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삶의 흔적

[스크랩] 집안 피라미드 - 고조선 문명

설레임의 하루 2012. 6. 30. 00:24

 

집안의 적석총(피라미드)는 고조선 유적 가능성


한민족 피라미드에 대한 논란의 중심에는 독일학자 하우스돌프(Hartwig Hausdorf)의 저서인 "White Pyramid" 일명 하얀피라미드 때문이다.


 


하우스돌프(Hartwig Hausdorf)에 따르면 ‘하얀 피라미드’는 작게는 25m부터 크게는 100m까지 높이로 수십여개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또 산시성 근처가 외국인출입 금지 지역인데다 나무를 심어 피라미드가 아닌 것처럼 은폐했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주장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에 그레이엄 핸콕은 “중국 산시성 피라미드와 이집트 피라미드의 배열 구조가 흡사하다”며 하우스돌프의 이론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중국의 한 고고학자는 “이는 피라미드가 아닌 중국 왕조의 왕릉(무덤)일 뿐이다.”라며 “왕릉근처 극비의 군사 시설이 있어 ‘외국인 출입 금지’ 구역으로 설정돼 있었다”고 밝힌다.

중국의 피라미드를 소개한 하우스돌프(Hartwig Hausdorf)는 UFO 전문가이다. 그는 일본과 중국의 고대문명은 외계인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하우스돌프(Hartwig Hausdorf)의 이러한 허무 맹랑한 주장은 다음과 같이 허위로 판명된다.


 

위 좌측 이미지는 47년 미 공군이 찰영하고 하우스돌프가 자신의 저서인 '하얀 피라미드'에 실은 문제의 피라미드 사진이고, 우측은 2001년경 찍었다는 인공위성 사진이다. 두 사진이 동일한 대상을 촬영한 것인지를 비교해 보았는데 맞다는 결론이다.


 

"white pyramid" 영문 번역판엔 (It is found in Tibet - located in the Qin Ling Shan mountains, about 100km southwest of the city of Xi'an.) 라고 되어 있다.

위의 지형은 진령산맥에 속하고 이 골짜기를 "서안 남서쪽 100km"로 본 듯하다. 서안 북서(원래는 남서)쪽 100km지점의 진령산맥 골짜기에서 북서의 역방향인 남동(원래는 북)쪽으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문장중 "Tibet - located"는 "티벳과 골짜기 사이"로 해석 되는데, 중국 시안이라 해놓고 티벳의 골짜기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수가 없다.


 

하우스돌프(Hartwig Hausdorf)가 항공기를 타고 가다, 푸른들판에 회색빛으로 우뚝솟아 올라 사면에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모습을 보고"white pyramid"라고 명명한 무릉(茂陵)이다. 위 사진은 나무를 심기 전의 무릉(武陵)의 모습이다.



 

무릉(茂陵), 서한시대 황제인 무제(武帝)의 능이라고 알려져 있다. 무릉은 서안에서 40여km 정도 떨어진 흥평현(興平縣)에서 동북쪽에 자리잡은 무릉촌(茂陵村, Maoling))에 위치하고, 무릉을 중심으로 동서 수십km가 능역권이다. 무릉의 높이는 46.5m, 아랫부분은 동서로 2백31m, 남북으로 2백34m, 부근에 있는 서한시대 황제의 함양지역 9개능 중에서 가장 크다.


이렇게 허위로 들어난 하우스돌프(Hartwig Hausdorf)의 주장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중국의 피라미드는 한민족이 세운 것이라는 설이 등장하게 된다. 또한 인터넷에 우즈베키스탄 카스카다리인의 고건축물과 섬서성 서북지역에 있는 서하왕릉, 기타 관중평야의 무덤 등을 짜깁기해 몽고 피라미드, 만주 피라미드 라며 한민족과의 연관성을 주장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한민족 피라미드 주장의 근거에는 하우스돌프(Hartwig Hausdorf)가 자신이 발견했다는 피라미드의 조성 연대를 5000년 전으로 판단한 기준은 주변 사원의 승려들 증언에서 비롯된 것이다. 라고 한 것에 기인한다.


특히 몽고 피라미드 설은 김상일의 <인류문명의 기원과 한> 이라는 책을 통해서 소개 되었다. 책의 내용중에 - 김상일은 Fred Meyer Shoder가 쓴 "Pyramids of Shensi" - (The Man's Magazine p89) 자료를 인용하여 몽골의 쉔시 지방에서 발견된 피라미드가 높이 1000피트, 1500 평방미트 넓이의 피라미드는 약 6천년 전의 것으로 이집트 피라미드의 두배나 되는 거대한 것이라고 했고, 쉔시에 약 8개 가량이 있는데, 흙을 이겨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책 377페이지에 그가 몽고의 피라미드라고 말한 그림은 몽고의 피라미드가 아니라, 바로 XIAN 즉 서안 주변에 있었던 것이다. 즉 하우스돌프(Hartwig Hausdorf)의 white pyramid

책 95P의 그림과 비교해 보면 이를 인용한 것을 알게 된다.

김상일은 SHENSI를 몽고방면으로 해석했는데, 혹시 이것이 바로 서안에서 가까운 산서(山西) 지역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에 이곳에서 피라미드가 발견 되었다면 그것은 선비족의 것이거나, 아니면 저족, 강족, 혹은 흉노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북위의 최고 권력자였던 문명태후릉(481-484년)을 보면 높이 22.87미터, 남북 117미터, 동서 124미터의 크기로 피라미드를 연상시킨다. 이 무덤은 산서성 대동부에 있는데, 이곳이 당시 북위 수도 주변이었다.


피라미드(pyramid)의 대표격인 이집트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 건축에서 사각형의 기초를 갖고 정점에서 만나게 되는 거대한 석조 구조물의 형태를 취하는 무덤이다. 주로 고대 이집트의 국왕 또는 왕족들의 무덤이었던 피라미드는 간단한 외부 형태와는 반대로 석관실을 포함한 복잡한 내부구조로 되어 있으며, 채광과 환기를 위해 구멍을 두기도 했다. 또한 피라미드의 각 모서리는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도록 배치되었으며 삼각형 사각형 또는 다각형의 추상체의 밑면에 거석을 쌓아 올리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b.c. 2700년경, 카이로 부근 서쪽 사막 지대인 벰피스 지방에 위치한 <기제(gizeh)의 피라미드군>을 꼽을 수 있다.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분묘건축이라 할 수 있는 마스타바의 단순 입체형태에서 출발해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를 거쳐 완성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왕권의 지고함과 영원성과 안정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를 상징적 공간, 즉 통로를 통해 그것을 표출하고 있다. 마스타바란 초기 이집트 시기(1왕조~4왕조)에 보인 것으로 선왕조시대 말까지 간단한 구덩식이었던 무덤은 죽은 자의 주거로서 집의 기능이나 구조를 갖추어 축조하게 되었다. 지하의 널방[墓室] 위에 직사각형으로 대상(臺狀)의 지상 건조물을 세우는 것이 그 특징으로, 보통 햇볕에 말린 벽돌(후에는 석회암)로 바닥이나 벽 ·지붕을 쌓는다.


일설에는 세계 곳곳에 있는 피라미드(이집트, 마야, 티베트, 중국)는 모두 고조선의 시대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초기 무덤인 고인돌은 5~7000년 전 경에 생겼으며 이후에 나타나는 피라미드의 기원이 된다고 말한다. 이는 고인돌을 한민족 초기무덤이라고 규정짓고, 이에 대해서 피라미드와의 연관성 등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부르는데 기원전 7세기경 신석시시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전 세계로 전파된 한민족문화 유산이다. 동일한 유적의 분포지역은 역사학적으로 동일한 민족이 이동하면서 만들어진 문화로 본다. 즉 고인돌을 통해 인류의 흐름을 보자면 기원전 7세기 시대부터 기원전 2세기시대까지의 세계적 유적으로써 한반도에서 인류가 시작되어 중국 랴오닝성과 산둥반도 및 일본 규슈[九州], 북유럽·서유럽·지중해 연안·북아프리카·서남아시아 일대의 신석기시대 묘제로 분포하는 바,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미미하나, 한국의 고인돌과 유사한 형태로써 그 형태적 의미를 볼때 한민족과 직접적인 문화적 관계가 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고인돌이 신석기시대의 묘제라는 주장은 사실 30여년 전부터 논의 되었던 사안이다. 예를들어 양평 양수리 고인돌 덮개돌 아래에서 발견된 목탄을 가지고 연대측정을 한 결과 3,900±200B.P.가 나왔으며, 이를 MASCA 이론으로 계산해 보면 4,140~4,240B.P라는 연대가 나온다. 그밖에도 여러 자료를 들어 연대를 추론해 보면 중기 신석기시대 정도로 상한을 설정할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Daniel G.E.와 Renfrew.C, 그리고 Hawakes.J는 자신의 저서 및 연구물에서 서유럽의 고인돌 및 거석문물의 상한연대를 3000 ~ 5000년 이전인 신석기시대로 잡은 바 있다. 그리고 학계에서는 그 형태 및 덮개돌 아래의 묘실 구조를 미루어 보아서 유럽 쪽의 고인돌과 한국의 고인돌과 큰 연관성이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리고 지석묘(支石墓)는 중국에서 유래한 말이 아니라, 이규보가 쓴 글에서 유래한 것이다. <동국이상국집>에 보면 “다음날 금마군(金馬郡)으로 향하려 할 때 이른바 ‘지석(支石)’이란 것을 구경하였다. 지석이란 것은 세속에서 전하기를, 옛날 성인(聖人)이 고여놓은 것이라 하는데, 과연 기적(奇迹)으로서 이상한 것이 있었다.” 라고 하였듯이 이규보는 지석(支石)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후세에 고분이라는 점을 명기하기 위하여 墓라는 한자를 붙였다.


상기 주장은 일견 맞는 부분도 있고, 다른 대륙의 피라미드를 한민족과 연관 시킨 부분은 조금 비약시킨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현재 요하를 기준으로 동만주에 있는 피라미드(적석총)은 과연 어느 시대에 누가 만들었을까?


작은 돌을 모아 큰 돌집을 만들수있고 이러한 돌집은 견고하여 오래간다는 사실을 파악한 사람들이 기술이 발전하였고 사람수가 많아지면서 좀더 큰 집을 만들게 되고, 넓은지역, 많은 사람수에 따라 크게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초기 피라밋은 한반도의 피라밋처럼 작게 지어졌으나 이들이 대륙으로 진출하면서 기술이 발달하여 지금의 북중국 피라밋처럼 수십기의 거대한 피라밋으로 발전하게 된것이다.


상기 주장은 피라미드를 축조하게된 이유를 설명한 것인데, 처음에 돌집을 만들었고 기술이 발전하여 피라미드를 축조 하였다고 한다.


 

(삼좌점 주거지를 둘러싼 석성은 일정하게 튀어나온 치를 갖고 있었다. 적봉시 삼좌점 언덕에 둥글게 돌을 쌓아 만든 고대인의 주거지. 아래는 중국 요녕성 등탑현에 있는 고구려 백암성의 치와 수원 화성의 치)


적봉시 삼좌점 유적에서 돌을 쌓아 만든 주거지가 발견 되었다. 그렇다면 상기의 주장처럼 돌집에서 피라미드로 발전 했다는 가설이 맞는 것인가, 주거지와 피라미드의 축조 목적상 이는 이치에 맞지가 않다.


1980년대 이후 옥기 부장묘, 제사 유구와 그 유물이 합쳐진 대규모 유적군을 이루는 우하량(牛河梁), 동산취(東山嘴)유적이 발견된다. 우하량 홍산문화 단묘총(牛河梁 紅山文化 檀廟塚) 유적은 (BC 3600년)에 고대문명의 존재를 시사하고 있다. 또 등신대의 신상을 모시는 복잡한 구조의 제사 유구의 발견은 처음 있는 일이며, 다양한 형태의 적석 유구와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석관묘군이 대규모로 복합된 이런 거대한 유적을 홍산문화라 한다. 또한 홍산유적에서 발굴된 비파형동검으로 그 문화를 고조선의 것으로 인식한다.


우하량(牛河梁) 일대를 탐사한 이형구 교수의 주장을 들어보자.


 


홍산문화(紅山文化) 돌무덤은 랴오닝성 푸신(阜新) 후터우거우(호두구·胡頭溝)에서도 확인했다. 이는 매우 의미심장 했다. 홍산문화 시대(BC 4500~BC 3000년) 위 문화층에서 한반도와 발해연안의 대표 유물인 비파형 청동단검이 나왔기 때문이다. 비파형 청동단검을 썼던 사람들이 홍산문화인들의 묘제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의미이다. 우리 민족은 끔찍하게 돌무덤을 사랑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 직전 중국 정부는 지안(輯安) 주변에서만 1만3000여기의 고구려 적석총을 확인했다. 43년이 흐른 지금에도 약 6000기가 남아 있다.

“고구려는 돌로 쌓아 봉분을 만든다(積石爲封)”(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기록이 단적인 예다. 그런데 고구려 시대보다 무려 3500년 전에 조성된 엄청난 적석총과 피라미드가 랴오허 동쪽인 랴오둥(요동·遼東)이 아니라 서쪽인 다링허(大凌河) 유역에서 확인됐다.


적석총은 그 전까지는 랴오허를 중심으로 서쪽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랴오둥 반도에는 (BC 2500)년의 돌무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적석총뿐 아니라 석곽묘·석관묘, 그리고 지석묘(고인돌무덤)까지 다양하다. 우선 랴오둥 반도에는 뤼순(旅順)시 라오톄산(老鐵山)과 장쥔산(將軍山)을 비롯해 쓰핑산(四平山)·위자춘(于家村)·바이강쯔(柏崗子)·다타이산(大臺山) 등 이름을 열거하기도 힘든 적석총들이 있다. 이 돌무덤들은 주로 바닷가에 면한 산등성이와 낮은 언덕에 수기 혹은 수십기씩 연속적으로 배열돼 있다.

이 가운데 일본 인류학자 도리이 류코(鳥居龍藏)가 가장 먼저 라오톄산 적석총(1909년)을 발견했다. 적석총 안에서는 여러 개의 석실이 확인되었다. 이는 훗날 발견된 홍산문화 시기의 뉴허량 적석총과 비슷한 구조다.


이형구 교수는 “뉴허량 적석총은 BC 3500년으로 편년된다. 그리고 랴오둥 반도의 적석총군은 BC 2500~BC 2000년, 한반도의 적석총은 BC 1500년 이하…. 이것은 돌무덤의 원류는 홍산문화이며, 이것이 랴오허를 건너 랴오둥 반도를 거쳐 한반도~일본 열도로, 지린(吉林)~연해주로, 몽골~시베리아로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된다.”라고 하면서 홍산문명의 주인공인 고조선인들의 이동을 증명한다.

따라서 홍산지역에서 발견된 거대한 석붕(石棚)은 고조선의 유물로 추정 할 수가 있겠다. 고고학 문화는 동일시대, 일정지역에 집중 분포하며 동시에 일정한 지역적 특성을 갖는 유적과 유물의 공동체이다. 하나의 문화는 반드시 일군의 특징이 있어야 하며, 같은 문화권에서는 동일한 특징, 동일한 유물이 출토되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홍산문명 동쪽, 현재 길림성 집안에 산재해 있는 피라미드는 고구려 건국 이전의 고조선의 유물로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마지막으로 신단수와 고조선 피라미드의 상관관계에 대한 주장을 알아보면서 끝맺음을 하고자 한다.


신단수(神壇樹)의 의미는 삼국유사에 보면 [환웅(桓雄)]께서 태백산 꼭대기(太伯山頂) 신단수(神壇樹)아래 계셨고 이를 신시(神市)라 한다고 나온다. 그런데 산꼭대기에서 시(市)를 여셨다. 라고 하였는데 山 이라 하니 후세에 마운틴을 뜻하는 줄 알았을 것이고, 결국 삼국유사에도 그러한 듯이 기록되었지만 山 이란 원래는 마운틴 보다는 고대한민족 피라미드 특히 중심 3연성 피라미드를 뜻한다고 한다.


 

(장군총 꼭대기가 흙으로 돼 있다. 신단수(神壇樹)를 심을 만하다.)


[신단수(神壇樹)]는 [신단(神壇)의 나무]라는 말인데 [신단(神壇)] 즉 [신성한 제단]은 피라미드를 말한다. 즉 [신단수(神壇樹)]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심은 나무를 의미한다.


 

       (성황당(聖皇堂)과 당산(堂山)나무)


한국에는 예로부터 마을에 [성황당(聖皇堂)과 당산(堂山)나무]가 있는 풍습이 있다. [성황당(聖皇堂)]은 고대에 피라미드를 만들던 풍습이 간략화되어 전해진 것이라 한다. 그런데 동네 [당산(堂山)나무]는 성황당이 피라미드와 달리 작아서 [당(堂)]위에 심지 못하고 옆에 심을 수 밖에 없다. 성황당 옆에 심던 나무는 [당산(堂山)나무] 또는 [당(堂)나무]라 한다. 즉 피라미드 [당(堂)]을 [당산(堂山)]이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삼국유사 기록중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의 존칭에 굳이 [木]자가 들어가는 것이 그 [신단수(神壇樹)]를 뜻하는 것이다. [根 - 뿌리 근, 근본 근] 이 글자는 [근본]을 뜻하는 글자인데 [木 + 艮] 즉 [간(艮)의 나무]라는 말이다.

[간(艮)]이란 [동북(東北)방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간(艮)의 나무]란 [신단수(神壇樹)]를 뜻하는 것이고 고대 최고지도자가 피라미드 위 신단수 앞에서 사람들에게 교화했으니 그리하여 세상의 정신문명, 물질문명의 뿌리가 되었으니 근본 (뿌리)를 [간(艮)의 나무]라고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다.

신시(神市)는 신단(神壇) 즉 신성한 피라미드를 뜻하고 이 곳에서 문명이 퍼져나갔기 때문에 차차 시(市)라는 말이 도시를 뜻하게 된다. 피라미드에서 성인(聖人)이 교화하는 모습인 [시(市)]가 [문명의 중심]인 [도시]라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고대에 피라미드가 문명의 중심이었다는 말이다.


중국 고전 산해경(山海經)의 대황동경(大荒東經)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귀절이 나온다.


[東海之外 有山名曰大言 日月所出 有大人之國 有大人之市 名曰 大人之堂 有一大人踆其上]

[동해의 바깥에 [대언(大言)]이라는 산이 있는데 해와 달이 뜨는 곳이다. 그곳에 대인(大人)의 나라, 대인의 시(市)가 있는데 이를 대인의 당(堂)이라 부른다. [준(踆)]이라는 대인이 그 곳의 지도자다.]


위에서 시(市)를 당(堂)이라 부른다 했는데 시(市)도 피라미드를 뜻하는 글자이고 당(堂)의 고대형도 피라미드를 뜻한다. 성황당(聖皇堂)의 원조는 고대한민족 피라미드 이다.

고대한민족을 솟대와 비단의 땅이라 했는데, 왜 [신단목(木)]이라 하지 않고 [신단수(樹)]라 했을까.


[樹(수)]는 나무(木) 중에서도 [고인돌] 위에 있는 나무를 뜻한다. 고인돌은 대체로 나무를 심기에는 좀 작다. 하지만 피라미드는 [고인돌의 발전형]이고 고인돌은 피라미드의 축소판이다.

비교적 작은 크기인 고인돌 위에 굳이 나무를 심는다던지 나무를 올려 놓는 다던지 한 것은 [피라미드 위의 신성한 나무]를 상징한다 하겠다.

이 처럼 나무 [樹(수)]자는 원래는 아무 나무나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고인돌 위에 또는 옆에 있던 신성한 나무를 뜻하는 것이고 고인돌이 피라미드의 축소판이므로 [樹(수)]자는 원래는 [피라미드 위에 있던 신성한 나무]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래는 그냥 [樹(수)]라고만 하여도 신단수(神壇樹)를 뜻하게 된다.

이렇게 [樹(수)]는 신성한 나무를 뜻하는 글자이므로 후대에 차차 나무를 칭할때 그냥 [木] 이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樹(수)]라고도 많이 하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태왕사신기의 태백산 신단수)


신단수는 세계에 널리 퍼진 세계수 신앙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수(世界樹)는 우주목(world tree, cosmic tree)이라고도 하며, 우주의 기원과 구조 및 삶의 근원을 상징한 나무라 할 수 있다. 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북아메리카 등지에 널리 퍼진 신화와 민담의 주제인 지혜의 나무(tree of knowledge), 기독교 신화에 등장하는 선악과 나무(지혜의 나무)와 생명의 나무 역시 세계수의 일종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부상(扶桑)이 우주수로 등장하고 있다. 뽕나무 잎을 가진 이 나무는 아홉 개의 태양이 아랫가지에 있고, 한 개의 태양이 윗가지에 걸려있는 높이가 3백리나 되며 둘레가 2천여 아름에 달하는 거대한 신화적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한민족은 높은 산이나 나무숲을 신성시했다. 그것은 만물유신사상, 바로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체로서 하늘높이 솟은 신단수이다. 선인들의 나무숲 민속도 수직성의 신단수와 무관하지 않다.

예컨대 한민족은 묘지 주변에 소나무숲을 조성해 영혼을 달랜 풍습이 있다. 이는 수직적으로 곧은 숲이 있어야만 영혼이 그 숲을 이용해 천상계와 지상계를 오르내리며 스스로 위로를 삼을 수 있다는 정령관념이다. 그러니까 숲이 없으면 영혼이 안정을 잃고 묘지 밖으로 탈출해서 자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믿는 습속이다.

나무숲 속언도 수직성과 관련이 있다. 꿈에 소나무숲이 무성하면 집안이 번창한다는 믿음은 소나무가 하늘높이 왕성하게 자라는 것을 번영으로 표상한 주술적 관념이다.


중국의 경우, 동해 복판에 솟아있는 소나무가 우주수로 나타나고 있다. 만년송(萬年松)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나무의 뿌리는 우주의 원천인 구천(九泉)에 박혀있고, 그 가지는 해와 달이 머무는 구천(九天)을 뚫고 솟아 있으며, 천하만물의 기(氣)가 이 소나무에서 이합집산을 한다고 전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의 중심에 자라는 거대한 소나무가 우주수로 전설 속에 등장하고 있다. 인도는 신화적인 아스바타(Asvatha)나무가 우주수로 등장하는데, 이 우주수의 가지들은 지상, 물, 공기, 창공, 불 그리고 우주적인 현상을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다.

서양의 경우, 우주수의 흔적은 이집트, 바빌로니아, 러시아, 노르웨이의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집트의 경우, 천국의 신인 누트(Nut)와 하토르(Hathor)가 몸을 숨기고 있는 무화과나무가 우주수로 등장하고 있다. 바빌로니아의 신화적 우주수는 유프라테스 강 하구 근처의 유두(Euidu)라는 고대 도시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이 우주수는 대지를 비옥하게 하는 샘과 강물이 흘러나오는 곳에서 자라며, 지혜의 여신 에아(Ea)가 살고 있는 심연의 수렁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오래된 러시아의 신화 중에서도 부잔(Bujan) 섬에서 자라는 거대한 참나무가 우주수로 등장하고 있는데, 아침 저녁으로 이 참나무에서 태양이 뜨고 진다고 전해지고 있다.


세계수의 전형은 북유럽 노르웨이 신화에서 등장하는 이그드라실(Yggdrasill)이다. 이그드라실은 거대한 물푸레나무인데, 그 뿌리는 3갈래로 갈라져 하계인 니플헤임, 거인족들이 사는 외툰헤임, 신들이 사는 아스가르드로 각기 뻗어 있다. 이그드라실 밑에는 3개의 샘이 있다. 첫째 샘은 우르다르부룬느르(운명의 샘)로 노르누(운명의 여신)들이 그 샘에서 물을 퍼 이그드라실에 뿌려준다. 둘째 샘은 흐베르겔미르(울부짖는 솥)로 그 안에는 뿌리를 갉아먹는 괴물인 니드호그가 살고 있다. 셋째 샘은 미미스부룬느르(미미르의 샘)로 지혜의 원천이며, 그 지혜를 얻기 위해 오딘은 한쪽 눈을 빼서 바쳤다고 한다. 라그나뢰크(최후의 날) 후에 이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기는 해도 새 생명의 근원이 된다.

즉 세계수는 크게 세 가지를 상징한다 할 수 있다. 세계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며, 세계와 우주의 근원(지혜)을 상징하는 나무이자, 생명을 낳는 나무인 것이다. 신단수 역시 이 역할들을 겸한다. 신단수는 환웅이 천상에서 하강한 나무이며, 웅녀가 기원을 드린 나무이다. 이는 하늘과 땅의 통로이자 중심축의 역할을 보여주며, 웅녀가 신단수에 빌어 환웅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는다는 것은 생명의 나무로서의 속성 역시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엘리아데(M. Eliade)는 신화적인 나무, 기둥, 제단 등은 모두 수직적 구조라고 밝혔다. 즉 북유럽신화의 물푸레나무, 고대 그리스의 델포이 언덕, 이집트의 피라미드, 단군신화의 신단수 등이 수직적이다. 이 구조는 세계의 중심이나 중앙을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하늘과 땅을 잇는 가교이자 세계의 중심으로서 태백산과 신단수를 중요하게 여겼을 것이다. 즉, 태백산과 신단수는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이자, 세계의 중심축으로 거의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한 신성한 산의 산정에 자리한 신목인 신단수는 한층 더 신성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피의 제사와 임금의 즉위식 장면. 다섯 그루의 신성한 나무가 뜻하는 것은 마야인들이 누리를 다스리는 다섯의 신격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의 나무들도 단군신화에 보이는 신단수神檀樹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내셔널지오그라픽에서는 이 나무들이 마야의 세계에서 땅과 하늘을 연결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출처 : 천지인 天鼓
글쓴이 : 무극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