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사국시대

[스크랩] 북평,어양,상곡,태원 루트가 대청광여도에 그대로.(Scrutinize the attack route to Taiyuan of Later -Han)

설레임의 하루 2010. 9. 26. 01:56

모본왕의 後漢 공격루트는 그 영토내를 그야말로 종으로 휩쓴 대사건으로 보아야한다.

많은 사람이 태원 지역에 의문을 품는다.그 먼곳을 어떻게 공격했을까?

고구려의 수도를 현 길림으로 보는 기존 식민사관 시각에서 보면 그렇지만 고구려의 수도는 분명히 하북성 북단으로 비정되어야 한다.그러면 이 대사건은 쉽게 풀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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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모본왕 2년(49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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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年 春 遣將襲漢北平漁陽上谷太原 而遼東太守祭 以恩信待之 乃復和親
三月 暴風拔樹 夏四月 殞霜雨雹
秋八月 發使賑恤國內饑民


(해 설)


2년(서기 49)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쳤으나,
요동태수 제융(祭)이 은혜와 신뢰로 대우하였으므로 다시 화친하였다.

3월에 폭풍으로 나무가 뽑혔다.
여름 4월에 서리와 우박이 내렸다.
가을 8월에 사신을 보내 나라안의 굶주린 백성들을 진휼하였다.

 

 

우리가 알고있는 상기지명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중에서 태원은 현재의 산서성 중부 태원으로 알고 있고 북평,어양,상곡 또한 하북의 어느 지역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인식 되길 고구려가 요녕 길림에 위치하였다는 기존 역사인식의 오류를 떨치지 않으면 이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수도는 하북에 위치하고  산서경계와 가까운 곳에 있지 않으면 이 문제는  풀리지 않을것이다.

 

두번째로 어양이라 인식하는 하북 계현 지방과 태원은 동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있으므로 군대를 풀어서 순서대로 평정한것이 아니라 동서 양갈래로 풀어 공격했다고 보아야하는것이 합리적이지만 산서성 북단으로 들어가 태원곡을 따라 공격하는 루트는 군사적으로 매우 불합리하다. 

 

병주태수가 있는 태원을 공격하기위해 정해진 지역을 평정하는데  기존 개념의 지명비정으로 본다면 절대합리적이지 않다,고로 정확한 지명비정이 필요하다.

 

 

    

 

북평(北平)은 우북평과 다른곳으로 하북성 阜平으로 비정되고 , 어양(漁陽)은 하북 懷柔, 상곡(上谷)산서의 호타하방향으로 우회하는 지역이 아닌 현재의 북경 서북에 있는 회래(懷來)의 동남이고  진(秦)대에는 저양(沮陽)이라 하였고, 북위(北魏)대에 폐(廢)하였다가 수(隨),당(唐)대에는  역주(易州)를 상곡이라 하였다.태원(太原)은 산서성 중심부로 성도이다.

 

역주는 현재의 역현(易縣)이다.[고금지명대조 上谷-古郡名。秦治沮陽 ,(今河北懷來東南)。北魏廢。隋唐時的上谷郡卽易州。

 

좀 자른 이야기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산서성 성도인 태원은 원래지명이 陽曲 이었다.(1912년 민국군사지도) 언제 태원이었다가 양곡으로 변하고 언제 다시 태원이 되었는지는 확인할 일 이다.

 

 

 

그렇다면 고구려 당시의 태원은 어디였을까? 지명인가 아니면 보통명사인가?

 

고구려 당시의 지도는 없어도 고구려와 시대가 멀지않은 동이왕조에서 제작한 지도가 태원의 위치를 말해준다. 바로 거란지리도이다. 그밖에도 태원이 산서 남서지역이라는 증거는 여럿있다.그러나 거란지리지에 나온 태원은 과거 그들의 동족 조상의 정복지를 그려넣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10세기 이전의 태원은 황하가 동으로 꺾이는 지점 즉 하동이라는 지역이 太原이었던 것이다. 말뜻과 같이 넓은 평원이 있는곳 바로 그곳이 자료에 의하면 분하 하류지역으로 비정된다.

 

따라서 고구려 모본왕이 태원까지 점령하기 위해서 통념적으로 알고있는 고구려의 중심지 현 요녕지역에서 산서 남단까지 기마부대로 내려오리란 지형적으로 연산과 태행을 넘는 대 장정이라 거의 불가능한 공격이었을 것이기에 고구려의 중심권역은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칠수있는 유리한 지역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된다.  (붉은원 안이다)

 

위의 지명비정을 근거로 찾다보니 고대의 공격루트 혹은 매우중요한 도로가 대청광여도에서 보인다. 여지없다.

 

 

 

 

 

운영자 심제 씀.


 

출처 : 잃어버린 역사,보이는 흔적
글쓴이 : 心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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