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사국시대

고구려 동천왕 벽비 해설

설레임의 하루 2009. 4. 15. 21:04

*출처:다음카페-잃어버린 역사...  글쓴이: 心濟        http://cafe.daum.net/dobulwonin/GBuW/92

 

 

 

 

동천왕이 위의 배반으로 패전하고 복구하며 이후 서기  248년 붕어하시고 서천왕이 대를이어 동천왕의 위업을 기리는 벽비를

세웁니다.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372)훨씬 이전 기원전에 들어온것으로 추정됩니다. (운영자주)

 

1.고구려만의 특이한 연호 기록법이 보인다.

   明帝 靑龍癸丑 은 위나라 연호 계축년으로부터 5년 째다.

2. 고구려왕을 스스로 동주東主라고 하였다. 중국왕을 西主라고 했을 것이다.

3. 불교가 오래전에 고구려에 들어왔다. 

    동천왕은 즉위초에 불교를 구했는데 당시 <유마힐경>이 유행하였다.

4. 불경인<유마힐경>은 음양오행과 관련되는 수양법이 있었던 것으로 고려된다.

    

정확한 명칭은 《유마힐소설경()》이며 줄여서 《유마힐경》 《유마경》이라 한다.

유마힐은 주인공인 거사로서 리차비족의 수도인 베살리에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부호라고 하나 실존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경은 3회 14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유마거사가 병으로 앓아 눕자 부처는 지혜 제일인 사리불을 비롯하여 가섭·수보리

등을 병문안 가게 권하나 그들 모두 유마거사의 높은 법력이 두려워 문병가기를 꺼린다.

 결국 문수보살이 가게 되는데 유마거사와의 대화에서 문수보살은 대승의 깊은 교리인 불이()법문을 유마거사의 침묵을

통해 깨우치게 된다는 내용이다.

또한 유마가 본래 병이 없지만 중생들이 병을 앓기에 보살도 병을 앓는다고 설명하여 중생들과 동심일체가 된 보살의 경지를

나타내었으며, 유마거사 가족들의 소재를 묻자 지혜가 아버지이고

방편이 어머니라고 하여 유마거사가 이미 대승보살의 최상의 경지에 도달하였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경전 성립 당시의

재가불자들의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이 경에 대한 한역은 7가지가 있었다고 하나, 현존하는 것은 3가지로 지겸() 역의 《유마힐경》 2권, 구마라습 역의

《유마힐소설경》 3권, 현장(奘) 역의 《설무구칭경()》 6권이 있다. 

 

 토지박물관 전시중

 

 해설로 보면

 위명제 청룡계축 5년, 동주 고구려 동천왕 11년 237년
魏明帝 靑龍癸丑 [五]年 東主高麗 東川王十一年

이는 위명제 때 계축으로 시작하는 청룡년의 5년이다.
위명제 청룡원년은 계축년 즉, 233년이고 그 5년은 고구려 동천왕 11년으로서 237년이다.

청룡년의 간지를 쓰고 그 계속 년도를 기록하는 기법은 이 벽비에서 처음 나타났다.
그러나 382년의 고구려 기록인 [아도화상축봉문阿道和尙築封文]에서 똑같은 기법이 있다.

아도화상축봉문에는 진태원병자7년晉太元丙子七年이라고 했는데, 즉 진나라 병자년으로 시작하는 태원년(376)의 7년,

즉 382년의 기록이다.

날자를 기록할 때는 월의 초하루(朔日)의 간지를 쓰고, 계속되는 날을 기록하여 사용되어 왔다.

예를 들면 408년 고구려 기록인 덕흥리 고분에서 십이월신유삭十二月辛酉朔 乙酉는 12월 1일이 신유일인 12월의 을유일,

즉 24일을 말한다.

따라서 벽비의 기록은 계축년으로 시작하는 청룡년(233년)의 5년 (237년)으로 해설되는 것이고, 이런 기록법은 처음 보는

방식이지만, 그간의 날자 간지 기록법으로 보면, 당연히 날자 간지 기록법보다 우선하여 존재했어야만 하는 방식이니 쉽게

이해된다.

237년, 청룡 5년은 3월에 개원改元하여서 청룡 5년 3월을 경초景初 원년 4월로 고쳤다.
따라서 벽비의 아래 내용 중에 나오는 4월은 청룡 5년 4월이 되니 경초년으로 하면 5월이 된다.

이때 위나라는 1월을 인(寅)월에서 축(丑)월로 바꾼 것인데, 어느날 갑자기 12월을 1월로 하라니 혼란이 심할 수밖에 없어서,

2년후 경초 2년 12월에 이를 다시 환원하여서 정시원년 1월을 다시 인(寅)월로 바꾸었다. 

(불내성의) 동천왕이 (현도성의 비전 도교) 현현궁을 찾아오라고 하여서, 삼태읍장이 보기병
이백으로 위나라(공손연의

요동국 경계) 현현궁에 들어갔다가 도성에 돌아와 (마힐도) 책을 바치며 광욕(삼태읍장)이 보고를 했다.
王詔 峴睍宮 三太邑長 入漢魏 步騎二百 回都 [捐]冊 廣欲 答

현현궁峴睍宮; 현도군 고구려현에 있던 도사들의 도장. 부신시 탑영자 고성. 현산峴山은 도교산.
峴山:自有宇宙,

便有此山 捐冊; 기부자와 기부물품 명단 책 捐=獻, 玄都; 신선들이 사는 곳 ; 금나라 왕적은 의주懿州를 현도玄都라고 함.
왕적의 [요동행부지]에 의하면 의주 반파사에는 후주後周에서 현도주자사로 책봉받은
고려 광종이 만들었던 “은자대장경;

반야바라밀다경”이 보관되어 있었음. 玄兎; 달, 달토끼, 신선들이 사는 곳 玄玄; 도교

 

3. 연기와 구름이 가득하여 오르기 어렵고, 산과 물이 깊은 곳, 방외方外에서 왕(석가)이 태어난 4월에 마힐도는 오늘도

굳세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煙雲丘壑扶筇登蟦 [邡]外其所於水山深間 生[王四]月 摩詰道 形今[擰]坐

方外; 도사들이 사는 곳
生王四月; 석가모니 탄생월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려됨.
摩詰道; 석가모니의 속가제자 유마힐에서 유래하며, 유마힐은 선종을 일으켰으니 수련가였는데,
이 도사들은 그 선종의

수련가로서 마힐도임.


維摩詰為胡語的音譯。意譯為 淨名、無垢稱。為維摩詰經的主角。

隨著維摩詰經在中國的流行,經中維摩詰居士的神通機智,深為中國佛教徒所欣賞。
維摩詰經佛教典籍。

現存的漢譯本有三:

一、三國吳(222年)支謙所譯的維摩詰經,

二卷。二、後秦鳩滅什譯的維摩詰所說經,

三卷。三、唐玄奘譯的說無垢稱經,

六卷。本經是早期大乘經典之一。經中維摩詰示現生病,以引來佛弟子和菩薩的探望,

在病榻之前透過幽默、精采的辯論,批評當時流行的各種佛教思想。

再配合不可思議的神通,中觀思想得以深刻有趣的表達,是中國和印度最流行的佛教經典之一。

甚且編成戲劇。

本經除漢譯本外,尚有梵語本和藏譯本傳世。

벽비에 의하면 오나라 건국 130년 전에(AD 93) 고구려에 유마힐도가 이미 전래되었음

 

4. 우리 사졸들이 성곽을 약간 깨고 성 안에 들아가니 인연 있는 일곱 가문 안에서 여러 책이 전해옵니다.

我士 頗得城郭 根引七家因 相傳諸譜

5. 뜻을 알 수 없어서 스스로 비밀스러운데 선대의 오래된 유적에서 책 한권이 세상에 나왔고, 특이하게 향기를 남기고 방점을

더한 체필로서 상세합니다.
[尙]意不可自秘引世出[一冊] 先世遺所已久 奇爲詳盡 體筆流芳益點倫

6. (이 책의) 가르침으로 새로운 경지에 들어서, 돌릉(동천왕릉)의 개왕은 (현현궁) 채에 세 번
행차하여 원리를 익혔다.

以啓傹 怢陵 芥王 幸安次 三塞 始獲 習元

怢陵 = 능호 陵號 / 시하 시원의 동천왕릉 / 돌릉은 장님릉이라는 뜻인데
신하들이 따라 자살하여 능을 가렸다는 벽비의

기록이 있다.

7. 46수(지역 추장)가 (마힐도를) 금하여서 (마힐)도의 궁실이 끊어졌는데, 133년이 지나서 집종“선”이 이끌고 있다.
禁凡四十六殊 道宮室畢節 於[以]百三十三歷 輯宗渲引之
輯宗은 마힐도의 수장 직명으로 추정

8. (선)공이 세상에 나와서 바람을 부리니 만인이 따르고 낭중들(徒) 앞에서 기적을 행했다.

以公世天地蹈事 師之風須萬 前郞衆 始異焉

9. 짐승들도 이상한 기미를 보여서 떨어져 (쓰러져) 죽으니 (서천왕의) 할아버지왕인 동천왕전실께서
백수(동천왕)의 이름으로

멈추게 하여 짐승들의 죽음이 그치었다.
觀獸異微 斯狀墜委遺矣 祖宮前室 [借]百殊 規 止

이는 동천왕 생전에 현도군 국내위나암성에 방문해서 있었던 일이다.

10. 비류에 도읍하였던 호영동백수사사 “유리명제 축다”를 이어서 예악으로 나라를 평화롭게 하고 하늘의 아들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을 이어서 (동천왕은) 자살(살신 공양 치성)하여 불내성을 보전하려 하였다.
繼明帝逐多 護(寧)東百殊司吏 邑都沸流 安泰久歲禮樂
世高麗殊 代天祖 鄒牟王 慾釒殺 存其故都 將不耐城

11. (서천왕이) 국내위나암성으로 가서, 3천국의 졸본읍도를 이어받아 성을 세워 제를 올리고, 위나암성 동쪽에 (동천왕의

치적을)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알린다.
다시 국도(불내성)을 세우고, 천부궁을 세우고, 천지에 일월제를 지냈다.


往 尉那巖城 繼造 三千國 卒本邑都 以祭祀祖 尉那岩 東 記告後人
復國都 再造昌 天府宮 拜謁 日月祭 示天地

12. 모든 읍장과 백장 국수 등의 정성으로 벽비를 세워 백세에 알려 후손들이 조상을 존경토록 한다.
衆邑長 百長 國殊 誠意 立壁碑 永傳 百世存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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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관련내용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