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고조선(한단고기)

한단고기 저자들 행적 추적한 자료

설레임의 하루 2009. 4. 11. 00:33

*출처:다음카페-삼태극    글쓴이: 서원 정

 

 

 

 

 

 

한단고기 저자들 행적 추적한 자료

한단고기에 실린 고서들의 저자들이 행적을 밝힌 글들도 삼태극 카페에올라와 있지만, 이번에 삼성기전 상편의 저자 '안함로'의

행적이 새로 밝혀졌기에 다시 정리하여 올려봅니다.

 

이 자료는 재야역사학자이면서 명지대 사회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고있는송준희교수의 홈페이지( http://www.coo2.net/ )와 명지대

사회교육원 민족사문화콘텐츠과( http://mjucomic.net/ )에서 강의시간에 배포된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자료입니다.

 

아래는 계연수 선생이 쓴 한단고기(고동영 옮김판) 범례이다.

. 옛 기록을 인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연의 <삼국유사>부터이나 지금은 옛 기록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하나의 책으로 엮어 그 이름을 <환단고기>라 한다.

. <삼성기>는 두 종류가 있어 서로 비슷하나 완 편은 아니다. 안함노가 지어 전부터 우리 집안에 전해오던 것을 <삼성기전 상편>이라

하고, 원동중이 지은 것은 태천 백진사 관묵으로부터 얻은 것으로 그것을 <삼성기전 하편>이라 하였다. 이것을 몰아 잡아 <삼성기전>

이라 한다.

. <단군세기>는 문정공 행촌(이암)선생이 편찬하여 전한 것이다.

이 책도 역시 백진사로부터 얻은 것이다.

진사의 집안은 예부터 문재가 많이 배출된 오랜 집안으로 많은 책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이 두 가지 사서도 다 그 집안에서 나왔다는 것은 어찌 많은 친구들이 주는 선물에 비교하겠는가.

이는 조국의 한없이 큰 광채라 할 것이다.

. <북부여기>상과 하는 복애거사 범장이 지은 것이다.

원래 <단군세기>와 합편으로 되어 있던 것을 삭주 이동의 이진사 형식 집에서 얻었다.

 

<단군세기>는 백진사가 가지고 있던 것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똑같다.

지금 별본이 세상에 돌아다니고 있으나 내용은 앞의 책과 틀려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 <태백일사>는 일십당 주인인 이맥이 엮은 것인데, 해학 이기선생이 가지고 있던 것이다.

여기에는 환단으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학문과 경문이 다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한 근거는 한 번 보아 곧 알 수 있게 되어있다.

또 거기에는 <천부경>과 <삼일신고> 두 글이 다 들어 있어 선비들의 대학 중용에 비교할만하다.

아! 환단시대로부터 전해오는 삼일심법이 이 글속에 있어 과연 태백진교가 다시 일어날 바탕이 되지 않을지, 손은 저절로 춤춰지고

발도 저절로 옮겨지니 흥겨워 소리 지르고 싶으며 기뻐 미칠 것만 같다.

. <한단고기>는 모두 해학 선생의 감수를 거쳤고 또 내(계연수)가 정성을 들여 부지런히 옮겼다.

그리고 홍범도․오동진두 벗이 돈을 내고 많은 분들에게 부탁하여 펴내게 되었으니

첫째는 인간의 본마음을 발견하게 되어 크게 기뻐할 일이며,

둘째는 민족문화를 드러낼 이념이 되어 크게 기뻐할 일이며,

셋째는 세계 인류의 화합과 공존을 위해 크게 기뻐할 일이다.

 

신시개천 5808년 곧 광무 15년 신해 5월 광개절에 태백유도 선천 계연수 인경은 묘향산 단군암에서 쓰노라

위의 범례에 의하면 운초 계연수(桂延壽) 선생이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등 4개 사서(史書)

를 입수하게 된 경로를 밝히고 있고, 그 사서들의 저자까지 소개하고 있다.

이 범례에 등장하는 한단고기의 저자들이 실존인물임이 거의 밝혀졌고(원동중은 추적 중), 소개도 된 바 있지만 다시 한번 정리하여

본다.

 

1) 삼성기전 상 - 안함로 (우리역사교육원 한문수 선생 제공)

 

안함노의 일대기가 납자필람에 보여 정리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안함’은 법명이요,

‘노’는 존칭으로 붙여졌음을 알 수 있다. 성이 안씨이며 이름은 함로라 불려졌음은 잘못이다.
그는 신라 고승으로 578년(진지와 17)태어나, 640년(선덕여왕 9)에 입적했다.

흥륜사 십성중의 한 사람으로 속성은 김씨이다.

해동고승전에 의하면 영민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일찍부터 뜻을 나라 밖에 두었다.
600년(진평왕 22)에 고승 혜숙과 함께 이포진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다가 섭도 근처에서 풍랑을 만나 되돌아 왔다.

이듬해 칙명을 받고 법사가 되어 중국 사신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대흥사에 머물렀다.

그 뒤 십승의 비법 및 현의와 진문을 5년 동안 배우고, 605년 우전국 사문 비마진제, 농가타 등과 함께 귀국했다.
서역의 승려들이 신라에 들어 온 것은 이 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만선도량에서 입적하였다.

한림 설모가 왕명을 받들어 비문을 지었다.
저서로는 참서 1권을 지어 견문한 바를 기록하였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러나 조선조가 전조와의 고리를 끊고, 참서라 이름 하여 상고를 참람하게 짓밟은 삼성기가 아니었던가.

 

○ 동사강목 제 3 상

535년(신라 법흥왕 22년)여름 5월 신라가 흥륜사를 창건하였다.

왕이 불법을 행한 뒤로부터 면류관을 쓰지 않고 방포(비구가 입는 가사)를 입으며, 궁척을 사찰의 노예로 주었다.

○ 삼국유사 흥륜사금당십성

신라 최초의 큰 절로서 경주 봉황대에서 오릉에 이르는 중간 동편에 있었다.

동쪽 벽에 다섯 개의 우상이 있는데, 아도․염촉․혜숙․안함․의상 등이다.

그리고 서벽에 앉혀진 다섯 개는 표훈․야파․원효․혜공․자장 등이다.

 

○ 세조 7권, 3년(1457) 5월 26일(무자) 3번째 기사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지공기(誌公記),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 안함노 원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 도증기 지리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 마슬록(磨蝨錄), 통천록(通天錄), 호중록(壺中錄), 지화록(地華錄), 도선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하였다.

 

2) 단군세기 - 행촌 이암

 

고성이씨 문중에 행촌 이암 선생을 물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단군세기’, ‘태백진훈’, ‘농상집요’가 행촌 3서에 속한다.

고려조 대학자요, 위대한 문장가이며, 고려 3은 중 한 사람인 목은 이색의 스승이다.

 

○ 행촌 이암 선생 자료보기

http://www.coo2.net/bbs/zboard.php?id=con_m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

headnum&desc=asc&no=1644

행촌이암 선생의 연보

http://www.coo21.rgro.net/hc070617-1.pdf

3) 북부여기 - 휴애(부애)거사 범장

 

○ 휴애(부애)거사 범장 선생 자료보기

http://www.coo2.net/bbs/zboard.php?id=con_m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

asc&no=1848
정본 한단고기에 포함되어 있는 북부여기 상, 하, 가섭원 부여기의 저자인 휴애거사 범장(休崖居士 范樟) 선생이 금성범씨 대동보에

의하여 실존인물임이 증빙되었고, 대동보에 “북부여기 약초(略抄)”가 기록되어 있어 북부여기 실존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 태백일사에 언급된 내용

태백일사에 이르기를 행촌(杏村)선생이 일찍이 천보산(天寶山)에 가서 태소암(太素庵)에 기거할 즈음에 한 거사가 있었는데 이름이

소전(素佺)이었다.

그는 많은 기이한 옛 서적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으며 이명(李茗), 범장(范樟)과 더불어 같이 신서(神書)를 얻게 되었는데 모두 옛

한단시대(桓檀時代)로부터 전수된 진결(眞訣)이다.

 

○ 금성 범씨 제공자료

원천석(元天錫)과 함께 화해사전(華海師全)을 편집하고, 동방연원록(東方淵源錄)을 편찬하였던 범세동(范世東 생몰년 미상)은

북부여기(北扶餘記)를 저술, 우리의 상고를 밝혔다.

그가 쓴 화동인물총기(話東人物叢記) 또한 조선 500여 년 동안 금서(禁書)로 금성 范氏 문중에서 목숨을 걸고 지켜진 사실이다.

범세동은 “들키면 멸족 당하니, 비장(秘藏)의 풍토가 생겼다.

 (같은 책 28면)”라 하여 정치 탄압이 심할 때는 자고로 비기(秘記)로 하여 비장(秘藏)하였다“고 기록을 남긴 것을 보면,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살벌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북부여기(北扶餘記) 저술, 두문동 72현. 범세동(范世東)은 고려 말기의 학자이다.

본관은 금성,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伏崖)이다. 통찬(通贊) 후춘(後春)의 아들이며 정몽주의 제자이다.

일찌기 공민왕 18년인 1369년에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두문동(杜門洞) 72현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덕녕부윤(德寧府尹)에 이어 낭사(郎舍)의 책임자인 간의대부(諫義大夫)를 역임하였으며, 사후에 후덕군(厚德君)에 봉해지고 문충

(文忠)의 시호를 받았으며 개성의 표절사(表節祠), 두문동서원(杜門洞書院), 광주의 복룡사(伏龍祠)에 제향되었다.

광주직할시 광산구 덕림동에 묘소가 있으며, 북구 생룡동에 사우(祠宇, 龍湖齊)가 있다.
-'古代史書는 불타고 있는가' 집필내용 중에서.
(이 사서 기록을 위해 話東人物叢記 절판본을 기꺼이 제공해 주신 전남대학교 출판부 박병배 과장님, 문중 족보, 자료 제공 및 伏崖

선생님의 묘소, 사당 전경 사진 게재를 허락해 주신 范大錞 박사님께 고마운 말씀을 드린다.)

 

4) 태백일사 - 괴산 이맥

괴산 이맥 선생은 바로 단군세기를 저술한 행촌 이암 선생의 고손자이다.

선조에 대한 예우인지 단군세기 부분만 태백일사에 빠져있다.

 

○ 괴산 이맥 선생 자료보기

http://www.coo2.net/bbs/zboard.php?id=con_m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

asc&no=1738

(사) 행촌학술문화진흥원 이정호 간사님이 충무로 우리역사문화아카데미를 다녀감.

정본 한단고기 단군세기의 저자 고려말 행촌 이암 선생의 일대기에 이어 이암 선생의 고손자 이자 정본 한단고기 태백일사의

저자이신 조선조 괴산 이맥 선생의 일대기를 전해주고 가셨습니다.

 

5) 한단고기 엮은 이 - 운초 계연수

 

평북 선천 출신으로 해학 이기의 문인. 그는 성격이 강직하고 애국심이 남다른 사학자이다.

한때 상해 임시중부 국무령을 지낸바 있는 이상룡 선생의 휘하 참획군정을 맡았던 일이 있다.

 

6) 감수 - 해학 이기

호는 해학(1848~1909). 유형원 정약용 등 실학자의 학통을 이었다.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전봉준을 찾아가 동학군을 이끌고 서울로 진격하다가 돌아왔다.

일본에 건너가 일본 왕과 정계 요인들에게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는 서면항의를 하다가 을사조약 체결 후 귀국하여 한성사범학교에서

교푠을 잡았다.
한편 민중계몽과 항일운동에 진력, 나인영 등 동지들과 을사오적의 암살을 결행하였으나 실패하여 7년의 유배형을 받고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돌아와 다시 민중계몽운동에 종사하였다.

저서로는 <해학유서>가있다.

 

7) 홍범도, 오동진

홍범도 - 평북 자성 출신 독립운동가(1868-1943). 간도국민회 소속 대한독립군총사령으로 1920년 6월 4일 근거지인 왕청현

봉오동에서 1개 연대병력의 일본군을 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오동진 - 평북 의주 출신 독립운동가(1889-1930). 3.1운동에 참가한 수 만주에서 대한청년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무기형을 받고 영어의 몸이 되었다가 옥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