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역사 이야기

[스크랩] 일본사학계가 진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는 일본사의 진실

설레임의 하루 2012. 8. 28. 01:10

일본에 본격적으로 기마 민족이 유입 되는 때는 고분 시대(정복의 시대)다. 이 고분에선 가야 유물이 발견 된다. 즉, 흉노선비족이 주축이 된 가야인들이 일본에 유입된 최초 기마민족이다. 그 이전의 일본 역사는 신화와 전설의 역사이다. 신라는 4-5세기 흉노족을 흡수한 모용선비족의 나라다. 고구려를 침략한 모용선비족의 연나라는 고구려 북부전선에서 패하자, 1만여명의 기마군단이 동해안을 따라 영남지역으로 유입되고, 이들 기마군단이 부여나라 사로국을 무너 뜨리고 신라왕조를 세운 주역이다. 지증왕 시기에 초원문화인 순장풍습을 금지하고 농사를 짓게 하자, 토우를 무덤에 집어 넣게 된 것이고, 모씨에서 김씨로 창씨개명한 법흥왕은 진흥왕의 큰아버지로 적석목곽분의 규모를 축소시키고 황금장식을 축소시켜 국가재정을 증대시켰으며, 군대를 국가단위로 일원화하여 신라의 중앙집권화의 기반을 다졌다.

그리고 신라권력에서 소외당하고 이탈한 모용선비족이 가야의 지배세력으로 참여하게 되고, 일부가 일본열도로 이주하여 일본 기마문화의 뿌리를 내린 것이다. 요동-김해-열도로 이어지는 선비족의 기마유물들이 이를 고고학적으로 반증한다. 최근 가야고분에서 선비족의 기마유물들이 쏟아진 배경도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한다.참고로 신라와 가야지역에서는 중앙아시아를 누빈 초원세력의 기마 유물들이 다량 출토된 이유는 그들 세력이 지나세력으로 참여하여 고구려와의 충돌과 전쟁에서 패했을 때 만주와 이어진 동해안을 타고 유입되어 그들의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라와 가야의 지배민족은 자신들의 출신 부족을 밝히지 않았다. 고구려와 백제는 자신들이 부여 족속임을 밝힌다. 4-5세기 경상도지역으로 유입된 이 새로운 기마민족은 모두 김씨 성을 가지는데 이들은 모두 흉노족의 일파다. 신라는 나중에 문무왕비문에서 스스로가 투후 김일제의 후손으로 흉노족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이는 법흥왕이 스스로 김원종으로 성과 이름을 바꾼 이래로 신라왕조가 흉노족 김일제를 조상으로 삼게 되는데 있다.

6가야의 각 김씨도 흉노족이다. 번조선 유민국가들인 낙랑국과 대방국이 있던 지역이 지금의 북한 평양이고 이 곳 또한 기마 문화가 나타난다. 그것은 번조선 지역이 초원지역과 가깝기 때문이다. 고구려 .백제는 단군족(부여)이고, 초원으로 이주한 흉노족는 단군족의 갈래다. 그러나, 황금문화나 기마 문화는 단군조선을 뿌리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계통이다.

신라와 가야문화는 흉노와 같은 계열이다. 스키타이와 흉노,그리고 신라/가야의 기마 문화는 같은 계열이다. 그런데 기마로 무장한 부여.흉노선비족이 지배자들이였고, 농경과 제천문화를 가진 순박한 한반도 토착민들은 해민족의 원뿌리로서 토착 마조선 사람들이다. 그러니 우리의 뿌리는 한반도 사람들이 주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마한 땅이였던 일본열도에 기마문화의 뿌리를 내린 세력은 신라와 가야의 흉노선비족

원래 남3한 중에 번조선의 기준세력이 경상도지역에 세운 진한과 변한의 소국들이 사로(신라)국에 통합 당하게 되니 경남 해안의 토착 마한부족 국가 중 어느 왕이 일본으로 건너 간다. 이들이 일본에 최초의 야요이와 청동기 문화를 전달해 준 사람들이 되며, 일본신화에 칼이란 것을 들고 나타난다. 일본 황실은 서남해 지역을 중심으로 토착 한반도인들의 숭배했던 마고여신을 상징하는 아마테라스 여신이 바다를 건너 온 후 그 후손인데 이들이 바로 경상도에 있던 삼한 사람의 후손이다. 이들이 간 지역이 이즈모 지역으로 일본 역사를 보면 나오는 세력이다. 독도 분쟁에서 독도를 포함시킨 현이 바로 이즈모 지역이다. 이들을 신라 세력이라고 보긴 어렵다. 왜냐하면 신라는 박,석,김 사로국에서 출발하여 흉노계 김씨가 집권한 다음부터 의미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고로 남3한 중에서 토착 마한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일본에서 말하는 신대 시대라는 것이 단군 시대다. 야요이 문화는 남3한 문화와 같고 단군 신화를 가지고 건너 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신대 문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한글과 닮아 있고, 한국에선 가림토 문자라고 주장한는 것이 한글을 닮아 있다. 세종 대왕이 약간 서운해 할 수도 있겠다. 허나 가림토가 맞고 신대 문자가 맞는 얘기라면 이 둘은 같은 문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일본의 야요이 문화는 단군조선에서 건너 간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동아시아 강자로 부상한 백제가 근초고왕 시절에 강성해지고, 이 백제가 일본의 야마토 왕조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야마토 지역은 지금의 교토 근처지역이다. 가야도 일본에 진출을 한다. 큐슈(구주) 지방이 거리로 보면 가장 가깝다. 이렇게 해서 일본에 철기와 기마 문명이 들어 가게 된다. 본격적으로 정복 전쟁이 벌어지는데 이를 고분시대라고 한다. 대형 무덤이 많이 나오고 철기 기마 유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가야가 멸망한 후의 시대이다.

즉, 가야가 멸망하고 가야 유민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본격적인 정복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고, 일본 천황가의 시조의 동방 정복에 해당된다. 아마도 이 때 일본 천황가의 족보가 마한계에서 가야계로 바뀐 모양이다. 그 이전의 일본의 신화 시대는 일본에서는 역사에 없는 시대다. 야요이 시대이고 신석기의 시대이다. 이 때의 천황의 족보는 이즈모 지역의 마한계 신화와 관련 있다. 우리 나라 단군조선 시대에 해당한다. 고로 일본 역사는 실질적으로는 이 고분시대부터 시작이다. 이 고분 시대의 것들은 가야의 것과 비슷하다. 말과 소가 이 때부터 일본에 나타난다고 하니 일본의 실질적인 첫 번째 왕조는 가야로부터 나온 것이다.

한반도에서 사라진 가야(하야=해야)의 깃발이 일본의 해군기가 되고 일장기가 된다. 가야인들이 큐슈에서 야마토 지역으로 정복을 하였기 때문에 황실이 바뀌었을 것이다. 단지 명분상 이즈모 지역의 신화와 연결시켜 고조선 시대까지 이어 주는 것이다. 이전에는 백제를 주축으로 가야, 야마토 세력(해=왜)이 한 무리를 이룬다. 백제와 가야의 문명이 일본에 전파된다. 허나 고구려의 침입으로 가야가 멸망하게 되면서 가야는 본격적으로 일본으로 진출한다. 그래서 일본은 이즈모로 신화 시대를 시작해서 야마토로 화합을 한 후에 가야의 정복에 의해 역사 시대를 열고 대체 황실을 연다. 이후 일본 황실에 백제계의 피가 섞이게 된다.

그러니까 일본 황실은 마한 중심의 남3한 계통과 가야 계통과 백제의 부여계 피가 섞인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 황실은 단군조선족과 같은 혈통이다. 그래서 일본은 독도를 이즈모 지역에 넣으려고 하고, 임나일본부설을 내세워 가야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광개토태왕의 백제정벌로 웅진(공주)의 백제세력이 대거 일본열도로 이주하여 일본황실이 백제계로 바뀌면서 백제는 일본의 모국이 된다. 백제가 망할 때 백제 피가 섞인 황실에선 백제 부흥 운동에 병력을 동원한다. 백제가 망한 후에 일본은 독립하고, 나라 이름을 일본이라 하고, 천황이라 호칭한다. 일본 해군기인 태양기는 가야에서 건너 간 것이다.

일본황실이 제사지낼 때 신라계 신관들이 "아즈매"라고 부르는 여성은 마한인들이 섬기고 제사지낸 마고을 의미하고, '한신'은 마한인들이 제사지낸 한반도 태양신을 의미한다. 그리고 일본열도에 살면서 한반도 토착마한인들이 남긴 전방후원분의 모양자체가 바다에서 태양이 떠 오르는 모양이다. 그리고 '왜'는 우리말 '해'의 변형이다. 해는 고대 농경민족들이 중시하는 최고의 대상이다. 바로 토착마한으로 서남해 농경세력의 상징이 지금의 일본국기의 상징물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일본민족이란 우리 해민족의 갈래로서 한국과 일본이 고대사 조명을 통하여 한 핏줄의 민족임을 인식하고 과거사를 치유하고 동반관계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고구려도 멸망하면서 고구려 황실 혈통이 건너 가서 무사시 세력을 이룬다. 무사시 지역은 현재의 동경 지역이다. 이 무사시 세력에서 사무라이가 나오고 군사(막부) 정권이 나오는 것이다. 서부 오사카 지역은 가야계와 백제계의 영향을 받은 상징적인 수도와 천황을 가지게 되고, 동부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무사 세력들이 막부를 형성하게 된다. 일본은 이즈모로 야요이 문명을 시작해서 야마토로 화합한 후에 역사 시대를 열며, 가야에 의해 통일 되어 실질적인 역사를 연다. 통일한 후에 무사시로 지배를 한다. 그래서 일본의 칼과 갑옷은 삼한, 백제, 가야, 고구려의 기술이 모두 담긴 것이다. 일본 고분 시대의 물건들이 모두 마한.가야.백제.고구려의 것과 같은 것은 고대 4국 세력이 일본열도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일본의 양대 전함의 이름은 야마토호와 무사시호였다. 그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이었다. 왜 그렇게 이름을 지었겠는가! 일본의 국기는 가야에서 온 것이다. 해군기인 태양기는 마한의 깃발이다. 독일이 자신들의 전함을 비스마르크호라고 지은 것도 자기 민족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남3한 중 진한/변한 지역의 연오랑 세오녀가 바로 이즈모의 시작인데 이들 이름에 까마귀 오(烏)가 들어가는 것을 봐서 고구려의 삼족오는 기마문화가 들어 오기 전부터 있던 고조선의 '마한'문화임을 알 수 있다. 새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통신 동물이라고 믿은 것 같다. 한자의 새 조(鳥)가 까마귀 오에 한 획을 더 그은 것을 볼 때 이 둘은 원래 같은 글자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까마귀란 글자를 특별하게 취급하여 만든 것이다. 우리 뿌리는 철기나 기마 문화(3국 문화)가 들어 오기 전부터 보는 것이 맞다. 신석기/청동기인들(고조선)이 우리 조상이다.

신라 김씨가 흉노계통이라 자신을 비하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 흉노는 3대 가륵 단군임금 때 열양의 지방장관이였던 색정이 유배를 가서 시조가 된 배경으로 단군조선의 줄기가 되었고, 동쪽에서는 한나라를 굴복시켰던 적도 있고, 다른 부족들과 함께 서쪽으로 가서 로마를 멸망시키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들 때문에 헝가리란 명칭이 나온 것이다. 흉은 헝이고, 우리말 '한.환'이다. 그리고 이 환.한의 본향은 서남해지역을 중심으로 한반도 남한이다. 그러니까 북방 해민족은 한반도에서 이주해 간 토착 한반도인들의 후손들인 셈이다. 그러니까 코카서스 인종과 피를 섞고 한반도로 유입된 신라.가야인종은 더욱 피를 정화하여 토착 한국인종으로 변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한나라와 선비족의 연합공세로 서진한 흉노의 갈래인 훈족은 헝고리 국가를 건설하게 되는데, 헝가리는 한-고리에서 온 것이고, 불가리아(부여족 부여고리족이 건국)는 부여-고리에서 온 것이다. 몽고족의 침입 전에 헝가리로 들어 와 헝가리 국가를 건국한 마자르는 마가르로 읽을 수도 있겠으나 말-갈이다. 마자르도 동양인 유전자를 가진 기마 유목민들이다. 마자르는 몽고족 침입 후에 몽고족으로부터 유럽을 방어한다.

불가리아의 수도가 소피아인데 부여에서 나온 백제 수도 사비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는 서울이란 뜻이겠다. 불가리아와 헝가리아 사이에 루마니아(로마인이란 뜻)가 있는데 드랴큐라로 유명하다. 여기서 “가르”는 아마도 부족이나 땅을 나타내는 것이겠다. 잉글랜드, 도이칠란트, 스코트랜드 할 때의 “랜드”라는 것이 땅이란 뜻이며 국가란 뜻이다. 마찬가지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무슨 무슨 스탄 등의 “스탄”도 땅이란 뜻이다. 돌궐도 서쪽으로 퍼져 나간 적이 있는데 투르크 계열 언어를 남겼다. 이 언어의 흔적이 있다면 한 때 돌궐의 지배를 받았거나 돌궐인들이 들어가 살았다는 뜻이다. 이 돌궐은 흉노 밑에 있던 부족인데 나중에 흉노를 엎었다. 이들 중 일부가 지금의 터키로 이주하여 유럽과 아프리카를 지배한 투르크 제국(셀주크, 오스만)을 건설한다. 서진한 돌궐족에 20만여명의 고구려 유민들이 합세하는데, 이들 강인한 고구려 유민들이 투르크 제국 건설의 주역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흉노가 힘을 잃었다고 하나 한나라가 삼국지 시대를 거친 후에 5호16국 시대가 되면 북방의 여러 기마민족들이 중국으로 들어가 건국하게 된다. 그 중에서 부여족의 일파인 선비족이 통일하여 수나라, 당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그 이전의 5호16국 시절의 여러 국가 중에 흉노계 국가는 신라와 친했으리라. 신라가 흉노의 후손임을 거론하기 때문이다. 기마민족의 특성상 지배 민족에 이끌려 이리 저리 이동하면서 전쟁에 참여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스키타이 백인 계통 중의 일부가 동쪽 땅으로 와서 신라 피가 섞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라 왕들이나 귀족 무덤에 서역인 흉상이 세워진 것이다. 동부에 나타나는 백인 유골은 바로 이들이다.

몽고와 유럽 사이의 중앙 아시아 초원이 있는데 여기는 카자흐 족이나 기타 다른 족속이 살고 있다. 인종은 백인과 동양인의 중간 정도 된다. 혼혈이 많다. 이들 중 일부가 몽고를 따라 고려에 들어 온다. 위구르 족도 혼혈이 많은데 이들 중 일부가 몽고 침입 때 고려에 들어 온다. 물론 이슬람 교도들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살기 위해서 유교로 바꾼다. 불교나 이슬람 모두 인정 받지 못 한다. 이 지역이 이슬람이 된 것은 당나라 고선지(고구려 유민 후손) 장군이 아랍 이슬람 제국과 전쟁에 패한 후부터다. 원래는 위구르족이란 기마 유목민으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이로부터 중국의 서쪽 지역 모두 이슬람 지역이 된다. 중국의 회족은 원래 아랍인들이었다. 그래서 한국인들 피에도 여러 혈통이 섞여 있다. 여하튼 이런 이유로 한국인들 중에 백인처럼 생긴 특징이 보이거나, 피부가 하얗고 예쁜 사람들은 서쪽에서 온 혼혈인들이라서 그런 것이다.

4한국을 건설한 징기즈칸의 유라시아 몽골을 보아도 동방과 서방을 이어 주며 문명발전에 공헌한 유목민은 단순한 야만인들이 아니였다. 그러나, 대륙적이고 개방적이고 통합적인 유라시아 초원기질을 포기하고 우물안 개구리들이 되어 탐욕과 독점에만 혈안이 된 영패주의 세력은 사실 초원기질과는 거리가 멀다. 매우 개방적이고 통합적이고 대륙적이면서 독점적이고 탐욕적인 지역집단 이기주의를 부셔 버리겠다는 한국인들이야말로 가장 유목민적인 기질이 강한 스타일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참고로 윤복현의 경우 광대뼈가 튀어 나온 오리지날 북방계에 쌍꺼풀이 있는 오리지날 남방계가 혼합된 한국인으로 대륙과 해양노선을 지향하는 유전자 형질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북방계와 남방계가 혼합된 광개토태왕의 노선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라 김씨들만 기마 유목민의 후예는 아니다. 모든 한국인들의 피 속엔 기마 유목민들의 피가 섞여 있다. 신라가 고려에 망할 때 신라왕조의 김씨계의 왕족이 북으로 가서 여진족의 추장이 되었다. 그 부족이 완안부이다. 그 족속이 여진족을 통일하여 금나라를 건국하고 나중에 또한 애신각라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청나라(후금)를 건국하니 대륙적인 기질이였다. 한반도를 탈피하여 만주로 나갔기 때문에 훗날 대국 청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대도 아직까지 신라가 지나대륙에서 개국했네하는 자들은 냉수마시고 속 차리기 바란다. 신라는 한반도 동부 구석지에서 진한3촌과 사로국을 거쳐 4-5세기 유입된 흉노선비족에 의해 세워진 나라다. 한나라에 투항하여 지나화된 흉노족 김일제 세력은 신라왕조의 주역이 아니라, 진골에 속하는 귀족세력이라고 보면 되고, 김씨로 창씨 개명한 모용선비족이 신라왕조의 주역이다.윤복현이 신라와 가야의 실체를 비로소 밝혀 주나니 신라사 연구가들은 참조하라!

출처 : 삼태극
글쓴이 : 윤복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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