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북위.전연.수.당.토번.신라=선비족의 나라들
[자료]선비(지나어: 鮮卑, 병음: Xianbei, 기원전 1세기 - 6세기)
선비족은 흉노에게 패하여 대홍안령지역의 선비산에 기거해서 붙여진 부족명이다. 선비족은 본래 단군조선당시에는 번조선 영역인 요서지역에 거주했다가 위만세력과 한나라의 번조선 점유로 북쪽으로 이주하여기원전 시기에는 대흥안령 산맥 기슭에서 목축, 수렵을 생업으로 하다가 흉노에 복속했었다. 그 후 흉노가 북과 남으로 분열하자 전한에도 결합되는 부족이 나와 반독립상태가 되었다. 1세기가 되자 북흉노가 후한과의 항쟁을 계속하는 사이에 힘을 모아 북흉노를 몽골고원으로부터 서쪽으로 내쫓았다. 이 때 서진한 흉노잔존세력이 바로 게르만족을 로마지역으로 밀어 내고 유럽을 공포로 몰고 로마제국의 멸망을 가져 온 훈(흉.헝.환.한)족이다. 훈족은 아틸라를 중심으로 유럽초원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했다.
2세기 반경 단석괴(壇石槐)가 등장하여 선비족의 통합에 성공하여 강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단석괴의 사후 다시 단씨,탁발씨,모용씨 등으로 분열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조상들이 거주했던 하북성(헤베이성)에서 규합된 혼혈 유목 민족이다. 위진남북조시대에는 남하하여 지나대륙에 탁발씨의 북위,모용씨의 전연.모용씨의 토번 등의 나라를 세웠다. 북위는 후에 고구려를 공격했다가 망한 수나라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로 이어졌다. 신라가 당나라와 군사동맹을 맺을 수 밖에 없는 혈통적 배경도 고구려.백제의 지배세력이 부여세력이라면 신라의 지배세력이 바로 모용선비족이 고구려를 침략한 4세기에 고구려와의 전쟁과정에서 동해안을 타고 내려 와 사로국을 무너 뜨리고 신라와 금관가야를 세운 (모용)선비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한 시대동안 한무제가 위청을 보내 허타오지역을 흉노로부터 빼앗았다. (기원전 127년) 점령 후에는 흉노의 공격을 막기 위해 허타오 지역에 계속해서 정착촌을 건설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동안 삭방(朔方)과 오원(五原) 군을 설치했다. 이 시기에 내몽고 동부지역은 선비족이 점령했다. 선비는 이후 흉노가 한나라에게 굴복한 후 이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다.
선비족은 지나문헌에 단군조선(東胡=부여)족의 북쪽 일파로 기록되어 있다. 언어학적으로는 한국어의 갈래인 몽골어계통이 강하지만 유라시아 초원세력과 융합되다 보니 투르크어계도 혼합되어 있다. 선비족의 흥성은 1세기 흉노족의 몰락과 때를 같이 한다. 87년과 93년에 선비족은 흉노족의 두 선우를 처단하였다.
흉노족은 돌궐(투르크=터키)가 지휘하는 유목 민족으로 흉노 유골을 조사해보니 투르크와 몽골로이드 유골이 함께 나왔다. 이는 초원지역은 이동과 이주가 자유로와 인종적 교류가 잦기 때문이다. 흉노족이 한나라와 전쟁하는 과정에서 한족들을 인질로 데려가거나, 전쟁에서 패배한 장수가 흉노족 제후로 봉해지기도 하여, 흉노족에는 한족도 섞여 있었다.
후한 시대, 한나라는 남흉노와 연합하여 북흉노을 서아시아로 밀어낸다. 이 시점에서 사실상 흉노는 공중 분해되고, 남흉노는 한나라에 공조 관계을 갖게 된다. 한나라가 멸망하고 삼국지 시대가 시작되자, 이때 부터 유목 민족이 남하하여 한족과 통합되는 과정이 있었다. 흉노의 지배을 받았던 갈족, 말갈족도 하북성, 산동성 등으로 남하하였다. 예로 위나라 관구검의 휘하 부대는 말갈족, 갈족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 부대을 이끌고 고구려을 수도을 함락 시켰다. 갈족이 제나라에 살아서 제갈씨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선비족은 삼국지 시대 이후로 지나대륙과 만주의 징검다리 지역인 하북성에서 한족과 유목세력이 결합한 민족을 말한다. 한족은 유민세력으로 개량되었고, 유목세력은 한족으로 개량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삼국시대, 5호 16국, 북위, 동위, 서위, 북제, 북주, 수나라 까지 계속되었다. 선비족은 영어로 치면 히브리드(Hybrid)라는 단어로 정의되고 하북성, 요동 서부에 살던 민족이다. 따라서 선비족은 흉노, 돌궐, 말갈과는 태생의 기반이 조금 다르고, 같은 선비족이라고 하더라도 부족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선비족 출신인 당태종이 황제의 후손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러한 요소가 있다.
후한이 망하고 서진(西晋)의 황족 중에 8왕의 난이 일어나자 선비족은 용병으로서 서서히 지나대륙 내부에 이주하게 되었다. 5호 16국시대에 들어서자 흉노의 유연(劉淵)이 서진으로부터 독립하여 전조(前趙)를 세우자 선비족도 이를 따라 지나국에 나라를 세웠다. 이 즈음의 선비는 여섯 부족이 각각 강하게 되었다. 각 부족은 나라를 세우게 되었다.
6개의 부족 선비족의 정체성이 강한 부족은 탁발부, 모용부이고, 단부, 우문부는 우환족에 가깝다. 흘독부, 독발부은 본래 선비족에서 나왔다고 하며, 남량이 망하고 북위에 귀속되었다.
이 외에 모용부로부터 나와 서천한 토욕혼(吐谷渾)도 선비계인데 현지의 강인(羌人)도 융합하였다.
탁발부의 북위(北魏)는 439년에 화북지역을 통일하여 이 이후는 남북조 시대가 되었다. 그 후 수의 양견(楊堅)에 의하여 지나대륙을 통일하여 수나라가 되었으나 양견은 우문부가 세운 북주(北周)의 외척이고 자신도 선비 출신일 가능성도 있다. 동일하게 선비족 시기 다얀씨(大野氏, 대야씨)인 북주(北周)의 귀족이었던 당의 이연(李淵)도 또 선비 출신일 가능성이 주장되고 있다. 북위의 한족화 정책으로 선비족은 한족에 동화되었다.
선비족 가운데 요서 사무렌이강 지역의 세력은 당나라 후기에는 거란(코리안)이 되었고, 요나라을 세웠다. 이 때 그 휘하에 있던 말갈족, 갈족들이 일부 동만주로 이동하였다. 말갈족, 선비족, 타타르 혼합 민족인 여진이 거란을 정벌하고 거란인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그 주위에 여진인을 배치하여 거란, 여진의 민족 통합이 이루어 졌다. 요서 선비족은 거란족을 거쳐 여진족으로 전환되었고, 신라가 망하자 한반도에서 만주로 이주하여 마의태자 아들 김행세력이 김(금)나라를 세운 이후로 여진, 야인 여진, 건주 여진으로 바뀌었으며 후금을 건국한 애신각라 누르하치에 의해 지나대륙이 다시 통일되고 지나사에서 최대의 영토를 확장하게 된다.
고로 흉노.돌궐(터키).선비.거란.거란 등 북방 해민족의 초원세력은 그 지배세력이 정한 부족명이나 국호에 의해 나라가 달라졌을 뿐 모두 동일한 해민족이다. 이들 초원세력도 단군조선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지나대륙과 유라시아 초원을 지배했던 것이다. 이들의 조상은 단군3조선 중에 치우천황의 후손 치두남이 1대 단군으로 임명된 번조선에 속했던 해민족으로 초원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했다.
그러나 단군조선의 황통은 부여.고구려.대진국.고려.조선.대한민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민족의 어머니땅인 마조선에 속한 해머리땅은 단군조선연방이 붕괴되고 한나라와 위만조선세력이 번조선지역을 강탈할 때 기마세력인 진.번조선유민들이 대거 이주하여 북방계가 차지하는 땅이 되었고, 북방 조선유민들에게 밀려난 마조선인들은 일본열도로 대거 이주하여 오늘날의 일본국가의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남북한이 통일되고 만주와 유라시아-아메리카의 해민족이 교류하고 협력하여 대통합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