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라 한(환)국/고조선(한단고기)

후한(동한)서 濊傳을 식민사관식으로 해석하면 ...

설레임의 하루 2012. 3. 8. 03:33

*출처:다음카페-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心濟 2006.04.20.  http://cafe.daum.net/dobulwonin/GGII/27 

 

 

 

 

 

후한(동한)서 濊傳을 식민사관식으로 해석하면...

후한서] 濊傳에

 

『至朝鮮侯準 自稱王 漢初大亂 燕齊趙人往避地者數萬口 而燕人衛滿擊破準而自王朝鮮 傳國至孫右渠 元朔元年 濊君南閭等

畔右渠 率二十八萬口詣遼東內屬 武帝以其地?蒼海郡 數年乃罷 至元封三年 滅朝鮮 分置樂浪臨屯玄??番四郡 至昭帝始元五年

罷臨屯?番 以?樂浪玄? 玄?復徙居句驪 自單單大領已東 沃沮濊貊悉屬樂浪 後以境土廣遠 復分領東七縣 置樂浪東部都尉...

(중략)...建武六年 省都尉官 遂棄領東地 悉封其渠帥?縣侯 皆歲時朝賀 〉

 

 조선후 준에 이르러 스스로 왕을 칭했다. 전한초 대란이 나자 연제조인들이 피란 간 사람들이 수만 명이나 되었는데 연인 위만

준을 쳐서 깨뜨리고 스스로 조선의 왕이 되어 손자 우거에까지 전해졌다.

원봉3년(서기전 108년)에 이르러 조선을 멸하고 낙랑, 현토, 진번, 임둔 4군을 나누어 설치했다. 소제 시원5년(서기전 82년)에

이르러 임둔, 진번을 폐하고 낙랑과 현토에 합치고 현토는 다시 구려로 옮겼다.

단단대령 동쪽의 옥저와 예맥은 모두 낙랑에 속하게 했다. 후에 지역이 넓고 멀어 다시 대령의 동쪽 7현을 나누어 낙랑 동부도위를

두었다.

...(중략)...건무6년(30년) 도위관을 없애고 영동의 땅을 포기한 후에 모두 그곳 거수들을 현후로 봉했는데 세시마다 조하하였다』

 

A .재야사학의 지리적해석

 

1) 단단대령

2)요수의 해석 -요수와 영정하는 엄연히 다르다.

 



濕 水=熱 水=永 定 河(중류)=桑 乾 河(상류)

浿 水=潮 河 입니다.

난하가 요하이며 ,영정하는 요하와 상관없는 수계로 산서성에서 들어옵니다.


기존의 지리적해석

 

1.요하가 요녕성에 와 있다.(난하=요하)




윗그림은 지나인들이 조작한대로 그린 요하 (宋代부터 조작한것으로 추정)

 


한사군위치

 

2. 왼편이 기존 이병도학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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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 그림에서 한의 낙랑군은  최씨 낙랑국으로 이론이 바뀝니다.

 

오른쪽 그림은 2006년도 중앙대 박사학위논문에서 주장된 이론,현 사학계풍토에서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고무적 입니다만

이미 재야사학보다 논리적으로 뒤떨어진것. 

 

운영자 씀.