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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사람] 생업 뿌리치고 재야사학자 외길 10년

설레임의 하루 2013. 3. 15. 01:20

*출처:역사복원신문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 달리 고구려 땅은 중국 중원까지"
 
조선일보 오경환기자 기사입력  2012/07/09 [09:39]
[주목 이 사람] 생업 뿌리치고 재야사학자 외길 10년

구리 고구려역사문화보존회 성헌식 사무국장
"북방민족, 한족과 대결 위해 쌓은 성이 중국 만리장성 진시황 장성, 사마천 史記서 '임조에서 요동까지' 기록
역사연혁 총동원 살펴보니 산서성 남부 1000여리 불과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 달리 고구려 땅은 중국 중원까지"

"중국이 만리장성을 너무 심하게 역사왜곡을 하고 있습니다. 이 왜곡을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의 고대사는 깡그리 사라지게 됩니다."

한강유역 대표적인 고구려 유적지인 구리시에는 사단법인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가 있다.

이곳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성헌식(55)씨는 고구려역사 바로 세우기의 대표 주자이다.

2011년부터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기획위원으로, 올해 4월부터는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재야사학계에서는 그만큼 고구려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소문났을 정도다.

그는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국내에서 의류수출업을 하다 2002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에서 사업을 준비하면서 중국말을 배우고 인터넷을 하면서 중국 역사자료를 보게 됐다.

이때부터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북공정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인터넷 검색해 비교분석하고 유적지를 답사 다녔다.

이런 실증적인 과정 속에서 그는 중국이 고대역사를 너무 심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결론을 냈다.

"지금의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쌓은 장성(진장성)이 아닙니다.

진장성은 사마천이 작성한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 중 '진시황 본기'에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선 '진시황이 천하를 병합하고 몽염장군과 30만명을 보내 북쪽 융적을 몰아내고 하남을 빼앗아 장성을 쌓았다.

서쪽 임조에서 일어나 동쪽은 요동까지이다. 길이가 만여리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것을 근거로 '한서지리지'등 각종 사서와 역사연혁을 뒤져보았더니 중국이 말하는 진시황의 장성이 기존 우리가 알고있는 만리장성과는 다르고

규모도 아주 미미하다고 했다.

 
▲ 성헌식 사무국장은“만리장성의 왜곡된 사실이 밝혀지면 자연스럽게 위대한 고구려 역사의 진실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경환 기 자    ©역사복원신문
 
"사기에서 거론하는 임조를 중국은 지금의 감숙성 민현(임조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연혁을 살펴보면 감숙성 임조는 1929년 역사왜곡을 위해 지명 이동된 것입니다. 임조는 역사연혁상으로 롱서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 롱서에 대해서는 '사기 권61 백이열전'에서 '백이·숙제가 굶어죽은 수양산은 롱서의 머리에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즉 이 롱서가 바로 진시황이 쌓은 장성의 서쪽 끝인 것이죠.

 

다시 롱서의 수양산이 어디 있나 찾아보니 황하가 꺾이는 코너인 산서성 최남단이었습니다.

실제로 그곳에서 백이·숙제의 무덤이 발견됐고 중국의 지도에서도 백이·숙제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유물적 증거로 명확히 입증되고 있습니다.

또한 백이·숙제의 무덤이 있는 영지현은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요서군입니다.

따라서 요서는 산서성 남부 운성시의 서부인 영제시 일대이고 요동은 그 동쪽인 산서성 남부 운성시 동부와 임분시, 그리고 하남성 위휘현 일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진시황 장성(진장성)은 산서성 남부 1000여리에 불과합니다."
그는 만리장성은 그 위치로 보나 기록으로 보나 북방민족이 한족과 싸우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요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대 요동과 요서를 구분하는 기준은 현 요령성 요하가 아니라 산서성을 가로질러 흐르는 분하(압록수)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현 요령성 요하(遼河)를 기준으로 하여 요하 서쪽을 요서, 요하 동쪽을 요동이라 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대 압록수를 현 압록강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서를 통해 분석해보면 요서는 산서성 남부 일대인 것이 명백합니다.

요동은 당연히 요서의 동쪽이고요.

 

하지만 우리 학계가 중국과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면서 중국이 역사왜곡을 위해 고의로 지명을 이동시킨 것도 모르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빨리 학계와 재야사학계가 같이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서야 합니다."

그는 지난 2010년 '천년만에 밝혀진 안시성과 살수'(지샘 刊)라는 책을 출간해 고구려의 강토가 우리가 알고있는 요령성이 아니라 중국 중원인 산서성,

황하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을 사서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결혼한 지 27년이 됐지만 지난 10여년간 역사탐구에 빠지면서 가정생활을 소홀히한 게 와이프한테는 항상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고도 했다.
"연봉 1억이상 받는 사람들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 하니까 너무 즐겁고 성취감도 맛보고 있습니다."


기사입력: 2012/07/09 [09:39]  최종편집: ⓒ 역사복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