의 뜻으로 보자
는 ㅇ인 하늘 천부인에서 나온 글자로, 우리말 '안녕히'나 '안영이'가 같은 말이듯 ㅇ이나 ㅎ은 같은 말이며,

따라서 이 ㅇ이나 ㅎ으로 시작되는 우리말은 하늘이나 하늘처럼 원융무애한 말에만 쓰이고 절대 땅이나

사람한테는 쓰이는 일이 없다.
 
우리가 지금 보는 해의 뿌리말은 바로 ''였다. 여기에 '갑순이, 갑돌이, 학교 > 핵교 , 소고기 > 쇠고기'하는

우리말에서 빠질수 없는 약방의 감초격 접미사 ''가 붙어 '하+이=해'가 되었다.
또 우리 ㄱ, ㄴ, ㄷ... ㅎ 이외의 현재 모음 ㅏ, ㅓ, ㅗ, ㅜ, ㅡ, ㅣ 등은 천부인으로 만든 글자가 아니므로  

'검둥이 = 감둥이', 또는 봄에 풀이 돋으면 '파릇파릇, 퍼릇퍼릇, 포릇포릇, 푸릇푸릇'에서 보듯 그 뜻은 같고,

이런 표현은 20만 어휘를 쓰는 현대에는 그 맛이 좀 다를지 모르나 말이라곤 불과 20여 단어밖에 되지 않는  

우리 뿌리말에서는 그게 그 소리다.
또 지금 ㅏ, ㅓ, ㅗ, ㅜ, ㅡ, ㅣ의 모음은 원래는 그렇게 발음도 했으나, 또한 그 중간 발음도 하게 하였으니  

그 중간 발음을 세종은 아래아 점으로 표시해 ㄱ 밑에 점찍고 ㅁ하면 감, 검, 곰, 굼의 복합어,

즉 그 중간 음으로 발음하게 하였으나, 그 후 세종보다 더 잘난 한글학자들이 세종이 만든 글자 4개를

없애면서 우리의 혀는 어느새 굳어지고 귀는 멀어서 지금 누가 그 발음을 해봐야 분별되지도 않고 발음도  

할 수 없다. 또 이 ''는 또한 ''도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 朝日'新聞이 '아사히' 新聞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위 신지녹도 전자 '하' 는 모든 누리의 생명들은 바로 햇빛을 받아야 살아가는 것을 표시했고,

여기서는 나무 둘을 그려놓았는데 이 글자는 나중에 중국인들에 의해 풀 초(艸) 자가 되나 풀이건 나무건

햇빛을 받아야 살아가는 것은 같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은 글쓴이 졸저 <신지독도전자 천부경 해독>에 있다.
 

3. 최치원 81자로 본 증거
一 始 無 始 一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
一 積 十 鉅 無 匱 化 三
一 妙 衍
人 中 天 地 一
一 終 無 終 一
 
최치원 81자 해독에서는 一 은 하나(한)인데, 여기에서 따로 있고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한(하나)'으로 같이 설명한다.
여기서 天一, 地 一, 人 一의 첫번째 一은 한자 뜻대로 '첫째, 핵심'의 뜻이 있지만, 다음 모든 一은

이두문이므로 우리 한민족 이라는 '한(하나)'라고 해독하며, 위 이 은  一始無始一, 一終無從一 같이  

'시작도 끝도 없다'는 말이다.  
또 우리 '한민족'이라는 '한(하나)'의 의미는 원래는 '햇빛을 받는 대지의 생명체'이지만, 옛날에 말이라곤

불과 20여 단어밖에 되지 않던 시절에 '햇빛을 받는 대지의 생명체'와, '햇빛'과, '해'와, 해의 집인 '하늘'과,

하늘의의 주인인 '하느님'을 구분하지는 않았으므로 이 '한' 속에는 20여 가지 긍정적인 뜻이 들어있으며, 

이는 一始無始一, 一終無從一 같이 '시작도 끝도 없다'는 말이다. 
 
4. 金文 一二三...十의 뜻으로 본 증거
一,壹부터 보자.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인용 

여기서 위 중국인의 해설서나 또 갑골문 등 지나족의 때가 묻은 글자는 보지 말고 우리 조상의 글자인 금문 

(金文)만 보시라. 여기 좌측에서 두번째 금문에서 막대 하나는 그냥 '하늘'이나 '땅'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우측에서 좌로 네 번째 금문은 大, 즉 '사람 가랭이 밑에 조개와 조개 다리'이다. 이는 다른 금문 사전도 같다.

그렇다면 이는 바로 '땅'인 여음(女陰)이다. 즉, 지금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초기 돈은  조개(貝)로 만든

貝錢이라고 하나, 그렇다면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다 갑부였을 것이다.

이 '조개'는 실은 '여음' 그림이므로 '여자를 돈 대신 썼다'는 증거는 무수히 나온다. 그런데 이 '여음'은 바로

'땅'이다. 따라서 '만물의 시작은 땅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니 이는 좌측에서 두 번째 막대 하나인 금문도

하늘이 아닌 '땅'을 말하는 것이지, 숫자인 막대 하나가 아니다.

즉, 이것만 보아도 당시는 숫자도 없었고 따라서 <신지녹도문 천부경>의 그림은 진본 천부경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 막대가 '하나'가 '땅'이라는 말은 <신지녹도전자 천부경>의 하나의 ''에서 '빛 받는 누리'일 수도

있는데, 그 증거는 이 하나인 一을 최치원은 一始無始一, 天一 一 등이라 했기 때문에 필자는 하나인 一은 그  

一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日'이라 한 것이다.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인용

 


 
여기서도 중국인 설명이나 갑골문 등 지나족의 때가 묻은 글자는 보지 말고 우리 조상의 글자인 금문(金文)만

보시라.  
이 그림에서 하늘 천부인인 ㅇ이나 그 속 하늘의 주인인 '해'까지 점으로 표시한 것이나 모두 '하늘'이고 ' 

하느님'이며 '해'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ㅇ이라 하면 개성이 없다 하여 한자에는 ㅇ이 없으니 이 ㅇ속의 점도

차츰 日 자로 변해간다.
 

▪  다음 글자들은 지금 미국 시카고 부런티지 박물관에 소장된 대략 4,500~5,000년 전의 청동기로 중국 고조선

유적지 아사달로 추정되는 곡부에서 출토됐는데, 그 속의 명문(銘文)을 읽어보면 이는 우리 단군신화를 실화로

만들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
즉, 환숫께서 고조선 유적지에 내려와 곰족과 동화하여 밝달임금을 낳고 우리 민족을 세운다는 우리

민족에게는 아주 귀중한 자료가 담겨져 있다.
 
 

위 코뿔소 모형은 젯상 같은데 올리는 제기 같은데 그렇다고 술잔 같지는 않으므로 '코뿔소 술두르미'"라

한다. 안쪽에 새겨진 26자의 명문이 특이하다.

이 글자들의 전문 해독은 글쓴이 카페에 있으므로 여기서는 전문 해독은 생략하고,

 

 

그 중 맨 앞의 세 글자만 먼저 해독해본다.

 

▪  먼저 맨 위의 둥근 그림을 기존의 학자들은 어떻게 해독했는지부터 본다.
사마천의 <사오본기>에서는 '전욱(顓頊)'이라 했는데 顓 자는 '오로지'란 뜻이고, 頊은 '멍청한 사람'이라는

뜻이니 이는 '멍청한 사람'을 뜻하는 글자라 하였다. 이는 아마 지나인들은 사람은 개성이 있어야 하는데,  

즉 'ㅁ'과 같이 모가 져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모가 없이 둥그니 멍청한 사람으로 본 것 같다.

이는 중국인들이 변질시킨 갑골문 이후의 글자에서 사람의 머리를 ㅁ으로 해놓은 것등 수많은 증거가 있다.  

그런데 우리 금문학자들 중에는 근대 금문해독의 가장 권위자라는 중국인 낙빈기의 이론을 그대로 따르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우리말, 우리 상식을 전혀 모르는 중국인의 말만 듣다 보니 금문 해독은 그만두고  

하느님이나 환숫, 밝달임까지 허깨비라고 우리 역사까지 왜곡하면서 오직 중국인의 조상만이 우리

조상이라고  후학을 가르치기 까지 하고 있다.

또 우리 민족은 원래부터 원융무애한 'ㅇ' 같은 것이 좋고 'ㅁ' 같이 모가 져서는 '못됐다, 못쓴다'고 하는 

등이처럼 우리의 천부경 사상을 가지고 있는데, 중국인들은 위에서 보다시피 우리말, 우리 상식과는 너무  

거리가 먼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자에는 ㅇ은 없으니 위 우리말 ㅇ인 '하늘, 해'가 중국인들은  日로 표시된다.

 

▪  다음 글자는 중국 금문학자는 子 자로 해독하였으나, 글쓴이는 그 모양이 '하늘을 나는 천사' 같으므로

아직 子가 아닌 '하늘의 정기'라 해독했으며

 

▪  그 다음 王 자의 해석은 대체로 같지만 단 王은 하늘인 ㅡ 아래 사내인 太가 있고 그 아래 다시 땅인 ㅡ

가 있으니 우리말 잇큼> 임금 이라 했다.

따라서 중국 금문학자는 위 세 글자를 '멍청이의 아들 왕이'라고 해독하고 있으나, 글쓴이는 '하늘의 정기인  

잇큼> 임금' 이라고 해독했다. 그래야 뒤의 글자 해독과도 말이 연결된다.

따라서 금문은 반드시 우리말과 우리 상식을 가진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금문만 보더라도 '一, 즉 한(하나)'가 당시는 숫자가 아니라 '천부경'이었음이 증명된다.
 
5. 우리 풍속으로 본 증거  
(1) 우리는 진본 <천부경 신지녹도전자 하나, 둘, 셋... 열>의 첫 글자 을 하느님으로 섬기고,

그래서 애국가로도 불리어지는데, 그 햇빛이므로 먼저 사진에서 보았듯이 우리가 '백의민족'이다.
(2)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
(3) 애국가에도 나오는 하느님 

(4) 영산으로 모시는 흰머리산(白頭山)

(5) 천제를 모시는 희고 큰 산(太白山)

(6) 일본 신사에 영은산(英彦山)의 풀옷을 입은 환웅 그림과 개천기록 이 있는데 이 英彦山의 일본 발음이  

히코산 이므로 우리 말로는 히고 큰 산, 太白山이 된다.
 
1) 신지 녹도 전자 한(하나) '나'의 뜻으로 본 증거
 

 원래 신지녹도전자 천부경 '하나'의 '' 그림은 위와 같다.

그러나 전자(篆字)란 도장 새길 때 쓰는 것처럼 일부러 꼬부려 빈 공간에 채우므로 우측에서 내리 갈기는  

햇살이 너무 휘었다. 따라서 정상적으로 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좌측의 약간 펴진 'ㄴ' 같은 글자는 바로 'ㄴ의 모태'이며, 그래서 '누웠다'는 '누리(땅)'를 표시하는

글자이다.

따라서 ㄴ 속에는 '누워있다'는 뜻이 들어있으니 '누리'는 '땅'이다.

그러므로 雪이 '눈'이고 目도 '눈'이며 '눈님> 누님'도 그 성기가 누워있으니 '눈' 이며, 이외 ㄴ으로 시작되는 

말은 모두 '누워있다'는 뜻에만 쓰일뿐 하늘이나 사람을 말할 때는 쓰이는 일이 없다.
 
이 누리는 높고 낮은 데가 있으므로 그냥 수평인 ㅡ보다는 이 ㄴ이 맞는 글자다.

따라서 이 글자는 위 '' 글자를 더 확실히 보강하는 글자로 이 ㄴ을 붙임으로 '한의 실체'가 성립되며, 

'인간이나 모든 생명체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햇빛이 누리에 내리는 것'을 표현했다.
또 이 '하 + ㄴ'의 ''이라는 글자는 우리 조상이 만든 토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빗살 무뉘 와 그 빛을 받는 누리 토기

 
 
3)  우리말 '한(하나)'의 여러가지 뜻
우리말에서 '감둥이'와 '검둥이'가 같은 말이고, '포릇포릇, 퍼릇퍼릇, 포릇포릇, 푸릇프릇' 등의 말들이 같은 

말인 것은 세종의 <훈민정음>에는 있던 아래아 점, 즉 ㅏ, ㅓ, ㅗ, ㅜ, ㅡ, ㅣ의 중간 음이 지금은

없어졌으므로 원시 한글에서 모음은 일단 무시 한다. (책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에서 상세 설명)
 
 * 하늘 : 한울 
 * 하느님 : 한울님 
 * 밝다 : 한하다 (환하다>한하다) - 햇빛이므로 
 * 숫자 : 하나, 한을 숫자로 쓸 때는 '하나'라 한다. - 해와 햇빛, 하나님은 하나이므로 
 * 크다 : 한밭(한밭,大田), 한길(큰길), 한물(큰물,홍수), 한비(큰비), 한새(황새), 한숨(큰숨), 한아비

(큰아비,할아비), 한박눈(함박눈, 한지박(함지박) - 온 누리를 비추는 해와 햇빛은 크므로 
 * 처음부터 끝까지 같다 : 한결같이(하나의 결 같이) - 해는 한결 같으므로 
 * 모두가 : 한 반, 한통속, 한가지 - 해는 전부이므로-
 * 보다 더 제법, 꽤, 크게 : 한결(한결 따습다) - 해는 최상급이므로 
 * 얼마 : 한동안 - 해는 항상 있으므로 그 중의 어느 때 
 * 여러 군데 : 한눈팔다(여러 군데 시선을 둔다) - 햇빛은 여러 군데를 비추므로 
 * 바르다(正確, 가운데) : 한복판,한가운데, 한가위, 한가을, 한낮 - 해는 정확하므로
 * 가득 찬 : 한 사발, 한뉘, 한평생 - 햇빛은 온 세상에 가득 차 있으므로
 * 성(盛)하다 : 한더위 - 해는 盛하므로 
 * 넓다 :한 데(하늘을 가리지 않는 방 밖 넓은 곳) - 해는 넓은 하늘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 혼자 : 혼자 - 해는 혼자 있으므로 
 * 많다 : 흔하다 - 햇빛은 많으므로
 * 따뜻하다 : 훈훈하다 - 햇빛은 훈훈하므로
 * 오래되다 : 헌 것 , 헌옷 - 해는 오래됐으므로
 

이상 어느 것을 서로 비교해보더라도 이것은 '하나(한)의 설명서'이므로 이 신지녹도

전자 '하나(한)'은 진본 천부경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  둘 

 1. 신지 녹도 전자 '둘'의 뜻으로 본 증거

다음 글자는 신지녹도전자 '둘'에 해당하는 글자이다. 

 

 우선 옛날 사람들이 산(山)을 어떻게 그렸을까를 생각하면 답이 금방 나온다.
 산의 그림이 아래 그림처럼 변하는 모습을 보자.


  
위 그림 산을 간단히 그리면 山이 된다.

(이 山은 사람 천부인 세모 '△'가 나중에 삼지창으로 변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면 위 그림의 위 부분을 山이라 한다면 山 아래 'ㄹ'처럼 구부러진 것은 무엇인가?

이는 물어볼 것도 없는 개울, 즉 ㄴ으로 시작된 말' 내(川)'이다.

즉, '산을 휘둘러 나온 내'의 표현을 그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산이 있고 산 아래 내가 있는 그림이라면 이것을 무엇이라 할 수 있는가? 이는 바로 '땅' 이다.

그러면 옛날에는 '땅'을 뭐라고 했을까?
 

2. 우리 뿌리말로 본 증거
(1) 땅의 뜻이 ㅁ보다 강한 ‘ㄷ’
 ‘ㄷ’은 땅 천부인 ‘ㅁ’을 분해하여 만든 글자로 '땅'인데, 땅 천부인 자체는 ‘ㅁ’이 아니라 ‘ㄷ’ 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땅의 뜻은 오히려 ‘ㅁ’보다 강하다.
책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에서 상세히 설명했듯이 ‘ㅁ’ 은 ㄱ, ㄴ, ㄷ, ㄹ, ㅁ, ㅂ, ㅍ을 대표하는

'땅 천부인'이며, 그 뜻은 땅 이라기보다 '높은 땅'을 말하다 보니 ‘높은 것’의 뜻이 주로 많아 '뫼 마마, 마님,

마루' 등에 쓰이는데, 이 ‘ㄷ’은 다같이 ‘ㅁ’에서 분해된 ㄱ,ㄴ,ㄹ, ㅂ, ㅌ, ㅍ보다 가장 강력한 땅과 땅에 관한

것들의 뜻을 가지고 있다.
 
 (2) ‘ㄷ’으로 시작되는 말들
땅은 원래 ‘다’ 이다. 세종 조 전에는 된소리가 없었는데 요즘 소주를 ‘쏘주’라 하고 번데기를 '뻔데기'라

하듯이 ‘다’ 가 ‘따’가 되고(다地:訓蒙字會), 다시 ‘따'는 ‘땅’ 이 되었는가 하면, 한편 ‘다’ 는 ‘달’이 되어 ‘음달,

양달’이라는 말이 생겼다.
 여기서 애초 땅인 '다' 가 '당 >땅'이 되게 'ㅇ'이 붙는 것은 ,애초 'ㅇ'은 하늘 천부인으로 '하늘'을 의미하나

하늘은 '생명'이기도 하므로 원래 '땅'이란 불모의 사막이 아닌 '생명이 있는 대지'만을 땅이라 한다. 
 
다음 땅인 '다'에 'ㄹ'이 붙어 된 '달'도 땅인데, 여기에 붙어있는 'ㄹ' 은 우리말에서 그저 유동적인

의미뿐이고  따라서 'ㄹ'로 시작되는 우리말도 'ㄹ'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ㄹ'은 말의 윤활유 역할만을 한다.  

즉, 그렇지 않아도 딱딱한 우리말에 만약 'ㄹ' 발음이 없었더라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혈압이

걸렸을 것이다.
 
* 달(月) : 하늘에 붙어있는 달이 왜 음달, 양달 하는 '땅'과 같은 '달'인가?

ㄷ은 ㅇ인 하늘에 비해 '음'이라는 뜻도 있다. 즉, '해'가 양이라면 '달'은 음이므로 여기에 ㄷ이 들어가는

'달'이 된 것이다.
 
* 다리(脚) : 사람이나 동물의 '다리'는 땅이 ‘달’이니까 이 ‘달’ 을 딛고 다니는 기관도 역시 ‘달’이므로 이 

‘달’에 우리말의 감초 격 접미사 ‘이’가 붙어 '달이 >다리'가 된 것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한편 '달'은 '해'에 비해서 음이듯 '머리'를 양으로 본다면 '다리'는 음이 된다.
 
* 다리(橋) : 지금의 다리는 한강대교, 원효대교 등 엄청나나게 큰 다리가 연상되나 처음의 다리는 지금처럼  

중장비가 없었을 테니 겨우 작은 도랑에 사람의 다리(脚)처럼 가는 나뭇가지 두 개를 걸쳐놓고 건너 다녔을  

것으로 추정하여 '다리(脚)>다리(橋)'로 된 것으로 본다.
 
* 달 (딸, 女) : 세종 전에는 격음이 없었으므로 '딸'을 '달'이라 했으며 '여자'는 일단 '땅'이다.

또 '아들'은 양이고 '딸'은 음이다. 
여기서 대략 반만년 전 우리 원시 조상님들이 우리말을 만들 때 벌써 천지인 삼극 중에서 음양 양극을 썼다는

증거가 나온다. 즉, <훈민정음> 서문에서 '옛사람들의 말씀(聲音)들은 모두 음양의 이치가 있었다.

(故人之聲音皆陰陽之理)'라는 말이 있는데, 이 글을 쓴 글쓴이도 처음에는 어디에 근거를 두고 한 말인지,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그러나 천부인을 찾으면서 특히 이 부분에서 이 말의 뜻을 알게 되었는데,

우리말과 글자는 정말로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천지인 삼극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예의 하나가

지금 위에서 나온 음양의 양극에서 음으로 표시되는 ‘달’일 것이다.
즉, 하늘에 걸려있는 '달(月)'도 ‘달’이고, '딸(女)'도 ‘달’이며, '땅(地)'도 ‘달’이고, '다리(달이脚)'도 결국 

‘달’ 이며, '다리(달이橋)'도 ‘달’ 이어서 이들은 전혀 서로 어떤 연관이 없을 것 같아도, 결국은 양(陽)의

반대인  음(陰)을 말하고 있으므로 이는 처음부터 어떤 근거를 기준으로 철학적 논리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증명하고 있다. 
 
* 들판
* 둔덕 : 모두 ㄷ이며 '땅'이다. 
(이하 생략 : 땅을 의미하는 ㄷ으로 된 우리말은 책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에 상세 기록) 
 
그러면 이 땅이라는'달'과 숫자에 나오는 '둘'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는 책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에서 상세히 설명했듯이 원시한글에의 모음은 '감둥이'와 '검둥이',

'파릇파릇'과 '푸릇푸릇' 등이 혼동되듯이 있으나마나 식으로 무시된다. 즉, '달'이라 하건 '둘'이라 하건

큰 차이 없다는 말이다.
 
다음 '하늘을 무형인 정신으로 본다면, 땅인 달은 이 주체를 두(둘)르는 유형의 객체가 된다'는 것이다.
즉, 사람을 예로 들면, '가장 핵심이 되고 첫째가 되지만 무형인 정신을, 그 표현체인 유형의 물질이 둘러서,  

비로소 세 번째로 사람으로 완성된다'는 말로 '둘', '둘르다'는 명사인 물질, '땅' 즉 '달'이 동사인 '두르다'의  

'둘'로 바뀐 것뿐이지 그 본질은 같다는 말이고, 이는 주체되는 정신의 다음이 되는, 즉 둘째가는 구성체라고 

보는 것이다.
 

3. 최치원 81자로 본 증거
地 一 二
이것의 번역은 흔히들 한자 뜻대로 '땅 하나는 둘이며'...한다면 말이 되지 않자 하느님 당시는 있지도 않았던  

각종 음양오행설, 이상한 도표 들이 등장한다 했다,
여기서 '二'는 '이두문' 형식이다, 즉, 우리말 '두루마기' 등에 쓰는 '두(둘)르다' 의 '둘'이다.

따라서 地 一 二 해석은 '땅의 첫째는 두름이다' 해야 말이 된다.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여기서 '二'도 '이두문'형식으로 숫자가 아니라 우리말 '두르다'이며, '三' 역시 이두로 ㅅ의 뜻이 '사람, 서다,

세우다, 솟다'라는 뜻이 있으니 우리말 '세우다'로 봐야 한다. 따라서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은 해석은 

'하늘은 땅과 사람을 포함하는 두름으로 세워졌고, 땅은 하늘과 사람을 포함하는 두름으로 세워졌으며,  

사람도 하늘과 땅을 포함하는 두름으로 세워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두름으로 세워졌다'는 말은 ' 

人中天地一', 즉 '사람 가운데는 天地의 한이 들어있다'는 말만 보아도 '사람은 하늘인 정신을 땅인 몸이  

두름으로써 성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 <신지녹도 전자 천부경> 그림은 '하늘의 정기인 '한'을 물질인 땅이 둘렀다'는 말이다.

따라서 위 신지녹도전자 천부경 하나, 둘, 셋... 열은 진본 천부경이란 증거가 된다.
 

4. 金文  一二三...十의 뜻으로 본 증거
우리 선조들이 이 신지녹도전자, 또는 초기 가림토와 혼용해서 쓰던 금문, 갑골문의 貳 자 제자 원리를 보자.  

우리가 지금 쉽게 생각하는 작대기 두개인 二 자는 원래 중국인들이 숫자를 쉽게 쓰기 위해 수천 년 후에

만든 글자이고, 원래 '두른다'는 뜻이 있는 둘은 貳 자였다.
 
우선 무엇인가 얻는다는 '얻을 득(得)' 자의 제자 원리부터 보자.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인용


  

여기서 金文 1, 2, 3 ,4,5 번은 모두 조개를 잡고 있는 그림이다.

그럼 '조개'란 무엇인가?

조개가 격음이 되면 '쪼개'이고, '쪽'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낭자, 성인여음'이며, 처녀가 시집을 가면

그 표시로 쪽을 찐다. 따라서 위 무엇을 얻는다는 得 자는 바로 '여음을 얻는다'는 말이다.
 
다음 창 과(戈) 자를 보시라. '창'이란 무엇인가?

이 금문을 가져다가 자기네 글자를 만든 중국인들은 창이라면 흔히 전쟁무기로 밖에는 알지 못하여 무사옆에 

있는 그림도 창으로 그렸다.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인용


 
그러나 金文1, 金文 2 번을 보라.

창 자루 밑에 巫具에서 쓰는 '삼지창' 같은 같은 것이 붙어있다. 이것이 전쟁무기인가?

다음 '셋'의 설명에서 자세한 설명이 되겠지만 이 삼지창은 바로 사내 '숫'이다.

따라서 여기의 '창'이란 '여음에 씨를 심는 사내의 창'이란 말이다. 

따라서 이 戈 자의 정확한 뜻은 남근인데 중국인들은 전쟁 무기인줄 알고 있으니 중국인은 우리 금문을

잘못해석 하고 있는것이다.
 
다음 사진은 하바드대 박물관에서 청동기에 새겨져 있던 그림을 박물관 측에서 사진 찍어 앞에 전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의 뜻에 대해서는 우리말과 우리 상식, 우리 밝달임금(檀君) 실화를 모르는 미국의 어떤

학자는  물론 중국의 어떤 금문해독가도 그 이유를 모를 수밖에 없어 지금까지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아래 사진은 '비파형 청동검', 즉 '사내의 숫을 의미하는 삼각형 칼'에 숫을 더 강조하기 위해 '삼지창'을

달아놓은 것이며, 이것이 '사내의 숫'이라는 것을 더 강조하기 위해 그 밑에 '남근, 또는 정액을 손으로

받드는그림'을 그려놓았으니, 위 중국 金文1, 2 의 실증이 되는 것이다.

 

  비파형 동검 밑에 삼지창이 달린 戈
  (하바드대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다시 아래 완성된 貳 자의 금문 1, 2, 3, 4를 보시라.

여기에는 노골적으로 '조개 아래 다리 두 개'까지(貝) 달려있고, 그 위에 '창'(戈)이 있다.
따라서 아래 그림에서 작대기 두 개가 二 이라는 것은 원래 '둘'의 뜻이 아니다.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이상 그림은 무엇을 말하는가? '사내의 창은 조개인 여음을 찌르고, 그 조개는 창을 두른다'는 말이다.

이는 필자가 주장하는 '둘'은 '여음'이라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二 자와 같은 上 자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인용

 

 여기서 金文 1을 보시라. 이는 막대 두 개로 지금의 二 자와 같다. 그러나 이는 숫자 '둘'이라는 二 자가 아니다.  

즉, ㅡ 위에 좀 짧은 막대가 있으면 그것이 '위'라는 표시였고, 이것이 나중 지나인들에 의해 위上 자가 됐다.

따라서 '二는 숫자가 아니고 당시는 숫자가 없었다'는 말을 증명하며 또  이 역시 중국인은 우리 금문 해독을

잘못한것이다.

 

아래 下 자도 마찬가지이다.

아래에 좀 짧은 막대가 있으면 이것이 '아래'라는 표시이고, 나중에 지나인들은 이것으로 下 자를 만들었다.

따라서 '이 막대 두 개도 숫자가 아니며 당시에는 숫자가 없었다'는 것과 중국인들은 우리 금문을 잘못

해독했다는 것이다.[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인용 

 

이 위 아래라는 막대 표시가 숫자가 된 것은, 위에서 보듯 갑골문 이후 소전, 대전 때부터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난 글자가 있다. 이는 바로 '도적'이라는 적(敵) 자이다.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인용
   
 
이 글자는 보시다시피 위 貳 자와 아주 비슷하다. 그럼 왜 선조들은 이렇게 글자를 만들었을까?
필자는 위에서 '전쟁이란 계집 싸움에서 시작되었다' 했다.

그렇다면 바로 이 '계집의 여음을 훔처가는 것이 바로 원수이며 적' 이란 말이다.

따라서 말이 만들어질 당시는 이렇게 말이 몇 마디 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신지녹도전자에서는 '사내'를 '山'으로 표시했고, 그 아래 두르는 '여음'은 '땅'이라는 것까지 말하기

위해  ㄹ과 같은 개울. 즉 내(川)로 표시한 것인데, 여기서 '내'의 ㄴ은 바로 원시 가림토 '누리'의 ㄴ이고,

ㄴ은 '누워있다'는 뜻이 있다고 했다 
 

 

따라서 최치원도 地一 二,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의 二는 '두른다'는 뜻의 '둘'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도 순수한 우리 뿌리 말과 금문, 그리고 최치원의 81자로 '이 신지녹도 전자가 진본 천부경 둘'임을 

증명한다. 

따라서 이 금문만 보더라도 '二, 즉 둘'이 당시는 숫자가 아니라 진본 천부경이었음'이 증명된다.

5. 우리 풍속으로 본 증거 
우리는 지금 둥그렇게 앉는 것을 '둘러앉는다'고 말하고, 우리 민속도 공동으로 일하는 것을 '두레'라 하며,  

둥그런 물 푸는 장치도 '두레'이고, 도 둥그렇게 둘러앉아 먹는 밥상도 역시 '두레반'이다.
따라서 '둘'이란 숫자가 아니고 우리말 '두르다'이다.

 

이상 어느것을 서로 비교해보더라도 이것은 숫자가 아닌 '두름 > 둘'의 설명서이므로

'이 신지녹도 전자 '둘'은 진본 천부경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  셋
1. 신지 녹도 전자 '셋'의 뜻으로 본 증거
다음 그림은 신지녹도전자에서 '셋'에 해당하는 글자이다.

독자님들께서는 이 그림과 또 아래에서 제시되는 우리말 '셋'의 어원을 우리 선조들이 그림으로

그려 쓰던 금문과도 비교해보시고,  당시 가치 기준과 성생활, 그리고 왜 금문은 반드시 우리가

해독해야 하는지와, 지금 중국인들은 자기네 한자의 제자 원리도 모르고 있다는 것, 따라서 이 지금

잘못 변형된 한자는 우리 글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이 신지녹도전자가 진본 천부경 이라는 사실에 

충분히 놀라셔도 좋다.

 

이  글자는 물론, 아래에서 제시 되는 금문 역시 위 '셋' 글자처럼 가지 한 쌍이 하늘을 향하여 한(하나)에서 

빛 받는 것 같이 빛을 받으며, 아래 뿌리 한 쌍은 땅을 향하게 하여 땅의 정기를 취하게 하고, 가운데

위로부터 이어지는 나무둥치와 합하며 모두 이 되는데, 이 은 아래 우리 뿌리말 설명에서도 말하겠지만,

ㅅ은'서다, 세우다'라는 뜻이 있으므로 '서는 것'은 '사람'이고, 이 에 우리의 약방의 감초격 접미사,

즉 '갑돌이, 갑순이, 학교 > 핵교, 소고기 >쇠고기'하는 가 붙으면 가  가 되어 '세워진 사람'이 된다. 

그런데 은 여기에 또 하나의 ㅅ이 붙었으므로 '사람에게 또 하나의 서는 것이 붙은 것'은 바로 '사내'이고,  

'사내의 남근'이 되며, <훈몽자회>에도 말하듯 '사내'란 '남근, 즉 이 솟을 수 있는 장정'이 된다. 

 
그러나 이 신지녹도문이나 금문으로 자기네 글자를 만든 중국인은 위 나뭇가지 한 쌍만은 글자를 쓸 때

편의상가로 쉽게 그은 것이 바로 木자로 만들었다. 따라서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이 '셋'을 뜻하는 나무는 木

자와 같이  '반드시 가지가 한 쌍이 있고 뿌리도 한 쌍이  있어서 나무 둥치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未자 같이 나무 가지가 두 쌍이면 나무둥치와 넷이 되므로 이는 사람의 생명을 창조하는,

숫'을 뜻하는 '셋'이 아니다. 따라서 한자의 원조 금문에서 부터 未 자는 '아니다'라는 뜻의 글자가 되었다.
 
여기서 '아니다'는 '생명 번식 도구인 이 아니다'에서 나온 말인데, 요즘 같이 20만 어휘를 쓰는 지금

우리는 '나무가 아니고 풀이다', '남자가 아니고 여자다' 등 '아니다' 를 말할 때는 반드시 '상대적으로 

그것이 아닌것'에만 이'아니다'를 쓴다. 그러나 말이라곤 불과 20여 단어에 불과했던, 우리말이 생길 무렵에는 

그네들이  '생활하면서 가장 필요하고 위대한 것이 아니'면 모근것을 다 아니다 라는 말로 다 통했다고

보는데, 이를 예로 들면, 우리말이 만들어 질 무렵에는 얼마나 말과 글자가 부족했는지 '착하다'는 말을 

할 때 羊 머리 하나만 그려놓으면 되었던 것이다.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인용 

즉, 羊이란 동물은 호랑이 등 다른 동물에 비해 착하기만 하니 아마 착한 동물을 표시한 모양이나, 양은 또한 

순하기도 하니 '順하다'는 글자가 될 수도 있는데, 당시는 착한 것과 순한 것도 구분되지 않았을 것이니 그냥  

착한 동물의 대표로 '善' 자를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즉, 羊은 착하니, '착하다' 하면 자연 羊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木 자와 비슷하더라도 未 자와 같이 가지가 두 쌍 이상이 되어 결국 넷 이상이 되는 것은 '숫',   

즉 '셋'을 뜻하는 것이 아니니 '아니다' 하면 木이 아니라 가지가 두 쌍인 나무가 되고, 그래서 未 자는 

아닐 未 자가 되는 것이다. 
 
이 木자가 '나무'가 되고, 이것이 바로 '신단수(神壇樹)'이며, 이것이 전래되어 우리 에게는 '서낭나무'가  

되었고 환숫의 고향인 현 바이칼 호 부근의 부라이트, 나나이, 울치족은 물론 몽골에서의 '오보'가 되었는데,  

이 오보란 바로 '아보'와 같은 말이며, 이는 바로 우리말 '압>아비' 곧 씨족이 되니 결론적으로 '셋'은 남근인

을 말하는 글자이고, 지금 중국인들이 나무로 알고 있는 木은 '나무'가 아니라 '숫'이란 말이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글자 제자 원리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금문 해독은 반드시 우리말과  

우리 전통을 아는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국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한자는 아래 금문해독에서도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도 솟터(蘇塗) 같은 곳에서 임시로 신단수를 취해 천제를 지낼 때는 木의 뿌리까지  파 올수

없으니 아래 수메르 천제 지낼 때 쓰는 것과 같이 木의 뿌리 대신 가지가 두 쌍인 나무를 써서 나무둥치와

셋이 되게한다.

이 수메르 그림으로 보면 우리 솟터에 임시로 세웠던 '웅상(雄像) 나무'도 이와 같았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솟터(蘇塗)가 우리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장소인지 모르는 중국의 <이십오사>를 다시 보면 

' ...평소 오월 달에 파종을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무리지어 노래부르고 춤추고 술 마시기를

밤낮을 쉬지 않는다. 그 춤은 수 십인이 일어나 서로 따르며 땅을 구르고 몸을 엎드렸다 일어났다 하며 손발로

장단을 맞추는데, 장단은 중국의 탁무(鐸舞?)와 유사한 데가 있다.

시월에 농사일이 끝나면 역시 이같이 귀신을 믿는데, 나라의 읍마다 각기 한 사람씩 세워 천신을 주제케 하며

그 이름을 천군(天君)1)이라 한다.

또 모든 나라에 각각 특별한 마을이 있는데 이름을 '소도(蘇塗)라 하며,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2) 귀신을 섬기는데, 어떤 도망자건 그 안에 들어가면 대개 싸움을 할망정 돌려주지는 않는다.  

그 소도를 세운 뜻은 부도(浮屠)와 비슷하나 옳고 그름 행하는 바는 다름이 있다.'

(...常五月下種訖祭鬼神群聚歌舞飮酒晝夜無休其舞數十人俱起相隨踏地低昻手足相應節奏有似鐸舞十月農功畢

亦 復如之信鬼神國邑各立一人主祭天神名之天君又諸國各有別邑名之蘇塗立大木懸鈴鼓事鬼神諸亡逃至其中皆

不還 之好作賊其立蘇塗之義有似浮屠而所行善惡有異...)

1) 천군 : 무속에서 '무당'을 '만신(萬神)' 또는 '천군(天君)'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단군(檀君)'과 같은 뜻이다.  

2)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 에서의 '북이나 방울'은 지방에 따라 '곡식이나 모래를 담은 자루' 

일수도 있는데, 이는 '고환이나 씨들'을 뜻하고, 이외 오색천을 찢어 새끼에 꾀어 나무 둥치에 감는데,  

이는 ' 신성한 음모'를 뜻한다.(현재 민속촌의 나무가지에 매단 오색천을 잘못된 것이다.  

반드시 옛날 서낭나무에 걸었던 것과 같이 나무둥치에 걸어야 한다)

 

이 솟터에 세웠던 나무가 바로 아래 12환국 중 하나인 수메르인이 천제 지낼 때 쓰던 나무 그림과 같은

것이다.수메르 우르문자의 나무들(EBS 방영에서 촬영한 것). 신단수 밑에서 천제를 드리는 그림


이 신지녹도 그림 셋은 원래 아래에 제시되는 木자의 금문처럼 위, 아래가 山 처럼 가운데 막대가 더 긴 것이  

원칙일 것이다.

그 이유는 위에 붙은 山 자 모양도 나무 가운데 줄기가 가지 보다 길어야 하겠지만 山 자가  꺼꾸로된 아래

삼지창도 가운데가 길어야 하는것은 가운데는 남근이고 양 뿌리는 바로 다리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남근이 양 다리보다 더 길게 되므로 남근이 땅 바닥에 끌린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결코 허무한 과장이 아니다. 사실 사람의 생명을 창조하는 남근보다 더 위대한 기관은 우리 

신체에서 없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모든 신체 기관은 오직 그 생명을 창조하는 남근을 먹여 살리는 보조  수단이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함을 나타낸 것이고  따라서 원래 셋 의 그림은 아래 木 자의 금문처럼 가운데가 길어야 한다.

그러나 때에따라 위 신지녹도전자 그림 처럼 삼지창의 길이가 같은것도 많이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아래 

청동기 솟(鼎)의 다리를 만들고 삼족오 다리를 그리자니 양 다리와 남근을 같게 그려 놓은 것도 많이

나타나지만 이는 신지녹도문이나 금문 해독상 문제가 되는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셋의 신지녹도문 그림은 원래는 무당의 무구(巫具)에서 쓰는 삼지창이 위아래로 붙은것이며

이것을  보면 왜 우리 환숫, 밝달임금이 화랭이(男巫)였으며, 왜 우리 토속신앙이 당골레 등 무구에서

'삼치창'을 썼는지,또는 삼족오의 다리가 왜 '셋'인지 알 수 있다. 

 

 
  다리가 세 개 달린 청동기 솥

 
  
지금은 솥에 다리가 있을 이유가 없겠지만, 고대에는 특정한 집이 없이 자주 이사를 다니다 보니 솥을

걸만한평평한 장소가 별로 없었고, 그래서 제대로 세우기 위해 솥에는 다리가 세 개 붙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세우는 데는 그 다리가 한 개도 안 되고 두 개도 안 되며, 네 개는 뒤뚱거려서 안 되기  

때문에 다리는 반드시 세 개가 있어야 세워진다. 그래서 '정립(鼎立)'이란 말이 존재하는 것과 같이 우리  

숫자 '셋'은 '생명인 사내를 세우다'로, 바로 '숫 '> '셋' 이고 위 신지녹도문 같은 삼지창을 편의상 다리를

같게 한것이다.
 
  삼족오가 다리가 세개인 이유.

 

삼족오는 고구려 고분에서 많이 나오므로 고구려의 혼이다.

중국신화에 나타나는 태양 속에 사는 까마귀에 대한 전설은 후예(后예)란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이를 

고구려의 혼으로 삼았을 리는 없다.

삼족오의 새는 '솟는 것'으로 '해'의 상징물이고, '다리 세 개'는 바로 위 셋을 말하는 신지녹도문의 아래부분  

삼지칭으로 양 다리 가운데 남근이 붙은것이며 이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새 그림상

다리를 같게 한것이다. 

이상 신지녹도전자의 우리말 풀이만 보더라도 이는 '하나, 둘, 셋... 열이 진본 천부경임'을 증명한다.
 

    비파형 청동검(靑銅劍)

   

 

비파형 동검은 보시다시피 실생활에 쓰는 칼은 아니다.

왜냐하면 만약 무엇을 자르는 칼이었다면 그런 모양이 되질 않는다.

그러므로 이는 무구로 쓰이는 삼지창의 다른 형태이며 '제례용', 즉 '제천의식(祭天儀式) 때만 사용되던

의식용 물건'으로 생각된다.

그러니까 이상의 물건들은 모두 사람 천부인 '△'을 상징하는 물건들인데, 이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환숫님의 고향이고 하느님(桓因)이 사시던 현재 바이칼 호 부근의 하느님 부족의 유전학상직계 손인(우리

민족은 곰 부족과 혼혈) 부라이트, 에벤키족 등의 역사박물관에 그들의 조상이 입었던 옷과장신구를 보면, 

그 모자에 山에 자루가 달린, 즉 삼지창 모형의 사슴뿔 장식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신지녹도문 '하나'의  글자에서 시작하여, 빛을 뜻하는 한(하나)을 땅이 둘러서 이제 셋을 뜻하는

사람 천부인 사내, 남근을 뜻하는 △으로 마감이 되었다. 즉, '하늘이나 땅은 결국 사람을 만들기 위한  

부속품이었다'는 말이며, 그래서 天一 地一 太一 中 太一最上貴, 즉 太一인 '사람이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것이며, 그래서 하느님의 道는 神本主義나 心本主義가 아닌 人本主義이고, 그래서 밝달 천제는 불한(卞韓),  

말한(馬韓), 선한(辰韓) 삼한 중 사람 천부인 '선한'의 천제가 되셨던 것이다.

이상 신지녹도전자 그림 셋만 보더라도 이는 '하나, 둘, 셋 ...열이 진본 천부경임'을 증명한다. 

 

2.우리 뿌리말로 본 증거 

'ㅅ' 의 뜻은 '서다, 세우다, 솟다'등이므로 이 '셋'의 뜻은 '사람을 세우다'이고, '사람 중에 서는 것이 붙은

사내'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나중에 '세 번째'라는 숫자로 쓴다. 

즉, '첫째는 하늘, 정신인 '한, 하나'이고, 두 번째는 물질인 달(땅)이 '두르'고 있는 '둘'이며, 그래서 정신이

물질에 둘리어(물질이 정신을 감싸서) 성립된 것이 세 번째인 '사람(사내, 숫)''이다.
그런데 이 'ㅅ'으로 만든 '셋'이 '사람 , 사내, 숫'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설명하면

지구에서 생명체의 목적은 오직 생식하기 위해 크고 예뻐지며, 생식이 끝나면 추하게 늙어죽으므로 우주

의식은 오직 생식이기에, 위에서 말했듯이 어린 아이나 늙은이는 사내가 아니고 <訓蒙字會> 丁에서 말하듯 

'장정(壯丁)'이어야 하며, 따라서 '숫'인 남근이 설(立) 수 있는, 즉 솟을 수 있어 언제든지 생명의 씨를

뿌릴 수 있는 젊은 사내이어야 하기 때문에 이 '셋'의 원 의미는 '사내의 발기한 남근'이다.

(여기에 대한 보다 자세한 근거문헌은 책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중 'ㅅ'부에서 솟터(蘇塗)의 의미 참조)   

 

3. 최치원 81자로 본 증거

▪  析三極 : 三은 그냥 숫자 '셋' 으로 보아 '셋으로 쪼개도...'로 본다. 그리고 그 셋은 '하늘과 땅과 사람'

그 셋을 말한다.

▪  人一三 : 三은 '세 번째' 또는 '세움'으로 보아 '인신(人神)은 세 번째이고'라 할 수도 있고, '사람의 핵심은

'세움'이다'라 할 수도 있으나 전체적 뜻은 대동소이하다.

▪  無匱化三 :  三은 '궤가 없는 셋 으로 화한다'라 하면 말이 안 되므로 '셋'을 '사람'으로 보아 '궤가 없는,

자유로운 사람으로 승화한다'라고 본다. (이 부분이 '홍익인간'의 정수로 다음에 자세히 말한다.) 

▪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 이 三들 역시 '하늘 둘은 셋이고'라 해서는 말이 되질 않으므로 三을 '세우다'로  

보아 '하늘도 둘러서 세우고, 땅도 둘러서 세우고, 사람도 둘러서 세운다'로 본다.

▪  大三合六 : 大三은 '天地人의 큰 셋'이고, 이들은 각기 둘로써 세워졌으니 이들을 합하여 '여섯'이 되는데,  

'여섯'은 사실 <訓蒙字會>에서도 말하듯이 '어슷'으로 '어미(母)'가 된다. 

즉, '엇노리'를 '思母曲'이라 하여  씨인 아비의 직통은 목이고 엇깨(어깨)는 정통이 아니듯, 어미는 그저

기르는 존재(詩經:父兮生我 母兮鞠我)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으므로 '어슷'이란 정통은 아니지만 또한 어미를

통해서 만물이 번성하니 '번성'이라는 의미도 있다.

▪  運三四 : 三은 '사내', 四는 '계집'이다. '넷'이 '계집'인 것은 다음 '넷'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으나 우선

ㄴ의 뜻은 '누워있다'는 것이므로 계집의 성기는 사내와 달리 누워있어서 '눈님 > 누님'이며, 우리말 '삼돌네,

돌쇠네'의 '네'가 삼돌이나 돌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댁'을 말하는 것처럼 '계집'을 이른다.

따라서 運三四成環은 '사내와 계집을 운용하여 한 동아리,즉 한 집단을 만든다'는 말이다.

이상  최치원 81자로도 신지 녹도 전자의 '셋'이 '사내, 숫, 생명의 원초'임을 증명하였다. 

 

4. 金文  一二三...十의 뜻으로 본 증거

먼저 예고한 대로 여기서도 또 한 번 놀래셔도 된다.
'왜 '셋'의 가지가 한 쌍이어야만 하는가'는 위 신지독도전자처럼 위가 무속의 삼치창이 되려면,

또는 솟는 것 같은 山 자 모양이 되려면 가지는 반드시 한 쌍이어야 한다.

즉, 앞으로 나올 금문에서 나뭇가지가 未 자처럼 두 쌍인 것은 '사내'를 뜻하는 '숫, 셋'이 아니라 했고,

먼저 말했듯이 이것만 보더라도 당시 말이 얼마나 적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이  금문은 위 신지녹도전자 셋 과 같은것이다. 단 山 자와 같은 삼지창의 가운데가 길 뿐이다.

따라서 이 글자를 중국인들이 木자를 만들고 나무라 하는것은 그 글자의 뜻과 제자 윈리를 모르는 것이다.

 

다음은 위 그림이 확실히 '사내, 숫'이 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이 그림을 제시한다.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인용


여기에서 좌측 첫머리 갑골문을 보시라.

이 글자의 좌측은 위 '셋'에 나오는 '사내, 숫' 그림이고, 이 그림 우측은 '계집'이다.

사내와 계집의 위치가 '누이'라는 妹 자처럼 된 것이 아니라 뒤바뀐 것은 금문 해독상 문제가 되지 않으며,

따라서 그 갑골문이 아직 중국인 때가 덜 묻은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다음 우리 조상이 만든 위 금문

1,2 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문 3, 4를 보시라. 이것은 지금 妹 자와 같다. 그러나 이도 금문 해독상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에서 말한 木 자는 남근인 '숫'이지만 未 자는 '숫이 아닌 아니다'라는 글자가

되었기 때문에 위 금문 '女+未'로 된 妹 자의 뜻은 '계집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계집'이란 무엇인가? '계집'은 <훈몽자회>만 보더라도 '왕겨, 보릿겨' 하는 '쌀알의 껍데기'인

'겨집'이다. 즉, 숫을 '칼'로 보면 겨집은 '칼집'이다.  우리 ㄱ의 뜻은 '가장자리'이다. 따라서 '갓길, 곁,

겨드랑이'가 중심이 아니고 '가장자리'이듯, '겨집'은 남녀가 얼룰 때(성교) '숫의 가장자리'란 말이다.

그런데 위 妹 자는 겨집이 아니라는 것이고, 이것이 '누이'란 말이니 '누이는 겨집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우리는 지금 누이도 일단은 겨집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말이 몇 마디 되지 않던 시절에는 '숫이 얼룰

수 없는 것은 겨집이 아니'란 말이다.
 
따라서 이상 글자로 대략 5천 년 전 우리 선조들의 성생활까지 엿볼 수 있다.

즉, 야생의 조류나 짐승, 특히 코키리나 유인원 등 동물도 고등동물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은 본능적으로

근친상간을 하여 무지렁이 새끼는 낳지 못하게 한다. 

즉, 앞으로 일곱에서 설명하겠지만 수컷들은 어느 정도 크면 그 어미가 냉정하게 무리 밖으로 내쫓아 다른

무리 중에서 짝을 찾게 한다. 따라서 이 妹 자를 보면, 우리 선조들도 절대로 근친상간은 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이 未 자는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는 없고, 그 대신 甲金篆隸大字典 四川辭書出版社刊 에 나온다.   

 

여기에도 가지가 두 쌍인 아니다는 未 자로 쓰였고,  따라서 위 妹 자는 '겨집이 아니다'라는 뜻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럼 그 '계집'이라는 글자가 과연 '계집'인지도 한번 보자.  女 자부터 보자.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인용 

 

다음 母자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인용 


   
이상 그림을 보면 먼저 女 자와 母 자의 가장 큰 차이는 대개 가슴의 유방에 젖꼭지인 점이 찍혀 있는가

아닌가이다.

즉, 母가 아닌 계집에게는 아기한테 젖 먹일 일이 없으니 젖꼭지가 필요 없다.

그러나 위 女자 그림 중 甲骨文 4에도 분명 젖꼭지가 찍혀 있고, 아래 母자 그림 중 金文1의 그림에는 위 女

자와 같이 젖꼭지가 없다. 따라서 애초 말이 몇 마디 되지 않았던 원시에는 女나 母가 같은 의미로 쓰였으나,

문물이 발전하고 말이 많아지면서 女와 母가 다른 의미로 쓰였음을 알 수 있고, 따라서 필자가 말한대로 애초

말과 글자가 시작될 때는 불과 20여 단어뿐이었다는 증거가 여기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木 자를 단순한 나무로 알고 있고, 또 妹 자와 같이 근원도 모르는 채 그대로 한자를 쓰고

있는데, 또 이렇게 의미가 왜곡된 글자는 낭하리 석각본에서도 보듯이 일반 백성의 의미를 가진 天 자를 '하늘'

이라 하는 등(이는 글쓴이 카페 낭하리 석각본 해독 참조) 지금 한자 거의 절반은 그 뿌리조차 왜곡되게

잘못되었으므로, 한자는 비록우리 조상이 만든 금문에서 나오기는 했으나 이렇게 변질되었으니 우리 글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금문 해독은 반드시 우리말과 우리 상식으로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자 三은 금문에서 어떻게 표현했을까?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인용


  
이 그림에서도 三은 숫자가 아니다. 위 그림 금문 1, 2에서 三을 작대기 세 개로 그린 것은 위 金文 3번에

보이는 '빛줄기 셋'을 딴 그림이 바로 금문 2 번이고, 이것은 하늘의 정기를 받는 나무를 생략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지나인의 때가 타 작대기 셋인 三 자가 된다.

즉, 금문 3 번 그림은 '하늘의 정기를 받아 음낭(나무둥치에 불룩한 것)에 채우는' 그림이고,

그 아래 빗금으로 된 三은 그것이 '하느님의 정기 빛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보충그림이며,

다음 금문 4 는 하늘인 ㅇ속에 점이 있는 것으로 이는 바로 '해'를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금문만으로 보더라도 여기 신지녹도 전자가 '셋'임을 증명한다.
따라서 이 금문만 보더라도 '三, 즉 셋이 당시는 숫자가 아니라 천부경이었음'이 증명된다.
 
5. 우리 풍속으로 본 증거 
위에서 보듯이 '셋'은 바로 '사람'으로 이 땅의 주인이다.

즉, 천부경은 다른 종교와 같이 귀신이나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정기를 땅이라는 물질이 둘리워 몸을

만든 존재이니 바로 사람이 이 땅이 만들어진 목적이고 이 땅의 주인이기에 人本主義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로부터 '셋'이라는 숫자를 귀히 여겼고, 그래서 한민족의 행운의 숫자는 바로 '셋'이다.

삼월 삼진날

▪ 아들 삼형제

▪ 살아 삼 배, 죽어 삼 배

초가 삼간

삼 세판 등등

 '

▪  이외 신라의 벼슬 중에 가장 높은 벼슬, 즉 영의정이 '각간(角干)'인데, 이 각간의 뿔은 위 삼지창에서 보듯

'뿔이 세 개'다. 이 '각간'을 우리말로 하면 角은 '뿔'이고, 干은 '큰' 자를 한자로 쓸 수 없으니까 干을 빌린

것이다, 이는 신라의 왕 '마립간(馬立干)'도 마찬가지인데, 여기서 '마립'은 '마리, 즉 머리'를 말하고,

'간'은 '큰 것'으로 '큰 우두머리'란 뜻이며, 징기스칸의 '칸'도 역시 우리말 '큰'이라 했다.

그러니까 角干의 우리말은 '뿔 큰'이고, 이 말은 지금까지 남아 주먹을 '뿔큰쥐었다' 할 때 쓰기도 한다.

그래서 각간의 관모는 山 자 모양의 큰 뿔 하나가 달린 모자를 썼고, 왕은 山자 형의 뿔이 세 개 겹친 모양의

왕관을 썼다. 

 

신라 금관 사진


    

▪  삼한 :  단군의 선한이 천제국이고 불한이나 말한이 제후국이었던 이유는, 天一, 地一, 太一中太一最上貴,

즉 양팔, 다리를 벌린 大자에 남근까지 붙어있는 '太一인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천부인, 천부경의 인본주의적 

사상 때문이다. 즉, 하늘(정신)과 땅(물질)의 존재 목적은 오직 '사람(사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서는 것'을 상징하는 천부인이 서 있는 △, 즉 세모이고, 이것을 상징해 만든 물건이 山자와 같은

'삼지창'이며, 선한(辰韓)의 후예인 신라의 왕관에서도 그 형태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위 신지문자 윗부분에 나타나는 山 자 그림은 '서는 것(立)'을 상징하는 '사람 천부인'의 윗부분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상 우리 풍속으로 보더라도 신지녹도 전자 '셋'은 바로 '사람'이며 '사내'이고 '생명'이다.

이상 어느것을 서로 비교해보더라도 이것은 '셋'의 설명서이므로 '이 신지녹도 전자 '셋'은 진본 천부경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맺는 말
신지녹도전자 해독을 여기서는 지면상 '셋'까지만 하지만 '열'까지의 모든 해독은 글쓴이의 카페에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글쓴이의 카에 들어와 마저 읽으시기를 권하며 끝으로 맺는 말을 한다.

지금까지 신지녹도문의 글자가 하나, 둘, 셋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게 설명하었고, 또 최치원의 81자에서  一, 二, 三은 天地人이 아니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치원이 신지녹도 전자를 해독해본 방법이나, 필자가 10가지 증거를 제시해가며 해독한 방법이 같다고 자부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 둘, 셋은 숫자이기 이전에 뜻이 들어있는 우리말'이었고, 그렇다면 그 뒤 '넷'부터
 '열'까지도 숫자이기 이전에 어떤 뜻이 들어있는 우리말일 것이다. 즉, 그 뜻이 그따위 음양오행설이나 그 난해한 도표로 풀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뜻이 있는 우리말이라는 것은 너무도 뻔하며, 그래서 당시 말이 몇 마디 되지 않던 시절로 보면 이는 엄청 중요한 말이었을 것이니, 따라서 '하나, 둘, 셋 ...열이 하느님이 내리신 천부경'이라는 것이다.


또 최치원은 81자 중에서 분명 우리 숫자 '하나, 둘, 셋'의 뜻을 설명했다. 이것은 최치원이 81자가 진본 천부경, 그러니까 신지녹도 천부경을 해독하고 난 후의 그 예찬문과 설명문이라고 한 근거가 된다.
최치원이 이 하나, 둘, 셋까지만 힌트를 주고 나머지 숫자는 설명을 하지 않은 이유는 먼저 설명했다. 따라서 당시 선비들은 자기 글자는 버리고 한자에 미쳐 돌았고, 가림토가 남아있다고 해도 순 상것들이나 주먹구구식으로 쓰고 있으니 가림토로 설명해봐야 선비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니 할 수 없이 이두문 형식으로 썼고, 그래서 당시 선비들이나 세태에 피눈물을 흘리며 81자의 시첩을 써놓고 먼 후세에 가림토가 제대로 복원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그의 시 秋夜雨中에 나타난다.
 
秋夜雨中 

 

秋風唯苦吟
가을바람에 오르지 괴로움을 읊어봐도 
최치원은 성자다. 그런 이가 여자가 그리워 괴로워했을 리도 없고, 또 당시는 임금님이나 나라 때문에 걱정할 시기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가 천부경 예찬시 81자(속칭 천부경)를 쓰기 전 우리말과 우리 글자 가림토를 다 없애고 오직 한자에 미쳐 도는 당시 선비들에게 아무리 '신지녹도문자 하느님의 천부경이 바로 하나, 둘 ,셋... 열'이라는 것을 설명해줘봐야 아는 사람이 없어 괴로워한 것으로 보인다.  

 

世路少知音
세상에는 아느니 적네
그러니까 세상에는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참으로 적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여자를 그리워했다면  世路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는다.

 

窓外三更雨
창밖에는 밤늦도록 비만 오는데 
역시 괴로운 마음을 가을비로 표현하고 있다. 

 

燈前萬里心
등불 앞에는 머나먼 마음뿐 
최치원의 천부경 81자, 그러니까 '진짜 천부경 신지녹도전자 16자가 하나, 둘, 셋... 열'인 것을 알고, 이것을 우리말이 아닌 한자로는 도저히 풀 수 없도록 다시 이두문 형식의 시첩으로 그것도 오묘하게 다시 짓기 전에(更復作帖) 만대 후의 알아줄 이를 기다리며 지은 시로 본다. 여기서도 만약 최치원이 여자가 그리워 이따위 시를 썼다면 萬里心과 같은 말이 등장할 리 없다. 누가 만리 먼 세대 후에 최치원이 여자가 그리워 이런 시를 썼다고 동정할 것인가?

 

그런데도 세종에 의해 가림토가 되살아나 한글이 된 지금도 우리 학자들은 그 한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그 최치원의 81자를 한자 뜻대로만 풀려하다가 풀리지 않으니, 역시 중국에서 들오온 음양오행설로 독자는 물론 자신도 알고나 썼는지 모를 헛소리를 하여 결국 사이비 교주나 점쟁이들만 살찌운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이 얼마를 더 가야 그 중국의 사대사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다음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의 신지녹도전자 해독은 글쓴이 카페에 있다 했으니 여기서는 지면상 생략한다.

이상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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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韓民族! 옛 제국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 천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